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귀환 마교관
42화
두두두두두!
말 한 마리가 두 사람을 태우고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어느 순간 관도를 벗어난 말이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우거진 나뭇잎과 쓰러진 고목, 움푹 파인 물웅덩이를 거침없이 지나치며 말은 힘차게 내달렸다.
말 위에 올라 탄 사람은 두 명.
바로 능소소와 단리정이었다.
능소소의 뒤에 앉은 단리정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소소는 정말 말을 잘 모는구나!’
마치 말이 소소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럇!”
소소가 소리치자 말은 더욱 빠른 속도로 숲속을 질주했다.
‘몽골인도 이보다 잘 타진 못하겠어.’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불과 한 식경 전, 자신과 능소소는 사비강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저잣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대략적인 품목을 구매한 후, 숙소인 객잔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아스라이 신호탄 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얼핏 잘못들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걷고 있던 능소소도 분명히 들었다고 했다.
얼른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살폈다.
저만치 숲속에서 붉은 색 연기가 흩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신호탄이야! 틀림없어!”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에 객잔의 동기들이 눈치 채기는 힘들 것 같았다.
결국 단리정은 그 자리에서 신호탄을 던져 올린 후, 소소와 함께 숲속으로 달려온 것이다.
나중에 그곳으로 교관님이나 동기들이 모이면, 다시 상황을 봐 가며 소소의 신호탄으로 위치를 알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중, 능소소가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공기가 달라졌어!’
딱히 설명하기 힘들다.
혈향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뭔가 근방에서 일어났다.
“저기서 세울게!”
“알았어!”
소소가 나무 앞에 다다라서는 급히 멈춰 섰다.
이히히히힝!
말이 앞발을 치켜들며 멈췄다.
찰나, 단리정이 얼른 몸을 날리고는 나뭇가지에 매달렸다.
그는 곧 나뭇가지를 밟고 서서는 잽싸게 활시위를 당긴 채 신호탄이 터진 쪽을 조준했다.
‘어디냐!’
그렇게 숲속을 한참 더듬는데.
‘저기구나!’
누군가 수풀을 헤집으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음? 저건… 염자량?’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염자량이었다.
척 보기에도 많이 지친 듯했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상황.
단리정은 얼른 조준 위치를 바꿔 염자량을 추격하는 자가 없는지 살폈다.
‘하나, 두울… 셋. 세 명이다.’
우선 눈으로 확인되는 것은 세 명이다.
하지만 그 뒤로 수풀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서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염자량을 추격하는 것 같았다.
“소소, 준비해!”
“알았어!”
능소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의 갈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언뜻 차분해 보이지만, 여차하면 튀어나갈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단리정은 심호흡을 하고는 시위를 더욱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우선 가장 가까이 다가온 추격자를 노린다.
‘정신을 집중해야 해. 그리고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단번에 격발시키듯 시위를 놓는 거야. 마치 발검을 할 때처럼!’
불과 열흘 남짓하지만, 그 사이에 그는 누구보다도 많이 연습했다.
틈틈이 사비강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부담은 가질 필요가 없다.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상대방이 동요를 일으킨다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적어도 염자량이 도망칠 시간만 확실히 주면 된다.
‘그런데 저놈들은 누구지?’
아니다.
지금은 오로지 표적을 노리는 것만 집중한다.
‘좋아, 스쳐도 좋다. 굳이 맞추지 않아도 돼. 상대가 동요만 해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말고!’
단리정이 숨을 멈췄다.
찰나!
패애애앵!
쒸에에에엑!
화살 한 대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날아갔다.
동시에.
“이럇!”
능소소가 말의 배를 걷어차며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
“헉, 헉! 젠장! 이대로는…!”
염자량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저만치 추격자들이 보였다.
언뜻 파악되는 인원만 세 명.
하지만 그 뒤로 또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다.
‘젠장, 지원은 아직인가?’
조금 전 네 명의 추격자를 죽이면서 너무 많은 공력을 소모해 버렸다.
더 이상 경공에 내력을 쏟아 붓기가 힘들다.
약간의 내공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건 정말 위험할 때 써야 한다.
지금쯤이면 교관이나 생도들의 지원이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거리가 너무 멀었을 지도!’
