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1화 (51/670)

# 51

귀환 마교관

51화

“헉, 헉, 헉.”

곡보옥은 손발을 되는대로 놀렸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발이 땅을 딛는 게 아니라 허공을 휘젓는 느낌이다.

물론 경공을 펼치며 달리고 있으니, 반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제대로 ‘달려가는’ 느낌이 아니다.

한 마디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다.

너무 놀란 탓이다.

‘차라리 여길 들어오지 말 걸 그랬어!’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후회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미 봐 버렸다.

그들의 진짜 모습을!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죽립을 벗었을 때 드러난 그 얼굴들을 본 순간, 곡보옥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이, 이딴 곳을 들어오다니! 사비강 교관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비집고 나왔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설마 교관님도…?”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곡보옥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찰나, 고개를 든 그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급히 뒤틀었다.

“헉!”

파밧!

좀 더 경공에 집중을 했어야 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잠시 전방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때문에 날카롭게 다듬어진 목책이 눈앞에 닥칠 때까지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재빨리 몸을 뒤틀며 장애물을 피했지만, 기가 흐트러지면서 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촤르르르르륵!

애초에 경공에는 별로 자신이 없는 그였다.

결국 중심을 잃고는 ‘쿠당탕탕!’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윽!”

앓는 소리를 내며 끙끙거리던 그가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눕고 말았다.

“헉, 헉,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차츰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 그가 본 얼굴들은 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썩어 가는 살점, 고름과 피가 흐르는 뺨, 녹아 버린 것처럼 납작해진 코는 허연 뼈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덤을 갓 헤치고 올라온 시체 같은 모습들.

거기에 달빛의 음영이 더해지니 귀신을 본 것만큼이나 섬뜩했다.

아니, 차라리 귀신이었다면 나았으리라.

‘제기랄. 하필이면… 문둥병이라니!’

이제야 이곳까지 올라오는 길목에 새겨진 온갖 저주들이 이해됐다.

그 글귀들이 모두 맞는 말이었다.

이 마을에 머물고 있는 자들은 모두 저주 받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가까이 했다간 마찬가지로 저주를 받고 말리라.

‘도대체 교관이 왜 그런 자들을 찾은 거지?’

아까부터 생각해 보았지만 쉬이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자칫하다간 그들과 같이 저주받은 몸이 되고 말 것이다.

다시 한 번 썩어 가는 얼굴들을 떠올린 곡보옥은 몸서리를 치며 일어났다.

‘젠장! 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면 좋겠는데!’

오늘처럼 목욕을 하고 싶었던 순간도 없었다.

‘괜찮아. 아직 옮진 않았을 거야. 그자들하고 접촉도 하지 않았으니까!’

나병 환자와 신체 접촉을 한다는 것은 죽는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손으로 마을 안에서 이것저것 만진 것은 사실이다.

“제기랄!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아!”

머릿속에서 자꾸만 썩어 가는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곡보옥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돌아가면 먼저 개울가에 가서 몸을 박박 문질러 씻어야겠다.

**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사비강과 당이협.

그 주변으로는 검은 장포를 걸친 사내들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죽립을 벗은 당이협의 얼굴은 차마 두 눈을 뜨고 봐주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의 곁에 앉아서 꺾은 나뭇가지를 젓가락처럼 사용하는 무천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무천은 아주 천천히 당이협의 뺨에서 떨어질 듯 달라붙은 살점을 젓가락으로 떼어 내고 있었다.

썩은 살점이 떨어질 때마다 끈적끈적한 피고름이 늘어졌다.

그러고 나면 흰 천으로 뺨을 조심스레 눌러 닦곤 했다.

“과연 이런 모습을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군.”

당이협이 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비강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뭐, 처음 본 것도 아니어서 말이지.”

“문둥병자를 전에도 본 적이 있나?”

“물론.”

“나이에 비해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겪은 모양이군.”

“크크크. 겉으로 모든 걸 판단하면 안 되지.”

여러 의미가 중첩된 대답이었다.

실제 사비강의 나이가 보기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들의 외모를 겉으로만 판단하진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당이협이 피식 웃고는 창밖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아까는 꼬리가 붙었던데.”

“뭐, 신경 쓸 건 없어. 어차피 그 녀석도 머리가 있으면 함부로 나불거리진 못할 테니까. 나불거려도 별 수 없고.”

곡보옥을 두고 한 말이다.

당이협과 사비강은 이미 그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당이협은 다시 나무젓가락을 들이대는 무천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

대신 그는 사비강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

이번만큼은 무천도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방에 있는 모든 무인들이 사비강의 입만 바라보았다.

“누가 그러나?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뭐?”

당이협이 입술을 씰룩였다.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런 병은 못 고쳐.”

콰앙!

차차차차앙!

탁자가 부서져 나갔다.

당이협의 주먹에 강기가 맺혔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무인들이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칼을 뽑아 들었다.

사비강이 주위를 슬쩍 훑었다.

“크크크. 성질들이 급하군.”

“지금 우리를 상대로 장난치는 건가?”

목소리에 은근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사비강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난 불쌍한 사람들을 놀리는 취미는 없어.”

“넌 우리의 저주를 풀어 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하지만 문둥병을 치료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그딴 말장난을…!”

