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83화 (83/670)

# 83

귀환 마교관

83화

단리정은 심호흡을 한 후 시위를 당겼다.

가늘고 희미하게 숨결을 들이마시고 뱉길 반복한다.

잡아당겨진 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그의 전신을 훑는다.

이 순간이 가장 좋다.

처음 사비강에게 활을 권유 받았을 땐, 사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에게 재능이 없어서 그가 포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재능은 있었다.

다만 도검이 아닌 활에 있었다.

그럼에도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활을 주 무기로 사용한다면, 일대일의 싸움에서는 여러모로 불리한 점이 많기에.

그런데 오늘 그는 궁수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감했다.

그는 모든 전투의 시작이었다.

사비강은 모든 실전 전투에 단리정을 포함시켰다.

그만큼 궁수는 조직 싸움에서 중요했다.

휘이이이.

밤바람이 한 차례 불었다.

한기가 목깃을 파고들었지만, 단리정은 조금의 추위도 느끼지 않았다.

이미 변화하는 날씨에 적응하며 지칠 때까지 시위를 당긴 적이 있던 그였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스팟.

먼발치에서 빛의 구가 나타나더니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단리정의 호흡도 멈췄다.

찰나.

패애애앵!

쒸에엑! 쒸에엑! 쒸에에엑!

시위에 걸렸던 세 자루의 화살이 동시에 어둠을 가르며 날아갔다.

**

쒸에에에에에엑!

푹! 푸푹!

“컥!”

“크아아악!”

“큭, 습, 습격이다!”

길목을 지키던 무인은 모두 스무 명.

난데없이 나타난 빛의 구.

곧이어 날아든 화살에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부상을 당했다.

차차차앙!

흑살대원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팟!

그 순간 눈앞에서 터져 나갈 듯 빛나던 빛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뭐, 무슨…?”

그때!

츄아아아아아!

옆의 연못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며 여덟 인영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헉!”

쉬이이이잇!

흑살대원들이 놀라는 사이, 여덟 그림자들이 빠른 속도로 도검을 휘둘러왔다.

서컥!

“크아악!”

까강! 챙챙!

두어 명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지만, 나머지 흑살대원들은 민첩하게 대응했다.

‘가장 강한 자!’

목단화는 처음부터 노린 흑살대원을 향해 곧장 일성비검을 펼쳤다.

쉬이이이잇!

까앙!

날카롭게 울리는 금속성.

흑살대원 제이 조장인 장염(張廉)이 얼른 몸을 비틀며 목단화의 검을 막아냈다.

그 순간, 그가 눈을 부릅떴다.

‘생도…?’

놀랍게도 자신을 공격한 여인은 아직 앳된 생도였다.

뒤이어.

“우아아아앗!”

맞은편 숲에서 함성이 쏟아지더니 한 무리의 생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나 같이 살상용 무기를 들고 있었다.

‘어째서 연습용이 아닌…?’

하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목단화가 그대로 몸을 회전하면서 다리를 찔러 들어온 것이다.

‘어딜!’

장염이 얼른 칼을 휘둘러 아래쪽을 막으려는데.

‘헛?’

목단화의 검봉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초식인 혼돈뇌정이었다.

당황한 장염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피츗!

검봉이 그의 허벅지를 살짝 베며 스쳐 갔다.

장염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고작 생도에게 당하다니!

“치잇! 까불지 마라!”

그가 일갈을 터뜨리며 바닥을 박차고 목단화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까앙!

“크웃!”

위에서 내려찍는 칼을 겨우 막아낸 목단화가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장염은 그 여세를 몰아 칼을 대각선으로 올려쳤다.

까아앙!

다시 한 번 울리는 금속성.

목단화는 미간을 구기면서 두 손으로 검을 잡았다.

검신이 너무 떨려 손이 아려왔다.

‘흥! 끝이다!’

장염은 빠르게 몸을 회전하며 목단화의 죽음을 확신했다.

