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귀환 마교관
82화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한 발 앞서 정찰을 마친 소섭랑이 황급히 돌아오며 보고했다.
상필지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무리 생도들이 살상용 병장기를 손에 들었다지만, 아직은 실전 경험이 전무한 생도들이었다.
이대로 적들과 조우해서 좋을 것은 결코 없다.
“모두 몇 명인가?”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대략 열 명으로 보입니다.”
좋지 않다.
적의 수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무공이 출중한 자가 포함되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놈들은 실전 경험이 풍부할 터.
“우선 몸을 숨기고 놈들이 지나갈 때까지 대기한다.”
“예!”
소섭랑이 생도들을 이끌고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상필지는 최대한 생도들의 흔적을 지운 다음 놈들이 지나갈 길목 인근에 몸을 은신했다.
원래 지키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어려운 법.
상필지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 저만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사비강의 언질대로 모두 붉은 복색을 착용하고 있었다.
상필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이것들이 오래 전부터 노려왔단 말이군.’
그는 만약을 대비해서 천천히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최대한 충돌은 피할 작정이었지만, 피치 못할 시에는 싸워야 하므로.
그나저나 사비강과 특목반 생도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쪽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상 교관께서는 낭아반만 신경 써 주시오.”
사비강이 내뱉은 그 말에 상필지는 별 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많은 인원이 뭉쳐 있는 것보다야 흩어져 있는 게 나을 것은 분명했으므로.
마침내 적들이 바로 근처까지 왔다.
‘저자는…!’
상필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붉은 뱀 탈을 쓴 사내.
그자만큼은 붉은 복색이 아니었는데, 체격이나 분위기가 눈에 익었다.
게다가 등에 맨 활은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언벽!’
그의 곁에는 검은 호랑이 탈을 쓴 사내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흑호’라 불리는 그 사내와 언벽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용천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확실히 차단한 거요?”
“물론이오. 흑살대원들을 보내 두었으니 문제는 없을 거요. 설마하니 연습용 병장기를 들고 거길 뚫으려는 미친 자는 없을 터.”
적사, 언벽의 질문에 흑호가 대답했다.
“아, 삼년생 백리극(百里極)을 처리했고, 이년생 손무엽(孫武燁)을 제거했소.”
“호오, 나름 소득이 있었구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오.”
언벽이 조금은 아쉬운 듯 대답했다.
대화를 엿듣고 있던 상필지의 미간이 더욱 구겨졌다.
‘백리세가와 태천문(太天門)이 이 사실을 알면 야단나겠군.’
백리극은 강호에서 위명을 떨치는 백리세가의 차남이었고, 손무엽은 명문 정파인 태천문의 셋째 제자였다.
그 둘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백리세가와 태천문은 복수를 하겠다며 나서리라.
‘더 이상 피해를 늘려서는 안 된다.’
저들이 숲을 헤집고 다닐수록 피해는 더욱 불어나리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뒤를 치고 싶었지만,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생도들이 신경 쓰였다.
차라리 혼자였다면 치고 빠지는 전략이라도 구사해서 저들을 혼란에 빠뜨렸으리라.
‘저 둘은 적어도 절정을 초월했군.’
상필지가 적사와 흑호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저자 역시 절정을 넘어선 고수군.’
적색 무복을 입은 자들 중 한 명.
바로 흑살대주 조량이었다.
셋 중에서는 가장 약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절정을 넘어선 자인만큼 요주의 인물이다.
마침 그들이 저만치 멀어지면서 기척까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상필지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생도들을 안전한 곳에 피신시키고 저것들을 어떻게든 저지해야겠군.’
생도들을 숨길만한 장소로 봐 둔 곳은 있다.
이전에 낭아반 생도들이 능소소의 계략에 빠져 갇혀 버렸던 기관진식.
이미 상필지가 파훼해 버리면서 기관진식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몸을 은신하기에는 여전히 훌륭한 곳이었다.
마침 숨어 있던 소섭랑과 생도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교관님.”
“바로 이동한다.”
“예.”
상필지가 생도들을 이끌고 걸음을 내디디려는데.
쒸에엑! 쒸에에에엑!
배후에서 허공을 가르며 화살 두 대가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상필지가 얼른 돌아서며 몸을 날렸다.
따당!
그의 검이 화살 두 대를 쳐내자, 튕겨 나간 화살이 옆에 세워진 나무 기둥에 처박히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치잇!”
상필지가 혀를 차자, 저만치 나무 위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과연 상 교관이시오!”
“언벽!”
상필지가 버럭 소리치자, 나뭇가지 위에 올라 서 있던 언벽이 경공을 펼쳐 근처까지 달려왔다.
뒤이어 흑호와 흑살대원들이 도착했다.
‘결국 들킨 건가?’
상필지의 표정이 굳어지는데.
“후후.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뻔했소. 당신에겐 좀 아깝게 됐지만. 애들 숨소리가 워낙 크게 들려야지.”
언벽이 빙그레 웃었다.
‘역시 생도들의 은신술이 부족했군.’
자신의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대화를 엿듣느라 거기까진 신경 쓰지 못했다.
상필지가 얼른 소섭랑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곳은 내가 맡을 테니 기회를 봐서 생도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라.]
[하지만 교관님 혼자서 저들을 상대하기는….]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알겠습니다.]
소섭랑이 두 번 반박하진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전음을 모두 듣기라도 한 것처럼 언벽이 말했다.
“설마, 당신 혼자 우리 모두를 상대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
“후후후. 만약 그런 거라면 꿈 깨라고 말해 주고 싶소.”
“언벽. 당신이 어째서 사파와 손을 잡은 건가?”
