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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18화 (118/670)

# 118

귀환 마교관

118화

저만치 멀어져 가는 사비강을 보며 천세명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뭐가 어쩌고 어째?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흥! 잘 알고 있구나! 아는 만큼 괴롭혀 주마!’

천세명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그가 곁에 선 등부형을 보고 물었다.

“요즘 저 인간은 뭘 하며 지냈소?”

“여전히 특목반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만 좀 신경 쓰이는 소문도 있긴 합니다.”

“신경 쓰이는?”

“예, 사 교관이 최근 특목반 생도들에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병이기를 퍼부어 준다는 말이 떠돌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괴이하게 생긴 신발을 보기도 했고요.”

“신병이기를 퍼부어 준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걸 구했단 말이오?”

“그 출처는 모호합니다.”

“하면 생도들이 사용하는 신병이기가 진짜인 건 확실하오?”

“그에 대한 소문도 분분하지만, 사실이 확인되진 않았습니다.”

대답을 하는 등부형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지난 번 사비강으로부터 받은 가짜 보도가 떠오른 것이다.

당시 호연각주에게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들었을 때, 얼마나 민망했던가?

가짜를 들고 희희낙락거린 자신이 또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다시 생각해도 울분이 차올랐다.

천세명이 나직이 읊조렸다.

“출처가 불분명한 신병이기를 퍼부어 준다….”

“역시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그 신병이기에 대해 알아보았소?”

“우선 병장기에 대해 가장 해박한 호연각주에게 물어보았으나, 그 역시 본 적이 없는 물건이라 합니다.”

“하면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닐 수도 있겠군. 그게 아니면… 배후에 그를 지원하는 누군가 있다는 건가?”

천세명의 말에 등부형이 흠칫거리고는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제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그런 말도 있긴 합니다.”

“무슨 말이오?”

“정도맹의 구 군사가 사 교관을 각별히 여긴다는….”

“구 군사가?”

천세명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등부형을 보았다.

그는 곧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하필이면 썩은 동아줄을 잡았단 말이군.”

“아무리 썩은 줄이라지만 그는 총군사가 아닙니까? 이제는 우리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천세명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 그대로요. 아무리 썩었다지만 아직은 버티고 있는 줄이지. 그런 만큼 당장 사 교관을 직접 건드리는 건 위험할 지도.”

“하면… 이대로 두고만 보실 겁니까? 저 사 교관이 용천관 생도들을 망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물론, 나는 교관으로서 그런 짓을 두고 볼 순 없소. 반드시 저자를 응징할 거요.”

“하면 어떻게….”

“그를 직접 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아끼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천세명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최근 그가 가장 아끼는 생도가 누구요?”

“대체로 특목반 생도들은 두루 챙기는 듯합니다만…. 아, 그 중에서도 ‘단리정’이라는 생도에게 각별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단리정이라면….”

눈살을 슬쩍 찌푸리던 천세명이 곧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연무기행 때도 회비를 납부하지 못해서 문제가 있었던 생도가 아니오?”

“네, 맞습니다. 어찌 보면 그때부터 특혜를 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후. 과연….”

천세명의 입가에 짐짓 비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사비강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는 두 다리를 집무 책상 위에 척 올려 둔 채 졸고 있었다.

그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들어와.”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단리정이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교관님.”

단리정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언제나처럼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단리정은 다른 생도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만큼 장점도 많이 가진 아이였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자신을 믿고 따라온 생도이기도 했다.

사비강이 책상 위에 두 개의 물건을 올려놓았다.

“자, 이게 네가 받을 선물이다.”

“제가… 정말로 이 귀한 것들을 받아도 될지….”

역시나 예의 바른 아이.

그래서 좀 재미가 없지만, 그래서 더 듬직한 아이.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왜? 언제는 빨리 달라고 조르더니.”

“아, 그건….”

단리정이 말문을 열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땐 이렇게 힘들게 구할 물건인 줄 몰랐다.

한데 적하성에서 이 물건을 구하기 위해 저질렀던 일들을 생각해 보니, 보통 물건이 아니란 생각이 든 것이다.

왠지 자신이 넙죽 받아들기엔 과분할 것 같은.

사비강이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하나씩 가리켰다.

“이건 어둠 고리다. 사용법은 봐서 알 거다. 가까운 곳에서 신체의 위협이 되는 물리적 에너지를 감지하면 저절로 실드가 펼쳐지고 버클 고리가 날아가 반격하는 거지. 하지만 실드에는 쿨 타임이라는 게 있다.”

단리정은 그저 멍하니 사비강을 보기만 했다.

사비강이 하는 말 중 상당수를 알아듣지 못했으므로.

에너지? 실드? 버클? 쿨 타임…?

모두 생소한 용어였다.

그나마 ‘실드’라는 것은 연우경이 사용한 적이 있기에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어둠 고리가 작동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기에 어느 정도 내용은 이해했다.

“실드는 한 번 발동하고 나면 그 다음에 발동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그리고 절정 이상의 고수가 공격하면 실드는 깨질 수도 있다. 즉, 어디까지나 한두 번 정도 급습을 막는 용도로만 생각해야 한다. 그 이상 의지하는 건 위험해.”

“명심하겠습니다.”

“뭐, 네가 사용하는데 별 문제는 없을 거야. 마나를 정교하게 다스릴 필요가 없는 것들이니까.”

“예….”

“뭐해? 착용하지 않고?”

“아, 지금 말입니까?”

“그럼, 내년 이맘때 찰래?”

“아, 알겠습니다.”

단리정이 얼른 무복 안으로 벨트를 착용했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안에 착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는데, 사비강도 거기에는 같은 생각이었다.

