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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14화 (114/670)

# 114

귀환 마교관

114화

사비강의 엄포 덕분에 혈사련 무인들의 겁간 행위는 완전히 근절됐다.

뿐만 아니라 몰래 보화를 챙겼던 무인들 역시 자진해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조문탁은 섣부른 행동으로 하루 종일 사비강에게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이번에는 잘 정리가 됐지만, 항상 그렇게 되리란 보장이 없다. 큰일을 앞두고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면 결국 대사를 그르치는 수가 있다. 자중해라.”

“죄송합니다.”

조문탁은 주눅 들어 대답을 하면서도 내심 사비강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만약 사비강이 정말로 마음을 먹고 자신을 나서지 못하게 했더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날 저녁, 멸살단주 척기량은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 속에서 전리품을 감상하고, 또 그 가치를 책정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마치 혈사련의 당연한 행사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물론, 복리추로 변한 사비강도 그 연회에 참석했다.

그의 양옆으로는 조문탁과 단리정이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성주전 안마당에서 펼쳐진 연회였는데, 성주전 입구 양쪽으로 벌거벗은 시체가 창에 꿰인 채 전시되어 있었던 것.

시신에서는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저 나쁜 놈들…!’

조문탁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자, 사비강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따로 주의를 주진 않으마. 이번에도 나서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만 알아 둬.]

[명심… 하겠습니다.]

조문탁이 고개를 숙였다.

이미 저지른 일이 있었기에 이번만은 입도 벙긋하지 않겠노라 스스로 다짐하면서.

때마침 연회를 주최한 사람이자, 적하성을 함락시킨 일등공신 척기량이 성주전에서 나타났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렀고, 세공으로 다듬은 듯한 얼굴은 그야말로 ‘공자’라는 별호가 어울릴 정도로 기품이 흘렀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자가…!’

조문탁은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모양이다.

“이런, 내가 늦었군. 아, 복 대인, 환영하오.”

척기량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자, 사비강이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답례했다.

“황하물상의 복 아무개가 멸살단주님을 뵙습니다.”

“하하. 거추장스러운 예는 집어치우고 술이나 들지.”

척기량이 자리에 앉으며 호쾌한 투로 말했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행동 하나하나에 거침이 없고 자신감이 넘쳤다.

멸살단은 총 삼백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열다섯 명의 절정 고수가 대주의 자리에 있었다.

그들 중 다섯 명은 대를 이끌어 방위를 맡았고, 열 명의 대주들이 연회에 참석한 상태였다.

마침 사비강 쪽을 힐끔거린 척기량이 싱긋 미소 지으며 물었다.

“아무래도 저쪽을 신경 쓰는 것 같군.”

저쪽이란, 시체가 걸린 성주전 입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비강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단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눈길이 갔을 뿐입니다.”

“그렇군. 복 대인의 말대로 저들은 죽은 지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지.”

“저들이 누구입니까?”

“후후. 저쪽은 적하성의 양 부인이고, 이쪽은 그녀의 아들인 왕의림이지.”

태연하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이번에는 사비강도 슬쩍 눈살을 구기고 말았다.

성주전 입구에 알몸의 시체를 내걸었으니, 그만큼 위협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인물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양화린과 왕의림은 상징적인 인물이긴 하더라도 위협적인 존재들은 아니었다.

왕의림은 아직 한참 어린 나이였고, 양화린은 일류 수준에 겨우 들까 말까한 정도의 무공을 익힌 자였기에.

사비강 일행의 표정을 확인한 척기량이 미소를 띤 채 물었다.

“잔인하다고 생각하나?”

“으음, 사실 잔인하다기 보단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깝다?”

“적하성 양 부인은 강호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녀지요. 그녀를 상품화 했다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정확히 복리추가 생각했던 바였다.

때문에 사비강의 그런 변명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사실, 사비강은 오늘 일을 위해 귀영단으로 부터 많은 정보를 받았다.

때문에 복리추가 평소에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진 인간인지 제법 깊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하! 과연 복 대인의 생각은 다르군. 하긴, 저런 년이라면 꽤 괜찮은 물건이 됐을 지도. 하지만 저 소년은 별 쓸모가 없지 않소?”

“그럴지도 모르지만 모자를 함께 상품화 한다면…, 그것도 명문 정파의 부인과 아들이라면 매우 희소성이 있었을 겁니다.”

“으음, 일리가 있군.”

척기량은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술잔을 들이켰다.

마침 시녀 한 명이 다가와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러는 동안 척기량은 복리추를 보며 말했다.

“복 대인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애들한테 교훈을 주었다고 들었지.”

“저 같은 놈이 교훈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다만, 혈사련의 자금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함부로 다루….”

“정말인가? 정말 혈사련의 자금이 될 수 있는 물건들이기에 그랬나?”

“무슨… 말씀이신지?”

“황하물상의 이득을 위해서 그런 게 아닌가?”

복리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척기량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은은한 살기가 베여 있는 눈빛.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

사비강은 단숨에 그 의중을 파악하고는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 넘는 참견을 했나 봅니다.”

“후후. 가끔 사람들은 착각을 하지. 대충 명분으로 둘러대면 모든 행동이 정당화 될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잘못 만나면 그런 것들이 일절 통하지 않는 법. 복 대인은 여기가 황하물상이 아니라, ‘혈사련’이라는 사실을 알아 둬야 할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사비강이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렸다.

냉랭한 분위기가 읽혀졌기 때문일까?

하필이면 술을 따르던 시녀가 떨림을 주체하지 못해 잔이 넘치고 말았다.

척기량이 눈살을 슬쩍 구겼다.

“난 먹을 때 깔끔하지 못하면 기분이 나빠져.”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시녀가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오들오들 떨었다.

