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64화 (64/670)

# 64

귀환 마교관

64화

패앵! 패앵! 패앵…!

“헉, 헉, 헉…!”

단리정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부들부들 떠는 손가락으로 시위를 당겼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지만, 그랬다간 어김없이 무언가가 날아와 몸의 어느 구석을 강타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공과 마나를 번갈아가며 운기 했더니 체력을 안배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확실히 내공만을 계속 사용하거나, 마나만을 사용할 때보다는 훨씬 오래 버틸 수 있었다.

마치 오른손만 사용하다가 왼손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나 할까?

후웅! 후웅! 후웅…!

주위에서는 갖가지 병기를 든 자들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질 수 없지…!’

단리정은 이를 악물고 시위를 놓았다.

패앵!

시위가 허공을 가르며 흔들렸다.

무형의 화살은 이번에도 정확히 과녁을 뚫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간단하다.

사비강의 공격이 날아들지 않았으니까.

만약 시위를 놓는 순간, 활이 떨렸거나 호흡이 흐트러졌다면 어김없이 보이지 않는 뭔가가 날아와 자신의 몸 어딘가를 강타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것을 맞고 나면 운기하기가 한결 수월해지거나, 조금이나마 버틸 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비강이 날린 그것이 단리정의 요혈을 자극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역시 그 순간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에 일부러 맞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단리정은 이번에도 부들부들 떠는 손을 들어 시위를 잡아당겼다.

시위가 축축했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진 지는 꽤 됐지만 그것만은 알 수 있다.

아마도 피가 묻은 것이리라.

연무기행 동안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했건만, 그것으로 부족했던 모양이다.

‘크읏!’

순간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갈 뻔했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래선 안 된다.

적어도 시위를 당긴 순간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또 시작이군!’

공기의 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수를 부리는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연무실의 공기는 무거워지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훅훅 뿜어진다.

실제로 입김이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그만큼 춥기 때문이다.

몇 시진 전, 사비강이 말했다.

“다들 여기까지 잘 버텼다. 이제부터는 세 번째 지옥, 열빙옥(熱氷獄)으로 들어간다.”

쉬는 시간 따위는 없었다.

열빙옥은 곧바로 이어졌다.

말 그대로 기온의 변화가 극심해졌다.

어느 순간 연무실이 불같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갑자기 만년한설에 파묻힐 듯 추워지곤 했다.

이런 급격한 기온변화에 맞춰 생도들은 정신없이 운기를 해야만 했다.

마나를 다루는 것은 어딘지 물속에서 빙어를 잡을 때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때문에 생도들은 본인의 생각보다도 빠르게 적응해 갔다.

단리정도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화염 속성의 마나를 운기하게 되면 몸이 데워졌고, 냉기 속성의 마나를 운기하면 몸이 차갑게 식었다.

이는 급격히 변하는 외부 기온에 신체의 적응력을 갖추는 데에 톡톡한 효과를 발휘했다.

드드드드드…!

뻑뻑한 활시위가 다시 당겨졌다.

급랭한 기온 탓에 활시위가 더욱 팽팽하게 굳은 탓이다.

단리정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호흡을 멈추자 흔들림 또한 고요해졌다.

의식마저 멈춰 버렸을 때.

패애앵!

활시위가 허공을 가르며 튕겼다.

명중.

암흑천지지만 알 수 있다.

‘됐어!’

기쁨은 잠시다.

단리정은 다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호오.’

사비강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단리정을 보았다.

그는 현재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마법인 인프러비젼(Infravision)을 시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모두 잘 버텨 주고 있었다.

중수옥은 그래비티 마법을 이용해서 중력의 변화를 꾀한 것이었고, 열빙옥은 칠(Chill) 마법과 웜스(Warmth)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생도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환경.

하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중간 중간 도움을 주었다.

‘자, 이제는 어떨지…?’

사비강의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

‘제, 제길…! 숨이… 막혀!’

조문탁은 이를 뿌득 갈았다.

“흐업! 흐업! 흐업…!”

숨을 한 번 들이마실 때마다 온몸이 들썩인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려 왔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올라서 잠시도 버티기가 힘들다.

‘하지만… 버텨야 해!’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견뎌야 한다.

조문탁은 손에 든 단검을 위로 던졌다가 다시 잡았다.

턱!

묵직한 단검이 손바닥을 때렸다.

그에게 내려진 지시는 단검을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는 것.

무거운 칼을 드는 것보다 쉽다고 여길 수 있지만, 더 위험한 점이 있다.

자칫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떨어지는 단검에 손이 베일 수 있기에.

게다가 중력이 제멋대로 변하는 상황 속에서는 자칫 단검을 뜻대로 부리지 못할 수도 있다.

“허억, 허억, 허억…!”

토할 것만 같다.

네 번째 지옥은 무기옥(無氣獄)이었다.

사비강이 네 번째 훈련을 시작하겠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기가 희박해지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막강한 중력, 급변하는 기온, 이제는 희박한 공기!

보통의 인간이라면 벌써 미쳐 버리고도 남았을 상황.

욕지거리라도 뱉고 싶은데 숨이 차서 그조차도 불가능했다.

“흐업, 흐업, 흐업!”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 킨 조문탁은 다시 단검을 던져 올렸다.

**

마지막 다섯 번째 지옥, 혼뇌옥(混惱獄).

연우경은 검을 뽑다 말고 멈칫했다.

바로 앞에 사비강이 서 있었다.

온통 어두운 가운데 사비강만은 똑바로 보였다.

‘저건….’

가짜다.

마음속에서 그렇게 외쳤다.