굳이 자신이 가진 패를 훤히 드러내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사비강이 다음 물건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건 드래곤 아이… 그러니까 ‘용안(龍眼)’이라는 거다.”

“그건 어떻게…?”

사비강이 대답 대신 주먹만 한 용안을 들더니 손가락을 천천히 가져갔다.

그의 손가락 끝에 내기가 맺혔다.

이어 그가 뭔가를 짚는 시늉을 하자, 용안의 껍질이 살짝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눈동자 정도 되는 크기였다.

그것은 사비강이 다스리는 내공에 의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렌즈’라는 거다.”

“렌즈…?”

“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걸 눈알에 착용하면 돼.”

“눈알에요?”

단리정이 휘둥그레 뜬 눈으로 자신의 눈동자를 가리켰다.

“그래.”

“아, 아프진 않겠죠?”

“전혀. 착용한 후 잠시만 눈을 문질러주면 나중엔 이물감도 느끼지 못해.”

“아, 알겠습니다.”

“자, 이리와 봐.”

“넵.”

단리정이 얼른 얼굴을 가져갔다.

사비강이 조심스럽게 기를 운용하면서 렌즈를 단리정의 눈알로 가져갔다.

자연히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단리정은 눈을 깜빡이지 않기 위해 한껏 치뜬 채로 긴장했다.

그때.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교관님… 누가 온….”

“가만있어. 이걸 한 번에 착용하지 못하면 귀한 아이템 하나 잃는 거야. 움직이지도 마.”

“아, 예….”

그러는 사이 사비강은 단리정의 눈꺼풀을 직접 손으로 벌리고는 렌즈를 덧씌웠다.

그와 동시에.

“사 교관, 계시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천세명이 들어왔다.

마침 사비강에게 얼굴을 내밀고 있던 단리정이 얼른 몸을 물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한데 이 요상한 광경이 천세명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방금 그건 무슨 상황…?’

그 역시 내심 당황해서는 사비강과 단리정의 눈치를 살폈다.

단리정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차마 천세명을 바로 보지 못하겠다는 듯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이제 막 렌즈를 눈에 삽입한 상태였기에 그 이물감이 사라질 때까지 손가락으로 눌러 주고 있던 참이었다.

뒤늦게 단리정이 천세명에게 돌아서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교관님, 안녕하십니까?”

“커험. 그, 그래.”

천세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단리정을 보았다.

연신 눈을 깜빡거리는 것이 마치 못할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 같았다.

‘설마… 이것들이 남색(男色)을?’

단리정을 가만 보니 단정하게는 생겼지만 곱상한 외모는 아니었다.

하긴, 남색을 즐기는데 어디 여자 같은 얼굴만 좋아하리란 법이 있나?

세간에 떠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상남자끼리 잘도 몸을 섞는다지 않던가?

‘이 인간, 아주 구질구질하군!’

하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으니 뭐라고 말은 할 수 없는 일.

마침 사비강이 날선 목소리로 툭 던졌다.

“문을 두드리고 기척이 없으면 무작정 들어오는 게 천 부장님 방식이신가 봅니다.”

“허허허. 미안하게 됐소. 당연히 있을 거란 생각에 그만. 그나저나 내가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닌지?”

“방해가 될 뻔했습니다만, 잘 넘어갔으니 됐습니다.”

렌즈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천세명으로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이 몹쓸 인간…! 아무것도 모르는 생도를 상대로…!’

이제야 이해가 됐다.

사비강이 어째서 매설란에게 넘어가지 않았는지.

그런 줄도 모르고 매 교관만 탓했으니….

‘나도 멍청했구나.’

어쨌거나 이젠 용무를 꺼내야 할 때.

“아무래도 사 교관은 이 아이를 각별히 여기나 보오.”

“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모두 각별하지요. 한데 무슨 일로?”

“안타깝지만 오늘부로 단리정 생도는 우리 용천관에서 퇴출될 거요.”

“예에?”

비명처럼 소리친 사람은 단리정이었다.

사비강은 눈살을 구긴 채 천세명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천세명이 단리정을 힐끔거리고는 답했다.

“단리정이 정식으로 용천관을 다녔다면 지금 이년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소?”

사비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리정은 유급된 생도 중 한 명이었다.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작년의 학비를 모두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작년 하반기 학비를 내지 못했지. 그리고 올 상반기와 하반기도 마찬가지고. 결국 학관으로서도 더 이상은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소.”

그 말에 단리정은 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였다.

사비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이오. 믿지 못하겠다면 여기 내역을 한 번 직접 확인해….”

“아니. 학관의 결정을 묻는 거요. 겨우 학비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생도를 퇴출시키기로 했다는 게 정말이냐고 묻는 거요.”

천세명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또 저 말투다.

저놈은 항상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투가 저런 식으로 변한다.

천세명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오. 형평성이라는 것이 있으니.”

“정말 쪼잔하군. 겨우 몇 푼의 학비 때문에 이미 받은 생도를 쫓아내다니.”

사비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천세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뭣? 쪼잔…? 이보시오, 사 교관. 당신은 학비가 얼마인 줄 알고나 있소?”

“얼마요?”

사비강의 물음에 천세명이 냉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로구나.’

용천관의 학비는 여느 학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어지간한 문파나 부자가 아니고서야 용천관에 입관시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

단리정이 속한 일성검문 역시 무리를 한 결과였다.

“작년 하반기와 올 상반기. 그리고 현재 하반기의 학비를 모두 합하면 총 천팔백 냥이오. 거기에 이런저런 회비까지 포함하면 족히 이천 냥은 되지.”

천세명이 내심 조소를 지었다.

어떠냐?

아마 놀라 자빠질 지경이겠지.

너 같은 놈이 몇 년을 안 쓰고 벌어 모으기만 해도 가질까 말까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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