이 일격으로 그녀는 아랫배가 갈라져 죽으리라.

그런데.

‘엇?’

이상하다.

마치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몸의 감각이 둔해졌다.

‘이건 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마냥 몸이 굼뜨게 움직였다.

반면 상대는 여전히 빨랐다.

척, 쉬이이이잇!

목단화가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벽력일섬(霹靂一閃) 초식을 펼쳤다.

일전에 사비강이 지적한 섬광벽력검의 약점, 방어 시 곡선을 그리는 보법을 완전히 보완한 행동이었다.

즉 최선의 공격으로 최대의 방어 효과를 내는 것.

한데 상대의 동작이 굼뜨다 보니 그녀의 일격이 완벽한 역전의 기회가 됐다.

슈카악!

“크아아악!”

장염의 손이 칼을 든 채로 잘려 나갔다.

졸지에 팔을 잃은 장염이 몸을 뒤틀며 쓰러졌다.

찰나.

퍼억!

언제 나타난 것인지 곡보옥이 쓰러진 장염의 머리통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장염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가며 즉사하고 말았다.

“조장을 제거했다!”

곡보옥과 목단화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 소리에 흑살대원들의 기세가 눈에 띄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습격을 해온 상대가 생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웠다.

고작 생도들에게 이토록 밀리다니!

반면 생도들은 더욱 사기가 올라 거침없이 휘몰아쳐 갔다.

그 모습을 사비강이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웬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만, 조금 전 목단화가 조장을 처리할 때는 다소 위험했다.

때문에 그가 장염에게 슬로우(Slow) 마법을 건 것이다.

슬로우에 걸린 장염은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둔해졌고, 그 틈에 목단화는 반격에 성공한 것이다.

‘그래도 충고를 제대로 받아들인 모양이군.’

조금 전 벽력일섬은 아주 깔끔하게 들어갔다.

아마도 자신이 나서지 않았어도 목단화가 상처 입을 일은 없었으리라.

사비강은 흡족한 표정으로 생도들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이곳은 용천관으로 들어가는 길목 중에서 가장 넓고 자주 이용되는 곳이다.

때문에 가장 많은 흑살대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걸로 세 군데 모두 처리된 건가?’

모든 생도들에게 최소 한 번씩은 실전 경험을 익히게 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셈.

그때 저만치 돌풍에 맞서 주춤거리는 흑살대원들이 보였다.

그 맞은편에는 능소소가 있었다.

능소소가 실라페를 부린 것이리라.

그의 예상대로 능소소는 실라페를 소환해서 적들의 움직임에 제약을 가하고 있었다.

“크우웃! 갑자기 무슨 바람이…!”

실라페가 엄청난 기세로 흙모래를 뿌려대니 흑살대원들은 두 눈을 뜨고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고 나면 염자량이나 연우경 같은 생도들이 달려들어 빈틈을 급습했다.

쉬이이잇! 서컥!

“크아악!”

연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 순간, 생도 한 명이 횃불을 밝혔다.

그러자 매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단리정이 쏜 것이다.

쒸에에엑!

푹! 푸푹!

“제기랄! 후퇴한다!”

결국 버티다 못한 흑살대원 하나가 소리치며 몸을 빼냈다.

제이 부조장 망절소(網切遡)였다.

다른 흑살대원들도 얼른 그 뒤를 쫓으려는데.

후우우우우웅!

또 다시 거짓말처럼 돌풍이 불어 닥치며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크우웃! 이게 뭔…!”

결국 몸을 빼낸 자는 망절소 뿐이었다.

염자량이 얼른 횃불을 들고는 소리쳤다.

“내가 쫓을게!”

[우경, 따라가라.]

사비강의 지시에 연우경이 얼른 염자량과 함께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사비강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홍염도 따라가도록.]

[알겠습니다.]

대답과 함께 지금껏 있는 듯 없는 듯 따라다니던 홍염의 기척이 사라졌다.

