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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27화 (27/670)

# 27

귀환 마교관

27화

마침내 위상탁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아버지!”

위덕천이 비명처럼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하지만 그 앞을 고적산이 얼른 막아섰다.

“뭐, 뭐냐? 비켜라!”

“…….”

하지만 고적산은 냉엄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할 뿐,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생사비무다.

중간에 끼어드는 행위를 용납할 리가 없었다.

한편, 사비강은 쓰러진 위상탁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때? 지금이라도 인정하지 그러나?”

“뭘 말이냐!”

“우리 생도에게서 돈을 강탈했다는 사실을.”

“그런 일은 없다고 하지 않더냐!”

“흐음, 이깟 일로 정말 목숨까지 걸려고?”

푸욱!

“커헉! 끄아아악!”

사비강이 무감한 표정으로 베르타스를 위상탁의 배에 찔러 넣었다.

위덕천은 물론, 등부형도 눈을 부릅떴다.

‘저, 저렇게까지…!’

위덕천이 울부짖었다.

“아버지! 아버지! 이 개새끼야! 아버지를 놔드려라!”

“그렇게 네 아비가 걱정되면 너라도 이실직고하면 되잖아?”

사비강이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위덕천을 돌아보았다.

순간 위덕천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저 녀석… 정말 교관 맞아? 무슨 눈동자가 괴물 같은…!’

지금 사비강의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마치 사냥한 사슴을 뜯어먹다가 고개를 든 늑대와 같은 눈빛.

어둡고 깊은 심연에는 어떤 의미도, 생각도 읽혀지지 않는다.

그저 맹수의 본성만이 이글거린다.

쑤욱.

“크아악!”

배에서 칼이 뽑혀 나오자 위상탁이 자지러질 듯 비명을 내질렀다.

생사비무다.

어느 한 쪽이 죽는다 해도 책임질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 볼 수도 없는 노릇.

위덕천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뭐, 뭣들 하느냐! 저놈을 당장 쳐 죽여라!”

그러자 흑사방의 무인들이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었다.

차앙! 차아앙!

동시에.

“누구든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고적산이 공력을 실은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곧이어 흑의 무인들이 일제히 사비강과 위상탁을 둘러싸며 사방을 경계했다.

팽팽한 긴장감.

고적산이 차갑게 일렀다.

“서로 간 합의가 끝난 비무다. 누구든 방해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

위덕천은 이를 빠드득 갈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등부형을 바라보았지만, 그 역시 나설 명분이 없기는 마찬가지.

‘제길! 사비강이 저리 강하단 말인가?’

등부형이 입술을 꾹 씹었다.

자하낙인도를 깨트렸을 때만 해도 운이었다고 생각했다.

여운진 교관을 그 지경으로 만들었을 때도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한데 오늘 보여준 그의 무위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명백한 실력.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러나 여전히 납득은 되지 않는다.

그렇게 허약했던 자가 어찌 이렇게 단기간에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저 흑의 무인들은 뭔가?

교관이라는 자가 저런 자들을 거느리고 있어도 되는 건가?

그러는 사이 사비강은 베르타스를 들어 위상탁의 목을 겨눴다.

“보통 세 번의 기회를 주지. 그런데 난 주로 두 번만 줘. 고로, 마지막 기회다.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죽는다.”

위상탁이 흠칫거리고는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거짓이 아니다.

이자는 분명 자신을 죽이리라.

한낱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이 어리석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존심이 지금껏 흑사방을 이끌어 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여기서 굴한다면 자신에게 복종하고 따를 자가 누굴까?

지금껏 악독하게 살아왔으니, 마지막까지도 악독하게 가리라.

“할 말 없다.”

위상탁이 딱딱하게 말하자 사비강이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존심 하나만큼은 높이 사마.”

이윽고 베르타스가 위상탁의 목젖을 파고들려는 순간.

“내가 빼앗았소! 젠장! 내가 저 생도에게서 돈주머니를 빼앗았소! 이제 됐소? 그러니 아버지를 그만 놓아주시오! 제기랄!”

위덕천이 울부짖었다.

**

휘이이잉.

아직은 차가운 밤바람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흔들어댔다.

언뜻 언덕 위의 나무는 홀로 우뚝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눈여겨보면 가지 위에 한 여인이 흑의 경장을 입고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은신술이 워낙 뛰어난지라 범인(凡人)이라면 이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리라.

여인은 바로 섭혼천녀 매설란.

먼발치의 흑사방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저렇게 됐네.”

역시 사비강은 만만한 자가 아니다.

저자의 능력이 저 정도라는 걸 천세명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 정확히는 몰랐으리라.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매설란은 자신의 고운 손을 들어 보았다.

손가락을 가만히 비비던 그녀는 사비강과 나눈 악수를 떠올렸다.

흡기공을 익힌 그녀였기에 신체 접촉 시에 상대의 기감을 예민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한데 사비강은 참으로 묘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 같다고나 할까?

눈으로 대충 보기에는 그저 연못의 수준이다.

하지만 그 깊이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넓이는 못에 불과한데, 깊이가 바다처럼 깊을 수도 있을까?

모르겠다.

사비강이 어떤 남자인지.

그래서….

‘더 재미있단 말이야.’

저런 자를 상대하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그건 마치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과 같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사 교관님. 당신은 정말 볼수록 흥미진진한…!”

가만히 읊조리던 매설란이 순간 흠칫거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이쪽을 봤다!

설마…?

하지만 분명 사비강은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이곳을 향해 잠깐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럴 리가! 뭐야? 어떻게?’

말도 안 돼!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은신술은 완벽하다.

가까이에 다가와서 보더라도 무공을 익힌 자가 아니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한데 흑사방의 가장에서 여기까지는 꽤나 먼 거리.

