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6화 (56/670)

# 56

귀환 마교관

56화

뀌이이이잉!

공간을 가르며 목단화의 검이 연우경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

기이한 소리에 이어 검봉이 서너 개 쯤으로 흩어졌다.

혼돈뇌정(混沌雷霆).

섬광벽력검의 일초식이다.

고막을 자극하는 괴이한 소리는 혼돈뇌정 초식의 특성이다.

단 하나의 초식에 이처럼 특색이 가득 담겨 있으니, 가히 가문비기라고 할만 했다.

연우경이 눈을 부릅뜨고는 몸을 뒤틀며 바닥을 툭 찍었다.

뀌리리리리링!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뺨을 스치며 지나쳤다.

조금만 늦게 반응했더라면 그의 뺨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말았으리라.

‘쳇, 꽤나 진지하게 나오는군!’

내심 혀를 찼지만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인데다 목가의 가주가 지켜보고 있으니, 목단화로서도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설렁설렁 대할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섬검목가의 검술을 설렁설렁 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나저나 정말 빠르긴 빠르구나.’

과연 ‘섬검’이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닷!

목단화는 여유를 두지 않고 곧장 이초식인 개유전편(開洧電鞭)을 연계해왔다.

횡으로 베어 들어오는 칼날은 그야말로 거대한 강줄기처럼 두꺼워 보였다.

검신이 상하로 떨기 때문이다.

그 움직임이 매우 빠르기에 검신 자체가 두꺼워 보이는 것이다.

피하기에는 늦었다는 판단에 얼른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깡!

동시에 검이 흐르는 방향으로 몸을 회전시키자, 목단화의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자세가 무너졌다.

그 틈을 이용해 연우경이 곧장 검을 뻗어 갔다.

하지만.

‘어느새!’

과연 섬검목가의 검술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깡!

날카로운 금속성에 이어 연우경의 검이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목단화는 자세를 바로잡고 연우경의 검을 튕겨낸 것이다.

연우경이 반응 속도에 놀라는 사이, 목단화는 재차 검을 후려 왔다.

쉬이이익!

깡! 까강!

거침없는 공격.

‘제기랄! 너무 빠르잖아!’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는 공격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칼은 날카롭다.

그래서 빠른 것이 일단 우위에 서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면, 빠른 자가 느린 자를 먼저 베어 버리면 끝이다.

때문에 도검을 든 싸움에서는 최고의 덕목이 속도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 느린 자가 아슬아슬하게 상대의 칼을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빠른 자는 벌써 다음 공격을 이어갈 것이다.

그렇게 진행되다 보면 언젠가는 빠른 자가 느린 자의 목을 베게 된다.

즉 느린 자는 줄곧 빠른 자의 공격만 막아내다가 종국에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죽고 만다.

하면, 느린 자가 이길 방법은 아예 없는가?

아니다.

먼저 단순한 방법으로는 고육지책이 있다.

빠르고 약한 공격에 살을 내어 주고, 무겁고 느린 공격으로 뼈를 취하는 것이다.

즉 상대가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때, 이쪽에서는 상대의 어깨를 절단해 버리는 것이다.

해서 일부러 살을 노출하고, 상대가 들어오는 것을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상대의 노림수를 읽게 된다.

이미 이류 이상만 되어도 팔을 베고 옆구리를 내 줄 생각은 하지 않게 된다.

때문에 적당히 검신끼리 부딪치면서 다른 공격을 도모한다.

그렇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자들의 대련은 결국 바둑과 같은 수읽기의 싸움이다.

때문에 속도에서 보면 목단화가 월등히 빨랐지만, 이렇다 할 효과적인 공격이 아직까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깡! 까강! 깡깡!

연신 울려대는 마찰음.

두 사람 모두 진검을 사용하는 만큼, 장내 분위기는 어느새 엄숙해져 있었다.

한편, 목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과연 연가의 패룡단천검(覇龍斷天劍)이로군. 화의 맹공을 이렇게까지 막아내다니. 솔직히 놀랐소. 교관께서 보시기에는….”

말을 꺼내며 돌아보던 목철우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와구와구. 쩝쩝. 냠냠.

사비강이 접시째로 들고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대고 있었기에.

그는 연무장에서 두 제자가 싸우고 있음에도 별로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캬아, 이 요리는 정말 끝내주는군요. 정말 맛있습니다. 송백의 맛집이 따로 없습니다.”

“맛집… 사 교관. 내 이야기는 듣고 있소?”

“예? 아아, 제가 훌륭한 요리에 정신이 나가 버려서 그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끄음…. 아무것도 아니오.”

목철우가 탐탁찮은 시선을 한 번 보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음식을 먹는데 여념이 없었다.

한편, 목단화와 연우경의 대련은 이제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후우, 후우, 후우.”

“헉, 헉, 헉.”

수십 차례 공방을 펼친 두 사람이 이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연우경이 싱긋 웃었다.

“과연 대단하오. 목 소저의 검력에 진심으로 놀랐소.”

“과찬이군요. 저 또한 연 소협의 검술에 감탄했답니다.”

대부분의 생도들이 서로에게 반말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하오체를 쓰는 두 사람이었다.

일종의 상호 존중이자 가문의 체면 같은 것이었다.

목단화가 희미한 웃음을 머금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 조금 더 진심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호오, 바라던 바요. 잘 부탁드리겠소.”

“그럼.”

말을 마친 그녀가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다음 순간.

스스스스스스.

얇고 길게 뻗은 검신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희미하게 맺히며 휘날렸다.

검기다.

‘과연.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연우경 역시 져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사비강이 시킨 대로 대련을 하고 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목가주가 지켜보는 상황.

이곳에서 연가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없었다.

