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귀환 마교관
28화
퍽! 퍽! 퍽!
살벌한 소리가 장내에 가득 울렸다.
“큭! 으윽! 크으읍!”
엎드린 채 매를 맞고 있는 사람은 곡보옥.
연우경은 이미 엉덩이의 옷자락이 터져 나가도록 매를 맞은 후였다.
결국 버티다 못한 곡보옥이 바닥에 엎어지며 앓는 소리를 내질렀다.
“으으윽.”
“엎드려. 뼈 부러진다.”
“크윽!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말했잖아? 이런 사태를 일으킨 것에 대한 잘못.”
“그건 실수였을 뿐입니다!”
“실수는 잘못이 아니냐? 때론 그 실수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법이지. 그때도 같은 말을 할 건가? 엎드려.”
“이익…! 두고 보십시오!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지금 교관을 협박하는 거냐? 다섯 대 추가다. 엎드려.”
“뭐라고요? 이런 법이 어딨어요!”
“계속 반항하면 열 대 추가한다. 엎드려.”
“크익…!”
곡보옥은 이를 뿌득 갈고는 엎드렸다.
퍽! 퍽! 퍽!
“크읍!”
사비강은 다시 검집으로 곡보옥의 엉덩이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매 맞는 소리만 울렸다.
등부형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도저히 나설 수가 없군.’
서슬 퍼런 분위기에 기가 눌렸다.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토벌대에도 여러 번 참여한 그였다.
한데 겨우 생도들의 체벌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토록 마음을 졸이게 될 줄이야.
마침내 사비강의 체벌이 끝났다.
“평소 계곡에서 수련만 제대로 했어도 이 정도는 솜방망이지. 물러나라.”
곡보옥이 분한 표정으로 엉기적거리며 물러났다.
“잘 들어라. 같은 생도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할 시에는 그만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든 말조심해라. 말 한 마디도 신중해야 하는 곳, 그게 바로 강호다.”
연우경과 곡보옥은 입을 꾹 다물고 바닥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럼, 이제 수금을 할 차례인가?”
그가 시선을 돌렸다.
마침 잔뜩 굳은 채 상황을 지켜보던 위덕천이 움찔 떨었다.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그럼, 우리도 계산해야지?”
“알, 알겠소. 원금을 포함해서 네 배를 드리면 되는 것 아니오?”
“그래. 하지만 저 돈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을 포함하면 안 돼.”
사비강이 염자량이 들고 있는 돈주머니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돈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은 원금이 아니다.
귀야채의 무인들이 돈주머니를 되찾은 다음 원래 들어 있던 원금만큼의 은자를 채워 넣었을 뿐이다.
귀야채에서 보관하던 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자신이 돈을 탕진했다고 이실직고한 상황이기에 위덕천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 알겠소.”
“좋아. 잘못을 뉘우치고 학관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라.”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리 큰돈을 마련하기 힘드오.”
“그럼, 오늘은 원금의 두 배만 내도록. 나머지는 내일까지.”
“내, 내일이라니.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가 뜰 텐데….”
“뭐야? 이틀 후면 연무기행을 떠나야 하는데 지금 그것도 못하겠다는 거야? 어엉?”
사비강이 베르타스로 어깨를 툭툭 치며 언성을 높였다.
위덕천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이, 이틀만 시간을 주시오.”
“좋아, 그럼 다른 방식으로 받으마.”
“다른 방식?”
“내일 내가 금전 대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 주지. 불만 있나?”
“그건 아니지만… 알겠소.”
위덕천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사비강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적어도 이틀 후, 연무기행을 떠나기 전까진 준비해야 할 거야.”
“최대한 노력하겠소.”
“노력으로는 부족해. 확실한 결과를 보여.”
“알… 겠소.”
“그럼, 이제 슬슬 정리하고 돌아갈까?”
사비강이 염자량을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등부형이 마침내 불쑥 나섰다.
“잠깐!”
“음? 뭐요?”
사비강이 그를 돌아보았다.
