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귀환 마교관
26화
“말, 말도 안 되는 소리!”
위덕천이 버럭 소리쳤다.
“모략이다! 절대 그 물건이 나올 리가 없다!”
사비강이 싸늘한 눈초리로 위덕천을 노려보았다.
“분명히 증거가 나오면 인정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딴 게 여기에 있을 리가 없다니까!”
“하지만 나왔잖아?”
“이익…!”
위덕천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명 저 돈주머니는 자신이 강탈했던 것이 맞다.
하지만 왜 여기에서 나온단 말인가?
‘분명히 처리했는데! 게다가 저 돈은!’
위덕천이 얼른 위상탁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아버지! 억울합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
당황하긴 위상탁도 마찬가지.
그는 행여나 아들이 돈을 탕진하지 않고 집안에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했다.
위덕천이 위상탁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돈주머니는 분명히 없애 버렸고, 들어 있던 돈은 이틀간 모두 탕진했다는 내용이었다.
위상탁이 위덕천의 눈을 응시했다.
‘그것이 확실하냐?’
‘확실합니다!’
위상탁이 이맛살을 잔뜩 구기고는 사비강을 돌아보았다.
“사 교관. 정말 그것을 이곳에서 찾은 게 틀림없소?”
“그럼? 설마 증거가 나왔음에도 발뺌할 생각이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런 돈주머니를 본 적도 없다고 하오만.”
“쯧쯧. 자기 새끼 말만 듣고 오냐오냐 하면서 키우니까 저런 개망나니가 되는 것 아니겠소?”
“뭐, 뭣이?”
“진정 정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아들의 잘못을 꾸짖고, 이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시오. 그게 아니면 혹시 두 부자가 같이 꾸민 건가?”
“뭐, 뭐라? 노옴!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구나!”
결국 위상탁이 노호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가 씨근거리며 일갈했다.
“나는 그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
“쯧쯧. 그렇게 나오시는군. 이러니 사파 찌꺼기라는 소리나 듣지.”
“뭐, 뭣? 찌꺼기…?”
“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증거가 나왔음에도 인정을 안 하시겠다. 그러고도 정도의 문파로 인정받고 싶다는 거요?”
“닥쳐라! 막말로 그 증거가 조작이 아니라는 증거는 있느냐?”
“하!”
사비강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보시오, 방주. 어디까지나 증명이라는 건 주장하려는 자가 준비하는 거요. 나는 당신들이 회비를 가져갔다는 걸 증명했소. 그런데 이 증거가 가짜라고 주장하고 싶으면, 그쪽에서 그 증거를 대야지?”
구구절절 옳은 말.
말문이 막힌 위상탁은 주먹을 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아들이 저 돈을 모두 탕진했으니 그 증거는 가짜다, 하고 소리칠 수도 없는 노릇.
‘뭐 이런 개 같은 상황이…!’
그때였다.
“네놈의 그딴 개소리는 더 이상 못 들어 주겠구나!”
위덕천이 바닥을 차고 뛰쳐나갔다.
위상탁이 나서서 말릴 겨를도 없었다.
위덕천의 검이 사비강에게 날아드는 순간.
차앙!
한 줄기 섬광이 솟아오르더니 위덕천의 검을 쳐냈다.
어느새 나타난 고적산이 검을 뽑아들며 방어한 것이다.
곧이어 고적산이 일권을 내지르자, 가슴을 얻어맞은 위덕천은 비명을 터뜨리며 날아갔다.
“크억!”
쿠당탕탕!
바닥을 미끄러지며 쓰러진 위덕천이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더니 한 움큼 피를 토했다.
“쿨럭!”
“천아! 괜찮으냐?”
위상탁이 화들짝 놀라서는 위덕천에게 다가왔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무공을 쓰다니!”
“그자가 먼저 달려들었소.”
고적산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아들의 피를 본 위상탁도 온전한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노옴! 이렇게 된 이상 비무다! 그 결과가 곧 증거고, 진실이다!”
“억지를 부리는군.”
사비강이 싸늘한 눈빛을 하고는 대꾸했다.
“닥쳐라! 진실을 가릴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결론을 낼 수밖에! 등 교관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등부형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의 오해를 풀 길이 없으니, 무인답게 비무를 통해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사실 속내를 말할 것 같으면 대환영이다.
