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귀환 마교관
63화
끔뻑끔뻑.
눈만 깜빡인다.
입은 딱 벌어져 다물 줄을 모른다.
꿀 먹은 벙어리가 딱 이럴까?
아니, 꿀을 먹었으니 입은 다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 특목각에 모인 생도들은 꿀을 먹다가 흘리는 벙어리처럼 입을 척 벌린 채 눈만 끔뻑였다.
마침내 침묵을 깬 사람은 바로 염자량.
“마나… 라고요?”
“그래. 마나라고 한다.”
사비강은 시종 담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한 시진 전, 사비강은 생도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생전 처음 듣는 용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나를 익히는 방법과 마법을 캐스팅하는 방법들.
다짜고짜 읊어 주더니 일방적으로 암기하라고 지시했다.
그의 성격만큼이나 불친절한 가르침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욱 불친절한 지시가 내려졌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춘향제를 대비해서 지옥 훈련에 들어갈 거다. 누구든 이 수업을 원하지 않으면 빠져도 좋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배울 생각이 있다면 그 자리에 정좌하고, 빠질 녀석은 지금 여길 나가도록.”
“혹시 마공은 아닙니까?”
곡보옥이 던진 질문이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아니다. 하지만 멍청한 녀석들이 오해할 요지는 있다. 그러니 세간의 눈이 신경 쓰인다면 배우지 않는 게 낫다.”
“그런 걸 왜 굳이 배워야 하죠?”
사비강이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곡보옥을 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렸다.
“언젠가 개죽음을 당하기 싫다면 배워 두는 게 좋을 테니까.”
농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사비강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기에 누구도 웃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한 듯 마른 침을 삼켰다.
사비강이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나를 믿고 따르는 한, 너희들은 불패의 군단이 될 거다. 그것 하나는 약속하지.”
허황된 공약 같은 것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울림이 담겨 있었다.
평소 그답지 않은 진중함과 함께.
마침내 염자량이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더 이상의 질문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무공의 ‘오의(奧義)’란 몇 마디 질의응답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직접 겪어야 한다.
이어 단리정과 능소소가 앉았다.
그렇게 하나둘 자리에 앉기 시작하자, 마지막으로 연우경과 그를 따르는 두 명의 생도들만 남았다.
“나갈 거면 빨리 가라. 걸리적거리지 말고.”
사비강이 턱짓을 하자, 연우경이 잠시 노려보다가 마음을 굳힌 듯 자리에 앉았다.
사비강이 픽 웃었다.
“좋아. 너희들 모두 동의한 것으로 알고 수업을 진행하겠다. 그럼, 첫 번째 지옥에 들어선 것을 환영한다. 첫 번째 지옥은 흑암옥(黑暗獄)이다.”
사비강의 입가에 어딘지 괴기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곧이어.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사방의 창문이 갑자기 저절로 닫혀 버리는 게 아닌가?
사비강이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 마법을 이용해 창문을 모두 닫아 버린 것이다.
창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줄기만 남았을 때, 사비강이 나직이 읊조렸다.
“셰이드(Shade).”
마침내 특목각 연무실은 완전한 어둠에 잠기고 말았다.
**
‘엇!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거지?’
염자량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지금까지 완벽한 어둠 속에서 무아지경으로 내공을 운기했다.
완전한 어둠이 시작됐을 때, 사비강은 미리 알려 준 심결 대로 내공을 운기하라고 지시했다.
음양환유마나심법(陰陽換喩魔羅心法)이다.
사비강이 창안한 것으로 내공을 마나로 치환해 주는 심법이었다.
생도들은 곧 지시에 따랐고, 염자량 역시 눈을 감고 운공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이건 어딘지 익숙하다!’
그랬다.
사실 사비강이 오늘 알려 준 독문심법은 그동안 연무기행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생도들에게 가르친 토납법(吐納法)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즉 이미 생도들은 몇 달 전부터 이 내공심법을 익히기 위해 기반을 다져 두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운공이 훨씬 수월했다.
