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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21화 (121/670)

# 121

귀환 마교관

121화

특목각 연무장에 느닷없이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정아, 여기 있느냐!”

마침 연무장에서 한창 수업 중이던 특목반 생도들이 술렁거리며 두리번거렸다.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를 교정해 주던 당이협과 매설란도 흠칫거리고 돌아보았다.

천세명과 함께 나타난 낯선 사내는 눈썹을 성큼 치켜 올리고는 연무장을 두리번거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침 단상 위에서 지시를 내리던 사비강이 그쪽을 향해 비교적 정중히 물었다.

“누구시오?”

하지만 사내는 사비강의 질문이 들리지도 않는지 생도들을 헤집으며 소리쳤다.

“정아! 여기 없느냐! 대답해라, 정아!”

“아, 아버지…!”

단리정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먼 고향에 계셔야 할 아버지가 언제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에게 기별도 없이.

게다가 수업 중에 갑자기 나타나서 이리 큰 소리로 자신을 불러대니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영문을 몰라 걱정도 됐다.

“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어째서 아버지가 여기에….”

“오, 여기에 있었구나! 자, 나와 함께 돌아가자!”

단리추는 단리정을 보자마자 손목을 덥석 잡더니 힘으로 끌기 시작했다.

당황한 단리정이 주변 눈치를 살피며 손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 아버지! 잠시 이것 좀 놓고 말씀하세요. 지금은 수업 중입니다.”

“흥! 수업은 무슨 놈의 수업! 그런 것 들을 필요 없다!”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정말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무슨 일이라면 너에게 있겠지!”

“아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일단 돌아가서 얘기하자! 이 더러운 곳에서는 더 이상 발을 들이고 있기도 싫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천세명은 내심 즐거운 마음이었지만, 겉으로는 안절부절 못하는 척하며 서성거렸다.

때마침 단상에서 사비강이 몸을 훌쩍 날리더니 단숨에 단리추 옆으로 날아와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탁.

그러자 단리추의 한쪽 눈썹이 매섭게 치켜 올라가면서 몸을 휘리릭 돌리더니 사비강의 가슴을 밀어냈다.

그러나 사비강이 쉽게 밀릴 리가 없었다.

그가 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몸을 뒤틀자, 단리추의 손바닥이 가슴을 지나 허공을 때리기만 했다.

‘이익!’

찰나, 단리추가 허리춤의 검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일성검문의 특기인 발검을 일으켰다.

쒸아아아앙!

척.

“와아아….”

“대박….”

“방금… 봤어?”

나직이 탄성을 터뜨린 생도들이 술렁거렸다.

옆에 있던 천세명 역시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단리추와 사비강을 번갈아 보았다.

‘과연 무공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

한편 단리추는 눈을 찢어질 정도로 부릅 뜬 채 사비강의 손가락 사이에 잡힌 자신의 검신을 바라보았다.

최소한의 경우를 따져서 검기까지 일으키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발검은 깔끔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상대방이 이리 쉽게 손가락으로 잡아낼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한데 사비강은 한 걸음 살짝 물러난 상태에서 정확히 자신의 턱 앞을 지나가는 검신을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잡아냈다.

단리추가 힘을 실어 보았지만, 검신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개 교관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상대의 무공이 예상 외로 고강하다는 것에 그는 내심 크게 놀랐다.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시는군요. 부자간이지만 정말 다릅니다. 아마도 정아가 외탁을 했나 봅니다. 하하.”

단리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실, 사비강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단리정은 자신보다 어미 쪽을 닮았으니까.

“흥!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오!”

사비강이 검신을 놓아 주며 포권을 취했다.

“이거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단리정의 담임 교관인 사비강입니다.”

“정아의 아비, 단리추요. 하나,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내 아들의 담임이 아니니 그런 인사말은 필요 없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비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물론, 모여 있던 생도들과 단리정 역시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리정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시끄럽다. 너도 잘 한 게 없다!”

“아니, 갑자기 무슨….”

“저자가 너에게 또 뭘 시키더냐? 그깟 돈 몇 푼으로 학관을 다니게 해줬다고 뭘 요구하더냐? 아니다, 남세스럽게 여기서 얘기할 일이 아니다. 우선 돌아가자!”

“아버지?”

“어서!”

단리추가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다.

단리정이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 하는데, 천세명이 다가와 친근한 척 말을 붙였다.

“흐음. 아무래도 아버님이 몹시 화가 나신 듯하니 자네도 얼른 따라가 보게나.”

“아, 예….”

단리정이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려는데.

턱.

사비강이 단리정의 어깨를 잡았다.

“어딜 가느냐? 아직 수업 중이다.”

“예? 하지만 아버지가….”

단리정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는데, 사비강이 단리추를 향해 소리쳤다.

“아버님, 정아는 아직 수업 중입니다. 수업이 끝나면 아버님께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단리추가 멈칫하고는 돌아보았다.

이제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 뭣이라고? 정말이지 더 이상은 못 참겠군! 당신이 뭔데 내 아들을 보내고 말고 한단 말이오? 당장 내 아들을 놔주지 못하겠소?”

“안 됩니다. 특별한 사유도 없이 아드님을 보내드리는 건 관칙에도 위배됩니다.”

“어디서 그런 개소리를! 학비를 대신 내주고 그걸 빌미로 내 아들을 볼모로 잡은 것이 네놈이 아니냐!”

결국 단리추는 분을 이기지 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비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학비를 대신 내 준 것은 아드님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여 장학금으로 준 것입니다. 그게 문제라도 됩니까?”

“흥, 말은 좋구나! 하지만… 네놈이 내 아들을… 내 아들을…!”

