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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52화 (52/670)

# 52

귀환 마교관

52화

스슷. 샤샥!

흔들리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선 조문탁은 그 아래로 지나가는 그림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침 그림자가 묶여 있는 두 마리 말 앞에 멈춰 섰을 때, 그가 얼른 몸을 날려 나무 뒤쪽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거기 건초더미 좀 가져다줄래?”

그림자, 능소소가 담담하게 말을 던지며 조문탁이 숨어 있는 나무 쪽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쳇, 또 들켰잖아.’

맥이 탁 풀린 조문탁이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나섰다.

능소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웃으며 말갈기를 쓰다듬었다.

조문탁은 나무 아래에 쌓아 둔 건초더미를 한가득 집어 들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뭘?”

“내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말이야.”

“그야 너무 쉬우니까. 네 은신술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게 아닐까?”

“쳇!”

조문탁이 혀를 차며 건초더미를 말 아래에 내려 두었다.

틈만 나면 능소소에게 접근하라고 지시한 사람은 바로 사비강이었다.

“넌 은신과 경공에 나름의 재주가 있으니, 앞으로 능소소에게 은밀히 접근해 보아라. 붓으로 소소의 몸 어디든 점을 찍는데 성공한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주마.”

사비강은 능소소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겠노라 말했다.

조문탁은 자신 있었다.

경공과 은신만 따진다면, 사실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한때는 사비강의 검을 훔치려고 염자량을 도운 적도 있지 않았던가?

‘물론, 그때는 너무 긴장해서 제 실력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연우경과 목단화의 기감을 속이고 접근한 건 성공했었으니까.

하물며 척 보기에도 둔해 빠진 능소소 쯤이야.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지?’

능소소는 가장 어려웠다.

붓으로 점을 찍기는커녕,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지경이다.

이십 보 안으로 접근하면 어김없이 눈치를 채 버린다.

‘소소가 이렇게 기감이 뛰어났나?’

조문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네 기감이 너무 뛰어난 거야.”

“그럴 리가? 내가 좀 예민한 편이지만 기감이 뛰어나진 않은 걸?”

“아냐. 나는 이 붓으로 연우경이나 목단화의 등에 점을 찍을 자신이 있어. 하지만 넌 불가능해.”

“이상하네. 내가 기감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럼, 도대체 내 기척을 어떻게 눈치 채는 거야?”

“그냥… 느껴지니까. 뒤가 막 간질간질한 느낌? 바람이 속삭이는 것처럼.”

조문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바람이 속삭인다니.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심 투덜거리며 돌아서는데.

“너희들 여기서 뭐하는 거냐?”

어느새 연우경 무리가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섰다.

척 보기에도 호의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문탁이 무시하고는 걸음을 옮기려는데.

“문탁.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아니면 말하기 차마 부끄러운 짓이라도 둘이 하고 있었던 거야?”

순간 조문탁이 발끈해서 노려보자, 연우경이 비웃음을 머금고는 턱을 치켜들었다.

마치 그런 표정으로 노려보면 어쩔 거냐는 듯.

조문탁이 시선을 내려 깔았다.

“너희들도… 이제 그만해. 우린 같은 반 생도들이잖아. 사이좋게 지내자고.”

“같은 반 생도라….”

연우경이 조문탁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반은 같아도 신분까지 같아지는 건 아니지.”

“뭐?”

“감히 너 같은 하등한 벌레가 나한테 훈계를 해? 고작해야 고자질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이?”

“고자질이라니. 무슨 소리야?”

“시치미를 떼려고? 사비강 교관에게 나와 목단화가 남몰래 납치 계획을 세웠다고 일러바친 걸 모를 줄 알아?”

연우경의 표정이 천천히 일그러져갔다.

그의 전신에서 살기가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이히히힝!

말들이 놀라서 울부짖었다.

그때.

“그만해. 말들이 놀라잖아.”

연우경 앞을 능소소가 가로막으며 나섰다.

연우경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이건 또 뭐야?’

예전 같았으면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녀석들이다.

