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귀환 마교관
49화
‘금역에 가려고 하다니. 미쳤군, 미쳤어.’
‘신의 저주가 두렵지도 않은가?’
‘다들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지.’
곁눈질을 하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염자량은 굳은 표정으로 단리정을 보았다.
“도대체 뭘까? 거기에 뭐가 있는 거지?”
“글쎄… 도무지 짐작도 안 되는 걸?”
말고삐를 쥔 단리정은 겁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럴 때 보면 자신을 구하러 왔을 때의 그 단리정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순박해 보인다.
‘정말이지 그때 느꼈던 날카로운 기도를 떠올리면 내가 꿈이라도 꾼 것 같단 말이야.’
염자량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단리정의 기분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걷는 길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기에.
관도를 벗어난 길은 마차가 지나다닐 만큼의 너비였지만, 온통 울퉁불퉁해서 이동하기에는 영 불편했다.
게다가 좌우로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은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몸을 떨며 스산한 소리를 내질렀다.
어디선가 밤새가 울었다.
근처 바위마다 섬뜩한 문구의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죽어 버려라!’
‘신의 저주다!’
‘이 땅에서 사라져라!’
‘지귀로 들어서는 자, 지옥을 보리라.’
염자량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살벌하네.”
조금 더 들어가자 뾰족한 목책이 나타났다.
마치 공성전에서나 사용될 것처럼 끝이 날카롭게 다듬어진 목책이다.
한데 밖에서 들어오는 자를 막으려는 것인지, 안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자를 막으려는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했다.
‘정말 이곳에 뭔가 있긴 한 거야? 무슨 도적 소굴처럼….’
생각을 하던 염자량이 흠칫거리고는 단리정을 돌아보았다.
“혹시 여기는 사파 무인들의 소굴이 아닐까?”
“사파의 소굴?”
단리정이 놀란 기색으로 돌아보았다.
염자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갖 저주가 새겨진 바위들을 봐. 아마도 사파 무인들에게 당한 사람들이 새겨 놓은 걸지도 몰라!”
“그럼, 우린 지금….”
“그래. 사파 무리들을 토벌하러 가는 걸지도! 최근에 사파 무인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잖아?”
그러자 단리정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 그럼 이거 보통 일이 아니잖아?”
“생각해 봐.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제대로 나쁜 녀석들을 처리한 적은 없었잖아?”
“그, 그건 그렇지.”
“이제 드디어 우리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거야. 사파 무리들을 토벌할 기회 말이야.”
들떠서 얘기하는 염자량과 달리 단리정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염자량이 그의 등을 철썩 때리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너 정도면 충분히 생도들에게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그럴까?”
“당연하지. 넌 나를 구한 은인이잖아.”
은인이라는 말에 단리정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염자량으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추측은 곧 생도 전원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우리가 이제 사파 무리들과 싸운대.”
“오, 드디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군!”
“하지만 그 녀석들이 흑도쌍괴처럼 무시무시하면 어쩌지?”
“괜찮아. 이번엔 교관님들도 같이 가시잖아.”
“우리도 드디어 실전 경험을 쌓겠구나.”
생도들이 저마다 술렁거리며 떠들어댔다.
마침내 커다란 바위를 지나자 협곡의 입구가 나타났다.
비좁은 협곡은 선뜻 발을 들이기가 꺼려질 정도로 음산한 분위기였다.
왠지 바람에서 혈향이 풍기는 것 같기도 했다.
다들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데.
“멈춰라.”
사비강이 마차에서 내리며 생도들을 불러 세웠다.
‘드디어…!’
염자량을 비롯한 생도들이 다부진 표정으로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드디어 실전이다.
이날을 위해 그동안 강행군을 해왔으리라.
그런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이제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하도록 해라.”
“예에?”
생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문제라도 있나?”
“아니, 저어… 그게 끝인가요?”
“그럼?”
“그럼, 교관님도 여기서 야영을….”
“아니. 나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사비강의 시선이 협곡 안쪽으로 향했다.
역시!
생도들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염자량이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교관님. 저기에 뭐가 있는 거죠?”
“너희들은 몰라도 돼.”
“아뇨. 알아야겠습니다.”
이번만큼은 염자량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다른 생도들 역시 그와 같은 표정으로 사비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매설란마저 그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저도 궁금해요. 여기까지 와서 또 생도들끼리 남기다뇨? 그건 너무 위험….”
“매 교관이 함께 남아서 생도들을 보살펴 주시오.”
“네? 도대체 여기가 어디기에 그래요?”
“그건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 모르는 게 좋을 거요.”
사비강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매설란이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때 염자량이 다시 불쑥 나서며 소리쳤다.
“저희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저희들도 싸우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교관님, 저희들도 데려가 주십시오! 연무기행이란 실전 연습이라는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생도들이 너도나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실전 연습? 신조어냐? 실전이면 실전이고, 연습이면 연습이다. 그 단어에서조차 너희들이 강호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는지 알만하구나.”
“하지만 저희들은 마음의 준비를 이미…!”
“시끄럽다. 때가 되면 너희들이 싫다고 해도 실전을 치르게 될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비강의 표정이 워낙 단호했기에 생도들은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매설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곳에 아이들을 두는 건….”
“걱정 마시오. 여기는 안전하니까. 이곳에만 머문다면 위협이 될 만 한건 아무것도 없으니 안심하시오.”