게다가 지금은 어두운 밤이다.

‘그래, 아닐 거야. 기분 탓이겠지.’

그저 사비강이 이쪽을 바라봤다고 착각한 것이리라.

사실은 그저 허공을 잠깐 본 것일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그 미소는….

매설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장내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위덕천의 애처로운 흐느낌만 이어졌다.

“내가… 내가 저 생도의 돈주머니를 뺏었소. 용, 용서해 주시오.”

그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 갔다.

흑사방의 무인들조차 참담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소방주가 한 짓 때문이 아니다.

원래 흑사방은 그런 일들을 줄곧 저질러 왔으니.

다만 방주와 소방주가 한 교관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이 참담했다.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거두어 들였다.

“자세히 말해 봐!”

“천아! 그럴 필요 없다! 노옴!”

위상탁이 얼른 일어나서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뻐억!

사비강의 발길질에 걷어차인 위상탁이 눈을 뒤집고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버지!”

“괜찮아. 안 죽었다. 기절한 것뿐이야.”

“내가 이실직고하지 않았소!”

“그건 그렇지만 날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까?”

“끄익…!”

“자, 이왕 이실직고했으니 자세히 말해라. 왜 그런 짓을 저질렀지?”

“그, 그건….”

이제부터 말을 잘 골라야 한다.

자칫 일이 커지면 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어설프게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된다.

“저 생도의 수중에 목돈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오.”

“어떻게?”

“객잔에서 다른 생도들이 떠드는 내용을 들었소.”

“무슨 내용이었나?”

“저 생도가 목돈을 들고 다루로 오게 할 것이라는 얘기였소.”

“그래서 이 녀석의 돈주머니를 강탈했다?”

“그, 그렇소.”

“하지만 돈은 차고 넘치는 네놈이 왜?”

“큰돈 싫다는 사람 있겠소? 부하들을 데리고 실컷 계집질이나 하려고 그랬소.”

이것 역시 사실이다.

실제로 그렇게 했으니까.

사비강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지?”

“무슨 소리요? 난 실제로 그랬소! 그 돈을 이틀 동안 부하들과 함께 모두 탕진했소! 놀고, 먹고, 마시는데 모두 써 버렸단 말이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는가?”

“물론이오!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할 수 있소! 다만, 그 돈주머니가 왜 여기서 나왔는지는 나도 모르오!”

그제야 사비강이 씨익 웃었다.

“아, 그건 내가 알아. 사실 이건 이쪽에서 준비한 거거든.”

“뭐요? 그럼 그 증거가 가짜였다는 거요!”

“증거는 진짜지. 네놈이 기녀에게 준 것을 찾아낸 것이니까. 다만, 거기 들어 있던 돈과 돈주머니를 여기서 찾았다는 건 거짓이었다.”

“이,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이 사기꾼 같은…!”

“이봐!”

문득 사비강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에 열불을 내던 위덕천이 침을 꿀꺽 삼켰다.

“네놈들이 한 짓에 비하면 이 정도 사기는 준수하다고 본다만.”

“하, 하지만…!”

“아니면 네놈 목숨을 걸고 다시 말을 뒤집어엎든가?”

“큭…!”

위덕천이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그는 가늘게 떠는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이실직고했으니… 이제 아버지를 보살펴도 되겠소?”

“좋을 대로.”

사비강의 허락이 떨어지자 흑사방의 무인들이 얼른 달려가 위상탁을 들쳐 업고는 옮겼다.

사비강이 고적산에게 턱짓했다.

“저 녀석들 데려와.”

“예, 주군.”

흑의 무인들이 자루를 덮어 쓰고 있던 연우경과 곡보옥을 끌고 왔다.

“벗겨.”

자루를 벗기자 두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편, 두 사람을 본 등부형과 위덕천이 움찔 떨며 눈을 크게 떴다.

사비강이 위덕천을 향해 물었다.

“혹시 객잔에서 떠들어대던 녀석들이 이놈들이냐?”

“그, 그렇소만. 그걸 어떻게?”

“…라고 하는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좀 들어볼까?”

사비강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고적산이 얼른 혈을 풀어 주자, 연우경이 냉랭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난 그저 다루에서 자량과 만날 거라는 얘기를 했을 뿐입니다. 그게 그리 큰 잘못입니까?”

“잘못이다.”

“뭐라고요?”

“자량이 목돈을 들고 관외로 나가는 걸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니면, 당연히 자량이 위험할 수 있지 않겠느냐?”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러니 오늘은 달게 벌을 받고 다음부터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나불거리도록.”

“벌이라고요?”

“왜? 너의 짧은 생각까지 칭찬해 주길 바라나?”

“그, 그게 아니라…!”

“엎드려.”

“싫습니다!”

“엎드려.”

“싫다고요! 난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러자 고적산이 성큼성큼 다가가 연우경의 목덜미를 잡았다.

하지만 사비강이 손을 저으며 그를 물러나게 했다.

“자량을 위험에 빠뜨린 것만으로 큰 잘못이다.”

“좋습니다! 그렇다고 쳐도 여긴 학관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곳에서 왜 제가 매를 맞아야 합니까?”

“네놈은 학관에서만 생도냐?”

“그건….”

“네놈은 집밖으로 나가면 부모도 인정하지 않느냐?”

“그것과 이건 다르지 않습니까?”

“군사부일체. 다를 게 없다. 엎드려. 좋은 말 할 때.”

“이익…!”

연우경이 이를 뿌득 갈았다.

보다 못한 등부형이 조심스레 나섰다.

“이, 이보시오. 사 교관. 그래도 벌을 내리려거든 학관에서….”

“빠지시오. 이건 특목반의 일이오.”

등부형이 입을 다물고는 물러났다.

사비강의 표정에서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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