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86화 (86/670)

# 86

귀환 마교관

86화

퍼엉!

요란한 폭음이 터졌다.

그 순간, 얼음 알갱이가 주변으로 흩어지면서 비산했다.

달빛을 받은 얼음 알갱이는 얼핏 아름답게 보일 지경이었다.

소섭랑은 눈을 크게 뜨고는 입을 척 벌리고만 있었다.

‘도대체 저게 무슨…?’

사비강 교관이 북해빙궁의 무공이라도 익힌 걸까?

사비강이 조량을 파고드는 순간,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주변의 풀잎들이 빠른 속도로 얼어 갔다.

그 한기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소섭랑에게도 그대로 전해질 정도였다.

마침내 사비강이 일검을 내질렀을 때, 위기의식을 느낀 조량이 쌍검을 교차하며 막아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조량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막아내며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고, 바닥에는 그의 발자국이 길게 파인 채 얼어붙었다.

“크윽! 헉, 헉,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조량의 입에서 허연 김이 풀풀 쏟아져 나왔다.

‘제길! 폐가 얼어 버리는 것 같군!’

울컥, 구토가 치밀었다.

“쿠웨에엑!”

시커멓게 굳어 버린 핏덩이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조금 전, 자신에게 날아든 얼음덩어리를 막아내느라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폐는 금방이라도 쪼개져 버릴 것처럼 시린데, 아랫배는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온몸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으슬으슬 추운 것이 고뿔에라도 걸린 것만 같다.

‘제기랄! 도대체 저 새끼 정체가 뭐야?’

조량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교관이라고 했다.

한데 교관이 이런 빙백신검(氷白新劍)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랬다.

조량은 사비강의 무공을 북해빙궁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냉기 속성이 강한 무공이라면, 그쪽 말고는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었기에.

물론 사비강이 사용한 것은 빙백신검이 아니라, ‘워터 블레스터(Water Blaster)’라는 6서클의 마법이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북해빙궁을 쓰는 자가 조금 전에는 화염 속성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던가?

한 사람 몸에 두 속성의 내공이 공존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각각의 위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토록 빨리 전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터.

‘젠장!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조량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대로 싸워 봐야 승산이 없다는 점.

자신은 이미 내상을 입은 데다 호흡도 거칠어졌다.

하지만 사비강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허세가 아니다.

실제로 그는 호흡이 고르고 움직임에도 여유가 있었다.

일격을 퍼부은 다음 달아나야 한다.

마음을 굳힌 조량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사비강이 희미하게 웃었다.

“더 해보려고?”

“시끄럽다!”

타앗!

조량의 신형이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쒸이이이잉!

이번에는 좌검이 낮게 깔리면서 사비강의 심장을 노리고 솟구쳐 올랐다.

쩌엉!

베르타스가 그 앞을 막았다.

스스스슷!

찰나, 우검에 검강이 실리면서 대각선으로 목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나.

‘헛!’

사비강의 왼손이 불쑥 뻗어 나오면서 조량의 가슴을 향하는 게 아닌가?

곧이어 조량의 우검이 사비강의 목을 내려치기도 전에.

꽈앙!

어마어마한 소음과 함께 조량의 가슴에서 화염이 폭발했다.

“크아아악!”

몸이 차갑게 식은 상태였기에 급격한 온도 변화가 오히려 조량에게 독이 된 셈.

“쿨럭! 쿠웨엑!”

조량이 바닥을 짚고 연신 핏덩이를 토해냈다.

그의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었다.

‘저놈은… 괴물이다!’

결코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이건 꽤나 중요한 사실이다.

상대의 무공이 반박귀진(返樸歸眞)에 이르러 정확한 수준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혈사련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한 고수가 있다는 건 중대한 문제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조량이 재빨리 쌍검을 던졌다.

쒸에엑! 쒸에에엑!

찰나.

파앗!

그가 반대 방향으로 신형을 쏘았다.

쌍검까지 날려 버린 것은 필사적으로 이 자리를 피해 달아나겠다는 의지였다.

