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귀환 마교관
115화
어둠 고리.
허리에 매는 마법 벨트인데, 근거리에서 적의 살기나 투기가 느껴질 경우 저절로 실드가 발현되면서 버클의 장식이 두 개로 분리되어 비수처럼 날아가는 기물이다.
즉 방어와 반격을 동시에 펼치는 희귀 마법 아이템으로, 마계에서도 굉장히 구하기 힘든 물건이다.
실제로 마법사들은 마법을 캐스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근거리에서 가해지는 물리적 공격에 대해서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어둠 고리다.
이 어둠 고리와 함께 마법사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마법 아이템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검은 벌집.
검은 벌집은 얼핏 보면 일반적인 허리띠와 다름없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리띠 표면에 굉장히 작은 돌기들이 빼곡하게 돋아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양이 벌집과 닮아 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어둠 고리가 근거리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아이템이라면, 검은 벌집은 다수의 적에게 물리적 공격을 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아이템이다.
다만, 마나가 없어도 착용하기만 하면 저절로 발동되는 어둠 고리와 달리 검은 벌집은 시전자가 마나를 사용할 줄 알아야만 발동된다.
이때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벨트의 면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작은 돌기들이 벌떼처럼 날아다니며 적을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일종의 작은 암기 수백 개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된다.
다만 마나 소모량이 극심하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이다.
물론 마나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르는 척기량으로서는 그저 보기 좋은 허리띠에 불과했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의 마법 용품.
드래곤 아이.
실제로 드래곤의 눈은 아니다.
이 역시 마계에서 만들어진 마법 아이템인데, 주먹만 한 구슬에서 표피만 살짝 벗겨내면 손톱만 한 크기의 렌즈가 나타난다.
그걸 한쪽 눈에 착용하면 어둠 속에서도 시야가 확보되고, 거리에 따라 줌인과 줌아웃이 가능해진다.
즉 먼 거리의 사람을 가깝게 보는 망원 효과의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열 감지와 마나 감지 스킬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척기량은 그저 보기 좋은 보석 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사실, 이 세 가지 마법 아이템들은 마계에서 중원으로 보내질 때, 같은 상자에 담겨 있었다.
다만, 여러 가지 환경적인 이유로 결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자연에 그대로 노출되었던 것.
그것을 운 좋게 주운 사람이 바로 척기량이었다.
한데 척기량은 지금으로부터 이 년 후, 정사대전 중에 어느 동혈에서 무너진 돌 더미에 깔려 죽으니….
‘그 바람에 나도 이 마법 아이템들이 어디에 있는지 여태 몰랐었지.’
하지만 귀영단의 정보력을 이용해 다행히 척기량이 가졌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편, 척기량은 복리추의 해안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둠 고리는 우연히 그 사용법을 확인했지만, 나머지 두 물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다만, 어둠 고리와 함께 있었던 물건인 만큼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하여 보물처럼 보관만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물건에 대한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는 자가 생겼으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척기량은 곧바로 복리추를 데리고 성주전 안으로 들어가 두 사람만의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복리추에게 자신이 가진 기물들을 드러내 보였다.
복리추로 변한 사비강은 눈앞에 놓인 검은 벌집과 용의 눈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곧 호들갑을 떨 듯 말했다.
“맙소사. 이 물건들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대체 이것을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그러자 척기량의 표정이 짐짓 싸늘해졌다.
더 이상 쓸데없는 질문은 삼가라는 듯.
사비강이 얼른 실언을 깨달은 척하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
“아, 죄송합니다. 다만 이 귀한 것들을 실제로 보게 되니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만….”
“이것들이 그렇게 대단한 물건인가?”
“물론입니다. 중원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물건들이지요.”
사비강의 말에 척기량의 얼굴에 미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의 허리춤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이건 나도 모르게 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 한데 다른 것들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 허리띠와 함께 있었던 만큼 굉장한 물건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지.”
“그러셨군요. 단주님께서 모르실 만도 하십니다. 이 물건에 대해 아는 자들은 아마 중원에 없을 것입니다.”
“그 정도인가?”
“그렇습니다.”
“하면 복 대인은 이 물건들의 용도를 알고 있는가?”
“흐음.”
사비강이 잠깐 고민에 빠진 척 표정을 짓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조금 더 고민을 해보면 용도와 사용법을 알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외람되지만 이 물건들을 좀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허락하지.”
척기량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상대가 무공 일 푼도 모르는 감정사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사비강은 조심스럽게 검은 벌집을 들어보았다.
‘예상대로 손상된 부분은 없군.’
결계가 깨졌던 만큼 혹시라도 물건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본 것이다.
잠시 후 척기량이 물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알겠나? 단순한 허리띠는 아닐 듯한데.”
“예, 과연 기물이군요. 사용법을 알 것 같습니다.”
척기량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그래?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지?”
사비강이 희미하게 웃더니 검은 벌집을 허리에 둘렀다.
“이것은 ‘검은 벌집’이라 불리는 물건으로, 이렇게 허리에 두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엔?”
“마나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마나? 그게 뭐지?‘
순간 사비강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바로 이런 거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촤아아아아!
허리띠에 돋아나 있는 돌기들이 허공으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쏴아아아아!
다음 순간, 검은 돌기들이 떼를 지어 척기량을 향해 쏟아졌다.
찰나지간, 어둠 고리가 실드를 펼쳤고, 척기량 스스로도 기막을 펼쳐 검은 돌기들을 막아냈다.
