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74화 (74/670)

# 74

귀환 마교관

74화

등부형이 후다닥 물러났다.

사비강이 손을 털고는 목단화를 돌아보았다.

“괜찮냐?”

“네? 네… 뭐.”

“그럼, 뭐하고 있어? 싸워야지.”

“아, 네.”

목단화가 얼른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쉬이이익! 퍽!

그녀의 검봉에 찔린 생도 하나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응조반 생도 한 명이 목단화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당, 당황하지 마! 어차피 머릿수로 따지면 우리가 유리하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사기를 북돋으려는 기세는 좋았으나, 그의 실력은 목단화에게 한참 못 미쳤다.

“헉!”

혼돈뇌정의 초식을 정면으로 마주한 그는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뒤로 물러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쉬이이익! 따악!

“크악!”

목단화의 검이 그의 이마를 정확히 때리고는 지나갔다.

이마에는 붉은 점이 피처럼 찍혔다.

“으익, 제길…!”

생도가 울먹이며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하지만 사망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분한 눈초리로 목단화를 노려보기만 할 뿐.

‘이게… 정말 생도 실력인 거야?’

부교관쯤 된다고 해도 믿을 정도가 아닌가?

목단화뿐만이 아니다.

특목반 생도들 모두가 응조반 생도들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도검을 부렸다.

게다가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날아드는 화살.

쒸에에엑! 퍽!

“크악!”

응조반 생도들로서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제길, 우린 졌어…!’

전술도, 전략도, 실력에서도 완전한 패배다.

한편,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둘러 가던 목단화는 힐끔 사비강 쪽을 돌아보았다.

아직 사비강과 등부형은 서로를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사비강이 버티고 선 이상 등부형은 쉽게 몸을 빼낼 수 없으리라.

오기룡은 연우경과 염자량이 차륜전을 펼치며 상대하고 있었는데, 거의 대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운이 좋다면 응조반은 섬멸할 수 있겠어.’

목단화의 발이 깃털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쉬잇, 퍽!

다시 검봉에 생도 한 명의 가슴이 걸렸다.

심장 부위에 붉은 점을 찍혔으니 사망이다.

“제길! 특목반 주제에!”

사망 판정을 받은 생도, 한백(韓伯)이 이를 갈며 외쳤다.

마침 다른 곳으로 달려가려던 목단화가 흠칫 멈추더니 한백을 스윽 돌아보았다.

“뭐, 뭐야?”

한백이 움찔거렸다.

목단화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노려보며 물었다.

“특목반이 어때서?”

“뭐?”

“특목반이 어때서냐고 물었다.”

“무, 무슨… 그야 낙오자들이나 모인 반이면서 꼼수를 써서 우리를 함정에 빠트려….”

“꼼수 따위에 당할 정도면 너희들 수준은 도대체 얼마나 형편없다는 거지?”

“뭐, 뭐라고? 흥! 천하의 목단화도 특목반에 들어가더니 머리가 이상해진 모양이군! 애초에 연우경이나 넌 가문의 비기를 전수받아서….”

“봐. 지금 우리 반에서 누가 너희들보다 뒤떨어지는지.”

목단화가 검을 들어 올리고는 격전 중인 생도들을 가리켰다.

한백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말대로다.

응조반은 특목반을 상대로 아예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는 이대일의 싸움을 펼치면서도 불리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젠장… 하지만…!’

한백의 눈빛이 잠깐 반짝였다.

목단화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이, 응조반 생도 한 명이 살금살금 그녀 뒤로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찰나, 그 생도가 기합성을 내지르며 목단화를 덮쳐 왔다.

“이여업!”

너무 갑작스러웠을까?

목단화는 피할 기색도 보이지 못했다.

필시 방심한 것이리라.

‘흐흐, 넌 죽었어! 전투 중에 방심이라니!’

연습용 칼날이 목단화의 뒷목을 베려는 찰나,

쒸에에엑!

퍼억!

“컥!”

느닷없이 날아든 화살!

옆구리를 얻어맞은 생도가 튕기듯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

한백이 눈을 부릅떴다.

