# 128
귀환 마교관
128화
‘이미 너무 늦었어.’
매설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저만치 나뭇가지 위를 바라보았다.
사비강은 이곳에 도착한 후 줄곧 저 나무 위에서 잠만 자고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말 어쩌면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총군사 구윤과 약조한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정사대전이야 그렇다고 치자.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저 아이들을 절정 고수로 둔갑시킬 수 있을까?
매설란은 강가에 군데군데 모여 노닥거리는 생도들을 훑어보았다.
해맑게 웃고 떠드는 생도들.
아직은 중책을 맡기에 앳되어 보이는 얼굴들이다.
실력도 그만큼 미숙하다.
그런데도 사비강은 남의 이야기인 것 마냥 저리도 태연하다.
매설란이 몸을 훌쩍 날려 사비강이 누워 있는 나뭇가지 위로 올라섰다.
“으음?”
기척을 느낀 사비강이 한쪽 눈을 떴다.
“얘기 좀 해요.”
“갑자기 무슨 얘기를? 고백이라면 나중에….”
“시답지 않은 소리할 생각이 아니에요. 진지해요.”
“모든 고백은 진지한 법이지.”
“어쩔 거예요? 정말 저 아이들을 데리고 감찰대를 구성할 생각이에요?”
“응.”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생도들을 모두 절정의 고수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당신은 이렇게 잠만 자고 있고.”
“걱정 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어. 내겐 뜻이 있으니 길도 있을 거야.”
‘그게 무슨 개소리예요?’
정말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매설란이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고는 말을 이었다.
“설마 총군사를 상대로 사기를 칠 생각은 아니죠?”
“하하하! 그것도 재미는 있겠네.”
“뭐라고요?”
“일단 내가 감찰대를 맡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잖아?”
“그야 그렇지만….”
“우선 하나씩 하자고. 이 전쟁을 이제 끝내야 할 때가 왔어. 이번 마무리를 제대로 하면 총군사는 우리에게 감찰대를 맡길 거야. 생도들 실력에 대해서는 그때 생각하자고.”
매설란은 뭐라고 더 따지고 싶었지만, 입만 벙긋거리고 말았다.
상황을 인식하는 정도 차가 너무 크니 대화가 되지 않는다.
때마침 당이협이 도착했다.
그는 어디선가 나룻배 세 척을 구해 왔다.
나룻배 치고는 비교적 큰 배였기에 생도들을 모두 태우고 강을 건너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사비강이 몸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다들 모여라! 배를 구해 왔으니 지금부터 강을 건널 거다. 강을 건너는 동안에는 너희들 각자가 공력을 이용해서 배를 밀어 보도록.”
물론, 절정의 경지에도 오르지 않은 생도들이 그런 상승 무공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시도라도 해보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생도들도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 척의 배에 나뉘어 올라탔다.
매설란과 당이협이 각각 배 한 척씩 맡아 인솔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사비강이 올라타자 세 척의 배가 나란히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처음 생도들은 공력을 이용해서 배를 밀어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강을 절반도 건너기 전에 모두 지쳐 버리고 말았다.
미약한 힘이나마 서로 모아서 배를 밀어내니 배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실제로 체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중에는 노를 저으며 건너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러니 매설란의 근심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량이 많이 발전했다지만 겨우 일류 수준에 불과한 생도들이야. 이들을 어떻게 단기간에 절정 고수로 만들겠다는 거지?’
그녀는 저만치 배 위에 올라탄 사비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과 달리 사비강은 어떤 근심 걱정도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이 이렇게나 궁금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매설란이 얕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비강을 만난 이후로는 수수께끼 속에서 살아가는 것만 같다.
촤륵. 촤르륵.
강을 건너는 동안 해가 완전히 저물자 적막함 속에서 노 젓는 소리만 들려 왔다.
그렇게 건너편 강기슭까지 삼십여 장 정도 남았을 때였다.
사비강과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단리정이 눈살을 살짝 구겼다.
저만치 수면 아래에서 뭔가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파악조차 되지 않을 만큼 어두운 물속이었지만, 그는 드래곤 아이를 착용한 덕에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지?’
수면 아래에서 뭔가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종의 위기의식을 느낀 단리정이 사비강을 불렀다.
“교관님, 저기… 이상한 게 다가오고 있습니다만.”
“음?”
무심코 고개를 돌린 사비강의 미간이 좁혀졌다.
단리정의 말대로 뭔가가 이곳으로 질주해 오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대로라면 부딪치고 말 게 분명했다.
노를 젓던 생도 역시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는 뱃머리를 틀었다.
하지만 수면 아래로 돌진해 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결국 사비강이 나서며 소리쳤다.
“모두 꽉 잡아!”
심상치 않은 상황에 생도들 모두 배의 난간을 콱 움켜잡았다.
다음 순간, 사비강이 공력을 불어넣자 뱃머리가 급격히 회전했다.
촤아아아아!
나룻배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빙그르 돌아갔다.
“우왁!”
“헉!”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란 생도들이 배의 난간을 잡은 채 비명을 터뜨렸다.
한편, 나룻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간 무언가는 그대로 강기슭 쪽으로 향하더니.
꽈앙!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물보라가 솟구치는 게 아닌가?
생도들이 멍한 표정으로 강기슭을 보았다.
“방, 방금 그거….”
“수중에서 공격을 해온 건가?”
“왜? 누가?”