척기량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복 대인. 잘 보라고. 여기 있는 시녀는 원래 적하성에서 기거하던 년이었지. 하지만 이제는….”

퍼억!

순간 시녀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척기량의 악력으로 그녀의 머리를 터뜨려 버린 것.

하마터면 지켜보던 조문탁이 벌떡 일어날 뻔했다.

사비강이 눈살을 구기자.

“알겠나? 이 몸이 그대에게 인계하기 전까지는 이 몸의 소유라는 거야. 살아 있는 것이든. 죽어 있는 사물이든.”

“알겠… 습니다.”

“후후후! 이거 분위기가 너무 우중충했나? 자자, 그럼 분위기 전환할 겸 전리품 감상이나 해볼까?”

그의 말에 혈사련 무인들이 연회장 복판에 갖가지 전리품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죽어 버린 시녀의 시체는 깔끔하게 정리됐다.

감정을 위해 제일 먼저 올라온 상품은 보도였다.

손잡이에는 적룡이 여의주를 물고 날아오르는 것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보도였다.

하지만 귀영단을 통해서 적하성에 적룡도가 있다는 것을 사비강은 파악해 둔 상태였다.

“이것은 적룡도입니다. 제법 가치가 나가는 물건입니다. 거래를 시도한다면 오만 냥 정도는 받을 수 있을 물건입니다. 도법에 조예가 있는 무인이라면 굳이 거래를 하지 않고 취해도 좋을 것입니다.”

“호오, 괜찮군. 다음.”

척기량의 말에 또 다른 물건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조각품이었는데, 다섯 가지 빛깔을 품은 말 형상이었다.

이 역시 사비강이 잘 알고 있는 물건 중 하나였다.

귀영단을 통해서 입수한 정보는 아니었다.

다만 훗날 마계가 침공했을 때, 마왕이 관심을 보였던 물건이기에 기억하는 것이다.

“오색천마상(五色天馬像)이군요. 특별히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보다시피 무척 아름답기 때문에 고관대작들이 꽤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갖고 싶어 하는 물건입니다. 역시 오만 냥 정도는 받을 수 있겠군요.”

“흐음. 저딴 조각을 돈 주고 사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일종의 허세가 아니겠습니까?”

“뭐, 아무튼 돈이 된다니 다행이군. 다음.”

그 후로도 몇 가지 물건들이 탁자 위에 올라왔다.

사비강은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때때로 처음 보는 물건이 있었지만, 대충 그럴싸한 말로 둘러댔다.

그렇게 대략의 감정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과연 복 대인을 왜 그렇게 중히 여기는지 알겠군. 웬만한 물건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군.”

척기량이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했다.

사비강은 지금이 바로 작업을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잊지 않고 넌지시 말을 꺼냈다.

“과찬이십니다. 척 단주님이야말로 신병이기를 한눈에 알아보는 눈을 가지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후후.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군. 아부를 할 생각이었다면 방법이 틀렸어.”

“아부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저는 단주님의 허리띠를 보는 순간 제 눈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내 허리띠….”

척기량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걸렸다.’

사비강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는 척기량의 반응을 기다렸다.

척기량이 미끼를 물었다.

“이 허리띠에 대해서도 아는가?”

“물론이지요. 본래 서역 물건인데, 중원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대체 그걸 어디에서 구하신 겁니까?”

“그건 알 필요 없고. 이 물건에 대해서 말해 보게.”

사비강이 내심 웃었다.

사실, 척기량이 착용한 허리띠는 마계의 물건이었다.

애초에 사비강이 찾고자 했던 물건 중 하나이기도 했다.

어둠 고리.

그것이 저 벨트의 정식 명칭이었다.

기능은 두 가지가 있다.

저 벨트를 착용하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타인이 살기를 드러내거나 투기를 발산하면 저절로 실드가 쳐진다.

그와 동시에 실제적으로 실드에 공격을 받게 되면 벨트의 버클이 두 개로 쪼개지면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상대방을 공격하게 된다.

마계의 수많은 마법 아이템 중에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그리고 저것과 함께 중원으로 넘어온 물건 두 가지가 더 있지.’

사비강은 어둠 고리에 대해 아는 바를 모두 나열했다.

과연 척기량의 표정이 점점 변하더니, 마침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자신이 착용한 허리띠에 대해 아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이다.

“대단하군. 왜 복 대인을 ‘만해안’이라 부르는 지 이제 알만 하군.”

“과찬이십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하면… 혹시 다른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다른 것이라면 역시… 그 허리띠와 비슷하게 생긴 허리띠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제 척기량의 표정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가까웠다.

사비강이 그 표정을 즐기기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혹시 그렇다면 그 허리띠에는 조그마한 돌기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지는 않습니까?”

“그, 그렇다.”

“역시 제가 아는 물건이군요. 그것 역시 서역 물건입니다. 한데 척 단주님께서는 그 귀한 물건들을 어찌 알고 계십니까? 혹시 직접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마침내 척기량의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떨어졌다.

“내가 가지고 있다.”

‘역시, 그랬구나!’

사비강이 내심 쾌재를 부르며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맙소사,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대단한 물건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혹시 그 물건을 제게도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 역시 그것에 대해 말로만 들었던 터라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하면 복 대인은 그 허리띠의 사용법도 알고 있는가?”

“아마 직접 본다면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이미 복리추가 보여준 언행만으로도 척기량은 충분히 놀란 상태였다.

때문에 그의 애매한 답변에도 척기량은 별로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좋아. 그 물건들을 보여주지.”

“물건들이라면… 하나가 아니란…?”

“그렇다. 두 가지 물건이 더 있다. 그걸 보여주고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영광입니다.”

사비강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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