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50화 (50/670)

# 50

귀환 마교관

50화

협곡은 생각보다 길었다.

수많은 목책을 지나 협곡 끝에 다다르자, 협곡 사이를 이으며 쌓아 올린 방벽이 나타났다.

방벽 사이에는 허름한 문이 있었는데,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끼이이익.

곡보옥이 낡은 문짝을 밀며 안으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안쪽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 쓰러져 가는 건물들로 보건대,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가 않았다.

“이거 좀 으스스한데?”

곡보옥이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괜히 중얼거렸다.

문득 후회됐다.

사비강은 생도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후, 곧장 협곡 안쪽으로 향했다.

매설란은 생도들과 함께 야영 준비를 마쳤지만, 연우경 등은 틈을 봐 가면서 사비강의 뒤를 은밀히 쫓기로 계획한 것이다.

이에 연우경 등이 망을 보는 사이 곡보옥이 협곡 안쪽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만약 그의 부재를 매설란에게 들키면, 머리 좋은 연우경이 어떻게든 핑계를 둘러대 줄 터다.

‘그나저나 사비강은 어디로 간 거지?’

곡보옥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따앙!

금속이 부딪치면서 튕겨 나가는 소리!

곡보옥이 얼른 건물 옆으로 몸을 숨겼다.

‘방금 소리는…!’

조심스럽게 모퉁이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보았다.

저만치 대로 끝에서 빛이 번쩍였다.

‘저기구나!’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오늘이야말로 사비강의 정체를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내가 반드시 밝혀내겠어!’

곡보옥은 더욱 조심스럽게 그쪽을 향해 접근해 갔다.

**

사비강이 구우중의 손에 들린 도를 물끄러미 보았다.

“실수하는 거요.”

“내 실수에 넌 목숨을 잃겠군.”

타앗!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우중이 바닥을 차며 사비강의 코앞까지 날아들었다.

쒸이이잉!

그의 칼이 사비강의 몸을 대각선으로 베었다.

그런데.

‘헛?’

걸리는 게 없다?

분명 사람을 베었는데 허공을 벤 것처럼 깔끔하다.

그때 등 뒤에서.

“힘으로 굴복시켜야만 내 검이 될 생각이오?”

“잔재주를!”

구우중이 얼른 몸을 뒤틀며 칼을 횡으로 그어 갔다.

쒸이이잉!

일반인은 눈으로 쫓기에도 힘들 만큼 빠른 속도.

하지만.

턱.

“……!”

구우중이 눈을 부릅떴다.

회심의 일격으로 휘두른 칼이 사비강의 엄지와 검지에 잡혀 딱 멈춘 게 아닌가?

‘이 무슨…?’

또까앙!

다음 순간 사비강의 손에 의해 도신이 두 동강 나고 말았다.

사비강이 부러진 칼날을 어깨너머로 휙 집어던졌다.

“이만하면 검증은 된 거 아니오?”

“네, 네놈은 도대체 정체가…!”

“몇 번을 말해야겠소? 용천관에서 온 교관이라니까. 이름은 사비강.”

“헛소리! 한낱 교관 수준이 아니다!”

버럭 외친 구우중이 얼른 뒤로 물러나며 품에서 암기를 꺼내 던졌다.

총 여덟 자루의 암기가 허공을 가르며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쒸엑! 쒜엑! 쒜에엑!

‘이번만큼은 쉽게 막지 못할 것이다!’

암기 하나하나가 강기를 머금고 있다.

제아무리 기막을 펼친다고 한들 강기를 튕겨 낼 수는 없으리라.

한데….

따다당!

놀랍게도 강기를 머금은 암기가 튕겨 나갔다.

하지만 모든 암기를 튕겨 내진 못했다.

다섯 번째 자루가 튕겨 나가는 순간, 사비강을 둘러싼 실드에 금이 가면서 깨져 나가고 말았다.

‘과연 강기군.’

히죽 웃는 사비강의 심장에 세 자루의 암기가 틀어박혔다.

‘명중이다.’

구우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잔상?’

이번에도 사비강의 모습이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뭔가를 느낀 구우중이 얼른 단검을 뽑아 들며 뒤로 돌아섰다.

