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5화 (55/670)

# 55

귀환 마교관

55화

사비강과 생도들의 행렬이 드디어 송백을 앞둔 언덕 위에 올라섰다.

저만치 북적북적한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드디어 송백이구나.’

사두마차의 말고삐를 쥔 단리정은 복잡한 표정으로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문탁이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단리정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편, 다른 생도들은 묘한 기대와 걱정이 어우러진 표정으로 송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야외 수련을 하던 중 조문탁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교관님, 현재 검법의 ‘태산북두’라고 할 수 있는 곳은 패검연가와 섬검목가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럼, 패검연가와 섬검목가가 한판 붙으면 누가 이깁니까?”

느닷없이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민감한 질문이기에 생도들은 연우경과 목단화의 눈치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조문탁은 사비강에게 개인 교습을 받기 시작하면서 성격이 조금 변한 듯했다.

마치 존경하는 사람을 닮아 가려는 듯, 사비강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 같다고 할까?

어쨌거나 단리정 역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지만, 사비강이 알아서 잘 피해 가리라 여겼다.

‘아마 두루뭉술하게 대답하시겠지.’

보통이라면 그럴 테니까.

하지만 사비강이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그때 잠시 잊고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 보통의 대답과 비슷했다.

“어떤 검법을 사용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비무자들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달라질 거다.”

하지만 조문탁은 끈질겼다.

정말로 궁금했던 모양이다.

“에이, 그런 뻔한 대답 말고요. 만약 두 사람의 자질과 능력이 똑같다면요?”

다시 생도들이 침을 삼키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즉 어느 쪽이 더 우수한 검법인지 궁금하다는 뜻.

놀랍게도 사비강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패검연가가 더 우위에 있다. 섬검목가의 섬광벽력검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생도들이 술렁거렸다.

목단화가 발끈하며 나섰다.

“무슨 말씀이시죠? 설마 지금 섬검목가의 검법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글쎄, 단지 내가 알고 있는 약점을 이야기했을 뿐이야.”

사실이었다.

사비강은 마계에서 각 문파의 무공을 분석하고 조사했다.

그의 원대한 계획.

즉 회귀를 통한 중원 복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문의 무공들을 두루 섭렵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야 했으므로.

목단화가 차갑게 웃었다.

“아무리 교관님이시지만 지금 한 말은 실수인 것 같군요. 감히 섬검목가의 검법을 지적하다니.”

‘한낱 교관 따위가…!’

목단화는 속생각을 삼키며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사비강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뭐, 누구나 자신이 익힌 무공의 약점을 인정하고 싶진 않을 테지.”

“그런 게 아니라…!”

목단화는 버럭 소리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이렇게 화내 봐야 소용없다.

자신의 꼴만 우스워질 뿐이다.

조금만 있으면 송백이다.

그곳에서 본때를 보여주는 게 낫다.

그때 조문탁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말씀하신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한다면 섬검목가가 패검연가를 이길 수 있나요?”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좀 더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이번에는 연우경이 코웃음을 치며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패검연가보다 한수 아래의 검법으로 평가당한 목단화의 심정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목단화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교관님, 곧 송백에 도착하면 저희 가장이 가까워요. 아버지는 교관님과 동기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어 하셔요. 이왕이면 그때 아버지께 직접 말씀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쯤 되면 사비강도 말실수를 깨달을 것이라 여겼다.

한데.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네가 가지 말라고 해도 말이지. 크크. 일종의 가정방문이랄까? 오랜만에 여독도 풀 겸 말이야.”

‘뭐야? 마치 우리 집을 무슨 객잔쯤으로 생각하잖아!’

목단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흥, 두고 보자. 그 뻔뻔함이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겠어!’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도 기뻐하실 거예요.”

그렇게 해서 송백에 도착하면 섬검목가를 방문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다.

하지만….

‘기뻐하실 리가 없잖아?’