“아으…!”

쓰러진 생도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려고 했다.

목단화가 여전히 한백을 응시한 채 검을 옆으로 내리쳤다.

따악!

“아악!”

연습용 검에 발라 둔 붉은 색소가 그의 정수리에 찍혔다.

사망이다.

“잘 봤나? 이게 우리 특목반이야. 특목반을 무시하면 이렇게 되지.”

“크윽…!”

한백은 분했지만 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이건 꼼수의 문제가 아니다.

완벽히 전략과 실력의 차이다.

목단화가 냉소를 짓고는 휙 몸을 돌려 걸어가자, 한백은 주먹을 쥐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길!”

한편, 연우경과 염자량을 동시에 상대하는 오기룡은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이 꼬맹이들! 도대체 어떻게 된 체력이야?’

연우경과 염자량은 지칠 줄을 몰랐다.

게다가 두 사람의 검술이 생각보다 뛰어나서 권각만 사용하는 오기룡은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반면 연우경과 염자량은 시간이 흐를수록 승산이 점점 올라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지옥 훈련의 효과가 있었다.

열빙옥과 무기옥을 겪으면서 내공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적은 공기 속에서 호흡하는 훈련을 하니 기본적인 폐활량이 크게 늘었다.

[우경, 내가 먼저 들어가서 주의를 끌 테니, 네가 마무리해!]

[흥,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까칠한 대답에 염자량이 피식 웃고는 바닥을 차며 날아갔다.

탓!

“어딜!”

오기룡이 얼른 몸을 회전하며 염자량의 검을 비켜 일장을 뻗었다.

그 순간.

쒸에에엣!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

어느새 자신의 등으로 연우경의 검이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엇! 위험!’

그가 얼른 몸을 젖혔다.

퍽!

“크윽!”

오기룡이 옆구리를 쥐며 타다닥 물러났다.

“훅, 훅, 훅.”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오기룡의 옆구리에 붉은 점이 찍혔다.

다행히 요혈은 아니다.

부상 판정.

하지만 앞서 두 사람에게 부상을 당한 것이 있었다.

이제 점 하나만 더 찍힌다면 끝인 상황.

‘제길, 이래서야 결판이 나지 않는다. 우선 저 녀석부터…!’

오기룡이 흘끔 남쪽 숲을 응시했다.

화살이 날아드는 방향이었다.

그 화살 때문에 생도들이 계속해서 사망하고 있었다.

그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등 교관님은 뭐하시는 거야!’

짜증이 치밀었다.

등부형은 아직도 사비강을 응시한 채 칼을 뽑지 않고 있었다.

상대는 교관이니 오호천황도를 뽑아든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한데….

[뭐하십니까? 도를 사용해서 사 교관을 끝장내 주십시오!]

하지만 등부형은 난감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응시하기만 할 뿐이었다.

오기룡으로서는 속이 터질 지경.

어쩔 수 없다.

우선은 저 활을 쏘는 녀석부터 처리해야 한다.

[궁수를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처리해 주십시오!]

[끄음. 알겠네.]

등부형의 대답을 들은 오기룡이 바닥을 탁, 차며 날아갔다.

“어엇!”

그의 돌발 행동에 염자량이 뒤쫓으려고 했지만, 한 발 앞서 연우경이 제지했다.

“놔둬. 어차피 교관만 생존해서는 우승할 수 없어.”

그렇다.

조직대항전에서 최종 우승반이 되기 위해서는 규칙상 반드시 생도가 살아 남아야 한다.

“하지만 저 교관은 단리정을 노리는 거라고.”

“그래도 우리 임무는 이 녀석들을 섬멸하는 거다. 그게 우승하는 길이고.”

냉랭하게 대꾸한 연우경이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칫, 차가운 놈.’

염자량은 내심 한숨을 내쉬면서도 반박하지 못했다.

맡은 임무에서 임의대로 이탈하는 것은 확실히 반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에.

이 또한 공부다.

‘어쩔 수 없구나. 정, 조심해라!’

결국 염자량도 응조반 생도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

패애앵!