한데 이젠 당당하게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쳐다보는 게 아닌가?

감히 하등한 신분 주제에.

“보자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아주 기어오르는군. 비켜,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연우경이 연습용 목검을 꺼내 들었다.

“소소, 괜찮아. 물러나 있어.”

조문탁이 능소소에게 말하며 짧은 단검을 꺼내 쥐었다.

물론, 그 또한 연습용 목검이었다.

하지만 능소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눈으로 연우경을 노려보고는 말했다.

“그 고귀한 신분으로 씹어뱉는 말들이 전부 저질스럽다니. 아마 넌 태어난 곳이 잘못된 게 분명해.”

순간 그곳에 있던 모든 생도들이 입을 척 벌리고 그녀를 보았다.

조문탁도 마찬가지.

늘 내성적인 능소소라고만 생각했다.

한데 저렇게 독설을 내뱉을 줄이야.

이제 연우경의 얼굴은 터져 나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침 그가 목검을 콱 틀어쥐었다.

“이 천한 년이!”

순간 그가 목검을 휘둘러 갔다.

“엇!”

조문탁이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아직 어리다지만 패검연가의 이공자다.

무방비 상태의 능소소가 저 목검에 맞는다면 틀림없이 중상을 입고 말리라.

그런데.

휘익! 콱!

연우경이 휘두른 목검이 능소소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바닥을 때리는 것이 아닌가?

‘뭐지? 피한 거야? 아닌데… 설마 겁만 준 건가?’

조문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능소소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피할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기엔 연우경이 너무 빨랐기에.

때문에 능소소도 지금 이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놀라기는 연우경도 마찬가지.

그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분명 능소소를 베었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어깨뼈가 탈골될 정도로 강하게 내려쳤다.

한데 능소소의 어깨에 닿기 직전,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에 떠밀리듯 목검이 방향을 틀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연우경은 다시 목검을 들어 올리고는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휙!

콰당!

갑자기 발이 미끄러지더니 연우경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는 것이 아닌가?

꼴사나운 모습에 조문탁이 저도 모르게 풋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마침내 연우경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일어났다.

“이 벌레 새끼들! 전부 죽여 버린다!”

그때.

“입이 너무 거친 거 아냐?”

언제 왔는지 염자량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연우경이 씨근거리며 염자량을 노려보았다.

“넌, 빠져.”

“끼든 말든 내 마음이야. 그러고 보니 항상 같이 다니던 곡보옥은 어디로 간 거야?”

“신경 쓸 거 없다.”

“신경이 쓰이니까 하는 소리잖아. 설마 또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염자량의 말에 연우경의 이맛살을 팍 구겼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나 같이 대드는 꼴이라니.

예전에는 절대 이러지 못했다.

모두 자신에게 굽실거리며 아부를 해왔을 거다.

‘이게 전부 그 교관 때문이야!’

염자량이 다시 물었다.

“곡보옥은 어디 간 거냐고 묻잖아.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때였다.

“여기 있다. 난, 왜 찾은 거냐?”

숲속에서 갑자기 들린 목소리.

곡보옥이 수풀을 헤치며 나왔다.

급히 달려온 것인지 아직도 호흡이 거칠어 보였다.

연우경의 입가에 비소가 떠올랐다.

“네가 찾던 보옥이 왔네. 답은 됐나?”

염자량이 말없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너희들, 달밤에 대련 연습이라도 하는 거니?”

이번에는 낭랑한 목소리에 이어 매설란이 나타났다.

생도들이 모두 어정쩡한 자세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차가운 눈길로 생도들을 훑었다.

“오늘은 다들 조용히 쉬도록 하려무나.”

“…….”

“뭐해? 어서 가서 쉬지 않고?”

결국 생도들이 마지못해 각자 걸음을 옮기는데.

“보옥이는 날 따라오렴.”

매설란이 당황해하는 곡보옥을 보며 생긋 웃었다.

**

“말해 봐. 뭘 봤는지.”

매설란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곡보옥을 빤히 보았다.

