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97화 (97/670)

# 97

귀환 마교관

97화

“그리고 보옥이.”

사비강이 부르자 곡보옥이 얼른 기대에 찬 얼굴로 돌아보았다.

“옛! 교관님, 곡보옥 여기 있습니다!”

“받아라.”

사비강이 이번에도 가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휙 던져 주었다.

곡보옥의 입매가 길게 찢어졌다.

“오오, 이건 뭡니까?”

투명한 약병에 든 붉은 액체였다.

대략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였는데, 이처럼 작은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 효용 가치가 어마어마한 것이리라.

게다가 이 영롱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빛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역시 교관님이 날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사비강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마셔라.”

“넵, 마시겠습니다!”

곡보옥이 당차게 대답하고는 붉은 액체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반모금도 안 되는 액체.

꿀보다는 점성이 떨어지지만 물보다는 점도가 높은 액체였다.

꿀꺽.

‘흐음. 흠. 그럼, 이제 변화를 느껴 볼까?’

곡보옥이 눈을 감고 내기의 흐름에 집중했다.

“…….”

아무런 변화가 없다.

에이, 그럴 리가.

곡보옥은 천천히 기를 일주천시켜 보았다.

한데….

역시 변화가 없다.

‘뭐지?’

곡보옥이 영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이상한데요?”

“뭐가 말이냐?”

“기의 흐름에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가 소화를 못한 걸까요?”

“뭔 헛소리냐? 네가 마신 건 그냥 치료제야.”

“예?”

“네 등. 화상을 입었잖냐? 그걸 치료하라고 준 거다.”

그러고 보니 화끈거리던 감각이 사라지고 없었다.

조문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 과연 화상 입은 상처가 거짓말처럼 나았어. 정말 대단한 약이야.”

사실 곡보옥이 마신 건 힐링 포션이었다.

다만 곡보옥이 괜한 기대를 품으면서 엄청난 영약이 아닐까 오인했던 것이다.

“아… 그렇군요.”

곡보옥이 뒤통수를 긁적이면서도 영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조문탁이 신고 있는 신발로 향했다.

내색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심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비강이 피식 웃더니 가죽 주머니에서 다시 뭔가를 꺼냈다.

“받아라.”

곡보옥이 대답도 하기 전에 뭔가를 휙 집어던졌다.

곡보옥이 얼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양팔에 끼워라.”

역시 가죽으로 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팔을 보호하는 용도인 듯했다.

곡보옥이 가죽 보호대를 양 팔뚝에 착용하자.

“엇!”

이번에는 분명한 변화가 느껴졌다.

양손에서 힘이 넘친다.

내공을 운용하면서 주먹에 힘을 실어 보았다.

우우우웅!

‘확실히 변화가 있어!’

내공이 더 깊어진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내공을 더욱 효율적으로 양손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근력이 증강했기 때문이다.

곡보옥의 표정이 잔뜩 상기됐다.

“시험해 봐도 됩니까?”

“물론.”

사비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곡보옥이 한옆의 바위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가 심호흡을 한 후 일권을 내질렀다.

순간.

꽈앙!

바위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지는 게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권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점.

이는 분명 인간의 근력을 초월한 힘이다.

‘대, 대단하잖아?’

곡보옥이 스스로도 놀라서 양 주먹을 들어 올려 보았다.

그때 사비강이 품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내더니.

“보옥, 막아라.”

다짜고짜 곡보옥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

쒜에에엑!

찰나, 보옥이 얼른 팔을 들어 올려 막았다.

그런데.

파캉!

거침없이 쇄도하던 비수가 그대로 팔뚝에 부딪히면서 완전히 부서지고 말았다.

곡보옥이 다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 대단합니다.”

“‘얄탐의 수호자’라는 방어구지. 근력을 증강시켜 주고, 방어력을 극대화하는 물건이다.”

“교관님….”

어느새 사비강을 바라보는 곡보옥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사비강이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징그럽다. 그런 표정.”

그러거나 말거나 곡보옥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사비강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잊어도 상관없다. 네놈들 몫만 확실히 해준다면.”

