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귀환 마교관
85화
사비강이 소섭랑 앞으로 나섰다.
“왜 대답을 안 해? 사람이 물으면 뭐라도 짖어야 할 것 아니냐?”
“너 이 새끼… 고작 교관 주제에 잘도 떠드는구나.”
“고작 교관에게 뒈지게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구나.”
“이런 미친 새끼가…!”
조량은 진심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한편, 소섭랑은 자신의 앞을 막아선 사비강을 떨리는 눈동자로 보았다.
‘이 사람은 도대체….’
자신감인지 허세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허세로 보기에는 사비강의 표정이나 태도가 너무 평온하다.
혹시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용천관에서 지원이 오는 걸까?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틀렸어. 격장지계로 상대의 실수를 유발할 생각인 모양인데…. 그렇게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야. 능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
소섭랑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는 사비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혹시 날 위해서라면 포기하시오. 이자는 당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오. 그러니 지금이라도 용천관으로 가서 지원 요청을….]
[닥치고 쉬고나 있어.]
사비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음을 흘렸다.
‘뭐, 이런….’
기껏 희생을 감수하면서 빠져나가라고 언질을 주었건만,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사비강을 만나기 전까지는 왜 교관들이 이자를 그토록 미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알겠다.
‘이거… 그냥 또라이잖아?’
도대체 상필지 교관은 이런 자에게 뭘 기대했단 말인가?
한편, 흑살대주는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왼손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별호는 흑라쌍검(黑羅雙劍).
애초에 두 자루의 검을 사용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지만, 어지간한 상대를 만나서는 하나의 검만 사용했다.
그가 쌍검을 사용할 때는 두 가지 경우였다.
상대가 대단한 고수라고 판단했을 때.
그리고 상대를 확실히 짓밟아 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지금은 후자의 경우였다.
“크크크. 어디 잘난 교관 나리의 실력이 그 주둥이만큼 여물었는지 한 번 보자꾸나.”
“그토록 계도 받길 원한다면야.”
스르르릉.
사비강이 허리춤에서 베르타스를 뽑아 들었다.
타앗!
조량이 바닥을 차고는 쏜살 같이 달려왔다.
쉬이이이잇!
그의 검이 곧장 사비강의 목을 노려왔다.
사비강이 얼른 몸을 뒤틀어 피하자, 이번에는 왼손에 든 검이 곧장 사비강의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검봉이 사비강의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조량의 검이 가슴을 찢었을 터.
‘흥, 형편없군!’
조량은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첫 공격은 상대의 무위를 확인하기 위해 떠보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 정도 공격도 피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실망했으리라.
마침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뻗어 왔다.
조량이 얼른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자, 베르타스가 그 위를 내지르며 지나쳤다.
철나.
팍!
조량이 허리를 숙인 자세에서 그대로 오른손에 든 검을 등 뒤로 내던졌다.
쉬이이잇! 까앙!
‘막았어?’
얼른 자세를 바로잡으니 그의 검이 베르타스에게 막혀 튕겨 나오고 있었다.
얼른 몸을 날려 던졌던 검을 낚아챘다.
‘흐음. 제법이군.’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선공을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상대의 무공을 얕잡아 봤다.
그런데 이제 보니 못 피해서 아슬아슬한 게 아니다.
딱 그 정도만 피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그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무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 기척을 사비강도 눈치를 챘는지 차갑게 웃었다.
“개떼가 몰려왔군.”
아니나 다를까, 곧 한 무리의 적색 무복을 착용한 무인들이 나타나더니 조량과 사비강을 번갈아보았다.
“대주님!”
그들은 흑살대의 제일 조였다.
열 명으로 구성된 흑살대 제일 조는 흑살대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이었다.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무공 수위가 절정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들은 용자림을 돌아다니면서 아직 남아 있는 생도들을 처리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
그러던 중 우연히 사비강과 조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그들이 순식간에 사비강을 에워쌌다.
조량이 피식 웃으며 사비강을 보았다.
“아무래도 네놈은 운이 나쁘군. 하필이면 여기서 조우한 자들이 내 부하들이라니.”
“상관없다. 계도가 필요한 것들이 많아져서 좀 귀찮을 뿐이지.”
“크하하. 끝까지 허세구나! 그 기개만큼은 높이 사마. 하긴, 어차피 죽을 녀석에겐 적이 많든 적든 상관없겠지.”
“그만 떠들고 이제 좀 덤비지 그래? 개새끼들아.”
“놈! 그 주둥이부터 찢어 주마! 쳐라!”
조량의 명령이 떨어지자 흑살대 제일 조원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쒸에엑! 쒸에엣!
날카로운 파공음에 이어 그들의 칼이 난잡하게 쏟아졌다.
사비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말 귀찮군.”
다음 순간, 그가 쥔 베르타스에서 뜨거운 불길이 화악 일어났다.
**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
학장 주유천이 일갈을 터뜨리고는 신형을 날렸다.
까강! 쉬컥! 쉬컥!
“크아악!”
“으윽!”
연이어 비명이 터지면서 복면인들이 쓰러져 나갔다.
가히 주유천의 무공 실력은 여느 교관과도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 했다.
일검일살(一劍一殺).
그의 손끝에서 빛줄기가 터져 나오면 어김없이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순식간에 열 명에 달하는 복면인을 베어 버린 주유천이 얼른 몸을 날려 부신각 지붕 위로 올라섰다.
