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73화 (73/670)

# 73

귀환 마교관

73화

“시작됐군.”

용자림 안쪽 깊숙한 곳.

수풀 속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사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검은색 호랑이 탈을 쓴 흑호였다.

북소리와 함성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저 북소리가 이어지는 동안은 교관과 생도들이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북소리가 끊기는 것과 동시에 조직대항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터.

흑호의 뒤로는 똑같은 탈을 쓴 무인들이 붉은색 옷을 입고는 몸을 바짝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 중 기도가 남다른 사내가 나직이 말을 꺼냈다.

“이렇게 튀는 색깔을 입어서는 은신의 의미가 없겠습니다.”

흑살대주 조량(趙良)이었다.

흑호가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는 소리. 이 복색은 우리에게 완벽한 은신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저들의 수위무사가 붉은 복색을 착용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다른 복색을 착용한 적이 없거든.”

그제야 조량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였군요.”

“명문파의 후기지수를 제거하고, 용천관의 핵심 교관들을 없애는 것이 우리 임무다. 이렇게 한 자리에서 명문파 후기지수를 쓸어버릴 기회는 흔치 않지. 그러니 실패는 없어야 한다.”

“명심하지요. 후후.”

조량이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입술을 핥았다.

흑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망한 후기지수들이 제거되고 나면 정파인들은 고통과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특히 용천관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정파 녀석들은 분열을 일으킬 터.

오래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격분한 그들은 사파와 다를 바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분을 표출하기 위해 길길이 날뛰리라.

그렇게 정도 문파와 가문들이 뿔뿔이 흩어져 제멋대로 설쳐대는 사이에, 혈사련이 등장하여 혼돈에 빠진 강호를 정돈한다.

하나로 뭉친 적은 언제나 경계 대상이지만, 갈기갈기 찢어진 적은 손쉽게 제거할 수 있기에.

이것이 혈사련이 그린 그림이었다.

마침내 북소리가 그쳤다.

흑살대주 조량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럼, 한바탕 놀아볼까?”

하지만 흑호의 한 마디가 그를 붙들었다.

“대기하라.”

“왜 그러십니까?”

“저 많은 생도들 중에 유망 후기지수를 어찌 가려내려고?”

“그건 닥치는 대로 쓸어 가다 보면….”

“그러다 보면 조직대항전이 중단되고, 생도들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지겠지.”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대기한다.”

흑호가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대꾸했다.

조량이 다시 수풀 사이로 몸을 숨겼다.

흑호가 말을 이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놈들이다.”

유망한 후기지수들이 조직대항전에서 빨리 사망할 가능성은 적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버틴 자일수록 뛰어난 능력을 가진 후기지수이리라.

당연 그들이 명문 소속일 가능성이 크다.

조량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 방법이 좋겠군요.”

“어차피 조무래기들 몇 죽여 봐야 정파 녀석들은 끄떡하지 않아. 저놈들을 분개하게 만들고, 분열까지 일으키려면 그만큼 아끼는 걸 제거해야겠지.”

“그럼, 언제 시작하면 좋겠습니까?”

“세 번째 북소리다.”

조직대항전을 치르면서 북소리는 총 세 번 울린다.

조직대항전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

그 다음 삼 할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시에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린다.

마지막으로 삼 할의 생존자가 남았을 시에 세 번째 북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우승 반이 정해지면 북이 아니라 징을 울리게 된다.

즉 흑호는 삼 할의 생도가 남았을 때 흑살대를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교관들은 진검을 패용하고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도록.”

“알겠습니다.”

조직대항전에서 생도들은 날이 무딘 연습용 병장기를 사용한다.

다만, 교관들만은 만에 하나를 대비해 진검을 패용하게 한다.

그리고 교관들끼리 조우하게 되면 진검승부를 펼칠 수 있다.

단, 이때에도 상대에게 상해를 입혀서는 안 되며 불리하다고 판단될 시에는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해야만 한다.

흑호의 가면 아래로 스산한 웃음이 스며들었다.

‘후후후. 지금은 마음껏 즐기게들.’

**

“이상 없습니다!”