낯선 감각이 전신의 혈맥을 따라 휘돌아갔지만,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듯 시원한 느낌.
기본이 다져져 있으니 처음 익히는 심법이 이처럼 즐거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운공에만 집중하다가 이제야 정신이 든 것이다.
‘한 식경(대략 30분) 정도는 흘렀을까?’
실제로는 일곱 시진(대략 14시간)이나 꼬박 흘렀지만, 염자량이 느끼는 체감 시간은 겨우 그 정도에 불과했다.
다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염자량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원시원하게 뻗어 가던 내기의 성격이 조금 전부터 무겁고 둔탁하게 바뀐 것이다.
마치 다른 물질이 몸 안에 들어와 섞여 버린 것만 같은 불쾌감.
게다가 운공을 유지할수록 심장이 옭죄어 왔다.
‘뭐지? 뭔가 잘못 된 걸까?’
체술을 익힐 때의 낯선 감각은 깨달음을 주지만, 내공을 익힐 때의 낯선 감각은 주화입마의 지름길이다.
때문에 문득 두려움마저 일었다.
하지만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여기서 운공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계속해서 심결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혈맥을 따라 휘돌던 내공은 지속적으로 심장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옭죄어 오던 심장이 이제는 아프기 시작했다.
“크윽!”
마침내 신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역시 이상해! 뭔가 잘못됐어!’
미간을 팍 구기고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꾸웅!
심장이 격동했다.
체내의 기운이 심장으로 격돌한 것이다.
‘커헉!’
심장마비가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박동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젠장, 한 번만… 더!’
이를 악다문 염자량이 전신의 내공을 최대한 끌어 모아 심장으로 쏘아 보냈다.
혈도를 타고 휘몰아친 내기들이 심장의 철문에 다시금 부딪쳤다.
꽈앙!
몸속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하지만 굳게 닫힌 심장의 철문은 열리지 않았다.
‘크으으윽! 제길…! 틀렸….’
그때였다.
사비강의 전음이 귓가에 닿았다.
[포기하지 마라.]
‘교관님…?’
[운공에만 집중해라. 네가 느끼는 것이 바로 마나다. 내기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내공이 아니니 주화입마에 빠질 염려는 없다. 그러니 안심하고 심결대로 운행해라. 너는 이제 치환된 마나를 심장에 모아 두는 과정으로 들어갈 거다. 심장이 마나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 고통도 자연히 잊힐 것이다.]
두려움 속에서 사비강의 목소리를 듣자, 염자량은 곧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런가? 이것이 마나…!’
뭐라고 표현하기 애매하지만, 내공에 비하면 어딘지 끈적끈적한 느낌이랄까?
‘좋아, 그렇다면 일단 의심은 거둔다.’
마음을 굳히자 한결 정신이 맑아졌다.
그는 좀 더 집중해서 체내의 마나를 끌어 모아 다시 한 번 심장의 철문을 향해 휘몰아쳐 갔다.
콰콰앙!
“커헉!”
이번에도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제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몸은 부들부들 떨렸다.
처음 운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옥이라는 표현이 과한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아니었다.
지금 그가 느끼는 고통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했다.
정신을 잃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젠장!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염자량이 마지막으로 온힘을 쥐어짜며 마나를 휘몰아 갔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거대한 파도처럼 뭉친 마나가 돌덩이처럼 굳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랬다.
마지막 구결의 오의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내공이 강줄기나 파도에 비유하기 좋다면, 마나는 용암과 비슷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뜨겁게 휘몰아치던 용암은 어느새 식어서 단단하게 굳었다.
그리고 굳어 버린 용암이 심장의 철문을 마침내 부숴 버렸다.
꽈르르릉! 꽈광!
철문이 개방되자 단단히 굳었던 마나가 이제는 다시 녹아 흐르는 용암이 되어 심장에 고이기 시작했다.
“쿨럭!”