쒸에에엑!

동시에 그의 단검이 사선을 그리며 치솟았다.

따앙!

고막을 뚫어 버릴 것 같은 마찰음 끝에 단검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난 사비강은 베르타스를 뽑아 들고 있었다.

당황할 틈은 없다.

탓!

구우중이 바닥을 툭 치고 물러나면서 양손을 위로 쭉 뻗었다.

그 순간 꽃향기가 진하게 풍겼다.

하늘에서 형형색색의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을 때.

쏴아아아아아아아!

어느새 천공을 새카맣게 매운 암기들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는 눈으로 보기도 힘든 가느다란 침이었다.

“좋은 공격이오. 하지만 내겐 통하지 않지.”

띠디디디디딩!

보이지 않는 막에 부딪친 침들이 주변으로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사비강이 바닥을 차고 달려왔다.

타다닷!

구우중의 눈동자가 다시금 흔들렸다.

‘초상비(草上飛)!’

그랬다.

사비강은 드문드문 자란 잡초 위를 달리고 있었다.

엄청난 내공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

적어도 상대가 초절정 고수라는 뜻.

그런데….

‘아니다! 저건 초상비가 아냐!’

자세히 보니, 사비강의 발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날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도대체 저게 뭐지?’

사실 이는 하급 비행 마법인 플라이(Fly)였지만 구우중이 알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상대가 풀잎 위로 떠서 달려온다는 것은 그에게 불리한 조건이다.

사실 조금 전에 쏟아 부은 침에는 맹독이 묻어 있었다.

사비강이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침을 밟기라도 하면 중독될 가능성이 십중팔구였다.

그런데….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

사비강의 여유 있는 표정을 보건대, 그저 우연은 아닌 듯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대는 자신을 수하로 거두려고 한다.

그러니 일격에 죽일 생각으로 달려들진 않을 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실제로 걸린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코앞에 당도한 사비강이 기합성을 터뜨리며 베르타스를 내려쳤다.

“하앗!”

‘흥, 네놈은 걸려들었다!’

구우중이 얼른 단도를 뽑아 들어 베르타스를 막았다.

강기를 입은 베르타스와 단도가 서로 부딪치며 엄청난 마찰음을 터뜨렸다.

쩌어엉!

다르르르르!

주변의 창문과 기와들이 기풍을 이기지 못해 몸을 떨었다.

“크읏!”

구우중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팔이 저릿하게 울렸다.

이를 악다문 그가 얼른 다른 손을 내뻗었다.

“이걸로 끝이다!”

순간 그가 체내의 모든 기를 장력에 실었다.

초 근접한 공격인 만큼 상대가 기막을 펼칠 겨를도 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그가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 사비강의 명치에 작렬했다.

퍼어엉!

사비강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장력을 얻어맞은 명치 쪽의 옷자락이 완전히 터져 나가서 맨살이 드러났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선 사비강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욱, 후욱. 과연… 대단하오.”

한편, 모든 공력을 쏟아 부어서 일장을 뻗었던 구우중은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장력을 고스란히 맞고도… 서 있다니?’

오히려 이쪽은 기력을 다해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넌… 괴물이군.”

“사실, 괴물이 된 지는 며칠 안 됐소.”

드래곤 하트를 복용한 이후니까.

사비강은 뒷말을 삼키고는 가만히 구우중을 보았다.

“어떠시오? 아직도 내 검이 될 생각이 없소? 난 당신이 반드시 필요한데.”

“후후후. 설마 날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

“확실히 네놈은 강했다. 하지만 방심했지. 결국 네가 졌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후후후. 배에 새겨진 나의 일장이 보이는가?”

확실히 사비강의 명치 쪽에는 시커먼 손바닥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구우중이 웃었다.

“내가 익힌 흑련신장(黑蓮神掌)이지. 이제 넌 반각 안에 전신으로 독이 퍼져 죽게 될 거다.”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바로 그거요. 이걸 직접 보고 싶었소.”

“뭐라? 크크크.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는가? 넌 그걸 직접 본 대가로 목숨을 내놓게 되었단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렇진 않을 거요.”