“어째서긴. 이 한심한 평화가 지겨워진 거지.”
“그야말로 한심한 변명이군.”
“하하하! 어쨌거나 당신은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없을 거요. 음? 그러고 보니… 저 애들은 살상용 무기를 들고 있군. 대체 어찌 된 거요?”
“내가 대답할 이유가 있나?”
“하긴, 뭐 아무렴 어떻소? 가축이 칼을 물고 있다고 해서 겁날 건 없으니.”
“닥쳐라, 언벽!”
파앗!
이윽고 상필지가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흑호가 그에게 마주쳐 갔다.
쩌엉!
두 사람의 도검이 부딪치면서 금속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까강! 깡깡!
상필지가 무서운 속도로 흑호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흑호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는 신도합일(身刀合一)의 경지였기에 마치 제 몸을 움직이듯 상필지의 검을 하나하나 막아내며 공격도 겸해 갔다.
‘과연, 대단하군!’
예상대로 흑호의 실력은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편, 언벽은 내심 상필지의 무공 수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일년생 교관들이 저마다 존대하며 허리를 숙이는 이유가 있었구나. 과연 대단한 무공이로고!’
얼핏 보면 흑호와 대등하게 보이지만, 아주 미세하게 상필지가 우위에 서 있다는 것을 언벽은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흑호가 패하고 말리라.
‘그리 둘 순 없지.’
탓!
언벽이 얼른 몸을 날려 칼을 휘둘러 갔다.
까가앙!
상필지가 재빨리 물러나며 칼을 막았다.
“스으읍, 후우.”
그가 심호흡을 하며 적들을 노려보았다.
예상대로 언벽이 가세했다.
이제 싸움은 자신이 밀리게 될 터.
얼마나 버티느냐가 문제이리라.
다행히 적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어쩐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비강.
그가 있다면…?
상필지는 정신없이 검을 내찌르면서 소섭랑에게 전음을 보냈다.
[기회를 봐서 몸을 빼내도록.]
[예? 그럼 생도들은…!]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네. 곧장 사비강 교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게.]
[사비강 교관 말입니까? 그를 어디서….]
[용천관 쪽으로 간다고 했네.]
[알겠습니다.]
전음을 주고받은 끝에 상필지가 기합성을 터뜨리며 검강을 일으켰다.
“하아앗!”
쒸에에에엥!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언벽과 흑호가 얼른 물러나며 방어했다.
“지금이다!”
상필지가 버럭 소리쳤다.
타앗!
소섭랑이 바닥을 차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엇! 녀석을 잡아라!”
흑호가 소리치자, 적색 무복 사내들이 곧 몸을 날리려고 했다.
그 순간.
“움직이지 마라!”
상필지가 공력을 가득 싣고 사자후를 터뜨렸다.
“크우우웃!”
“으윽!”
적색 무복 사내들이 귀를 틀어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뿐만 아니라 삼인의 절정 고수들 역시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아야 했다.
‘과연 대단하군!’
언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절정이라도 다 같은 절정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공력을 소모했으니, 남은 싸움은 자신들에게 훨씬 유리해지리라.
그가 얼른 조량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쫓게!]
전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량이 몸을 날렸다.
“어딜!”
상필지가 그의 뒤를 쫓아 번개같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상 교관께서는 상대를 착각하셨소!”
어느새 언벽이 당긴 시위를 놓았다.
패애앵!
쒸에에에엑!
“크익!”
까앙!
무섭게 날아가던 화살이 상필지의 검에 튕겨 나갔다.
언벽과 흑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상필지와 마주섰다.
“안 됐지만, 그 부교관은 흑살대주에게 잡힐 거요.”
“어디 세상 일이 생각대로만 흐르던가?”
“후후후, 그렇지. 적어도 당신 생각대로 흐르진 않겠지.”
그러는 사이 일곱 명의 흑살대원들이 낭아반 생도들을 에워쌌다.
머릿수로 따지면 생도들이 유리했지만, 무공 수위와 경험에서 큰 차이가 있다.
때문에 생도들 역시 섣부른 공격은 하지 못한 채 경계만 하고 있었다.
언벽이 싱긋 웃었다.
“그럼, 들어가겠소.”
“얼마든지.”
타앗!
언벽과 흑호가 동시에 상필지를 향해 쇄도했다.
**
‘으으. 정말 싫다.’
민유향은 천천히 움직이며 가만히 몸서리를 쳤다.
그녀 옆에는 목단화와 백미령이 있었다.
하지만 온통 어두운 물속에서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세 사람 뒤에는 능소소를 포함한 또 다른 여자 생도 다섯 명이 잠수한 채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
이들은 모두 용자림 한곳에 위치한 연못 아래에 잠수를 한 상태.
사비강은 일부러 물속에서 적을 습격할 생도들을 모두 여자 생도들로 채웠다.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이미 지옥 훈련을 통해 공기가 적은 곳에서 버티는 법을 익혔기에 가능했다.
그래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죽통을 하나씩 대비하긴 했다.
실전에서는 만반의 대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사비강의 말이었기에.
어쨌거나 여덟 명의 여자 생도들은 현재 연못 아래에 완전히 잠겨든 채 길목을 막고 있는 흑살대원들에게 다가가는 중이었다.
물속인 만큼 기척을 숨기기는 훨씬 수월했다.
마침내 걸음을 멈춘 목단화가 천천히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바로 옆에 흑살대원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좋아.’
다시 천천히 수면 아래로 잠겨든 그녀가 다른 생도들에게 대기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팟!
수면 밖이 환하게 밝아졌다.
신호다!
목단화를 비롯한 여자 생도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