사비강은 혼뇌옥에 들어서기 직전 말해 주었다.

이제부터 온갖 잡념과 환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그런 환경을 한낱 교관 한 명이 어떻게 조성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모든 수련이 그가 말한 대로 진행됐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말대로 환영이 나타났다.

‘가짜다. 무시하자.’

연우경은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발검을 하려는 순간.

“……!”

뽑히지 않는다.

다시 손에 힘을 주었지만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침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크크크. 약해 빠졌구나.”

“교관…!”

마침내 이를 뿌득 갈며 눈을 뜨고 말았다.

역시나 사비강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손으로 연우경이 발검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이익…! 비켯!”

연우경이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르릉!

마침내 뽑힌 검이 그대로 사비강을 베어 갔다.

하지만 어느새 사비강은 성큼 멀어져 있었다.

“크크크! 역시 약해 빠졌어.”

“닥쳐!”

연우경은 이를 빠득 갈고는 사비강을 향해 훌쩍 몸을 날렸다.

마침내 그가 검을 내찌르려는 순간.

“멍청한 녀석!”

사나운 호통소리가 등 뒤를 때렸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고목처럼 뻣뻣하게 굳은 연우경이 천천히 돌아보았다.

“아버…지?”

“한심하구나! 네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더냐? 어디 가서 패검연가 사람이라고 입에 올리지도 말아라!”

“하지만 아버지…!”

그때, 다시 뒤에서 들린 목소리.

“후후후. 꼴좋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잖아?”

돌아서니 어느새 사비강이 서 있던 자리에는 또 다른 자신이 서 있었다.

연우경이 주춤 물러났다.

또 다른 자신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 능력이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 너도 알고 있었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 너는 절대로 원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는 쓰레기라는 것.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잖아?”

“시끄…러워.”

“몸부림치지 말고 인정해. 그럼 편해. 기대에 부응하려고 해봐야 쓸데없는 짓이야. 왜냐하면 너는….”

“… 닥쳐.”

“해도 안 되는… 그런 녀석이니까.”

“닥쳐라!”

순간 연우경이 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상대의 손가락에 검신이 딱 잡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알았어? 이게 겨우 네 수준이다.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허세만 부리는. 나약한 인.간.”

비틀.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연우경이 그대로 주저앉으려는 순간.

다시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약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한, 너는 최고가 된다.]

“……!”

흠칫 거린 연우경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곧이어 싸늘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후후. 웃기지 마시죠. 나는 이미 스스로 최고가 될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마침내 연우경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차아앙!

그 어느 때보다도 깔끔한 발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

혼뇌옥은 두 가지 마법으로 인해 조성되는 환경이다.

먼저 잡념을 불러일으키는 디스트럭션(Distruction) 마법이 적용되고, 환영을 보여주는 일루젼(Illusion)이 뒤를 잇는다.

능소소에게도 마찬가지로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침범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환영은 매우 독특했다.

은은하게 푸른빛으로 휩싸인 매.

유유히 날개를 펼친 채 고고히 떠 있는 그것은 우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어딘지 모를 친근함까지 느껴졌다.

때문에 능소소는 저도 모르게 경계심을 풀고 말았다.

그녀가 천천히 손을 뻗는데,

- 그대는 누구기에 나를 불렀는가?

웅혼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능소소의 뇌리에 직접 울렸다.

움찔거린 능소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실프를 처음 소환했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다.

그럼 혹시…?

“환영이 아닌 거야?”

- 그대와 나를 둘러싼 환경은 환영일지라도 나의 존재는 환영이 아니다.

“그럼, 너도 혹시… 바람의 정령?”

다음 순간.

쉬이이잇. 스스스슷!

푸른빛의 날개가 기묘한 흐름을 보이더니 기다란 머리카락으로 변했다.

대신 그곳에는 보통 사람 크기만 한 여성, 아니 중성에 가까운 존재가 지면에서 약간 뜬 채로 서 있었다.

그의 풍성한 머리카락은 쉼 없이 흐느적거렸다.

그 아름다운 존재가 아리따운 여성의 목소리로 물었다.

- 나는 태초의 호흡으로 탄생한 자, 돌풍을 만드는 실라페. 그대는 누구인가?

“나, 나는 능소소. 나도 모르게 널 부른 것 같아.”

사실이었다.

온갖 잡념을 떨쳐내고,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서 바람의 감각을 최대한 느끼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실라페를 소환한 모양이었다.

즉 비교적 정신력이 강한 능소소에게는 혼뇌옥 자체가 전화위복이 된 셈.

- 그대는 나와 맹약을 맺기 원하는가?

“응. 원해.”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실프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그 이점을 톡톡히 경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비강을 통해 정령에 대해 자세히 들은 후부터는 어떠한 거부감도 없었다.

오히려 가슴이 뛰었다.

- 맹약은 이루어졌다. 태초의 호흡이 그대와 함께 하길.

말이 끝나자마자 실라페의 형상은 바람에 흩어지듯 눈앞에서 사라졌다.

멍하니 서 있던 능소소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그려졌다.

‘중급 정령은 멋있구나.’

그때, 사비강의 전음이 흘러들어왔다.

[실라페와 계약을 맺은 모양이구나. 축하한다. 하지만 실라페는 중급 정령. 지금 수준의 마력으로는 소환된 실라페가 네 요구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능소소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심할게요. 교관님.’

그렇게 능소소와 다른 생도들은 다섯 가지 지옥 훈련을 모두 마쳐 갔다.

혼뇌옥까지 낙오자는 두 명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춘향제가 바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생도들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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