이왕이면 비기는 것을 떠나 사비강의 말대로 이겨서 섬검목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스스스스슷!

마침내 연우경의 검신에도 푸르스름한 검기가 일어났다.

다음 순간.

탓!

이번에도 목단화가 한 발 빨랐다.

쒜에에에엑!

그녀의 검신이 허공을 깨뜨리며 연우경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휙!

연우경이 얼른 상체를 젖히며 몸을 회전시켰다.

휘리릭!

허공에서 누운 채로 한 바퀴 회전한 그가 재빨리 검을 올려쳤다.

패룡단천검의 초식 중 하나인 승룡대천(乘龍大天)이다.

퀘레레렝!

마치 돌풍처럼 검이 솟아오르자, 위기감을 느낀 목단화가 재빨리 검을 마주치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탓!

연우경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그녀에게 날아가 재차 검을 대각선으로 내려 그었다.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

파석비룡(破石飛龍)이라는 초식이었다.

이름처럼이나 힘이 느껴지는 맹공!

‘좋아, 걸렸어!’

연우경은 이번 공격으로 목단화의 허점을 완벽하게 공략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녀는 너무 서둘렀다.

때문에 방어를 하면서 자세가 일순 흐트러졌고, 자신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검봉이 꼿꼿하게 날아가 목단화의 목젖에 닿는 순간, 움직임을 멈출 생각이었다.

목단화의 위기감을 의식한 것인지, 목철우가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엇!’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쒜에에에엑!

‘이건 뭣…!’

놀랍게도 목단화는 피하거나 막지 않고, 반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진행하면 틀림없이 자신의 검봉이 목단화의 목을 찌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목단화의 검이 자신의 심장을 뚫을 판이었다.

‘이렇게나 빠르다니!’

그렇잖아도 빠른 검법이 검기를 일으키면서 더욱 빨라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연우경이 재빨리 검신을 뒤틀어 목단화의 검을 막음으로써 서로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따앙!

그 충격에 두 사람이 다시 훌쩍 물러났다.

순간 좌중에서 ‘우오오!’ 하는 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만큼 조금 전의 공방은 서로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기에.

그제야 목철우는 마른 침을 삼키고는 자리에 앉았고, 힐끔 살펴보던 사비강은 아주 잠시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요리를 음미하는 데에 심취해 있었다.

반면 연우경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검의 손잡이를 천천히 쥐었다.

‘제기랄, 다 된 밥이라고 생각했건만.’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조금 전의 공격은 완벽했다.

하지만 그토록 빨리 반격해 올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위험한 공격을 방어할 생각도 하지 않고, 반격으로 무마시키려고 하다니.

목단화가 이렇게 모험심이 강한 성격이던가?

한편, 목단화는 그녀대로 위기의식을 느꼈다.

‘조금 전엔 정말 위험했어.’

자신도 어떻게 그 공격을 막아냈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대로는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얼떨결에 검을 내질렀다.

아니, 그 상황에서는 그 방법밖에 보이지 않았다.

발과 손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 덕에 연우경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더 빨랐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함이었다.

진검승부에서 한순간의 위기를 겪고 나자 체력이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좀 더 신중하게 공격해야겠어!’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연우경과 목단화는 서로를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열 합을 넘기지 않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좀 전의 치밀한 공방 이후에는 서로가 지나치게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목철우는 고개를 슬쩍 돌려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은 여전히 먹고 있었다.

“커험!”

일부러 헛기침을 내보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처먹기만 할 거지? 삼 년 굶은 거지가 들었나?’

그러는 사이에도 목단화와 연우경의 공방은 꾸준히 이어졌다.

결국 참다못한 목철우가 사비강에게 말을 걸었다.

“보시오, 사 교관.”

“예, 말씀하십시오. 휴우,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제야 사비강도 어느 정도 흡족한지 배를 두드리며 대꾸했다.

목철우가 마뜩찮은 표정으로 물었다.

“저 아이들, 계속 대련을 시킬 생각이오?”

“아, 그럼 찾으셨습니까?”

“찾다니. 무얼?”

“약점 말입니다. 섬광벽력검의 약점.”

목철우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려. 지금 누가 보더라도 저 두 아이는 대등한 비무를 펼치고 있소. 하나, 내가 몇 가지 조언만 해준다면 아마도 우리 화가 저 연가의 이 공자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즉 섬광벽력검의 약점은 없다는 뜻이오.”

“그렇군요….”

사비강이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원!’

목철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습니까?”

사비강이 목철우를 보았다.

“뭐요?”

“단화를 불러 조언을 해주십시오. 저 또한 우경에게 짤막한 조언을 전해 주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련을 시키는 겁니다.”

목철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이리 된 것 확실히 사비강의 콧대를 눌러 주리라.

“좋소, 그럽시다.”

결국 사비강은 두 사람에게 대련을 멈추도록 지시했고, 연우경을 따로 불렀다.

목철우는 목단화를 불러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대략 반각 정도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반면 사비강은 연우경에게 다가가 매우 짧은 말을 전했다.

연우경이 발끈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저 보고 져주라는 것과 다름없지 않습니까?”

“정반대다. 시키는 대로 한다면 네가 이긴다고 보장하지. 너도 알겠지만, 여기서 지면 내 체면도 안 서 거든.”

사비강이 피식 웃으며 연우경의 어깨를 툭 쳤다.

하지만 연우경은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저 망할 교관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이윽고 대련이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일각이 흘렀을 때 목철우는 물론, 대련 당사자인 연우경과 목단화조차도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좌중의 생도들은 그저 입을 딱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연우경의 검은 어느새 목단화의 목젖을 건드리고 있었고,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목단화의 패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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