곡보옥이 안절부절 못하며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네가 무리에서 이탈했다는 걸 모를 정도로 내가 둔해 보이니?”

“……!”

“그래서 협곡 안으로 들어가서 본 게 뭐지?”

곡보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교관님!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뭐?”

“여길 벗어나야 한다고요.”

“왜?”

“저 협곡 안에는… 저기에는…!”

곡보옥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차마 ‘문둥병 환자들의 집성촌입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발설하는 순간, 자신도 그 집성촌에 들어갔다가 나온 불순분자가 아닌가?

곧바로 격리되어서 학관의 모든 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외톨이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저기에 뭐가 있다는 거니?”

“그게… 저어….”

“어서 말해.”

“그게… 그곳에 귀신이 있어요!”

“뭐?”

“귀, 귀신을 봤어요! 정말이에요! 이곳 지명도 ‘지귀’라고 하잖아요. 절 믿어 주세요.”

어쩔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수밖에.

하지만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때문에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간절해 보였고, 그랬기에 매설란은 더욱 김이 빠졌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직은 어쩔 수 없는 애인가?’

곡보옥이 무리를 이탈하는 것을 일부러 놔두었다.

생각 같아서는 직접 사비강의 뒤를 밟고 싶었지만, 생도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번 흑도쌍괴 사건을 겪은 후로는 더욱 신경 쓰고 있었기에.

한데 귀신을 봤다니?

어쩌면 이미 사비강도 곡보옥이 미행하는 걸 눈치 채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헛것을 보게 만들었는지도.

방법은 모르겠지만, 왠지 사비강이라면 그럴 재주도 있을 것만 같다.

매설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다야?”

곡보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대로 말할 순 없어. 그 순간 나도 문둥병자 취급을 당할 테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매설란이 손을 내저었다.

“알았어. 그만 가 봐.”

결국 곡보옥은 축 처진 어깨를 하고는 마차에서 내려왔다.

그가 걸음을 옮기는데.

“나한테도 귀신 따위를 들먹일 생각은 아니겠지?”

고개를 들어 보니, 연우경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가 싸늘한 웃음을 그렸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얘기 좀 하자고.”

**

능소소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사비강이 알려 준 방법대로 운기를 했다.

머리가 점점 맑아졌다.

마침내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사방이 고요한 숲속.

너른 바위에 앉은 그녀가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곳.

예전 같았으면 한밤중에 이런 곳으로 혼자 걸어오지도 못했으리라.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녀는 밤마다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 나와 지금처럼 운기를 하곤 했다.

물론, 사비강과 매설란에게 허락 받은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아까 그건 뭐였을까?’

연우경이 자신을 내려쳤을 때, 묘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능소소는 그것이 절대 우연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너에게 운명이 말을 걸어 올 것이다. 그땐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환상적인 기분을 느낄 거다.”

사비강이 밤이면 밤마다 해준 말이었다.

“혹시… 아까의 일이 관련이 있는 걸까?”

그때였다.

- 까르르르.

문득 웃음소리가 귀에 닿았다.

흠칫 거린 능소소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보일 뿐.

그때 또 다시.

- 까르르르르.

간드러지는 웃음소리.

능소소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스스스스.

역시나 이번에도 바람결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 뿐.

‘왜 이러지? 내가 미친 걸까? 왜 갑자기 이상한 소리들이….’

겁에 질린 그녀가 얼른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데….

소곤소곤. 속닥속닥.

까르르르.

작게 속삭이는 소리들과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혹시 이런 게 주화입마일까?

주화입마에 걸려 본 적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 그 증상이 나타나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이곳엔 아무도 없고, 누군가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 마. 제발! 그만!’

능소소가 무릎을 끌어 모으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툭툭.

누군가 그녀의 정수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 마. 하지 마.’

능소소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천천히 눈을 떴다.

바닥에 어른거리는 푸른빛이 보였다.

툭툭.

누군가 다시 그녀의 정수리를 두드렸다.

능소소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 그것을 보고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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