**

망절소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제기랄! 고작 생도들 때문에 도망을 치다니!’

애초에 생도들이 왜 살상용 병장기를 들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저 실력들.

정말 생도가 맞긴 한 건가?

혹시 생도복을 입은 교관들이 아닐까?

하지만 얼핏 얼핏 본 그 앳된 얼굴들은 분명 생도였다.

한참을 달리던 망절소는 다시 뒤를 힐끔 보았다.

횃불을 든 추격자가 보였다.

‘제길! 끈질긴… 잠깐?’

그가 얼른 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휙 돌렸다.

마침 그를 쫓아온 염자량과 연우경이 마주섰다.

망절소의 표정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뭐야? 너희 두 놈 뿐이냐?”

“…….”

연우경과 염자량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망절소의 기세가 조금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망절소가 칼을 고쳐 잡았다.

“너희들은 어른을 우습게 보는구나.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긴 대화는 필요 없다.

최대한 빨리 이 애송이들을 처리한 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쉬이이이잇!

망절소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먼저 노린 건 연우경이었다.

까앙!

“크웃!”

연우경이 뒤로 주춤 물러나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망절소가 몸을 뒤틀며 발을 내질렀다.

퍼엉!

주르르르륵!

양팔을 교차해 각공을 받아낸 연우경이 뒤로 한참이나 밀려났다.

찰나.

망절소가 방향을 휙 틀더니 곧장 염자량에게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헛, 빠르다!’

염자량이 반사적으로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까앙!

검을 쥔 손이 튕겨 나가듯 벌어졌다.

다시 망절소가 칼을 휘둘러 왔다.

어쩔 수 없이 횃불을 휘둘러 막아야했다.

하지만 애초에 망절소가 노린 것은 바로 그 횃불이었다.

썩둑!

화르르륵!

잘려 나간 횃불이 염자량의 가슴 쪽으로 떨어지면서 옷깃에 불이 붙고 말았다.

“크웃!”

순식간에 벌어진 일.

연우경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자량!”

하지만 망절소가 그보다 훨씬 빨랐다.

그가 몸을 붕 날리더니 염자량을 향해 칼을 내리찍어 갔다.

“죽어라앗!”

순간 염자량이 뒤로 넘어지면서 자신을 덮쳐 오는 망절소를 보았다.

‘젠장, 이대로 죽기는 싫은데…!’

방심했다.

배후에 사비강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이렇게도 큰 차이란 말인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서 기분에 취하고 말았다.

그 대가는 컸다.

“제기라아알!”

염자량이 욕지거리를 뱉어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냉한 기운이 심장에서부터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손끝에 집중되는 것이 아닌가?

염자량은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을 내질렀다.

파지지지지짓!

그의 손바닥에 새하얀 기운이 뭉치면서 빛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칼을 쥐고 떨어져 내리던 망절소는 그 기이한 광경에 눈을 찢을 듯 부릅떴다.

‘이건 또 뭔…!’

마침내 염자량의 손에 맺혔던 얼음덩어리가 그대로 망절소의 가슴을 직격했다.

퍼엉!

“크허억!”

망절소가 피를 토하며 튕겨 날아갔다.

쿠당탕탕!

바닥에 쓰러진 망절소.

이를 본 연우경이 멍한 표정으로 망절소와 염자량을 번갈아보았다.

“너, 그거… 어떻게 한 거냐?”

하지만 영문을 알 수 없기는 염자량도 마찬가지.

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망절소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의 가슴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잔재주를…!”

숨을 훅훅 내쉬는 그의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졌다.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연우경이 얼른 염자량에게 달려왔다.

“너, 그거 또 쓸 수 있냐?”

“아마도.”

염자량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사용한 기술이 정확히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감각만큼은 몸에 밴 것처럼 또렷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가슴에 붙었던 불길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연우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한 번 더 써 봐.”

“지금?”

“그럼, 내일 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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