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4화 (54/670)

# 54

귀환 마교관

54화

까앙! 까강!

청명한 금속성이 연신 울려 퍼졌다.

연무장에서 대련하는 두 사람.

그들은 도기까지 일으켜서 격돌했다.

그 모습을 한편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천세명.

‘과연 이비겸(李飛廉)과 상초진(尙草振)이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 두 사람은 그가 맡은 비룡반의 수제자들이었다.

깎아 놓은 조각처럼 생긴 이비겸은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인재였고, 상초진은 다소 급하고 괄괄한 성격이지만 무척 유연하고 재빠른 것이 장점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비무를 지켜보는 또 다른 생도 두 명.

천세명은 한옆에 선 그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얹어야 할 만큼 커다란 키와 덩치를 가진 황기(黃忌),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누구보다 비도술이 뛰어난 예설영(藝雪影).

이렇게 네 사람이 바로 비룡반의 대표 얼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비룡반의 자랑이었다.

본래 여기에 목단화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녀는 얼마 전 특목반으로 차출되었다.

‘오히려 그건 잘된 거지.’

사실 목단화는 까칠한 성격 때문에 다루기가 까다로운 생도였다.

따앙!

마침 두 사람의 도기가 부딪치면서 훌쩍 물러나더니 서로에게 포권을 취했다.

대련을 마친 것이다.

짝짝짝.

천세명이 손뼉을 쳤다.

“수고들 했다. 과연 너희들은 비룡반의 자랑이다.”

“키키. 시간만 충분하다면 제가 이겼을 겁니다.”

상초진이 헤실헤실 웃으며 말하자, 이비겸은 차갑게 코웃음만 쳤다.

대신 그는 천세명에게 다가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좀 더 실력을 검증해 보고 싶습니다. 교관님.”

“으음. 검증이라. 조금만 기다려라. 곧 춘향제를 하게 되면….”

말을 꺼내던 천세명이 흠칫거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가만… 춘향제! 왜 그 생각을 진즉 못했을까?’

춘향제는 매년 봄마다 치르는 학관의 큰 행사였다.

사냥, 승자결 비무, 조직 대항전 등을 통해서 각 반의 우수성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래. 그 기회를 이용한다면…!’

천세명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이비겸을 바라보았다.

“너의 실력을 검증할 만한 무대를 만들어 주마. 기대해도 좋다.”

**

“춘향제를 앞당긴다는 말이오?”

기획안을 펼쳐 본 주유천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천세명을 보았다.

“예, 요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학관의 분위기가 어수선하지 않습니까? 해서 예년보다 일찍 춘향제를 치르고 생도들의 단합을 이끌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면 연무기행은….”

“요즘 여기저기 사파 무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안전상 연무기행은 생략하는 것이 어떨지요?”

주유천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사실 최근 들어서 중원 곳곳에 사파 무리들이 은밀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만큼 강호 초행의 생도들에게는 충분한 위협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천세명이 말을 덧붙였다.

“연무기행을 가지 않은 시간을 대체해서 각종 행사를 추가하면 될 듯합니다. 예년에 비해 좀 더 풍성하게 계획을 세우는 겁니다. 아, 교관들의 대련도 추가하시면 어떻습니까?”

“교관들의 대련이라….”

“물론 실전이 아니라지만, 교관들의 대련을 지켜본다면 생도들에게도 많은 배움이 될 것입니다.”

그 또한 일리 있는 말.

주유천이 기획안을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긍정적으로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학장님.”

천세명은 포권을 취하면서 내심 조소를 지었다.

‘사비강. 어서 돌아와라. 철저히 준비해서 확실하게 환영해 주마.’

**

사비강은 나무 아래에 벌러덩 드러누워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다른 생도들 역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오찬을 즐겼다.

그때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뭐냐?”

사비강이 눈썹을 치뜨며 상대를 보았다.

곡보옥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묻고 싶은 게 아니라, 여쭙고 싶은 거겠지. 다 큰 놈이 존댓말도 할 줄 모르냐?”

“아무튼! 궁금한 게 있다고요!”

곡보옥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소리쳤다.

사비강이 몸을 일으키고는 귀찮은 표정을 가득 지으며 물었다.

“뭐냐?”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무인들.”

“봤다시피 앞으로 날 따르겠다는 거지.”

“그게 아니라! 전 분명히 봤다고요! 그자들의 피부가 썩어 가는 모습을! 그건 분명히 문둥병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문둥병을 치료라도 했다는 거냐?”

“네! 아, 아니! 그건 아니겠지만….”

“그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건… 그냥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곡보옥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헛것을 봤다고 하기에는 그 모습들이 너무나 생생했다.

한데 당이협은 실제로 멀쩡한 모습이지 않았나?

혹시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로 대체된 건 아닐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사비강은 한참이나 곡보옥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순수한 호기심이라 판단되니 알려 주지. 그들은 병에 걸렸었다.”

“역시…!”

“하지만 문둥병이 아니었지. 사람들이 멋대로 오해했을 뿐.”

“그럼… 도대체 무슨…?”

“네가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병이다. 아무튼 난 그들에게 치료 방식을 알려 주었고, 지금은 한 배를 타게 된 거다. 이상.”

“그, 그렇다면 그날 밤에 제가 본 것은….”

“그래. 넌 헛 걸 본 게 아니야. 다만 잘못 알았을 뿐이지.”

“그럼, 그날 밤에….”

“응?”

“… 아닙니다.”

곡보옥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교관님이 보여준 무공도 모두 진짜였냐고 묻고 싶었다.

초절정의 수준에 가까운 고수를 무릎 꿇게 만든 그 무공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은 이미 알 수 있었다.

그건 진짜였다.