단리추가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는 몸을 휙 돌렸다.

“더 말 할 것도 없다! 정아, 이리 오너라!”

“정아, 수업 끝나지 않았다.”

“정아! 이리 오지 못할까?”

“수업 끝나면 가도록.”

두 사람의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졌다.

마침내 단리정이 말했다.

“아버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수업이 끝나면 가겠습니다. 그리고 사비강 교관님은…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이쯤 되자 단리추는 눈알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결국 그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네놈이 몸을 더럽히더니 마음까지 더럽혀진 모양이구나! 어찌 네가 가문에 먹칠을 하느냐!”

“아, 아버지? 그게 무슨….”

“시끄럽다! 그리고 네 이놈!”

단리추가 사비강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검을 뽑아 들고 살기까지 피워 올렸다.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천세명이 얼른 나서서 말렸다.

“아, 문주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좀 더 자초지종을 알아보신 다음에….”

“시끄럽소! 내 당장 저놈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속이 뒤집어져서 못 참을 것 같소!”

“하지만….”

“교관이라는 작자가 불우한 환경에 처한 생도를 꼬드겨서 남색을 해? 그러고도 네놈이 인간이냐! 이 개만도 못한 놈아!”

상황이 이리되자 생도들이 술렁거렸다.

“남색…?”

“설마 사 교관님이 남색을 했단 말이야?”

“에이, 설마. 사 교관님은 뼛속까지 여자를 밝히는 분인데….”

“그렇지? 그럼 저건 무슨 소리람?”

이에 천세명이 얼른 생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너희들은 모두 들어가 있어라. 무슨 구경났느냐?”

하지만 사비강이 반대했다.

“모두 제자리에. 아직 내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

그는 무겁게 말을 뱉더니 단리추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마침내 두 사람이 마주섰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소.”

“흥! 오해는 무슨 오해? 네놈이 내 아들을 노리개로 삼지 않았더냐? 고작 몇 푼의 학비를 대납해 주고, 내 아들의 몸을 탐한 것이 아니더냐? 이 비참한 말이 내 입에서 나오도록 만들어야 속이 시원했단 말이냐!”

“정아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서 학비를 내준 것은 사실이나, 정아의 몸을 탐한 적은 없소. 그리고 난 여자가 좋소.”

“흥! 궁지에 몰려서 하는 말을 누가 믿을 줄 아느냐?”

“궁지에 몰려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소. 정 못 믿겠으면 매 교관에게 물어보시오.”

“뭐?”

“나는 그녀와 이미 동침한 사이니까.”

“뭐, 뭐?”

난데없는 고백에 단리추는 물론, 모여 있던 생도들과 천세명까지 화들짝 놀라서 매설란을 돌아보았다.

매설란도 갑작스러운 사실 공개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쯤 되자 매설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다가왔다.

“맞아요. 사 교관님은 여색을 밝히는 분이에요. 그리고 저와 동침한 것도 사실이구요.”

상황이 이리되자 다소 난감해진 천세명이 헛기침을 하며 넌지시 단리추에게 말했다.

“커험, 험. 그러니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무 서두르셨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내 아들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이?”

그러자 이번에는 단리정도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아버지! 그만 좀 하세요! 남부끄럽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사비강 교관님은 말도 못할 정도로 여색을 밝히시는 분이라고요! 저 역시 여자가 좋다고요! 며칠 전만 해도 사비강 교관님은 제게 매 교관님의 방을 훔…!”

생각 없이 말을 쏟아내던 단리정이 멈칫하고는 주변 눈치를 살폈다.

모두가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리추가 다그쳤다.

“뭐냐? 말해라!”

“그게… 저….”

“말하라고 했다!”

“사실… 며칠 전에도 전 사비강 교관님과 함께 매설란 교관님의 숙소를 훔쳐봤다고요. 그, 그만큼 사비강 교관님은 친구처럼 절 대해 주시고, 편하게 생각해 주시고, 같은 남자로서 이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주시는 분… 뭐 그런 뜻입니다.”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기어들어 갔다.

매설란이 눈을 날카롭게 찢으며 사비강을 흘겨보았다.

사비강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단리추는 더 이상 추궁할 수도 없었다.

물론, 그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래도 난 당신에게 내 아들을 맡길 수 없어!”

“이번엔 무슨 이유요?”

“이 아이는 일성검문의 후예. 한데 이 녀석이 검을 놓아 버렸다는 얘길 들었지!”

그러자 이번에는 단리정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한 번은 터질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비강이 가만히 단리추를 보다 물었다.

“정아가 활을 잡으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를 수 있소.”

“뭣?”

단리추가 진심으로 놀라서 흠칫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초절정의 영역은 타고난 자질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기에.

“흥! 그런 감언이설로 내 아들을 꼬드겨서….”

“이미 정아는 거의 절정의 경지에 다다라 있소.”

“그런 헛소리를!”

그러자.

“헛소리가 아닙니다.”

“맞아요. 단리정은 신궁이에요.”

“인정하기 싫지만 정아의 역량은 우리 중 가장 뛰어날 정도예요.”

“정아가 활 쏘는 걸 보면 그런 말씀을 못하실 거예요!”

생도들이 너도나도 소리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잠깐 당황했던 단리추가 곧 고개를 저었다.

“흥, 나는 못 믿겠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생도가 앞으로 저벅저벅 나섰다.

“그럼, 직접 보시면 되잖아요? 단리정이 쏘는 활을.”

“너는 누구냐?”

“패검연가의 연우경입니다.”

연우경의 깍듯한 대답에 단리추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연우경이 말을 이었다.

“저도 정아만큼만 쏠 수 있다면 검을 버리고 활을 잡을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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