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7화 (57/670)

# 57

귀환 마교관

57화

목단화는 지금 이 상황을 직접 겪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 출발은 앞서 대련할 때와 비슷했다.

단 하나, 연우경의 마음이 갈팡질팡 흔들린다는 것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오히려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번 대련에서 승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한데 일각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순간, 갑자기 연우경의 움직임 바뀌었다.

마치 그의 검에 희롱당하는 기분이었다.

뻗어 오는 검에 옷고름이 걸려 풀어헤쳐지고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기분.

하지만 괜한 기분 탓이라고 여기며 공격에 좀 더 집중했다.

‘아버지의 조언을 떠올리는 거야!’

단 몇 마디의 조언이었지만, 아버지가 말씀해 주신 내용들은 모두 중요한 것이었다.

따앙!

마침내 연우경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두 검기가 부딪친 순간.

‘지금이야!’

목단화는 그 반발력을 이용해서 잽싸게 몸을 회전시키며 연우경의 옆구리를 베어 들어갔다.

완벽했다.

그런데….

척.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검신이 그녀의 목젖을 건드리고 있었다.

‘어느새…!’

너무나 큰 충격이었기에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온몸의 솜털마저 곤두서는 기분.

연우경의 얼굴을 보니, 정작 그 조차도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정말로 그 사비강 교관의 조언 때문에?’

한참이나 멍한 표정을 짓던 연우경이 얼른 정신을 차리자, 목단화도 뒤늦게 검을 거두었다.

“제가… 졌군요. 한 수 배웠어요.”

“목 소저의 검법에 감탄했소.”

연우경 역시 검을 거두고는 물러나서 포권했다.

한편, 목철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입을 척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자신이 직접 조언까지 해주었다.

이번만큼은 틀림없이 목단화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졌다.

어이없게도 이렇게나 허무하게.

팽팽하던 균형은 갑자기 무너졌다.

마치 일순간 연우경이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그렇다고 목단화가 자신의 조언대로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분명 목단화는 조언을 철저하게 따랐다.

때문에 더욱 기대가 컸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라고 내심 뿌듯해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사비강이 싱긋 웃으며 말을 걸어 왔다.

“이제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뭐요?”

“섬광벽력검의 약점 말입니다.”

“……!”

패배의 충격이 너무나 커서 그 부분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 대련은 섬광벽력검의 약점을 찾는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지.

하지만 그게 뭔가?

도대체 무슨 약점이란 말인가?

대련은 너무나 허무하게 져버렸고, 약점이라는 것은 어디에 드러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이들의 승패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검법이라는 것은 개인의 기량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던가?

더구나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

깨달음의 깊이가 크지 않을 때는 아무래도 신체적 조건이 유리한 남자 아이들이 좀 더 우월할 수 있기 마련이다.

목철우가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연 소협은 운이 좋았소.”

“흠. 운이라… 의외군요. 이쯤 되면 가주님께서도 알아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게 무슨…! 아니지, 어차피 아이들의 싸움. 그렇게 확실하다면 교관께서 직접 나와 겨루어 보면 어떻소?”

갑자기 튀어나온 발언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

생도들이 술렁거렸다.

“헐, 지금 우리 교관님이랑 목 가주님이 비무를 한다는 건가?”

“설마? 말이 돼?”

“만약 비무를 하면 누가 이길까?”

“그야 당연히 목 가주님이 이기겠지.”

그러자 듣고만 있던 곡보옥이 피식 웃으며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렸다.

“과연 그럴까?”

그 말에 생도들은 귀를 의심했다.

곡보옥이 사비강 편을 들다니!

곡보옥은 더 이상은 말하지 않고 그저 사비강이 앉아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뭔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상황이 이리되자, 사비강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목철우는 내심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 자신 있으면 나서 보아라. 아마 발이 떨어지지 않을 테지. 그딴 허세를 떨고도 내가 그냥 넘어가리라고 생각….’

“좋습니다.”

“뭐, 뭐요?”

목철우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지금 뭐라고 했소?”

“이렇게 했음에도 보이지 않는다니 비무를 통해 직접 가르쳐 드릴 수밖에요.”

목철우가 잡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그가 딱딱하게 말했다.

“허세라면 사절이오.”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크크.”

“좋소. 기대하지!”

마침내 목철우가 바닥을 툭 찍어 차더니 훌쩍 날아올라서 연무장 가운데까지 이동했다.

그 민첩한 경공에 주변 생도들이 ‘와아!’ 하고는 감탄을 터뜨렸다.

맞은편으로 사비강이 평범하게 걸어가서 섰다.

마침 총관이 얼른 달려가 목철우에게 보검을 건네주었다.