정찰 임무를 맡은 부담임 오기룡(吳起龍)이 등부형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좋소, 이동합시다.”

등부형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맡은 응조반(鷹爪班) 생도들이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생도들은 워낙 예민한 상태였기에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흠칫거리며 돌아보곤 했다.

등부형이 피식 웃었다.

“내가 함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들 마라. 그리고 우리처럼 전원이 모여 있을 경우에는 섣불리 공격해 오지도 못해.”

등부형의 전략은 단순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실제로 그는 아직까지 그 전략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워낙 많은 인원이 뭉쳐 있으니, 그들을 발견하고도 섣불리 공격해 오지 못하는 생도들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규칙상 이년생과 삼년생은 일년생을 선제 공격할 수 없다.

즉 선배 기수가 후배 기수를 선제 공격할 수는 없다.

형평성을 고려한 까닭이다.

때문에 같은 일년생만 조심하면 된다.

오히려 응조반에서 적극적으로 공격하여 다른 반을 거의 말살 직전까지 몰아가기도 했다.

머릿수에서 압도하다 보니 웬만한 기습 공격에서는 등부형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저력이 있었다.

등부형 옆으로 다가온 오기룡이 존경심을 담은 눈으로 말했다.

“과연 탁월한 전략입니다. 아무도 우리 반을 건드리지 못하는군요.”

“후후. 때론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 될 수 있지. 어설픈 전략보다는 지금처럼 고전적이면서 단순한 방법이 더 잘 통할 수 있소.”

“등 교관님께 이렇게 또 한 수 배웠습니다. 이러다가 그 보도는 쓸 일도 없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하하하. 뭐, 그럼 더 좋은 일 아니겠소?”

등부형이 껄껄 웃으며 허리춤에 패용한 도를 흐뭇한 눈길로 보았다.

오호천황도(五虎天皇刀).

다섯 마리의 금빛 호랑이가 서로 뒤엉키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형상화 한 도집은 척 보기에도 꽤나 귀한 물건임을 알 수 있게 했다.

“후후후. 이 오호천황도가 함께 하는 한 누구도 우리 반을 건드릴 수 없을 거요.”

“역시 등 교관님, 든든합니다!”

오기룡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등부형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보도야말로 내게는 아주 특별한 것이지!’

그렇다.

등부형은 원래 보도나 명도에 욕심이 많은 자였지만, 오호천황도만큼은 지금껏 그가 소유했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각별했다.

그 이유는….

‘나의 피 같은 돈을 들여서 샀기 때문이지!’

지금까지 등부형은 대부분의 보도를 뇌물로 받아 사용해왔다.

오호천황도만큼은 본인의 돈으로 직접 구매한 것이었다.

‘무려 지난 십 년간 모았던 돈을 다 털었지.’

하지만 오호천황도의 명성을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 아깝지….

‘아깝지 않은 돈이다!’

그만큼 이 보도가 자신의 운명을 지켜 줄 것이기에.

‘그래! 전혀 아깝지 않아!’

등부형이 오호천황도를 꽉 쥐더니 불쑥 들어올렸다.

생도들이 움찔 멈췄다.

“모두들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어라! 내가 너희들을 지킨다!”

“오오.”

생도들이 경외감 담은 눈빛으로 등부형을 바라보았다.

그때.

쒸에엑! 쒸에엑! 쒸에에엑!

숲을 가로지르며 날아드는 세 자루의 화살!

퍽! 팍! 퍽!

“커헉!”

“우왁!”

“억!”

쿠당탕탕!

세 명의 생도가 튕겨 나가듯이 바닥에 쓰러졌다.

“적이다!”

생도 중 한 명이 소리치며 몸을 바짝 웅크렸다.

등부형과 오기룡 역시 얼른 몸을 숙이고는 쓰러진 생도들에게 다가갔다.

“교, 교관님…!”

화살에 맞은 생도가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는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오기룡이 얼른 몸을 뒤집어 보자 등 복판에 붉은 점이 찍혔다.

진짜 화살이었다면 그대로 폐를 뚫고 앞으로 튀어나왔으리라.

사망이다.