타타타타타타탕!
마치 끓는 기름이 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검은 돌기들이 튕겨져 나갔다.
그러는 사이 사비강은 탁자에 놓인 용의 눈을 품에 갈무리했다.
“역시 쉽게 죽진 않는군.”
사비강의 싸늘한 목소리에 척기량이 미간을 팍 구겼다.
“네놈은 누구냐!”
“누구긴. 물건 찾으러 온 사람이지.”
“노옴! 정도맹에서 왔구나!”
척기량이 바닥을 차더니 순식간에 사비강 앞으로 날아들었다.
쒸에에에엑!
그의 손에 들린 칼이 허공을 베며 곧장 사비강의 목을 노렸다.
타닷!
사비강이 보법을 밟으며 물러났다.
쒸잉!
허공을 벤 칼날.
‘초절정 고수!’
척기량의 미간이 더욱 구겨졌다.
무공을 아예 익히지 않았으리라 짐작했건만.
그렇다면, 상대는 자신보다 고수란 뜻.
하지만 자신에겐 어둠 고리가 있었다.
지금껏 이 기물의 도움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초절정 고수도 꺾은 적이 있었다.
차앙!
아니나 다를까, 살기를 느낀 어둠 고리가 비수로 변하면서 곧장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사비강이 얼른 베르타스를 휘둘렀다.
따당!
어둠 고리가 튕겨 나가는 찰나를 이용해서 척기량이 사비강 앞으로 불쑥 이동했다.
동시에 그의 칼이 호선을 그리며 사비강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훗, 끝이군.’
생각보다 싱겁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콰직!
척기량의 도가 그대로 바닥을 찍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가 눈을 부릅뜨는데.
“여기야.”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척기량이 황급히 돌아서는 순간.
콰앙!
사비강의 발길질이 그의 복부에 날아들었다.
하지만 실드를 펼친 어둠 고리 덕분에 치명타는 피할 수 있었다.
“큭!”
하지만 실드가 펼쳐진 채로 그대로 튕겨 나간 척기량은 성주전 벽을 부수면서 안마당까지 날아가 버렸다.
마침 밖에서 연회를 즐기고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키고는 도검을 뽑아 들었다.
차차차앙!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척기량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취기를 체외로 발출하면서 경각심을 세웠다.
“단주님!”
과연 잘 훈련된 조직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척기량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촤악 펼쳐진 그들은 성주전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사비강을 경계했다.
상황이 이리되자, 조문탁과 단리정 역시 재빨리 사비강 곁으로 달려왔다.
그러는 사이 척기량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쳐내고는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너 이 새끼… 정체가 뭐냐?”
“말했잖아. 물건 받으러 온 사람이라고.”
“이 개새끼. 네놈은 복리추가 아니었어.”
“후후후. 그걸 이제 알다니. 늦어도 너무 늦잖아. 잘 들어라.”
순간, 사비강의 눈매가 전에 없이 날카로워졌다.
“네가 가진 게 무엇이든 이 시간부로 내가 원하면 내 것이 된다. 그게 살아 있는 것이든. 죽어 있는 것이든. 네 목숨조차도. 알겠나?”
“뭐?”
척기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그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이제 보니 아주 재미있게 미친 녀석이었군. 그래, 어디 한 번 원하는 걸 가져가 보아라.”
말을 마친 척기량이 수신호를 보내자, 열 명의 대주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타타앗!
그 순간, 사비강이 손을 한 차례 휘저으며 읊조렸다.
“파이어 월(Fire wall).”
화악!
화르르르르륵!
순식간에 사비강 앞으로 부채꼴 모양의 불길이 치솟는 게 아닌가?
“크읏!”
“크아악!”
장벽처럼 솟아오른 화염 때문에 달려들던 대주들 다수가 화상을 입으며 물러났다.
그들 중 가장 앞섰던 자는 고온의 화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사술인가?”
대주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이글거리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한편, 사비강은 불의 장벽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아, 저곳이다. 쏴라. 이후에는 두 사람 모두 몸을 숨기고 있도록.”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리정이 활시위를 당겼다.
찰나.
패애애앵!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단리정의 활에서 화살이 떠나갔다.
쒜에에에엑!
그와 동시에 사비강이 바닥을 차며 뒤를 이었다.
파앗!
먼저 날아간 화살은 화염의 장벽을 뚫고 정확히 척기량을 향해 날아갔다.
쉬이이잉!
척기량의 몸에서 저절로 실드가 발현된 순간.
따앙!
단리정의 화살이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튕겨 나가고 말았다.
곧이어 불의 장막을 뚫고 불쑥 튀어나온 사비강이 그대로 무게를 실어 베르타스를 내리쳤다.
찰나지간이었지만, 척기량은 어둠 고리의 실드로는 사비강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때문에 그는 얼른 칼을 들어 사비강의 검을 막아냈다.
쩌엉!
아니나 다를까, 실드가 깨져 나가면서 베르타스와 척기량의 도가 부딪쳤다.
두 사람의 거센 기가 충돌하자 사방으로 기풍이 화악, 불어 나갔다.
그 바람에 사비강을 향해 쇄도하던 어둠 고리 역시 튕겨 나가듯 날아가 버렸다.
한편, 베르타스를 정면으로 받아낸 척기량은 대략 다섯 장 정도를 주르륵 미끄러지며 물러났다.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과연 지금까지 상대하던 녀석들과는 좀 다르군. 그럼 이제 계도를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