“한 수 배우겠소.”

그가 포권을 취하자 사비강 역시 마주 예를 차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검기까지만 쓰도록 하겠소.”

“좋습니다.”

이윽고 천천히 기수식을 취하던 목철우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을 뽑지 않으시오?”

“흐음. 이건 비무에 쓰기엔 좋은 검이 아닙니다. 대신 저걸 쓰지요.”

순간 사비강이 손을 불쑥 내밀자, 연무장 한쪽에 진열된 목검 한 자루가 둥실 떠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생도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목철우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능공섭물(綾空攝物)!’

한낱 교관이 능공섭물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니.

과연 잘난 척을 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방심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봐야 교관일 뿐이다.

용천관이 어디서 능력 좋은 고수를 고용한 것이리라.

‘최대한 빨리 끝내는 쪽으로…!’

생각을 하며 기수식을 취하던 목철우는 움찔거리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그저 목검을 척 늘어뜨린 채 나른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사비강.

한데 그 방만한 자세에서 묘한 압박감이 전해진다.

달라진 눈빛, 정제된 호흡, 이질감이 느껴지는 기운.

‘뭐지? 저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대련을 해봤고, 수많은 적들과 실전을 겪었다.

한데 사비강은 그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을 만큼 독특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다.

냄새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굉장히 무방비한 상태로 서 있는데도 이상하게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마주 선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때문에 지켜보는 생도들은 다소 어리둥절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지금… 시작한 건가?”

“아직 준비하는 것 아냐?”

“쉿, 좀 조용히 해봐.”

그런 술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철우는 가만히 사비강을 바라보다 천천히 발에 힘을 실어 갔다.

빈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수의 대결에서는 흔한 일이다.

빈틈이란 싸움 도중 발생하기도 하는 법이다.

우선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떠보기 공격이 필요하다.

‘좋아, 그럼 간다!’

생각을 끝낸 목철우가 마음을 굳히고 바닥을 차려는 순간이었다.

탓!

‘엇!’

그보다 빨리 사비강이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섬검목가를 상대로 선공을 한다니.

누가 보면 웃을 일이다.

상대는 누구보다 빠른 검법을 자랑하는 가문의 수장이다.

때문에 섣불리 공격을 가했다가는 오히려 빈틈을 보여 재빠른 반격에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수의 싸움일수록 첫 일초에 승패가 판가름 나기는 어렵기에.

예상대로 사비강의 검공은 무난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로 날…!’

목철우는 내심 조소를 지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검을 휘둘렀다.

까앙!

청명한 금속성에 이어 두 사람의 검이 튕겨 나갔다.

‘그럼, 이번에는 어디 한 번 내 공격을 막아보시…!’

좌측에서 우측으로 빠르게 검을 후려치던 목철우는 순간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어느새 거리를 이렇게나…!’

두세 보 떨어져 있던 사비강이 한 보 앞으로 바짝 다가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래서야 거리가 너무 짧아 검에 적절한 힘이 실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목철우는 상대의 검을 가볍게 쳐내며 다시 훌쩍 물러났다.

그런데.

스스슥!

‘이건 또 뭔…!’

사비강은 마치 자신이 어디로 물러날지 다 안다는 듯 그대로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림자라도 된 듯한 움직임.

이번에도 목철우가 가볍게 검을 밀어내며 다시 물러났다.

하지만.

스스슥!

‘이익…!’

사비강은 다시 그림자가 되어 따라 붙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발이 목철우의 무릎을 가볍게 툭 치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물러나던 목철우의 다리가 방향을 틀어 직선으로 쭉 뻗었다.

‘이익! 이런 개망신을…!’

목철우가 얼른 검을 내질렀다.

오랜만에 공격 같은 공격이었다.

땅!

그의 보검이 목검에 튕기며 요란한 소리를 내질렀다.

‘과연 내공의 수준이 상당하군!’

그러지 않고서야 목검으로 보검을 튕겨 내기란 쉽지 않은 일.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비강은 재차 공격을 해왔다.

어차피 애초에 검법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다소 감정적으로 나서긴 했으나, 목철우 역시 살검을 펼치는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내공을 이용해서 섬광벽력검의 적절한 특성을 보여 줄 뿐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비강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여기기도 했다.

한데….

땅!

사비강의 검을 막아내며 물러나는 순간.

‘제기랄! 이놈의 그림자놀이를 또…!’

지켜보는 생도들만 없었다면 아마 백열 번도 더 욕지거리를 쏟아냈으리라.

