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70화 (70/670)

# 70

귀환 마교관

70화

“준비됐습니다.”

연우경이 벼루에 갈던 먹을 내려놓았다.

사비강은 집무실을 서성이다가 힐끔 보았다.

“좋아, 그럼 받아 적어라.”

연우경이 붓을 들었다.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나, 연우경은 사비강 교관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뭐라고요?”

연우경이 움찔거리고는 목청을 높였다.

사비강이 돌아보더니 히죽 웃었다.

“뭐, 적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없던 걸로 하고.”

연우경이 몸을 가늘게 떨다가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참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비무다.

그 비무에서 졌다간 금방 입소문이 나고 말 거다.

패검연가의 이 공자가 듣도 보도 못한 삼류 문파의 속가제자에게 박살났다고.

이런 소문이 돌면 아버지는 자신을 당장 집으로 불러들일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내일 비무에서 지게 되면, 이비겸이 한 말을 인정하는 셈이 아닌가?

가문의 배경만 믿고 설친다는….

‘제길!’

연우경이 입술을 꾹 깨물고 글을 적어 나갔다.

“다 적었습니다.”

“어디 보자. 음. 제대로 적었군. 아, 맨 위에 ‘마음의 소리’라고 쓰는 걸 깜빡했네. 그것부터 일단 다시 적자.”

“작작 좀 하시….”

“싫으면 관두자니까.”

“… 마음의 소리라고 쓰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아까 부른 내용도 그대로 적어라.”

“… 적었습니다.”

“좋아. 다음은….”

잠시 생각하던 사비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연우경은 앞으로 사비강 교관님 말씀에 절대 복종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가 가장 존경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딴 장난을…!”

“장난으로 보이냐?”

사비강이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연우경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장난 아닌 표정이 더 웃기다고!’

결국 그는 분을 삭이고는 다시 붓을 들었다.

“마지막 말은 앞의 문장과 중복입니다만.”

“상관없어. 두 번 나오면 그만큼 더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 적었습니다.”

“나, 연우경은 사비강 교관님에 비하면 발바닥의 때만도 못하다.”

“크익…!”

“싫으면 관두….”

“쓰고 있습니다! 쓰고 있다고요!”

“즐겁게 써. 이왕이면.”

“다 썼습니다! 또 있습니까? 젠장!”

“나, 연우경은 사비강 교관님 앞에서는 언제나 바른 말, 고운 말만 쓸 것이다.”

“… 썼습니다.”

“나, 연우경은 사비강 교관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그전에는 단세포에 가까운 동물이었다.”

붓을 쥔 연우경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 또 있습니까?”

“나, 연우경은 사비강 교관님을 만나서 너무 행복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시기 때문이다.”

“… 썼습니다.”

“나, 연우경은 원래 멍청한 괴물….”

“도대체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크크. 이건 농담이었다. 어디 보자. 으음. 제대로 썼군. 좋아. 이건 내가 잘 간직하마.”

사비강이 화선지를 잘 말리더니 차곡차곡 접어서 품에 넣었다.

연우경이 씹어 삼킬 듯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이제… 알려 주시죠?”

“눈깔에 힘 빼라. 겁난다.”

“그만 좀… 알려 주시죠?”

“하여튼 귀여움이라곤 없는 녀석이라니까.”

사비강이 혀를 차고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휙 집어던졌다.

영롱한 푸른빛을 품은 돌이었다.

마공석.

처음 보는 광물에 연우경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뭡니까?”

“마공석이라는 거다.”

“마공석? 처음 듣습니다만.”

“일종의 영약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영약이라니….”

“원래 네 실력이라면 이비겸과 싸웠을 때, 이길 확률이 반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까?”

“그렇지. 천세명 교관이 오늘 저녁에 이비겸에게 영단을 먹였으니까.”

“영단을요?”

“그래.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 영단을 복용한 덕에 이비겸의 내공이 크게 늘었다.”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죠? 직접 보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하면?”

“부엉이가 본 건데….”

“예에?”

연우경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비강은 옵저버 마법을 이용해서 부엉이의 눈으로 염탐한 것이었다.

원래 의도는 사파와 내통하는 자가 천세명인지 확인하려고 했던 것인데, 우연히 그가 이비겸에게 영단을 건네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이런 내막을 알 리 없는 연우경으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할 뿐이었다.

부엉이라니….

“아무튼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냐? 넌 지금부터 그 마공석을 흡수한다. 내가 꽤나 흡수해 버려서 별로 남아 있진 않지만, 그래도 공력이 상당히 상승할 거다.”

“이걸 어떻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

후우우우웅!

연우경의 무복이 부풀어 오르자 천세명의 눈동자도 커졌다.

‘저 녀석이 저 정도로 내공이 충만했던가?’

그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언벽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연우경의 내력이 예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 같습니다. 혹시….”

“사라진 영단이 없는지 한 번 살펴보시오.”

“알겠습니다.”

언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그머니 몸을 빼냈다.

한편, 이비겸은 믿고 있던 내공에서도 별 차이가 없게 되자 조바심이 일어났다.

‘어째서…!’

타앗!

순간 그가 바닥을 박차며 도를 대각선으로 베어 들어갔다.

쩌엉!

검기와 도기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 반동을 이용해서 그대로 이비겸의 몸이 회전했다.

쒸에에엑!

까앙!

다시 한 번 터져 나온 금속성.

불꽃이 팍 튀었다.

