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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00화 (100/670)

# 100

귀환 마교관

100화

“이번엔 또 어딜 가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검도 챙기지 않고.”

매설란이 사비강의 뒤를 따라가며 투덜거렸다.

매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가보면 알아.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정말 이렇게 놀러만 다녀도 괜찮아요? 구 군사에게 그렇게 큰 소리를 쳐놓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황당하다.

오 년이나 걸릴 전쟁을 일 년 안에 끝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다니.

게다가 일 년 안에 생도들을 절정 고수로 만들어 놓겠다고?

누가 들으면 영락없는 허풍쟁이로 볼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사비강이 매설란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까부터 복잡한 숲속을 거닐고 있었다.

길이 어찌나 복잡한지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문득 매설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혹시… 여기는…?”

“감이 늦어.”

“진법 안으로 들어온 거군요!”

“맞아. 고의적으로 길을 헤매도록 만들었지. 하지만 자연스럽게 입구로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어.”

일종의 미로와 같다.

하지만 파훼법을 모른다고 해서 위험하진 않다.

그저 자연스럽게 길을 헤매다가 입구로 되돌아갈 뿐이니까.

“이번에도 영약을 구하러 가는 건가요?”

“아니. 한바탕 놀기 위해 가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다 왔다.”

사비강이 걸음을 멈췄다.

그의 말대로 저만치 숲이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그곳에는 높은 암벽 아래에 동혈이 있었는데, 양쪽으로 사람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저긴… 뭐죠?”

“자, 받아.”

사비강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무심결에 받던 매설란이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인피면구였다.

여자의 얼굴 피부를 벗겨 만든 면구.

사비강이 인피면구 안쪽으로 아교처럼 끈적끈적한 액체를 바르며 말했다.

“지난 번 혈사련 비밀 분타를 궤멸시켰을 때, 당 교관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 좀 했지.”

매설란이 인피면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때 분타에서 죽은 여자 무인의 얼굴이리라.

지금까지 이런 걸 써 본 적이 없었다.

“뭐 해? 안 쓰고.”

“쓸 거예요.”

매설란이 짐짓 차갑게 말하고는 인피면구를 얼굴에 덮어썼다.

‘으으, 기분 나빠.’

사비강은 이미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가 매설란의 인피면구가 잘 밀착될 수 있도록 뺨을 만지며 다듬어 주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얼굴은 달라졌지만… 이 사람 눈은 여전하네.’

한 없이 깊어 보이는 눈.

심후한 내공 때문일까?

문득 눈이 마주치자 매설란이 얼른 시선을 피하며 소리쳤다.

“내, 내가 할게요.”

그녀가 휙 돌아서서는 인피면구를 정돈했다.

‘왜 이렇게 신경 쓰는 거람? 그저 눈 좀 마주쳤다고….’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쨌거나 잠시 면구의 경계를 매만지다 보니, 마치 제 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변해 갔다.

사비강이 매설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연스럽군. 이제부터 내 이름은 가득삼(賈得三), 당신은 뭐로 할래?”

눈치 빠른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가연옥(賈軟玉).”

“호오, 나와 남매지간이라는 설정이군. 나쁘지 않은데? 별로 닮은 것 같진 않지만.”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죠?”

“가보면 알아.”

“또 그 말.”

“구구절절 설명하기엔 복잡해서 그래.”

“그럼, 어서 가죠.”

“우선 연습 삼아 불러 봐.”

“뭘요?”

“오라버니라고.”

“저 먼저 가볼게요.”

매설란이 불쑥 걸음을 옮겼다.

**

널찍한 공동에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공동 안으로 들어선 매설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온통 도검을 찬 무인들이 북적거렸다.

“호투장(虎鬪張). 싸움을 하고 도박을 하는 곳이지.”

“어떻게 이런 곳을 알고….”

말을 꺼내던 매설란이 곧 입을 다물어 버렸다.

여전히 믿기 힘들지만, 이 남자는 미래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무의미한 질문이리라.