매설란은 다시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사비강이 생도들에게 일렀다.
“자, 다들 알아들었으면 야영 준비하지 않고 뭐하느냐?”
결국 생도들은 구시렁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
비좁은 협곡을 지나서 들어선 작은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지귀’라고 부른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귀신들의 영역이라는 뜻.
절대로 살아 있는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 될 곳.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주를 퍼붓는 마을이다.
그런 곳을 사비강은 태연히 걷고 있었다.
반쯤 무너져 내린 담장, 한쪽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문짝,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지붕.
이따금씩 쥐새끼들이 무리를 지어 골목을 내달리곤 했다.
그럼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휘이이이잉.
한 차례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마침내 사비강의 걸음이 멈췄다.
정면에는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현판이라든지, 부서진 문짝 등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돌연 사비강이 소리를 질렀다.
“말 좀 물어 봅시다!”
사방이 워낙 고요했던 탓에 그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댔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심호흡을 한 사비강이 다시 소리쳤다.
“아무나 좀 대답해 보시오!”
공력이 담긴 사자후에 주변 기왓장이 다르르 떨리고 창문이 흔들렸다.
나무들은 몸을 떨며 잎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사비강이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사실 그는 이미 마을에 들어섰을 때부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희미한 기운들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사자후를 터뜨렸을 때, 그 기운들이 동요하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러나 그뿐.
누구 하나 나서는 자가 없었다.
사비강이 귀를 후볐다.
“내 목소리가 잘 안 들리나 보군. 소리를 지르면 꽤 시끄러울 텐데.”
빈말이 아니다.
여기서 공력을 더 끌어올려 사자후를 터뜨리면, 자신을 은밀히 포위한 자들 중 누군가는 내상을 입으리라.
그가 다시 심호흡을 하는데.
“어디서 온 자인가?”
지옥에서 갓 올라온 악귀처럼이나 탁한 목소리가 정면에서 날아들었다.
끼이이익.
부서진 문짝이 비스듬히 열리면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색 장포를 걸치고 죽립을 깊이 눌러 쓴 자였다.
때마침 주변 골목과 건물 지붕마다 시커먼 장포를 두른 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죽립을 깊이 눌러 썼는데, 그 수가 수십에 이르렀다.
완전한 포위.
장포의 사내들로부터 숨 막힐 듯한 살기가 노골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이제야 사람 구경을 해보는군. 워낙 조용한 마을이어서 말이오.”
“누구냐고 물었다.”
“용천관에서 온 교관이오. ‘사비강’이라고 하오.”
“용천관?”
정면의 사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용천관에서 이곳에 어인 일이지?”
“사람을 찾고 있소.”
“돌아가라.”
“음. 하지만 난 그 사람을 반드시 찾아야….”
“그게 누구든 이곳에는 없다.”
“그럴 리가. 분명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 왔는데.”
그러자 정면의 사내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놈! 네놈은 지금 금역에 들어섰다. 길을 잘못 찾은 것이라면 기회를 주겠다. 돌아가라. 목숨은 보전해 주마.”
“글쎄, 길은 제대로 찾았다니까.”
“… 멍청한 녀석.”
정면의 사내가 차갑게 말을 내뱉었을 때.
쒸엑! 쒸에엑! 쒸에엑!
팔방에서 느닷없이 암기가 날아들었다.
다음 순간.
따다다다당!
정면의 사내가 흠칫거렸다.
‘기막(氣膜)…?’
푸르스름한 기운이 사비강을 둘러싸면서 수십 자루의 암기를 튕겨 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사비강은 마지막으로 날아든 암기를 손으로 휙 낚아채더니 곧장 정면의 사내를 향해 던졌다.
쒜에에에엑!
“헛!”
까앙!
정면의 사내가 얼른 검을 뽑아 들고는 날아드는 암기를 쳐냈다.
이번에야말로 흑의 무인들 모두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정면의 사내가 미간을 팍 구겼다.
“예사로운 놈이 아니로구나. 도대체 네놈 정체가 뭐냐? 여기에 온 목적이 뭐냐?”
“말했잖소. 용천관 교관으로, 사람을 찾고 있다고.”
“아까부터 누굴 찾는다는 거지?”
“구우중.”
이름을 대자 다시 한 번 흑의 무인들이 움찔 떨었다.
“그 이름을 어찌… 아는가?”
“어디 그 이름뿐이겠소? 다른 이름도 알고 있는 걸?”
“……!”
사내가 천천히 검을 고쳐 쥐었다.
여차하면 뛰쳐나갈 태세.
마침 그가 바닥을 박차려는 순간.
턱.
누군가의 손길이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흠칫 거린 사내가 돌아보자, 적색 장포의 사내가 죽립을 푹 눌러 쓴 채 가만히 읊조렸다.
“무천(無天), 저자는 너의 상대가 아니다.”
‘무천’이라 불린 사내가 옆으로 얼른 물러나자, 적색 장포의 사내가 사비강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를 찾으셨다고?”
“당신이 ‘구우중’이라면 그렇소.”
“용무는?”
“내 검이 되시오.”
순간 구우중이 흠칫거렸다.
동시에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흑의 사내들이 일제히 병기를 뽑아 들며 살기를 짙게 뿜어냈다.
“후후후. 아무래도 그대는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군.”
그가 천천히 허리춤에서 도를 뽑아 들었다.
사비강이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글쎄,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