만약 그렇다면, 신호탄을 확인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낭패다.
이대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저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
네 명이나 죽여 버렸으니, 자신을 살려 두지 않으리라.
마침 나무뿌리에 발이 걸린 염자량이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헉, 헉. 젠자앙!”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치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크크크! 꼬마야, 이제 그만 포기하려무나.”
십여 장 떨어진 곳까지 쫓아온 추격자들이 칼등으로 제 뒷목을 툭툭 치며 히죽거렸다.
녀석들은 염자량의 체력이 바닥났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염자량은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차앙!
“호오? 한 번 해보시겠다? 그 꼬락서니로 우리와 싸울 수 있을 것 같으냐?”
“덤벼.”
염자량은 최대한 말을 아끼며 호흡을 조절했다.
“크크크.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군.”
“…….”
“그냥 이 아저씨들이랑 같이 가지 않으련? 발버둥 쳐봐야 너만 힘들어. 고분고분 따라오면 살려는 줄 테니.”
추격자들은 여유를 부리면서도 쉽게 염자량에게 접근하진 못했다.
어린 녀석이라고 얕잡아 보다간 자칫 당할 수도 있었기에.
‘어쨌든, 저 어린놈이 네 명이나 죽였단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염자량은 많이 지쳐 있었고, 그 사실을 추격자들 역시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
“정, 그렇게 버티겠다면 어쩔 수 없지. 여기서 깔끔하게 죽여 버리마!”
추격자 한 명이 고함을 내지르며 벼락같이 몸을 던져 갔다.
그때였다.
쒸에에에에엑!
푹!
“컥!”
날카로운 파공성에 이어 추격자가 목이 꿰뚫리더니 뒤로 붕 날아갔다.
염자량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상대를 보았다.
“컥, 커억!”
녀석은 구멍 난 목을 쥐고는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목에 난 구멍에서는 피가 쉴 새 없이 꿀럭꿀럭 쏟아졌다.
다른 추격자들이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 누구냐!”
“웬 놈이냐!”
보이지 않는 적만큼 두려운 것도 없는 법.
한편, 염자량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돌아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누군가 나를 도우러 왔구나!’
그때였다.
쒸에에에엑!
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익!”
추격자들이 얼른 몸을 날려 흩어졌다.
피츗!
팍!
화살 한 대가 추격자 한 명의 어깨를 스치고는 나무기둥에 박혔다.
만약 조금만 늦었더라면 화살은 그의 이마를 뚫고 말았으리라.
“젠장! 어떤 놈이지?”
“섣불리 움직이지 마! 저 녀석을 돕는 놈이 있다!”
추격자들이 수풀 아래에 몸을 바짝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염자량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그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그때,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등 뒤에서 거칠게 울렸다.
그가 돌아보는 순간.
“자량, 잡아!”
능소소가 한 손으로 말고삐를 쥔 채, 다른 손을 뻗으며 달려왔다.
염자량이 얼른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탁!
휘리릭!
허공으로 솟아오른 그가 재빨리 말 등에 올라탔다.
이히히히힝!
갑작스러운 무게에 말이 울음을 토하며 멈칫했다.
하지만 그 뿐.
“괜찮아, 풍랑(風浪)! 달려!”
능소소의 외침에 말이 곧바로 몸을 돌리고는 왔던 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풍랑…? 말 이름인가? 그나저나 소소는 정말 말을 잘 다루는구나.’
염자량은 그런 생각을 하며 쓰러진 추격자들을 돌아보았다.
누군가 다시 일어서려는데, 역시나 화살 한 대가 빠르게 날아오며 근처에 꽂혔다.
결국 추격자들은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염자량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
‘죽, 죽였어. 내가…!’
네 번째로 활시위를 당기는 단리정은 손끝이 바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얼른 조준 위치를 옮겨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능소소를 보았다.
염자량이 그녀의 뒤에 올라타고 있었다.
‘됐어! 자량은 구해냈어!’
이제 추격조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조준 위치를 다시 옮겨 보니, 마침 추격자들이 두 명 더 늘어나 있었다.