위상탁은 그래도 일개 방파를 이끄는 방주다.
그의 무공을 얕잡아봐서는 큰 코 다치리라.
위상탁이 사비강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네놈에게 생사비무를 청한다! 비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결백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다!”
생사비무.
비무를 하다가 누군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
지켜만 보던 염자량이 불쑥 나섰다.
“그, 그건 좀 이상하잖아요! 비무 결과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다니…!”
사비강이 손을 들어 염자량을 제지한 후 위상탁을 빤히 노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좋아. 대신 조건이 좀 달라지겠어.”
눈빛과 말투가 변했다.
“조건?”
“난 돈을 받으러 왔다가 의도치 않게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상황이잖아? 만약 내가 이긴다면 당신들은 아까 말한 금액의 두 배를 지불해야 한다. 즉 원금의 네 배가 되는 셈이지.”
“흥! 네 배든, 다섯 배든 마음대로 받아 보아라! 어디 할 수 있다면!”
사비강이 씩 웃고는 등부형을 돌아보았다.
“그럼 등 교관께서 증인이 되어 주시는 거요?”
“끄음. 그렇소.”
“좋소. 그럼 시작하지.”
사비강이 고적산을 옆으로 물러나게 했다.
위상탁 역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고는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노옴. 오늘 두 발로 걸어 나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우우웅.
도신이 가늘게 떨면서 새파란 기가 맺혔다.
다음 순간.
탓!
위상탁이 바닥을 차며 뛰쳐나갔다.
쒸이이익!
칼이 횡으로 호선을 그리며 그대로 사비강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도파랑(巨刀波浪).
그의 독문무공인 거도공(巨刀功)의 초식 중 하나다.
가로로 베어 들어오는 칼날이 파도처럼 거세다.
거기에 도기가 풀풀 휘날리니, 그야말로 바위도 부술 것 같은 파도다.
그런데.
스슥.
‘헛?’
눈앞의 사비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쒜에에엥!
허공을 베어낸 위상탁이 얼른 돌아서자, 코앞에 나타난 사비강이 씩 웃었다.
퍽!
“커억!”
주먹에 얻어맞은 위상탁이 코피를 쏟으며 물러났다.
“이놈!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그의 전신에서 오싹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쒸이이이익!
곧이어 날아든 공격.
이번에는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솟아올랐다.
거도멸천(巨刀滅天).
짜르르릉!
마치 낙뢰가 치는 듯한 도명과 함께 도기가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공격은 허공만 베어내고 말았다.
눈앞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진 사비강은 어느새 그의 곁에 바짝 붙어서 나타난 것이다.
퍼억!
“커억!”
이번에는 팔꿈치에 얻어맞은 위상탁이 뒤로 주춤 물러나면서 겨우 중심을 잡았다.
침을 탁 뱉자 피가 섞여 나왔다.
“이런 개새끼! 제대로 싸우지 못하겠느냐!”
“제대로 싸우면 죽을 텐데.”
사비강의 눈빛이 순간 살기를 머금었다.
그 압박감에 위상탁이 저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흥! 어디서 건방을!”
탓!
위상탁이 금리도천파의 술법으로 순식간에 날아가 칼을 대각선으로 그었다.
찰나, 사비강이 뒤로 한 보 물러서더니 그대로 몸을 회전하며 칼의 손잡이를 걷어차는 것이 아닌가?
퍽!
“엇?”
쉬이이이잇!
위상탁이 놓쳐 버린 도가 그대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마침 그곳에는 위덕천이 마음을 졸이며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 돼!”
위상탁이 외쳤다.
하지만 워낙 찰나지간이었기에 위덕천은 피할 생각조차 못했다.
그가 날아드는 도를 보며 눈을 부릅뜬 순간.
사악!
화끈한 감각이 귓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팍! 다르르르.
그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 칼이 문설주 기둥에 박히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
그제야 위덕천은 자신의 귓불이 베여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만약 조금만 방향이 틀어졌더라면 위상탁의 칼은 아들 안면에 틀어박혔으리라.
한편, 이를 지켜본 등부형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설마…? 고의는 아니겠지? 우연이겠지?’