조문탁은 자신의 신발을 ‘질풍화(疾風靴)’라 이름 지었고, 곡보옥은 ‘철인구(鐵人具)’라 지었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유치한 작명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

칠성문(七星門).

중원 서남쪽에 위치한 광서(廣西) 지역에서 가장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문파.

때문에 광서 지역의 다수 문파들은 정도맹보다는 칠성문의 눈치를 살피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정사지간(正邪之間)에 속한 칠성문은 늘 조금 독단적인 길을 걸었다.

혹자는 정사지간인 만큼 사파보다는 의롭지 않을까도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그들은 기회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사파의 권세가 강한 시기에는 사파의 협력자로, 정도천하의 시대에서는 정파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살아남는 이유는 비교적 변방인 바닷가에 위치했다는 것이고, 당대의 권세에 도전적이지 않다는 점이 유리하게 적용됐다.

그러다 보니 현 정도맹 역시 무리해서 칠성문을 자극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칠성문은 광서 지역을 주름잡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이 올 줄이야…!”

칠성문주 엽성당(葉盛唐)은 이를 뿌득 갈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곳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연무장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칠성문도의 시체가 보였다.

‘혈사련이라고 했던가?’

정확히 칠주야 전 서신을 받았다.

내용은 간단했다.

닷새의 시간을 줄 테니 혈사련에 무조건 항복하고 충성을 맹세하라는 것이었다.

혈사련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조직이었다.

엽성당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감히 자신에게 이딴 재미없는 장난을 걸어 올 사람은 광서에서 존재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닷새가 훌쩍 흘렀고, 이틀이 더 흐른 오늘.

난데없이 습격이 있었다.

핏빛 무복을 입은 자들이 일제히 쳐들어왔는데, 자신들을 ‘참멸단(斬滅團)’이라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멸단에 의해 칠성문도들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어 갔다.

엽성당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 개 같은 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가 노호성을 지르더니 한 남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참멸단주 제약승(齊若昇)이었다.

까아앙!

그가 휘두른 도를 제약승이 얼른 막아내자 청명한 금속성이 울렸다.

“노옴!”

엽성당이 다시 한 번 고함을 내지르며 도를 휘둘렀다.

쉬이이이잇!

까앙! 깡!

“크웃!”

그의 사나운 기세에 제약승이 입술을 질끈 씹으며 연신 물러났다.

과연 광서 지역을 주름잡는 문파의 수장다운 실력이었다.

마침내 엽성당의 도가 참멸단주의 칼을 쳐내더니 목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끝이다!”

그런데 그때.

“자중하시오. 문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엽성당의 등을 때렸다.

싸늘한 기분이 들어 칼을 멈추고 돌아보았다가 비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령아야!”

딸 엽아령(葉娥玲)이 한 무인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무인의 다른 손에는 단도가 들려 있었는데, 딸의 목 줄기에 바짝 닿아 있었다.

“아버지….”

엽아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그녀의 표정에 두려움과 치욕, 분노와 좌절이 뒤섞여 있었다.

자신의 딸이 저리 잡혔다는 것은 딸의 호위무사 역시 죽음을 면치 못했다는 뜻이리라.

딸을 인질로 삼은 무인 옆에서 풍채 좋은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이 무슨 꼴이오? 서신을 보냈을 때 적절히 답을 해왔으면 좋았을 것을.”

그는 바로 혈사련의 주작, 주작당주인 악천괴(岳天魁)였다.

엽성당은 걷잡을 수 없는 치욕과 분노를 느꼈다.

“이 비열한 새끼들!”

“두 번은 말하지 않겠소. 당장 무릎을 꿇고 복종을 맹세하시오. 그럼 우리도 여기서 멈추겠소.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오.”

악천괴는 시종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 개 같은 놈들! 정당한 방식으로 승부를 내자!”

“쯧쯧, 칠성문주께선 내말을 허투루 듣는군. 내 분명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고 했거늘.”

악천괴가 턱짓을 했다.

찰나.

“안 돼!”

엽성당이 비명처럼 외쳤다.

하지만 이미 단도가 엽아령의 목을 긋고 지나간 후였다.

털썩!