새로 나타난 두 명은 앞선 추격자들의 경고를 들은 것인지 얼른 고개를 숙이며 수풀 아래로 몸을 숨겼다.
패애앵!
쒸에에엑!
네 번째 화살이 날아갔다.
이번 화살은 상대를 맞추지는 못하겠지만, 더 이상 염자량을 쫓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으리라.
역시나 새로 나타난 추격자들도 수풀 위로 올라올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단리정은 천천히 시위를 당기며 심호흡을 했다.
‘침착하자.’
첫 번째 화살은 상대의 목을 꿰뚫었다.
어느 정도 위협은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상대를 죽이게 될 줄은 몰랐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자신의 화살이 그들에게는 위협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정아! 우리 왔어!”
어느새 나무 아래로 도착한 능소소가 소리쳤다.
그녀 뒤에 타고 있던 염자량이 마지막 남은 내공을 쥐어짜며 나무 위로 올라섰다.
“네가 쏜 거였어?”
“응.”
단리정이 여전히 시위를 잡아당긴 채로 대꾸했다.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서웠다.
‘이 녀석, 원래 이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나?’
염자량은 내심 단리정을 다시 보았다.
그러고 보니 같은 반이면서도 단리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때.
패애앵!
쒸에에에엑!
화살이 다시 파공성을 터뜨리며 먼 곳으로 날아갔다.
염자량이 얼른 고개를 돌려 보니 아주 먼발치의 수풀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얼른 숙이는 자가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아내기도 힘들 정도.
염자량이 입을 쩍 벌렸다.
“너… 설마 여기서 저길 쏜 거야? 맨 처음 화살을 쏜 것도 너야?”
“응.”
이번에도 단답형으로 대답한 단리정.
정말이지 평상시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명중시키다니. 이 녀석, 원래 궁술이 뛰어났던가?’
어느 순간 단리정이 활을 내리더니 돌아보았다.
“가자. 아무래도 한 동안은 움직이지 못할 거야. 이 정도 거리면 숙소로 돌아가기엔 충분해. 자세한 얘기는 돌아가서 하자.”
“그, 그래.”
단리정이 나무 아래로 휙 뛰어내렸다.
**
‘마왕 녀석, 꽤 공들여 결계를 쳐놨지만 소용없게 됐군.’
사비강의 입매가 히죽 올라갔다.
뭐, 여기서 얻을 물건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시킨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리라.
동혈을 따라 걷다 보니 천장이 점점 높아졌다.
이윽고 커다란 문이 앞을 막았다.
문의 높이가 대략 십여 장은 될 듯했다.
그 문 한 가운데에는 괴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모양이었다.
‘카만타르’라는 마계의 야생 괴수다.
사비강이 카만타르의 얼굴 조각까지 훌쩍 날아올랐다.
뒤이어 그가 옥빛 돌을 조각상 아가리에 쑤셔 박았다.
콱!
다음 순간.
팟!
카만타르의 눈동자가 빛을 뿜더니 거대한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게 아닌가?
쿠구구구구궁!
‘드디어…!’
사비강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문 안으로 들어갔다.
너른 공동 한 가운데에는 허리춤까지 오는 석탁이 있었는데, 그 위에 낡은 금속 상자가 놓여 있었다.
두 손으로 들기에도 조금 버거울 만큼 큰 상자다.
상자에서는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 든 물건의 기운이 너무나 강렬해서 미처 갈무리되지 못한 탓이다.
‘저거군.’
사비강의 입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치켜 올라갔다.
심호흡을 한 그가 천천히 금속 상자로 다가갔다.
예상대로 마법 잠금 장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비강에게 그 정도 장치를 푸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뭐, 중원인이라면 이곳까지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물론 언락(Unlock)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상자를 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마법 상자는 절대 힘으로는 깰 수 없는 것이기에.
꿀꺽.
마침내 사비강이 상자 덮개를 열었을 때.
화아아아.
붉은 기운이 퍼지며 사비강의 상기된 얼굴을 가득 물들였다.
두근. 두근. 두근.
맥박이 뛰는 소리!
사비강의 심장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금속 상자 안에서 힘차게 박동하고 있는 녀석이 내는 소리다.
“후후후. 드디어 찾았다. 드래곤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