“너희들은 문둥병이 아니거든.”

“뭐?”

당이협은 물론 실내에 있던 모든 무인들이 흠칫거렸다.

사비강이 재차 말을 이었다.

“아주 흡사하지. 처음엔 나도 문둥병인 줄 알았으니까. 아니, 사실 그게 문둥병이 아니라는 걸 제일 처음 밝힌 것도 당신이지만.”

“지금 무슨 말을…?”

“각설하고, 너희들이 걸린 병은 ‘질탄의 통곡’이라는 거다.”

당이협은 입을 척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비강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기에.

그러거나 말거나 사비강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뭐, 본론에서 벗어나지만 참고로 과거에 내가 연구 조사한 바에 의하면 문둥병은 애초에 전염병도 아니야. 그저 운이 나쁜 거지.”

“…….”

“너희들은 조마산(助馬山)에 간 적이 있었지?”

“그걸 당신이 어떻게….”

“그곳 동혈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간신히 목숨만 건졌을 거다. 하지만 몸은 보다시피 그 꼴이 됐지.”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당이협은 말없이 사비강을 보기만 했다.

“조마산 동혈에는 ‘아스트라진’이라는 결계가 있다.”

“아스… 뭐?”

“아무튼 그런 게 있다. 그 결계의 특징은 주로 독을 이용한다는 거다.”

“독….”

“그래. 독. 너희들은 그곳에서 ‘질타인’이라는 독에 당했다.”

“허튼 소리! 독이라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설마 내가 당가의 소가주였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터. 맹세코 그딴 이름의 독은….”

“들어 본 적도 없겠지.”

“… 그렇다.”

“이계(異系)의 독에 대해서는 몰랐을 테니까.”

“도대체 무슨….”

“잠자코 들어. 이해는 천천히 해도 되니까.”

“…….”

“질타인에 중독되면 ‘질탄의 통곡’이라는 병에 걸린다. 일단 이 병은 이계에서도 해독제를 구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독이야. 그래서 무조건 피해야만 해. 물론 질탄의 통곡에 걸려도 즉사하진 않아. 다만 증상은 너희들이 겪은 것 그대로. 문둥병과 아주 흡사할 뿐.”

“좋아. 그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치자. 그런데 해독제도 없는 독을 당신이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건가?”

“말했잖아. 너한테 달렸다고.”

사비강이 희미하게 웃으며 품에서 약병을 하나씩 꺼냈다.

영롱한 빛을 머금은 약병.

하나는 암회색의 묘한 기운이 너울거렸고, 다른 하나는 옥빛으로 일렁였다.

바로 헬라의 눈물과 타미콘의 수액이다.

“너희들을 구할 영약이다.”

당이협이 눈을 빛내며 손을 뻗으려는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이대로는 맹독이니까.”

멈칫한 당이협은 이해했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약재는 몸에 득이 되는 약임과 동시에 독이 될 수 있는 법.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사비강이 당이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 다시 묻지. 그 병을 치료한다면 내 칼이 되겠나?”

“이 저주를 풀 방법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

당이협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대꾸했다.

그러더니 곧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거짓일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널 죽이겠다.”

“좋아. 그런 독기, 마음에 들어.”

사비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틀의 시간을 주지. 그 안에 해독제를 만들어.”

당이협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주를 풀어 주겠다더니.

생전 처음 보는 약물 두 개를 덜렁 던져두고는 해독제를 만들라고?

게다가 시간은 고작 이틀?

욕지거리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는데.

“거듭 말하지만, 마무리는 네 손에 달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헬라의 눈물이 타미콘의 수액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비율로 섞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당가의 고피혈독(固皮血毒)이 들어간다는 정도다. 아, 해독제를 복용한 뒤에는 당가의 도반삼양귀원공(導反三陽歸元功)으로 망가진 몸을 온전하게 회복시킬 수 있을 거다.”

“어떻게 그런 걸 전부….”

‘후후. 당신이 다 알려 준 내용들이야.’

사비강은 그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말을 이었다.

“실험은 쥐를 잡아서 하면 된다. 다행히 이 마을에는 쥐가 많은 것 같더군.”

당이협은 멍한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일단 사비강이 굉장히 많은 단서를 던져 준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만큼 질문할 거리가 많다.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사비강은 문을 열고 나서며 던지듯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하지만 하나만 생각해라. 지금은 해독제를 만들겠다는 것. 그 집중력이 필요할 때니까. 물론, 내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전제하에서.”

당이협은 그렇게 멀어져 가는 사비강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무천이 한 마디 건네려고 했지만, 당이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검은 장포를 걸친 무인들이 입을 다문 채 당이협만 빤히 보았다.

이윽고 당이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쥐를 잡아라.”

“존명.”

순간 한 줄기 바람이 불더니 흑의 사내들이 거짓말처럼 실내에서 사라졌다.

한편, 마을을 막 벗어나려던 사비강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원래 당신은 지금으로부터 11년이 지나서야 겨우 해독제를 만든다. 하나 당신 입으로 그랬지. 필요한 재료만 알았더라도 닷새 안에 만들어냈을 거라고. 자, 이제 비율까지 알려 줬으니 이틀이면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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