대신 질문을 바꿨다.

“여긴 누가 운영을 하는 거죠?”

“흑천회(黑天會).”

“처음 들어요.”

“그렇겠지. 비밀 조직이니까.”

매설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에는 드러나지 않은 비밀 조직이나 신비 단체가 즐비하다.

그중 한 군데에서 이런 비무 도박장을 운영한다고 해서 놀라울 건 없다.

다만 그 비밀 조직이 운영하는 곳치고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또 하나 특이점이 있다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탈을 쓰거나 복면을 이용해서 신분을 숨기고 있다는 것.

그 말인즉.

“정파의 무인도 많은 것 같군요.”

“후후후. 돈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각종 상련에서도 참가할 것 같고요.”

“그렇지. 중원에서 돈 좀 만지는 인간들이라면 거의 다 이곳으로 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냐.”

애초에 이런 도박장은 그런 부자들 위주로 은밀하게 입소문을 타기 마련이다.

물론, 그 또한 흑천회에서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리인을 보내기도 하겠죠?”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예요?”

“왜긴? 돈 벌려고 온 게 당연하잖아. 앞으로 할 게 많아. 그만큼 돈도 많이 필요하게 될 거야.”

“그래서 지금 도박으로 그 돈을 벌겠다는 거예요?”

“아니. 나는 싸움을 하고, 도박은 당신이 하는 거지.”

“무슨 말을…?”

사비강이 손가락으로 공동 한 가운데에 위치한 비무대를 가리켰다.

조금 독특한 비무대였는데, 사방이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는 게 특징이었다.

지금도 그 안에서는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사람들의 환호성이 높아만 갔다.

목숨을 건 생사비무.

물론, 둘 중 하나가 패배를 시인하면 죽음을 면할 수도 있다.

“나는 저기서 비무를 할 거야. 당신은 이 오라버니에게 돈을 걸어.”

“잠깐만요. 갑자기 돈을 걸라뇨? 난 지금 그만한 돈이 없다고요.”

“내가 줄게.”

사비강이 품에서 전표를 꺼내 주었다.

매설란의 눈동자가 커졌다.

“십, 십만 냥?”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돈.

교관의 급료가 평균 사백 냥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큰 액수였다.

“이, 이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여기서는 많은 돈도 아냐. 판당 백만 냥을 훌쩍 넘는 돈이 오가는 곳이라고.”

“하지만….”

매설란이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여 누군가 전표를 보고 나쁜 마음이라도 품을까 봐 염려된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

적어도 호투장 내부에서는 완벽할 만큼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비강의 말대로 이곳에서 십만 냥은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백만 냥을 넘는 목돈이 심심찮게 오가고, 심지어 천만 냥에 가까운 금액도 거래되는 곳이다.

사실, 사비강이 건넨 돈은 귀야채에 남은 재정을 모두 긁어모은 것이었다.

“자, 가자고.”

사비강이 매설란을 이끌고 공동에서 다시 연결되는 다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 끝에 다다르자 철문이 나타났다.

그 앞을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막고 있었다.

“어느 쪽이오?”

사내가 물었다.

사비강이 그 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나는 도전. 이쪽은 도박.”

사내가 희미하게 웃더니 철문을 열고 안내했다.

비교적 좁은 실내가 나타났는데, 그곳에서는 책상에 앉은 노인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또 어디론가 이어지는 문 하나가 보였다.

사내는 두 사람을 그곳에 멈춰 세웠다.

마침 책상에 앉아 주판을 굴리던 노인이 힐끔 고개를 들어 보았다.

‘쯧쯧, 호투장에서 맨 얼굴이라….’

노인이 내심 혀를 찼다.

워낙 큰돈이 오가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맨 얼굴을 드러내는 자는 극소수다.

젊어서 한탕 벌어 볼 욕심에 뭣도 모르고 찾아온 철부지들이리라.

사실 사비강과 매설란은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지만, 그만큼 당이협이 만든 면구가 정교했던 것이다.