따다앙!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휘둘러 두 자루 검을 모두 쳐냈다.

그가 싸늘한 조소를 머금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팟, 하고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소섭랑은 입에서 침이 흐르는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저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

차가운 밤바람이 부는 언덕 위.

하얀 토끼 탈을 쓴 남자가 뒷짐을 진 채 묵묵히 서 있었다.

먼발치 용자림을 내려다보면서.

마침 그의 곁으로 한 인영이 연기처럼 스르르 나타났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둘 감은 사내였는데,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가 백토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환살단주(幻殺團主) 요신(僥迅), 사환당주(死幻堂主)님을 뵙습니다.”

“왔는가?”

“예, 분부하신대로 환살단 전원 도착하였습니다.”

“흐음,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네. 몇몇 후기지수를 제거했으나 목표한 바에는 크게 미치지 못해. 열화탄도 터지지 않았고.”

사실 열화탄은 인명 살상용으로 보기보단 정도맹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역할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았다.

용자림 복판에서 열화탄이 터진다면 아무래도 강호에서는 훨씬 빠르게 입소문으로 번져 나갈 테니까.

그렇게 되면 맹에 대한 정도 문파들의 불신도 커질 터.

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열화탄이 불발된 것이다.

요신이 물었다.

“하면, 바로 움직이시겠습니까?”

“역시… 이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으니 슬슬 움직여 볼까?”

그가 몸을 휙 돌렸다.

그러자 그의 뒤로 이백에 달하는 환살단 무인들이 연기처럼 스르르 나타났다.

그들 모두 요신처럼 시커먼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가자꾸나.”

다음 순간, 백토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곧이어 이백 명의 무인들 역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

퍼엉!

“크억!”

일장을 얻어맞고 튕겨 나간 주유천이 부신각 문을 부수며 나뒹굴었다.

부신각 안에서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의생들과 부신각주 진백이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학장님, 괜찮으십니까?”

“끄음. 아이들을 보호하시오.”

주유천이 얼른 몸을 일으키고는 부신각 밖으로 다시 몸을 날렸다.

안마당에는 자줏빛 쥐 탈을 쓴 자서(紫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 있었다.

“호오, 역시 멀쩡하군. 대단해.”

“노옴! 제법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주유천이 버럭 호통을 쳤다.

하지만 내심은 그 역시 크게 놀라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자가…!’

어쩌면 자신보다 더 뛰어난 무공 실력을 지녔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힐끔 시선을 돌렸다.

태사전이 걱정이었다.

아직까지 관주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태사전에도 상당한 고수가 침입했으리라.

마침 자서가 몸을 훌쩍 날리며 주유천을 향해 쇄도했다.

“한눈을 파는군!”

“헛!”

주유천이 얼른 검을 내지르며 반격했다.

하지만 자서는 몸을 아슬아슬하게 비틀면서 곧장 주유천의 가슴으로 칼을 휘둘러 왔다.

쒸에에엑!

‘제길!’

급한 대로 주유천이 일장을 내지르며 마주쳐 갔다.

꽈앙!

두 강기가 맞부딪치면서 요란한 폭음을 일으켰다.

“커억!”

하지만 충격은 주유천이 더 컸다.

그가 피를 토하며 뒤로 주춤 물러나자, 자서가 다시 칼자루를 휘두르며 날아들었다.

“영감! 죽어라!”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강기를 머금은 도신이 무서운 속도로 주유천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주유천은 검을 들어 올리면서도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문득 지난 밤 사비강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쥐를 조심하십시오.”

“쥐?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그 밀자를 잡았을 때, 그러더군요. 자주빛 쥐가 학장님을 공격할 거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사비강은 주유천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언질을 준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겪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밀선을 잡았을 때 문책하여 얻은 정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주유천은 지금 이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이자의 탈을 보고 왜 사비강 교관의 조언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랬다면 좀 더 신중히 이를 상대했을 텐데.

그렇게 떨어지는 도신을 허망하게 바라보는데.

쉬쉬쉬쉬쉿!