뜻밖의 상황에 생도들이 술렁거리며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수중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교관님! 저기에 또!”
보통 사람이라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거리.
하지만 단리정은 이번에도 수면 아래로 뭔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다.
사비강이 얼른 소리쳤다.
“이협, 설란! 기슭으로!”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당이협과 매설란이 얼른 공력을 발휘해 배를 밀어 갔다.
츄아아아!
사비강 역시 공력을 이용해서 배를 빠른 속도로 밀었다.
“우왓!”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생도들이 다시 난간을 콱 움켜쥐며 몸을 납작하게 숙였다.
나룻배가 어찌나 빠른지 물결의 반동을 이기지 못해, 뱃머리의 절반 정도는 수면 위를 떠서 달리고 있었다.
촤아아아!
가장 먼저 기슭에 도착한 사비강은 곧장 생도들을 배에서 내리게 하고는 몸을 돌렸다.
예상대로 매설란이 타고 있는 배가 가장 뒤처진 상황.
“설란! 서둘러!”
“알고 있어요! 하지만…!”
사비강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바닥을 차고 수상비를 펼치며 내달렸다.
그러나 수면 아래로 질주해온 폭약이 조금 더 빨랐다.
“치잇!”
매설란이 혀를 차며 얼른 공력을 이용해 방향을 틀었지만, 순식간에 다다른 폭약이 뱃머리 부분에 부딪치고 말았다.
콰아아앙!
물보라와 함께 나룻배 앞부분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으아악!”
“꺄아악!”
나룻배와 함께 튕겨 올라간 생도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매설란이 얼른 바닥을 차고는 몸을 날려 허공에서 생도들을 되는대로 떠밀었다.
툭! 툭!
“우와아앗!”
“꺄악!”
몇몇 생도들이 매설란의 손에 떠밀려 강기슭 쪽으로 붕 날아갔다.
수상비를 펼치던 사비강이 다시 그 생도들을 부드럽게 받아 넘겼다.
마지막으로 기슭에 도착한 당이협이 몸을 날려 생도들을 안전하게 받아냈다.
하지만 겨우 네 명의 생도들을 구했을 뿐.
풍덩! 풍덩! 풍덩!
세 명의 생도가 속절없이 강에 빠지고 말았다.
부서진 나룻배의 파편을 밟고 떠 있던 매설란이 망설임 없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다행히 물에 빠진 세 명의 생도는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매설란은 우선 가까운 곳의 두 생도들을 안아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프하!”
그녀가 숨을 토해내고는 사비강에게 소리쳤다.
“아직 소소가 물속에 있어요!”
매설란의 말에 이번에는 사비강이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다행히 수중에서 능소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갑작스런 충격 때문인지 그녀는 물속에서 의식을 잃은 채 가라앉고 있었다.
‘소소!’
사비강이 얼른 능소소를 향해 유영을 해 가는데,
슈우우욱!
갑자기 그림자 같은 것에 둘러싸인 능소소가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능소소 역시 의식을 차린 듯 경악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입에서 기포가 뿜어져 나오다가 뒤늦게 수중이라는 것을 의식한 것인지 얼른 입을 다무는 것이 보였다.
그림자는 시커먼 칼날을 들어 능소소의 목을 겨누었다.
새파랗게 질린 능소소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비강을 바라보기만 했다.
능소소와 사비강 사이에는 다섯 명의 그림자가 더 있었다.
흑의 무복을 자세히 보니 검은색으로 ‘살(殺)’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살막인가?’
사비강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역시 살막의 살수들을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그만큼 은밀한 조직이다.
‘게다가 일처리 방법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생도까지 인질을 잡았다.
누가 사주했는지 짐작은 간다.
서래향이리라.
그녀가 살막과 접촉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놓아 준 것이기도 했다.
혹시나 그녀가 ‘살막에 사주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은 살막과 접촉할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것도 좋지 않은 시기에.
‘하지만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수 집단.
언젠가는 이들과 접촉하고자 했다.
그런 만큼 이 기회에 확실히 각인을 시켜야 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사비강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살수는 총 여섯 명.
그 중 한 명은 능소소를 인질로 잡았다.
녀석의 표정으로 보아 인질이 쓸모없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죽여 버리리라.
결국 능소소가 저 인질의 손에서 먼저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하지만….
‘소소가 할 수 있을까?’
사비강이 미간을 슬쩍 구기는 사이 다섯 명의 사내들이 물속에서 빠르게 다가왔다.
찰나지간 그들이 품에서 암기를 꺼내 쏘았다.
슈슈슈슈슉!
수십 자루의 암기가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능소소가 인질로 잡힌 상황이지만 순순히 죽어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사비강이 얼른 실드를 발휘하자 날아들던 암기가 속절없이 튕겨 나갔다.
능소소를 인질로 잡고 있던 살수가 미간을 팍 구기고는 금방이라도 찌를 것처럼 칼날을 돌려 세웠다.
능소소의 눈빛이 사비강과 마주쳤다.
사비강이 손을 저었다.
수중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며 글자를 만들어냈다.
‘느껴라(感)!’
물속이니 전음이나 전성을 보내기도 녹록치 않다.
그저 글자를 적어 보임으로써 능소소가 그 뜻을 알아차리길 바랄 수밖에.
그리고 나머지는 제자를 믿고 맡겨야 한다.
‘깨달아라. 죽기 싫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