“더 질문 있냐?”

“…….”

“뭐하는 거야? 질문 없으면 그만….”

“… 질 수 있을까요?”

“뭐라고?”

“저도… 다른 애들처럼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염자량, 능소소, 단리정, 조문탁… 그들처럼 말입니다.”

사비강이 잠깐 곡보옥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뭔 바보 같은 질문이냐? 당연히 그런 건 너한테 달린 거지.”

사비강이 벌러덩 드러눕고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었다.

곡보옥은 그런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생각에 잠긴 곡보옥이 한참을 걷다가 막 바위 곁을 돌아서는데.

쒜에에엑!

느닷없이 목검 한 자루가 위협적으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헛!”

곡보옥이 얼른 몸을 뒤틀었지만, 목검이 그의 어깨를 때리고 말았다.

퍽!

“커억!”

쿠당탕!

바닥에 거칠게 나뒹군 곡보옥이 주춤거리며 일어나서는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이런 썅! 어떤 새끼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는데.

“여어, 다쳤나? 미안하게 됐다. 손에서 미끄러져서 말이지.”

“연우경…?”

연우경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의 곁에는 전부터 따르던 다른 생도들이 함께 있었다.

예전과 달리 연우경의 눈초리가 차갑기만 했다.

“혹시 화났냐?”

“괘, 괜찮아.”

“그래? 다행이다. 난 또 화난 줄 알았지 뭐야?”

“화… 안 났어.”

“그래. 그래야지. 화나면 안 되지. 네 헛소리 때문에 내 체면이 말도 안 되게 깎였는데, 겨우 그 정도로 화내면 안 되잖아?”

“… 미안해.”

“우리 잘 좀 하자. 응?”

연우경이 곡보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곡보옥이 주먹을 가만히 말아 쥐고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저기…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떨까?”

“뭘?”

“교관 길들이기…. 아무래도 사비강 교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류가 아닌 것 같아서.”

“우리가 생각하는 부류? 그게 어떤 부류인데?”

연우경이 곡보옥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듯한 얼굴.

진짜로 화났을 때만 연우경이 짓는 표정이다.

“그게… 그러니까… 뭔가 사비강 교관은 쉽지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겁먹은 거냐?”

“…….”

연우경이 헛웃음을 짓고는 곁의 생도들을 돌아보았다.

“얘들아. 들었어? 우리 곡 형이 어쩌다가 이런 쫄보가 된 거지?”

곁에 있던 생도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연우경이 조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헛것을 보고 헛소리나 지껄인 거겠지.”

곡보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다음 순간.

퍽!

“커억!”

연우경의 목검이 곡보옥의 등짝을 후려쳤다.

곡보옥이 몸을 뒤틀며 바닥에 쓰러지자, 그가 차갑게 웃었다.

“내 얼굴에 똥칠을 하고… 이젠 혼자만 빠지겠다? 농담한 거지, 지금?”

“농담… 아냐.”

곡보옥이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연우경의 표정도 동시에 굳어졌다.

“후우, 아무래도 우리 곡 형이 뭘 잘못 처먹은 모양이네. 갑자기 바보가 된 건가?”

그가 목검을 쥐고는 저벅저벅 다가왔다.

곡보옥이 어금니를 꾹 깨물고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때.

“뭐야? 내분이라도 일어난 거야?”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바로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 조문탁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녀석이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던 거지?’

연우경이 눈살을 찌푸리는데.

“얘들아! 여기 싸움 구경났다! 이리 와 봐!”

조문탁이 반대쪽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마침 염자량과 단리정, 능소소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사람이 많아지자 연우경이 이를 빠득 갈고는 조문탁을 노려보았다.

“너, 이 벌레 새끼가….”

“죄송합니다. 사람입니다.”

조문탁이 장난을 치듯 혀를 쑥 내밀었다.

연우경이 어금니를 뿌드득 갈았다.

그가 염자량을 비롯해서 마주 선 생도들을 하나하나 노려보고는 곡보옥에게 일렀다.

“오늘은 그만하지. 가자.”

“…….”

하지만 곡보옥은 굳은 표정으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우경이 이맛살을 구겼다.

“뭐하는 거야? 가자니까.”

그러자 염자량이 불쑥 나섰다.

“아무래도 같이 가기 싫은 모양인데. 혼자 가지 그래?”

“뭐?”

발끈한 연우경이 곡보옥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 정말로 저런 버러지들 하고 같이 어울릴 생각이냐?”

“…….”

“곡보옥!”

연우경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곡보옥은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연우경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너, 이 새끼. 미쳤구나?”

“너도 그만 해라. 유치한 장난은.”

“뭣?”

연우경이 눈을 찢을 듯 부릅떴다.

유치한 장난이라고?

감히 자신에게…!

한편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자, 염자량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곡보옥에게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이쪽으로 와서 서도 좋다. 우린 차별 없이 대하니까.”

“훗. 그렇다고 너희들을 좋아하는 건 아냐.”

곡보옥이 냉소적으로 대꾸하자 염자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연우경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자, 곡보옥. 그만 가자. 내가 좀 심하긴 했다. 다음엔 서로 주의하자고.”

곡보옥이 연우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연우경은 손을 내민 채로 웃었다.

“뭐해? 내 손이 민망하잖아.”

“그래도… 너보단 이쪽이 나을 것 같다.”

마침내 곡보옥이 염자량 곁으로 다가가 섰다.

연우경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진심이냐?”

“그래. 친구로서 마지막으로 충고하지. 너도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교관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봤어.”

“이 겁쟁이 새끼가….”

연우경은 어금니가 부서져라 깨물더니 이윽고 휙 돌아섰다.

그 모습을 본 조문탁이 휘파람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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