마을 전경을 바라보던 단리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목단화는 분명 아버지인 가주를 만나서 사비강의 온갖 험담을 늘어놓을 게 뻔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비강은 태연하기만 했다.

‘정말 속도 편하시지.’

하긴 자신이 고민해 봐야 어쩌겠는가?

결국 단리정도 체념을 한 듯 고삐를 쥐고 흔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사비강을 비롯한 생도들이 관도를 따라 송백을 향해 이동했다.

**

단리정의 염려와 달리 섬검목가는 사비강과 생도들을 환대해 주었다.

목철우는 연무장에 상과 의자를 두고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오랜만에 고급 요리를 맛보는 생도들은 허겁지겁 음식을 섭취해 갔다.

그렇게 생도들도 배를 채우고, 어른들의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갈 무렵, 마침내 단리정이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발단은 역시 목철우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이런저런 잡담을 하던 도중, 목철우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뼈 있는 말을 던진 것이다.

“허허허. 사라진 당 대협을 찾아내시다니 정말 놀랐소. 그런데 그토록 다재다능하신 교관님께서 어찌 그런 실수를 하셨소?”

“후후후. 무슨 실수 말입니까?”

사비강은 언중유골을 아는지 모르는지 취기 섞인 웃음으로 되물었다.

“흑도쌍괴를 처리할 때 말이외다. 단화로부터 들었소이다. 녀석들이 내 딸에게 몹쓸 짓을 하는 동안 지켜만 보았다고 하던데….”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그 이면에 도사린 은근한 분노가 읽혔다.

충분히 배가 부른 생도들도 이제는 분위기를 살필 정도의 눈치는 생겼다.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끼리의 수다를 멈추고 일제히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분위기가 썩 좋지 않다고 느낀 매설란이 활짝 웃으며 나섰다.

“그땐 상황이 워낙 엄중하여 사 교관님도 정신이 없었을 거예요. 목 가주께서는 제 술잔을 받으시고 서운한 감정을 털어내시기 바랍니다.”

마침 곁에 있던 당이협도 나섰다.

“저는 그 일에 대해 자세히 모르나, 그래도 주군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 아니었겠습니까?”

“뭐, 그건 그것대로 일리 있는 말이오.”

눈길을 한 번 주면 떠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매설란과 명성이 자자한 당이협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목철우도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심지어 그 명성 자자하던 당이협이 사비강에게 ‘주군’이라는 표현을 하니, 내심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역시나 그 다음 사비강의 눈치 없는 발언이었다.

“하하하. 사실 그때는 좀 일부러 그랬습니다.”

“뭐요?”

“사실 단화가 가주님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이겠지만,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습니다. 생도들 중에는 그 아이를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럽게 여기는 자들도 있고, 교관들 사이에서도 단화는 모난 성격 때문에 다루기 까다로운 생도로 소문 나 있지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가는 사비강을 보며 생도들은 물론, 매설란과 당이협의 표정까지 뻣뻣하게 굳어 갔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목가의 장원에서!’

매설란이 내심 소리치며 사비강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얏. 왜 꼬집으시오?”

‘아, 이 눈치 없는 인간…!’

당황한 매설란이 말을 더듬었다.

“아, 그게 아니라… 호호….”

사비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말을 이어갔다.

“말씀드렸다시피 목단화의 성격이 좀 까칠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성격과 어울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죠. 한 마디로 ‘재수 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뭐… 요?”

목철우의 안색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단리정은 입을 척 벌리고 입에 머금었던 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의 목철우는 치미는 분노를 참기 위해 온힘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사비강만 모르는 듯했다.

보다 못한 매설란이 나섰다.

“호호호. 사 교관님도 참. 농이 지나쳤어요. 목 가주님은 서운해 하지 마시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길….”

하지만 이번에도 사비강이 초를 쳤다.

“아뇨. 그래서는 안 됩니다. 누구보다 가까운 아버지가 딸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도 안 될 말이지요. 제가 목단화의 추행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섣불리 나서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저기… 사 교관님…?”