따당! 깡!

이비겸의 도가 춤을 추었다.

그가 사용하는 구룡승천도는 대체로 곡선의 움직임이 많다.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에서 창안한 무공인 만큼 힘과 속도, 부드러움과 다양한 변화가 돋보이는 무공이다.

반면 패룡단천검은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어찌 보면 두 무공은 모두 용을 형상화 하여 창안했으나,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공의 오의를 깨닫기 힘든 어린 시기에는 아무래도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무공을 쓸 때 약간이나마 우세하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비무에서도 그러한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연우경의 검법은 시종 단순하며 경직된 느낌인 반면, 이비겸의 도법은 연신 변화무쌍하고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했다.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연우경은 조금씩 밀리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매설란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속삭였다.

“혹시 방금 사용한 내공의 증폭이 숨겨 둔 패였나요?”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이대로라면 연우경이 조금 힘들겠어요.”

“그렇겠군.”

“네? 그렇게 태연하게 대답해도 되나요?”

“뭐, 저 녀석이 지는 거지, 내가 지는 건 아니니까.”

‘역시 이 남자… 제자의 패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잖아!’

“하지만… 아마도 지지 않을 거야.”

사비강의 말에 매설란이 이맛살을 곱게 찡그렸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숨겨 둔 패가 드러나긴 했지만, 아직 그걸 써먹진 않았으니까.”

“도대체 무슨 소릴….”

“아마 저 녀석이라면 적절한 순간에 잘 써먹을 거야.”

매설란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사비강은 기대에 찬 눈으로 연우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천세명은 다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괜히 놀랐군. 이대로라면 역시 승산은 이쪽이다. 후후.’

비무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인상에는 강하게 남으리라.

결국 어제의 비무 결과는 기억에서 지워지고, 오늘의 결과만이 영광으로 남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았다.

그가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마침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더니 연우경이 저만치 튕겨 나갔다.

까앙!

타다닷!

“훅, 훅, 훅!”

연우경이 검을 쥐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제길…! 이 녀석이 이렇게 강했나?’

내공의 수준은 비슷해졌다.

한데, 상대가 펼치는 변화무쌍한 초식들을 도저히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굉장히 정직하고 깔끔한 패룡단천검에 비해, 구룡승천도는 변초와 허초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것을 응용할 방법도 무궁무진하니 아직 본인의 검법에 깨달음이 깊지 않은 연우경으로서는 당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내공은 네가 조금 더 나을 거다. 하지만 아직은 구룡승천도의 변화무쌍한 초식을 당해내기 어려울 테지. 확률은 반반이다.”

마공석의 마나를 흡수한 후, 사비강이 해준 말이었다.

더 확실한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자, ‘마나기환심공이 몸에 익을 때까지 운기하라’고만 했다.

결국 그 짓을 하느라 날을 꼬박 샜다.

‘한데… 도대체 써먹을 수가 없잖아!’

밤새도록 연마해서 얻은 것이라곤 졸음밖에 없지 않은가?

‘칫, 설마 날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건가?’

연우경이 사비강을 힐끔 보았다.

사비강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저 능구렁이 같은 교관의 속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때였다.

“한눈을 팔다니.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타앗!

이비겸이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연우경이 얼른 검을 막아 세우는데,

‘다리를!’

놀랍게도 이비겸은 도를 들고 하반신을 내찔러 왔다.

그는 마치 도를 검처럼 부리고 있었다.

쒸에에엑!

‘피한다!’

연우경이 얼른 몸을 회전했다.

그 순간.

슈우우우욱!

‘또 변초!’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승천하듯 도신이 뒤틀리더니 하늘로 솟구치는 게 아닌가?

슈파바바밧!

연우경이 이를 악물고 상반신을 뒤로 확 젖혔다.

피츗!

도기가 어깨를 스치며 옷자락을 찢어냈다.

핏방울이 점점이 뿌려졌다.

‘칫! 제기랄!’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비겸의 칼은 허공을 한 바퀴 돌아서 횡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홉 마리 용이 뒤엉키며 활개를 치는 듯했다.

쒸에에에엑!

‘젠장, 위험하다!’

연우경이 얼른 검을 돌려세웠다.

그런데….

쑤우욱!

맹렬하게 날아들던 도신이 순식간에 검을 비껴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허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몸은 균형을 잃어 가고 있었다.

파밧!

그가 얼른 발을 뻗어 하반신을 지탱했지만, 벌써 자세가 많이 비틀어진 상황.

게다가 이비겸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이다!”

이비겸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쒜에에에엑!

그의 도가 그대로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검을 들어 올려 막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

방법이 없다.

최선의 방어라면 몸을 뒤틀며 빼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칼을 완전히 피하진 못한다.

치명상을 면할 뿐이다.

그리고 결국….

‘나의 패배가 결정되겠군.’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지기 싫어!’

그때 몸속에서 요상한 기운이 꿈틀거렸다.

사비강이 알려 준 마나기환심공이 체내에서 절로 발동하고 있었다.

마치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절로 내공이 발출되는 것처럼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

찰나.

스팟!

따앙!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비겸의 칼이 보이지 않는 뭔가에 부딪치더니 그대로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닌가?

‘크읏! 이건… 뭔?’

이비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천세명도 마찬가지.

그는 입을 딱 벌리고는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오로지 사비강만이 그 시간 속에서 씨익 웃고 있었다.

‘흐흐흐. 실드군. 서클 개방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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