어디선가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

곧이어.

따다다다다당!

주유천을 향해 떨어지던 도신이 춤을 추었다.

자서가 혀를 차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당이협…?’

자신에게 암기를 날린 자는 틀림없이 당이협이었다.

무천이 얼른 달려와 주유천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학장님!”

“덕분에 괜찮소.”

주유천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자서는 얼른 눈알을 굴려 당이협 뒤로 들어오는 매설란과 생도들을 확인했다.

‘쳇,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구나!’

생각을 마친 그가 휙 몸을 돌리더니 바닥을 차고 날아갔다.

“엇! 서라!”

당이협이 얼른 암기를 뿌리며 그 뒤를 쫓았다.

자서가 날아드는 암기를 모두 쳐내고는 달리면서 품에서 뭔가를 꺼내 던졌다.

삐이이익! 팡!

신호탄이었다.

그러자 용천관에 들이닥쳤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우지끈, 쿠쿵!

커다란 나무 기둥의 밑동이 잘려 나가면서 육중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팟!

쓰러지는 나무를 밟고 한 인영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인영을 쫓아 두 명의 사내가 도검을 휘둘러 갔다.

“하아앗!”

따당! 쉬컥!

“크읏!”

결국 검 하나를 막지 못한 인영이 몸을 빼내며 바닥에 착지했다.

촤르륵!

그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훅, 훅, 후욱!”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희끗한 머리카락을 척 늘어뜨린 남자, 바로 상필지였다.

그를 합공하는 자는 바로 언벽과 흑호.

두 사람 역시 가면 아래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상필지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놈들…!”

“후우,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떻소? 그냥 여기서 포기하시오.”

언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상필지의 무공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상필지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흑호 역시 상필지와 검을 섞으면서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교관으로 지내기엔 아까운 자로군.’

하지만 제아무리 재주가 용해도 걸림돌이 되는 이상 죽어 줘야 한다.

상필지의 눈길이 힐끗 생도들에게 향했다.

생도들 중 칠 할이 목숨을 잃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생도들의 사체.

생도들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려다가 일어난 참사였다.

사체 중에는 요굉과 조미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상필지의 뼛속을 파고들었다.

빠드득.

어금니를 갈며 검을 꽉 틀어쥐었다.

남은 여섯 명의 생도들은 흑살대원들에게 포박된 상태.

그나마 저들이 생포하기로 결심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사실 흑호와 적사의 입장에서도 일이 꼬인 건 마찬가지였다.

초반부터 상필지를 만나는 바람에 발이 묶여 버린 것이다.

상필지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더 많은 후기지수를 학살할 수 있었을 터.

때문에 아쉬우나마 낭아반의 남은 생도들을 납치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아예 죽여 버리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정파를 흔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상 교관. 그 정도면 충분하오. 이제 쉬시오.”

언벽이 심호흡을 하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상필지는 검을 쥔 채로 다가오는 흑호와 언벽을 노려보았다.

이제 몸에 남은 내공이 한 줌이나 될까?

역시 두 사람을 상대로는 무리였다.

바로 그때였다.

“으음?”

언벽이 제일 먼저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고개를 돌렸다.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그는 먼 거리의 기척을 가늠하는 게 특기였다.

때문에 멀리서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조량의 기척을 가장 먼저 눈치 챌 수 있었다.

마침내 흑호와 상필지도 눈치를 챘을 때.

쿠당탕!

“크으윽! 헉, 헉, 헉!”

피투성이가 된 조량이 막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며 쓰러졌다.

흑호가 흠칫거리고는 물었다.

“무슨 일인가? 대주!”

“그놈이 오고 있습니다! 살, 살려… 주….”

쒸에에에에엑!

수컥!

흑살대주 조량은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안면을 뚫고 베르타스가 튀어나왔기 때문에.

잠시 후, 베르타스가 저절로 쑤욱 뽑혀 나가더니 한 남자의 손에 돌아가 척, 잡혔다.

베르타스를 든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먼 길 안내하느라 고생했다, 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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