사비강이 이번에도 바짝 따라붙으면서 자신의 발목을 툭 걷어차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이번에도 그의 다리가 뒤로 쭉 뻗어 나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뒤쪽으로 뻗은 다리의 탄력을 받아 곧장 검을 쏘았다.

‘장난질은 이제 그만 하시…!’

그때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땅!

동시에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며 마찰음이 터졌다.

타다닷!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난 목철우는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은 벌써부터 벌렁거리고 있었다.

‘시험을 해보는 수밖에!’

생각을 굳힌 목철우가 천천히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들어오시오.”

“흐음. 조금은 느끼셨는지도 모르겠군요.”

사비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빠르게 쇄도해 들어갔다.

때에 맞춰 목철우가 얼른 검을 마주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비강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으며, 이번에는 무릎으로 그의 하반신을 툭 찍었다.

어찌 보면 마치 어른이 아이를 데리고 놀면서 약 올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이 무척이나 빠르기 때문에 생도들의 눈에는 서로 부딪치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으리라.

그 후 몇 번의 합을 거치는 동안, 사비강은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목철우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

대신 처음의 모멸감이나 분노의 감정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감탄에 가까운 경직이었다.

실제로도 그는 감탄하고 있었다.

‘놀랍구나. 이자는 실로 대단한 고수다! 어쩌면 내가 진심으로 싸워도 이자를 이기지 못할 수도 있겠다!’

사비강은 그의 말대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실제 목숨을 건 싸움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이 대련에서만큼은 확실히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그것도 내 체면을 생각해서 남모르게 가르쳐 주고 있다. 실로 대단한 자가 아닌가?’

즉,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사비강이 자신의 발을 툭툭 걷어찬 것은 장난스러운 공격이 아니었다.

자신의 약점을 건드린 것이다.

보완해야 할 자세를 알려 준 것이다.

하나 이 동작이 워낙 빠르고 은밀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눈치 채기도 힘들 정도였다.

마침내 목철우가 뒤로 한참이나 물러난 뒤 전음을 흘렸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소?]

[말하십시오.]

[아까 연 공자에게 뭐라고 조언했소?]

[바닥만 보고 싸우라 했습니다.]

목철우는 그만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는 잠시 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니 생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웃음을 거둔 목철우가 다시 전음을 흘렸다.

[보법의 문제. 그것을 그리 표현해서 생도 스스로 약점을 찾게 만든 교관도 참으로 대단하시오.]

[정확히 말하자면 보법 중에서도…]

[알고 있소. 이제 더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마시오. 방어할 시의 곡선을 그리는 보법이 문제라는 것. 이제 깨달았소.]

사비강이 씩 웃었다.

[다행이군요.]

[고맙소. 교관께서 내 체면을 생각해 준 것을 잊지 않겠소.]

섬광벽력검은 무엇보다 속공에 무게를 둔 검법이다.

한데 지금까지 섬광벽력검은 방어할 때만큼은 곡선을 그리는 보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를 직선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사비강의 조언인 셈이다.

그리고 방어 대신 공격으로 맞대응해야 한다는 것.

즉 섬광벽력검에서는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인 셈이다.

때문에 앞서 목단화의 대련에서 그녀가 위험에 닥쳤을 때 무심결에 내지른 일격이 빛났던 것이다.

그때만큼은 사비강도 잠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만, 그것이 우연에 지나지 않았고, 단 한 번만 나타난 현상이어서 아쉬웠다.

[번개는 굽지 않지요.]

[옳은 말씀이오. 간단한 이치이나 방어 대신 공격이라는 발상의 전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오.]

누구나 위험한 순간에는 움츠러들게 되므로.

도박과도 같은 공격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섬광벽력검은 그래야만 한다고 사비강은 알려 준 것이다.

“많은 것을 배웠소. 이번 대련으로 부족한 것을 깨달았소.”

목철우가 포권을 취했다.

사비강이 웃으며 마주 예를 차렸다.

“저 또한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목철우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오만방자한 자라고 생각했다.

시정잡배만큼이나 무례한 자이리라 여겼다.

한데 아니다.

적어도 이자는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 준다.

단, 인간성을 따질 때는 가차 없이 비판한다.

언뜻 무례하다고 생각될 만큼 거침이 없다.

‘참으로 흥미로운 자로다.’

상황이 갑자기 종결되자 생도들만 그 속사정을 몰라 눈을 휘둥그레 뜰 뿐이었다.

특히 목단화는 아버지가 갑자기 저렇게 굽히고 들어가는 모습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목철우가 목단화를 향해 엄중한 표정으로 나무랐다.

“단화는 앞으로 사비강 교관님의 말씀을 잘 따르도록 해라. 누구보다 훌륭한 분이시구나!”

“네…?”

목단화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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