다른 생도 두 명 역시 요혈을 가격당해 사망 판정을 받았다.

“모두 사망입니다.”

“이런 젠장! 감히 어떤 녀석들이…!”

등부형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는데,

쒸에에엑! 쒸에에엑! 쒸에에엑!

다시 세 자루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퍼퍼퍽!

이번에도 세 명의 생도가 속절없이 화살을 맞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두 명 사망, 한 명 부상.

“젠장, 도대체 어디에서…!”

그때였다.

“쳐라! 우와아아!”

어디선가 몇 명의 생도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동쪽이다! 대비해라!”

등부형의 말에 생도들이 일제히 동쪽을 향해 돌아서며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한데.

쒸이잇! 쒸이이잇!

“커억!”

“아얏!”

느닷없이 등 뒤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황급히 돌아보니 어느새 몇몇 생도들이 등이나 뒷목에 붉은 선이 그어진 채 쓰러져 있었다.

전형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에 휘말려 든 것이다.

기습을 받아 경황이 없다 보니, 이런 단순한 전략도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댄 거다.

그런데….

‘저놈들은… 특목반?’

등부형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필이면 특목반이라니!

배후에서 나타나 검을 휘두르는 녀석들은 틀림없이 염자량과 연우경이었다.

뒤늦게 응조반 생도들이 염자량과 연우경을 향해 도검을 휘둘러 갔지만.

쒜에엑! 쒜에에엑!

퍼퍽!

어디선가 빛살처럼 날아드는 화살 탓에 그대로 튕겨 나가며 쓰러지고 말았다.

연우경이 눈앞에서 픽픽 쓰러져나가는 생도들을 보며 입매를 슬쩍 추켜올렸다.

“단리정이 제법 해주는군.”

“후후. 무시할 녀석이 아니지. 떨어져 있을 때 가장 무서운 건 바로 그 녀석이니까.”

“부정할 수 없군.”

염자량의 말에 연우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을 찔러 갔다.

“어딜!”

마침 오기룡이 불쑥 날아들어 양발로 두 사람의 검을 걷어찼다.

퍼퍽!

교관들이 생도들을 대상으로 직접 무공을 사용할 때는 권각만 허용됐다.

또한 방어만 할 수 있었다.

중심을 잃은 연우경과 염자량이 비틀거리며 물러나자, 사기가 돋은 생도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쒜엑! 쒜엑! 쒸에에엑!

까가강!

마침 등부형이 날아드는 화살을 모두 튕겨 내며 주의를 주었다.

“멈춰라! 서쪽도 경계해!”

하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한 생도들은 당장 눈앞의 적을 처리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몸을 슬금슬금 빼내는 연우경과 염자량으로부터 좀처럼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그때.

“지금이야!”

낭랑한 목소리에 이어 서쪽에서 목단화를 선두로 특목반 생도들이 마구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몇몇 생도들이 몸을 돌렸지만, 검술이 뛰어난 목단화를 제압하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게다가 그녀와 함께 나타난 특목반 생도들은 이미 특목각에서 지옥 훈련을 마친 자들.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버텨낸 자들이었다.

때문에 그들로서는 수적 열세도 그다지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 어린 것들이…!”

등부형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목단화에게 훌쩍 몸을 날렸다.

깜짝 놀란 목단화가 얼른 검을 내질러 갔다.

섬광벽력검의 일초식 혼돈뇌정이었다.

검봉이 빠르게 흔들리며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다.

하지만 실전 경험이 풍부한 등부형에게는 그저 가소로울 뿐.

“흥! 아직 멀었다!”

차갑게 일갈한 그가 몸을 빠르게 회전하며 목단화 곁으로 파고들었다.

“헉!”

목단화가 얼른 물러나는데.

쉬이이잇!

등부형의 일장이 보다 빨리 그녀의 등을 향해 뻗어 왔다.

이윽고.

퍼엉!

생각보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 바람에 주위에 있던 생도들이 흠칫거리며 돌아보았다.

등부형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 사 교관!”

“생도를 상대로 너무 본심을 다하는 것 같소.”

등부형의 일장을 받아낸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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