등부형은 큰 숨을 한 번 내쉬고는 마음을 굳힌 듯 말을 이었다.
“돌아가기 전에 우선 용천관의 교관으로서 사 교관께 좀 따져 볼 사항이 있소.”
“따져 볼 사항이라니?”
“도대체 이자들은 누구요?”
등부형의 손가락이 고적산을 비롯한 흑의 무인들을 가리켰다.
사비강이 휘이 둘러보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이들이 무슨 문제라도 되오?”
“상황에 따라선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이자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자들이오?”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이것도 오다 주웠다고 해야 하나?”
“뭐, 뭣?”
사비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등부형이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요! 이자들의 정체가 뭐요?”
“아, 이들은 과거 귀야채 소속이었소만.”
“귀, 귀야채? 귀야채는 분명히 당신이 해산시켰다고 하지 않았소?”
“물론이오. 그래서 이들이 여기 있잖소?”
“아니, 아니! 해산을 시켰다는 자들이 왜 여기에 모여 있는 거요? 정말 귀야채가 사라진 게 맞기나 한 거요?”
“귀야채는 해산시켰소. 귀야채주의 머리도 확인했을 거 아뇨. 다만, 이들이 워낙 나를 따르겠다고 애걸복걸하니 어쩌겠소?”
“이자들이 당신을?”
“그렇소. 나는 어디로든 가서 착하게 살라고 말했지만,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를 따르겠다고 매달렸소. 안 그래, 적산?”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비강은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조리 죽여 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해야 할 대답은 하나다.
고적산은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주군! 저희들이 자발적으로 주군을 따르고 싶어 했습니다!”
“보셨소?”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등부형을 보았다.
뜻밖의 상황에 등부형이 움찔 떨었다.
‘도대체 사비강 이자가 뭐라고 이런 녀석들이 복종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등부형이 물러나지 않고 소리쳤다.
“사파의 무리를 수하로 거느린 교관이라니…! 당치도 않소!”
“나도 이 녀석들이 도적질이나 하는 놈들이어서 영 마음에 들지 않았소. 그래서 나를 따르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사비강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등부형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데?”
“아, 글쎄 이 녀석들이 나를 따르게 두지 않으면 전부 자결하겠다고 하지 않소?”
“뭐, 뭣이?”
이번에는 등부형 뿐만 아니라 고적산을 비롯한 귀야채 무인들 모두가 움찔 떨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사비강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실제로 한 녀석이 제 목에 칼을 들이대고 찔러서 자결까지 해버렸다오. 안 그래, 적산?”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소? 정도인을 걷는 무인으로서 이들이 개과천선하여 나를 따르겠다고만 하니 전부 죽여 버릴 수도 없고.”
“그, 그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들을 이렇게 거느리는 것은 교관으로서….”
“문제라는 거요?”
“그렇소.”
“그럼, 수하를 거느린 문파의 장로들은 교관이 될 수 없는 거요?”
“그건 아니지만….”
“따르는 아우들이 많은 의협들은 교관이 될 수 없소?”
“아니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요? 이들은 그저 날 따르는 아우들일 뿐인데.”
“그렇다고는 하나 한때 사파의 도적 무리로….”
“말씀 잘하셨소. 한때였지. 한때. 이젠 개과천선해서 새사람이 되겠다는데 문제가 있소?”
“끄음.”
등부형이 침음을 흘리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트집을 잡을 게 많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대화를 나눌수록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보기에 썩 좋지는 않소.”
“흐음.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적산.”
“예, 주군!”
“너희들이 날 따르는 것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구나. 아무래도 너희들은 더 이상 날 따르지 말아야겠다. 그 ‘주군’이라는 소리도 좀 그만하고.”
“그, 그건…!”
고적산이 사비강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사비강의 눈빛에서 속뜻을 읽었다.
그가 부복하며 소리쳤다.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입니다!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그러지 말고 너희들 모두 어디론가 가서 착하게 살아라. 나는 아무래도 너희들을 거둘 그릇이 못되는 듯하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이 적산, 차라리 죽겠습니다!”