입 밖으로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탁기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는 중단전을 개방한 것과는 달랐다.
내공을 심장에 모아 둔 것이 아니라, 치환된 마나를 저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있어.’
염자량은 거칠게 심호흡을 하면서도 그 기분 좋은 감각을 하나하나 기억해 두었다.
한순간 심장이 터져 나가는 줄만 알았다.
이제 염자량은 내공을 마나로 치환하고, 그 마나를 심장에 저장해 두는 스킬을 익힌 셈.
사비강의 전음이 다시 이어졌다.
[고생했다. 후후. 네가 가장 빨랐구나. 이제 내가 알려 주는 구결은 역으로 마나를 내공으로 환치하는 방법이다.]
사비강이 다시 심결을 알려 주었다.
염자량은 집중해서 심결을 외운 후 그대로 마나를 운기하기 시작했다.
한 번 치환 과정을 성공했기 때문인지 마나를 내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거 정말 재미있잖아!’
염자량은 다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몸속에서 일주천하는 내공을 가지고 놀았다.
지금 그가 얻은 이 특별함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염자량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옥 훈련이 앞으로는 정말 지옥이 될 거라는 사실도.
**
이틀이 꼬박 흘렀다.
낙오자가 한 명 생겼다.
연우경을 따라다니는 생도 중 한 명이었다.
연무기행을 하는 동안 사비강이 아침저녁으로 알려 준 토납법만 꾸준히 실천했어도 낙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 그는 그조차도 게을리 했다.
그 대가는 톡톡히 치렀다.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해 기절해 버리고 만 것이다.
당이협이 들어와 생도를 데리고 부신각으로 옮겼다.
가장 오래 걸린 사람은 능소소였다.
그녀는 기존의 내공이 마나와 상충되는 성질을 가졌기에, 사비강이 상당량을 와해시킨 상태였다.
때문에 몇 줌 남지 않은 내공을 마나로 치환하는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사비강의 시의적절한 도움으로 심장에 마나를 담아 두는 것에 성공했다.
“다음은 중수옥(重倕獄)이다. 모두 눈을 뜨고 앞에 놓인 병장기를 들고 일어나라.”
생도들이 저마다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감은 것처럼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더듬자, 언제 놓인 것인지 병장기가 만져졌다.
도검창궁 등.
병장기는 다양했다.
유일하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사람은 능소소였다.
단리정 앞에 놓인 것은 역시나 커다란 활이었다.
일전에 사비강으로부터 받은 그 활.
생도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집어 들고 일어났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기초 훈련을 하게 될 거다.”
사비강은 생도들이 든 병장기에 맞게 훈련 내용을 알려 주었다.
가령, 검을 든 자는 발검을 무한 반복하고, 도를 든 자는 베기를 무한 반복하라는 식의 내용.
단리정에게는 시위를 당기고 놓기를 무한 반복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정말 기초 훈련이네.’
잔뜩 긴장했던 단리정은 다소 김이 새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그가 한 훈련은 이보다 훨씬 어려운 난이도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생각이 그리 길게 이어지진 못했다.
“자, 들어라.”
사비강의 지시가 내려지고, 단리정이 활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구구구구구궁!
“엇!”
“크읍!”
여기저기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단리정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무릎을 꿇을 뻔했다.
갑자기 온몸이 천근만근이 된 듯 무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활시위를 당기기는커녕, 들고 있기도 힘들 지경.
활을 든 손이 조금씩 내려가자.
쉬이이잇! 따악!
“끄아악!”
뭔가가 날아와 단리정의 이마를 때렸다.
사비강이 쏘아 보낸 얼음 구슬, 즉 아이스 볼트(Ice bolt)였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둔탁한 타격음에 이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딱, 따악!
“큭!”
“악!”
사비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크크. 어두워서 보이지 않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말도록. 제대로 하지 않으면 꿀밤을 계속 맛보게 될 거야.”
그제야 단리정은 활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훈련이 지독하게 고통스러울 것이란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