“뭣이?”

사비강은 천천히 오른손을 명치 쪽으로 가져갔다.

다음 순간, 그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발끈하던 구우중이 흠칫거리고는 물러났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큐어 포이즌(Cure poison). 독을 치료하는 마법이지. 물론 며칠 전의 수준이었다면 해독하기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서클이 올라 충분히 가능하게 됐소.”

“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그딴 사술로 흑련신장의 독이 없어질 리가 없….”

말을 이어가던 구우중이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놀랍게도 사비강의 명치에 새겨진 흑련신장의 낙인이 서서히 지워져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가… 말도 안 돼!”

부정하며 소리쳤지만,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마침내 검은 낙인을 모두 지워낸 사비강이 구우중을 다시 보았다.

“아직도 더 해볼 생각이오?”

구우중의 미간에 주름이 팍 새겨졌다.

그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버럭 소리쳤다.

“쳐라!”

순간, 사비강을 포위하고 있던 수십 명의 무인들이 새카맣게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그들 각각이 수십 자루의 암기를 뿌리니, 순식간에 수백 자루의 암기가 사비강을 향해 쇄도했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나 사비강의 표정은 시종 담담했다.

‘결국 이럴 줄 알았지. 쯧’

혀를 찬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래비티(Gravity).”

찰나.

슈우우우우우우우우욱!

벌떼처럼 날아들던 수백 자루의 암기와 수십 명의 무인들이 갑자기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아닌가?

마치 거대한 자석에 당겨지듯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암기, 그리고 사람들!

타다다다다닷!

쿵! 쿵! 쿠쿠쿵!

마주 서 있던 구우중 조차 갑작스러운 공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윽! 이, 이건 대체…!”

그래비티.

특정 공간의 중력을 증폭시켜 주는 마법이다.

갑자기 수십 배로 늘어난 중력에 구우중을 비롯한 무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무릎을 꿇은 채로 일어나려고 악을 쓰는 사람들.

그들을 둘러보던 사비강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중력을 좀 더 올렸다.

구구구구구구!

“크으윽!”

막강한 중력을 이기지 못한 자들이 저마다 양손바닥으로 바닥을 턱 짚었다.

구우중 역시 마찬가지.

졸지에 사비강을 향해 절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비강이 꼿꼿하게 선 채로 구우중을 향해 말했다.

“내 검이 되어라. 구우중.”

말투가 변했다.

죽립 아래의 구우중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구우중. 아니, ‘당이협(唐二俠)’이라고 불러야겠군.”

“진짜로 내 본명을…?”

“후후. 당가의 독문무공인 만천화우(萬天花雨)에 이어 적련신장(赤蓮神掌)을 응용한 흑련신장까지 드러내 보이고도 모를 줄 알았나? 물론, 그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큭, 네가… 내 예상을 뛰어넘은 건 인정하지. 그러나 나는 수하가 될 수 없다.”

“어째서?”

“내가 수하들과 함께 이곳에 머무는 이유를 너는… 알지 않는가? 우리는 저주 받은… 몸.”

“저주라… 만약 내가 그 저주를 풀어 준다면?”

“……!”

구우중 아니, 당이협이 눈을 부릅뜨고는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사비강이 웃으며 물었다.

“어때? 그럼 내 검이 되겠나?”

“방금… 뭐라고 했나?”

“내가 그 저주를 풀어 주겠다고.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주를 푸는 건 당신이 되겠군.”

“뭐?”

“난 필요한 재료를 제공하고 방법을 알려 줄 거다.”

“허튼 소리!”

“글쎄. 허튼 소린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 것 아닌가?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평생 이런 음지에 처박혀서 숨어 지내고 싶진 않을 텐데.”

“정말… 우리를 이 속박에서 풀어 줄 수 있다는 건가?”

당이협이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어느새 그래비티 마법은 사라진 상태.

당이협 뿐만 아니라, 다른 무인들도 하나둘 죽립을 벗었다.

사비강이 당이협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

“그건 당신하기에 달렸어.”

**

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엿보던 곡보옥은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저 사람들 얼굴이…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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