하나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사비강의 표정이 너무 한결 같지 않은가?
“노오옴!”
격분한 위상탁은 권법을 펼치며 사비강에게 달려들었지만, 그의 주먹은 번번이 허공을 가르거나 방어에 막히고 있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위상탁은 사비강의 권각에 당하면서 점차 부상이 깊어만 갔다.
‘아버지…!’
위덕천이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지켜보다가 마침 등부형의 손에 들린 승룡도를 보았다.
‘저 거라면…!’
분명 아버지가 그에게 선물한 것이리라.
일단 아버지가 도를 사용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아버지의 주 무공은 거도공이니, 도로써 승부를 봐야 한다.
위덕천이 냉큼 달려가 등부형에게 일렀다.
“등 대협! 승룡도를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음? 아, 뭐….”
등부형이 얼떨결에 승룡도를 건넸다.
“아버지! 이걸 사용하십시오!”
위덕천이 재빨리 승룡도를 던졌다.
마침 사비강의 일장을 받아내며 뒤로 밀려났던 위상탁이 얼른 몸을 날려 승룡도를 낚아챘다.
“어디 이것도 막아 보아라!”
허공에서 승룡도를 뽑은 그가 그대로 무게를 실으며 내려찍었다.
거도공의 또 다른 초식인 거도파산(巨刀破山)!
그야말로 산이라도 쪼갤 기세로 승룡도가 혜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찰나, 사비강의 눈이 반짝였다.
차앙!
마침내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뽑으며 떨어져 내리는 승룡도와 마주쳐 갔다.
‘흥! 걸렸구나, 끝이다!’
거도파산 초식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다니.
지금까지의 공격은 막아내더라도, 이번 공격만큼은 피했어야 했다.
그만큼 힘에 있어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 초식이다.
도기를 잔뜩 실은 거도파산은 실제로 바위도 가를 만큼 단단한 힘을 자랑한다.
한데 놈은 거꾸로 지금까지 피하다가 이제야 칼을 빼든 것.
‘이래서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교관이란 것들은 실전에 약한 법!’
생각은 길었지만 실제 흐른 시간은 찰나였다.
“죽엇!”
일갈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위상탁이 바닥에 착지했다.
스캉!
뭔가를 베어낸 감촉.
그 매끄러운 감각이 손끝에 짜릿하게 울렸다.
‘벴다!’
내심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드는데.
“헛?”
사비강이 물끄러미 자신을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쯤이면 피를 뿌리며 넘어갔어야 할 터.
그제야 위상탁은 자신이 들고 있는 승룡도의 길이가 절반이나 짧아진 것을 깨달았다.
“승, 승룡도가…?”
한편, 이를 지켜보던 등부형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칫 주저앉을 뻔했다.
‘제, 제기랄! 승룡도가…!’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싸움이 끝나면 승룡도는 자기 것이 되었어야 했다.
얼떨결이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방주에게 유리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승룡도를 넘긴 것인데….
이기진 못할망정 승룡도를 반 토막 내다니!
‘내, 내 보도가…!’
사비강이 베르타스를 들어 위상탁을 가리켰다.
“더 할 테냐? 후후.”
“이, 이익…!”
“지금이라도 모든 죄를 인정하고 잘못을 빈다면 여기서 멈추지. 아, 물론 돈은 네 배로 받아가겠지만.”
“이런 개놈의 새끼!”
팍!
위상탁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뛰쳐나갔다.
그가 짧아진 승룡도를 쥔 채 거도공의 초식을 연이어 펼쳤다.
쉭! 샥! 쉬잇!
하지만 이미 심기가 어지러워지고, 승룡도마저 부러진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된 무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사비강이 계속해서 피하자, 위상탁이 발악하듯 외쳤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냐? 덤벼라! 이 빌어먹을 자식아!”
“추하군.”
싸늘하게 말을 뱉은 사비강이 순간 손을 뻗어 승룡도의 도면을 손가락으로 땅 튕겼다.
“컥!”
허공으로 솟구친 승룡도가 떨어지는 것을 그대로 낚아챈 사비강은 위상탁의 어깨에 그것을 거침없이 쑤셔 박았다.
콰악!
“크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