매설란이 안절부절 못하며 사비강의 팔뚝을 꽉 잡았다.

한데….

‘무슨 사람 팔뚝이 쇳덩이 같은…!’

마치 단단한 쇳덩이를 쥐는 느낌이 아닌가?

은근히 공력까지 실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사비강은 모기에게 물린 만큼도 느끼지 않는지 계속해서 망발을 이어갔다.

“첫째로, 그 싸가지 없는 행동에 대한 복수였지요. 크크크. 아시겠지만, 교관도 인간이거든요. 한데 생도가 교관 말을 듣지 않고 일부러 반항까지 하다가 그 꼴을 당했으니 내심 고소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끄음….”

“둘째로는, 그 성질머리를 좀 뜯어고쳐 주고 뉘우치게 만들고 싶었지요. 그래서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빌 때까지 좀 기다렸습니다. 뭐, 결과적으로 여전히 싹수가 노란 것을 보면 썩 통하지 않은 것 같지만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일단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가정방문을 온 것은 좋은 시설에 머물며 여독을 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버님께서 딸 교육을 좀 제대로 해주십사 하고 부탁드리려고 온 목적도 있답니다.”

말을 마친 사비강이 방긋 웃더니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얼어 버린 것처럼 굳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사비강이 부지런히 음식을 먹는 소리만 들렸다.

술잔을 쥔 목철우의 손이 바르르 떨리는데, 곁에 있던 총관 서진립이 가만히 그의 팔을 잡으며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도록 전음을 흘렸다.

[침착하셔야 합니다. 지켜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섬검목가의 평판이 달려 있는 문제다.

가주가 딸을 감싸느라 격분하여 경거망동하면 그 모습 또한 좋지 않을 터.

목철우는 깊은 숨을 들이마신 다음 애써 웃음 지었다.

“그랬구려. 내 여식이다 보니 예쁜 점만 보이나 보오.”

“이해는 합니다만 그래서는 안 되지요. 제 자식이라고 감싸기만 해서는 결국 쓰레기 같은 인간이 되고 맙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진 못할지언정 피해를 주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사비강은 여전히 젓가락을 놀리면서 대수롭지 않게 떠들어댔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목철우가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생도들 중에서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 아이가 있다고 들었소.”

“무슨…?”

“우리 섬검목가의 검법과 패검연가의 검법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 물어보았다고 하던데….”

“아, 그랬었지요.”

“한데 본가의 섬광벽력검에는 문제점이 있으시다고?”

“그렇습니다. 가볍다면 가볍고, 무겁다면 무거운 문제지요.”

“허허허! 교관의 안목이 그리 뛰어난 줄 미처 몰랐구려. 혹시 증명해 볼 수 있으시겠소?”

“뭘 말씀이십니까?”

“섬광벽력검의 약점을 말이오.”

목철우의 눈이 싸늘한 빛을 뿜어냈다.

이윽고 사비강이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생각보다 목 가주님께서는 식사 도중 수다스러운 편이시군요.”

“뭐요?”

“뭐, 좋습니다. 무인으로서 당연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섬광벽력검의 문제점을.”

“호오, 좋소. 그럼 어떻게….”

목철우가 말을 맺기도 전에 사비강이 시선을 돌리더니 생도들을 훑어보았다.

“목단화와 연우경은 앞으로 나오너라.”

생도들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목단화와 연우경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내 복판으로 걸어 나왔다.

목철우가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뭐하시는 거요? 교관.”

“지켜보시면 압니다.”

사비강이 싱긋 웃어 보이더니 턱짓을 했다.

“자, 둘 다 검을 뽑아 들고 싸워라.”

“예?”

“네?”

“대련을 하라고. 너희들 각자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도록.”

그제야 목철우가 내심 조소를 지었다.

‘재미있군. 일단은 지켜보지.’

목단화의 눈길을 받은 목철우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를 해도 좋다는 뜻.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타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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