“도전과 도박입니다.”

사내가 두 사람을 대신해서 말하자, 노인이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도전 난이도는?”

“뭐, 나라면 상(上)도 문제없겠지만 일단 하(下)로 하겠소.”

사비강의 대꾸에 노인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보자… 지금부터 열두 번째 순서로 참가하게나. 대기자가 제법 있으니 좀 기다려야 할 걸세.”

“알겠소.”

“승리하면 포상금이 천 냥일세.”

“그것밖에 안 되오? 참가비만 이백 냥인데.”

사비강이 일부러 아쉬운 척하며 물었다.

“난이도가 바뀔 때마다 포상금은 열 배씩 오르지. 즉 중(中)의 난이도에서는 만 냥. 상(上)에서는 십만 냥일세. 그리고 최상(最上)은… 뭐, 거기까진 필요 없겠고. 자, 어쩔 텐가?”

“참가비도 열 배씩 올라가오?”

“그렇다네.”

“으음. 그래도 일단 ‘하’로 하겠소.”

“클클. 잘 생각했네. 젊은 사람이 몸을 아껴야지.”

노인이 키들키들 웃더니 사비강에게서 이백 냥을 받아 접수했다.

그러고는 매설란을 보며 물었다.

“낭자는 누구에게 걸 텐가?”

“오라버니요.”

매설란의 말에 노인이 피식 웃었다.

“뭐, 당연하겠지. 금액은?”

“여기.”

매설란이 떨리는 손으로 십만 냥짜리 전표를 내밀었다.

노인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생각보다 큰돈이었다.

그 반응을 눈치 챈 사비강이 짐짓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매설란을 돌아보며 말했다.

“옥아, 잘 지켜봐. 이 오라비가 멋지게 이기는 걸! 이곳은 내 명성을 알리는 첫 번째 장소가 될 거야. 후후. 돈을 벌면 우리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자!”

갑작스러운 연기였지만 매설란도 눈치 하나는 빠른 여자였다.

그녀가 걱정과 기대가 섞인 표정으로 대꾸했다.

“오라버니, 부디 몸조심하셔요.”

“문제없어! 반드시 이겨서 아버지가 눈치 채기도 전에 돌아갈 테니.”

두 사람이 손을 꼭 맞잡았다.

노인이 그 두 사람을 가만히 보며 생각에 잠겼다.

‘몰락하기 직전의 가문인가? 보아 하니 강호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철부지 같은데….’

아마도 부모 몰래 전 재산을 빼와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리라.

하긴 사연이 무슨 상관이랴.

이곳에 오는 자들 중 사연 없는 자들이 얼마나 되던가?

거짓말 좀 보태면 가득삼 같은 청년은 거의 날마다 이곳에 나타난다.

‘더 큰 사연을 안고 떠나니 문제지. 클클클.’

노인이 곧 환하게 웃으며 전표를 받아 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 서명하게. 생사비무에 동의한다는 각서일세.”

**

호투장 공동의 벽면 중간쯤을 자세히 살펴보면 커다란 창이 뚫린 곳이 있었다.

이 층 높이인 그곳에서는 공동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는데, 지금 두 사람이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달막한 키에 등이 굽은 노인과 호리호리한 몸매에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

노인은 바로 ‘흑천회주’였고, 여인은 혈사련의 홍묘였다.

강호에 깜짝 출현한 혈사련의 재정을 뒷받침하는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호투장’이라는 도박장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흑천회가 바로 혈사련의 산하 조직이었던 것.

이번 달 수금을 위해 방문한 홍묘 서래향(徐來香)은 이 층 창가에서 비무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 곁에서는 흑천회주 갈천성(渴泉省)이 시종 음흉한 눈길로 그녀를 몸을 훔쳐보았다.

‘정말이지 참기 힘든 몸매로군. 흐흐.’

때마침 젊은 남자가 비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바로 ‘가득삼’이라는 가명을 내세운 사비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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