고적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검을 뽑아들고는 거꾸로 쥐었다.
“헉!”
등부형이 깜짝 놀라서 나섰다.
“잠, 잠깐! 굳이 그럴 것까지 뭐가 있겠소? 어디로든 가서 개과천선하여….”
“그럴 순 없소!”
고적산이 버럭 고함치며 등부형을 노려보았다.
그 기세에 눌린 등부형이 움찔거리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고적산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개과천선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신 분이 바로 사비강 교관님이시오! 한데, 이 분이 우리를 버리신다면 앞으로 살아갈 의미가 없소! 그동안 저질렀던 죄를 갚을 생각으로 차라리 자결을 하는 게 낫소!”
“그, 그렇다고 자결이라니…!”
“말리지 마시오! 죽음으로 지난 죗값을 갚고, 주군의 명예를 지켜드릴 거요!”
그러자 갑자기 다른 수하 한 명이 불쑥 나서서는 칼을 뽑아 들었다.
“대형! 제가 먼저 자결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갑자기 흑의 무인들이 너도나도 나서며 먼저 죽겠다고 고함을 질러댔다.
“이, 이게 무슨….”
그때였다.
푹!
“크읍!”
무인 하나가 칼로 배를 찌르며 고꾸라졌다.
그 모습을 본 고적산이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쳤다.
“아우야! 네가 먼저 갔구나. 곧 뒤따라가마!”
“맙소사! 이보시오, 사 교관! 이자들을 좀 어찌…!”
등부형이 안절부절못하며 소리쳤다.
자칫하다간 이대로는 엉뚱한 소문이 돌 수도 있다.
비록 도적질을 일삼은 귀야채의 무인들이지만, 개과천선하여 의롭게 살기로 한 무인들을 등부형이 궁지로 몰아 모두 자결시켰다는….
‘그, 그럴 수는 없어!’
등부형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한데 사비강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실제로 자신을 따르겠다는 자가 배를 찔러 고꾸라졌음에도.
‘뭐 저리 독한 인간이…!’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가 없소. 이 녀석들은 나에 대한 존경이 너무 대단해서….”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등부형이 속생각을 삼키고는 얼른 외쳤다.
“알겠소. 알겠으니 그만 멈추게 하시오.”
“그럼, 이들이 날 따르는 걸 탓하지 않는 거요?”
“그야 친분 있는 아우들이 교관의 어려움을 돕고자 하는 것인데 무어라 할 수 있겠소?”
“흐음. 그렇게 이해해 주신다면야….”
“물론이오. 이자들이 사 교관을 그리 우러러보니 사 교관의 덕망이 높은 것 아니겠소.”
“뭐, 알겠소. 적산. 칼을 거두고 저 녀석을 치료해라.”
그제야 고적산이 칼을 거두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주군!”
적산이 재빨리 지시를 내리자, 부상을 입은 수하가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그 모습을 본 등부형이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뭐 저리 지독한 녀석들이… 휴우.’
사비강이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그나저나 등 교관께서는 개인적인 용무를 보셨소? 나 때문에 산통 깬 건 아닌지 모르겠소.”
“아, 뭐 대충 보았소.”
등부형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부러진 승룡도를 힐끔 보았다.
자신의 팔이 부러진 것처럼이나 아팠다.
그가 툴툴거리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저들이 과거처럼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땐 학관에서도 사 교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거요.”
“하하. 그건 걱정 마시오. 그런 일이 있었다간 내가 먼저 녀석들을 죽여 버릴 테니까.”
등부형이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보았다.
입은 웃었지만 차갑게 식은 눈동자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나타내고 있었다.
‘이자는 더 이상 내가 넘볼 상대가 아니다.’
등부형이 고개를 푹 숙이는데, 사비강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자, 그럼 같이 돌아갑시다. 나도 이제부터 연무기행 준비를 해야 해서 바쁘겠소. 하하하.”
사비강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장내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