시위를 떠난 화살은 눈 깜빡할 사이에 숲을 관통하며 날아갔다.

일반인이 본다면 그 속도에 혀를 내두르겠지만, 단리정은 썩 만족할 수 없었다.

‘역시 답답해. 탄월신궁(彈越神弓)이 있었으면….’

단리정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연습용 활과 화살을 보았다.

탄월신궁은 사비강이 그에게 준 커다란 활이었다.

본래 혈수궁이 사용했던 그 활을 단리정은 ‘탄월신궁’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걸로 만족해야 한다.

조직대항전의 규칙이니 어쩔 수 없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단리정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활시위를 당겼다.

탄월신궁과는 조금 이질감이 드는 감각이 손가락마디 끝에 걸렸다.

그렇게 표적을 가늠하는데.

“헛?”

한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대단한 경신법.

생도가 아니다.

‘교관이야!’

바로 응조반 부담임 오기룡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허둥거리지는 않았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곧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지옥 훈련 이후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보다 수월해진 탓이다.

‘좋아, 최대한 침착하게…!’

화살촉을 천천히 옮기며 조준했다. 그리고….

지금이다!

패애앵!

쒸에에에엑!

시위를 놓자 화살 한 대가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연습용 활의 한계인가?

화살은 오기룡을 스치며 바닥에 꽂히고 말았다.

‘칫!’

단리정은 얼른 화살 한 대를 더 꺼내든 다음 시위에 걸었다.

그러나 이미 오기룡은 지척에 다다른 상황.

‘제길, 빠르잖아!’

마침 오기룡이 옆의 나무기둥을 박차고 훌쩍 날아올랐다.

“거기구나!”

그가 곧장 일장을 뻗어 오는데.

쉬이잇! 쉬이이이익!

그의 장력이 단리정에게 채 미치기도 전에 양옆에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헛?”

오기룡이 놀라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이미 허공으로 날아오른 몸은 관성을 이기지 못했다.

퍼퍽!

“크윽!”

두 자루의 검이 그대로 오기룡의 양 옆구리를 가격했다.

붉은 점이 선명하게 찍혔다.

털썩!

바닥에 떨어진 오기룡이 이를 부득 갈고는 돌아보았다.

“이 녀석들!”

그에게 일격을 가한 사람은 바로 민유향과 백미령.

두 사람은 만약을 대비해서 단리정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것.

“우리 반 신궁(神弓)을 건드리면 곤란하다고요, 교관님. 저래 봬도 꽤 귀하신 몸이거든요.”

“크윽! 이놈들!”

분을 참지 못한 오기룡이 벌떡 일어나며 달려드는데.

휘리릭. 휘리릭!

백의를 걸친 무인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수위무사들이었다.

“진정하시오, 교관. 사망하셨소.”

“치잇!”

오기룡이 혀를 차고는 힘을 풀었다.

그가 투덜거리며 걸어가자 민유향과 백미령이 단리정을 돌아보았다.

“안심하고 계속해.”

“어? 아, 응.”

단리정이 얼결에 대꾸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던 여자 생도들.

한데 지금은 누구보다도 든든하게 자신을 호위하고 있었다.

‘적응은 안 되지만… 기분 나쁘진 않네.’

단리정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마침 그가 잔뜩 당긴 시위를 놓았다.

패애앵!

화살 한 자루가 빛살처럼 숲을 뚫으며 날아갔다.

**

“안 됐군.”

사비강의 말에 등부형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요?”

“방금 그쪽 부담임이 사망했소.”

“뭐요?”

등부형이 흠칫거렸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가 움찔거리며 다시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저 자신을 동요시킬 목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사비강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어쩌면 정말일지도.

지난 번 흑사방에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사비강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다.

주변에서는 생도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칼을 뽑아야 하는데….

어서 뽑고 무위를 펼쳐 보인 다음 생도들을 구해야 하는데….

‘제기랄!’

자하낙인도와 승룡도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토록 아끼던 칼들이 전부 사비강 때문에 부러지지 않았던가?

그가 머뭇거리는데, 사비강이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우리도 슬슬 결판을 지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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