목이 베인 엽아령은 붉은 피를 쏟아내며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엽성당의 눈이 뒤집혔다.

“이 개새끼들! 전부 죽여 버린다아악!”

그가 붕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악천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온힘을 다한 일격이었다.

그런데.

콰작!

엽성당의 칼이 그대로 바닥을 찍으며 균열을 일으켰다.

그의 눈이 커졌다.

분명 머리가 쪼개졌어야 했다.

그런데 악천괴는 처음부터 거기에 서 있었다는 듯, 옆에서 싸늘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 좀 들을 것이지.”

차갑게 말을 뱉은 그가 손을 불쑥 뻗더니 엽성당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억…!”

푸푹… 푹.

마침내 악천괴의 손가락이 엽성당의 목덜미에 틀어박혔다.

악천괴가 익힌 귀살조공(鬼殺爪功)의 위력이었다.

푸악!

털썩!

목이 뜯겨 나간 엽성당이 그 자리에 고꾸라지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순식간에 문주가 죽어 버리자 칠성문도들은 사기를 잃고 말았다.

악천괴의 사자후가 경내에 쩌렁쩌렁 울렸다.

“들어라. 너희 문주와 그 딸년이 죽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얼마든지 거두어 주마. 하나,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항복하라.”

시종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웅혼한 내력이 실려 있었기에 사람들이 저마다 주춤거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끝까지 명분으로 나서는 자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정사지간에서 줄타기를 하며 기회주의적 기질이 다분한 칠성문의 무인들이었다.

결국 다수의 무인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할 의사를 내비쳤다.

악천괴가 흡족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이걸로 광서는 접수했다고 봐야겠군.’

잠시 후, 칠성문의 핵심 요인들이 끌려와 악천괴 앞에 강제로 무릎 꿇려졌다.

장로와 당주, 대주들도 있었고, 엽성당의 처자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을 한차례 훑어보던 악천괴가 아까부터 눈여겨보았던 무인을 가리켰다.

“자네.”

“… 철기단주 신목(申睦)입니다.”

그의 고분고분한 대답에 장로인 안장무(安章武)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악천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네가 칠성문주다.”

“……!”

신목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칠성문도들 모두가 놀라서 움찔거렸다.

신목 역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거리자, 안장무가 벌떡 일어나 고함을 내질렀다.

“노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잡 뼈다귀가 남의 집안을…!”

슈우우욱!

노발대발 소리치던 안장무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더니 악천괴의 손아귀에 머리가 잡혀 버렸다.

찰나.

“크윽!”

퍽!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진 일.

안장무의 머리가 악천괴의 손아귀에서 수박처럼 터져 나간 것이 아닌가?

살아남은 칠성문도들의 표정은 사색이 됐다.

안장무 역시 초절정을 넘보는 고수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자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혹시 문주가 되기 싫으냐?”

악천괴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물었다.

“아닙니다! 칠성문주 신목, 목숨을 다해 혈사련에 충성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악천괴의 눈길이 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너, 너, 그리고 너.”

그들은 칠성문에서는 신목 다음으로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었다.

“저것들을 처리해라.”

악천괴가 한쪽에 꿇어앉은 엽성당의 처자식들을 가리켰다.

전대 문주의 처자식을 문도들에게 직접 죽이도록 지시한 것이다.

“……!”

“왜? 못하겠나?”

악천괴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는데.

“며, 명… 받들겠습니다.”

지목 받은 무인들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악천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 신용할 수 있지.”

그야말로 지독하고 악랄한 처사였다.

곧 처자식들이 무인들에게 끌려가며 애처롭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잠시 후, 무인 하나가 악천괴 옆으로 날렵하게 내려섰다.

악천괴가 그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물었다.

“무슨 일인가?”

“급보입니다. 사환당주가 머물던 비밀 분타가 궤멸 당했습니다.”

“뭐라?”

악천괴의 표정이 흠칫 떨렸다.

“살아남은 자는?”

“전멸입니다.”

“… 흉수는?”

“아무래도… 사비강이라는 자가 가장 의심됩니다.”

“또 그자인가…!”

마침내 그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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