용천관 곳곳이 싸움터로 변한 상황.
복면인들이 갑자기 들이닥치기 시작한 것은 세 번째 북이 울렸을 때였다.
문제는 놈들이 부상자들이 모인 부신각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교관들이 나서서 싸우고 있지만, 적들은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사파의 무리가 이토록 많이 성장했다는 건가?’
그의 눈길이 언뜻 용자림 쪽을 향했다.
여기까지 적들이 난입한 것을 보면, 용자림에도 분명 출몰했으리라.
하지만 평소보다 배에 가까운 인력을 용자림에 배치해 두었으니 큰 문제는….
‘없어야 할 텐데.’
확신은 없다.
역시나 사비강의 말을 들었어야 했던가?
이쯤 되니 원리 원칙과 융통성 중에서 무엇이 더 옳은 길인지 어려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떠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상당수의 인력을 용자림에 투입한 만큼 우선 이곳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마침 그의 눈에 한 사내가 들어왔다.
자줏빛 쥐 형상의 탈을 쓴 남자.
유난히 무공 수위가 뛰어난 자였다.
‘우선, 저자를 막아야겠군!’
주유천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
“끄어어어.”
“으으윽!”
풀숲 곳곳에 흑살대원들이 쓰러진 채로 신음을 쏟아냈다.
그들 모두 불길에 그슬려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절반이 죽었고, 절반은 부상이 깊어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흑살대주 조량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이럴… 수가…!’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턱이 가늘게 떨렸다.
조금 전 눈앞에 펼쳐진 형상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열 명의 흑살대원들이 사비강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을 때, 느닷없이 사비강을 중심으로 화염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그가 쥔 칼날에 붙은 불길은 그의 몸과 함께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올랐다.
그야말로 화룡이 승천하는 모양.
아마 초식명이 있다면 ‘화룡승천’이 아닐까?
그걸로 끝이었다.
무더기로 덤벼들던 흑살대원들은 저마다 칼에 베이거나 화상을 입어 쓰러졌다.
‘도대체… 저자의 무공 수준이 어느 정도인 거지? 방금 무슨 수를 쓴 거지?’
사실, 조금 전 사비강은 베르타스에 파이어스톰(Fire Storm) 마법을 걸어 적들을 상대한 것이었다.
그가 마계에서 ‘마검사’로 위명을 떨치던 시기에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어쨌거나 생전 처음 보는 화공(火攻)에 조량은 경각심을 가지고 두 자루의 검을 꽉 움켜쥐었다.
“계획을 바꿔야겠군.”
“그러게 말이야. 계획을 바꿔야겠어.”
“뭐?”
조량이 묻자,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널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일단은 생포해야겠어.”
“이 건방진…!”
타앗!
조량이 이를 뿌득 갈고는 달려 나갔다.
더 이상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상의 공격을 가했다.
쒸에에엑!
우검이 사비강의 목을 노렸다.
까앙!
베르타스에 막혀 튕겨 나가는 우검.
그 반발력을 이용해 회전을 하며 좌검을 후려쳤다.
까강!
다시 이어지는 청명한 금속성!
조량은 곧바로 변초를 펼치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일반인이 본다면, 그 동작을 하나하나 눈으로 쫓기도 힘들 만큼 빨랐다.
까라라랑! 까라랑!
검을 단 한 번만 부딪치는 것 같은데도 여러 번의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불꽃도 연신 터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량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 개새끼는 도대체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낱 교관이 이 정도의 무공을 발휘할 수는 없을 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한편,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는 또 한 사람이 있었으니….
“대, 대단하군….”
바로 소섭랑이었다.
그는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야 상필지가 그를 왜 찾아가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어쩌면… 상필지 교관님과 동수를 이루는…. 아니, 그 이상일지도?’
사비강은 조량의 속공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막아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여유가 흘러나왔다.
물론, 그런 여유를 조량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더욱 조바심이 났다.
‘제기랄! 이런 썩어문드러질!’
그가 이를 빠득 갈고는 일순 검강을 일으켰다.
슈카앙!
갑자기 뻗어 나간 검강이 그대로 사비강의 가슴 쪽으로 직격했다.
하지만.
따앙!
보이지 않는 뭔가에 막혀 검강이 튕겨 나가는 게 아닌가?
그 반발력에 오히려 조량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기막인가?’
실드였다.
본래 실드는 1서클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나, 사비강은 현재 8서클 수준.
때문에 검강을 튕겨 낼 만큼 강한 실드를 구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조량으로서는 이 현상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막으로만 검강을 튕겨 내다니?
도대체 얼마나 심후한 내공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도 아니면….
‘사술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조량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놈,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사파 새끼가 사술, 사술 거리다니. 지나가는 개도 웃겠다. 네놈들만큼은 그딴 말을 입에 올리지 말아야지.”
다음 순간, 사비강의 눈빛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곧이어 베르타스에 한기가 휘몰아쳤다.
쩌적. 쩌저적.
베르타스 날이 닿은 풀잎들은 한기를 이기지 못해 하얗게 얼어 갔다.
“이, 이건 또 뭔…!”
조량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사비강이 차갑게 일렀다.
“말 나온 김에 그 사술에 더 당해 봐라.”
탓!
사비강이 바닥을 차며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