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5화 (15/670)

# 15

귀환 마교관

15화

찍지 못했다!

‘제길! 제기랄! 분명 조금 전의 그 공격은 정공(正功)이 아니었어!’

만약 택마인주만 찍었더라면, 지금쯤 저 녀석 이마에 피처럼 붉은 점이 선명하게 드러났으리라!

여운진은 천천히 일어나서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좁은 실내.

사비강은 우뚝 선 채로 묵묵히 여운진을 바라보기만 했다.

“너 벙어리냐? 왜 대답을 안 하냐?”

“…….”

“용무가 있어서 왔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

‘건방진!’

팟!

여운진이 바닥을 차고 쇄도해 갔다.

그래도 권법을 가르치는 교관이다.

손을 쓰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정확하고 빠른 그였다.

쒸이이잇!

허공을 가르며 그의 손이 재빠르게 날아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비강은 꿈쩍하지 않았다.

‘됐다! 이번엔 찍는다!’

하지만 손가락이 이마에 닿기 직전.

번쩍!

한 차례 빛이 터지더니 사비강의 몸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헉! 이번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에 황급히 돌아서는데.

부우웅!

사비강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여운진의 얼굴을 때렸다.

뻐억!

“커헉!”

콰당탕탕!

이번에도 바닥을 한참이나 구른 여운진이 벽에 부딪치며 처박혔다.

“쿨럭! 크윽!”

침을 뱉자 피와 함께 이가 후두둑 떨어져 나왔다.

여운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런 개새….”

“어? 어디서 들어본 목소린데?”

사비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운진이 얼른 입을 닫았다.

그가 주먹을 쥐고는 바르르 떨었다.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일개 창술 부교관이었던 자에게 이토록 얻어터지다니!

여운진의 눈동자가 활화산처럼 이글거렸다.

‘오냐, 네놈이 그토록 매를 벌겠다면 제대로 상대해 주마! 개자식!’

몸을 일으킨 그가 주먹을 꾹 말아 쥐자, 내공이 손에 집중되면서 새하얀 기운이 풀풀 풍겼다.

권기(拳氣)다.

사비강이 그 모습을 보고 짐짓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호오, 뭔가 제대로 해볼 생각이군. 환영이다.”

‘죽여 버린다, 이 개새끼!’

이제 택마인주를 찍겠다는 생각은 버렸다.

먼저 놈을 묵사발 내는 거다.

이미 놈이 마공을 사용했으니, 대략 한 시진 반 안에만 택마인주를 찍으면 된다.

‘즉사만 아니면 상관없겠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찍으면 될 테니!’

여운진이 천천히 기수식을 취했다.

찰나.

‘죽어랏!’

팍!

다시 한 번 바닥을 찬 그가 거침없이 주먹을 내뻗었다.

파앙!

하얀 기운이 길게 늘어지며 혜성처럼 사비강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번쩍!

사비강의 몸에서 빛이 터지는가 싶더니,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운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회전시키며 왼 주먹을 휘둘렀다.

‘흥! 같은 수법에 세 번이나 당할 내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비강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사비강이 얼른 손을 들어 올렸다.

여운진이 내심 조소했다.

‘크크. 이 몸은 권법 수련에 일생을 바쳤다! 네놈이 제 아무리 마공을 익혔다고 한들 내 주먹을 당해낼 것 같으냐!’

쩌어엉!

고막을 찢을 듯 큰 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크아아악!”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지른 자는 다름 아닌 여운진이었다.

“크아아아악! 내 소오오온!”

그가 왼손을 부여 쥐고 울부짖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믿을 수 없었다.

지금쯤 상대의 팔이 가루가 되도록 부서졌어야 한다.

바닥에 엎드려 절규하는 자는 저놈이 되었어야 한다.

한데!

‘어째서 내 손이… 끄으윽!’

손목이 완전히 부러진 것인지, 축 늘어진 채 움직이지도 않았다.

“호오. 같은 수법에 세 번 정도는 당해 줄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보기보다 아주 멍청하진 않구나.”

“이런 개새끼!”

여운진이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사비강의 손이 여운진의 머리채를 먼저 움켜잡았다.

“어디 그 낯짝 좀 볼까? 영 목소리가 귀에 익어서 말이지. 후후.”

“…!”

찰나, 여운진이 사비강의 손을 탁 쳐내고는 후다닥 물러났다.

“훅, 훅, 훅.”

여운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비강을 쏘아보았다.

‘침착해야 한다. 아직은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제길, 방심했어!’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군.”

사실 사비강으로서는 그의 복면을 벗길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벌써 벗겨 버리면 흥이 안 나잖아? 관객도 없는데 말이야. 후후.’

한편 여운진은 숨을 고르며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놈의 손목을 치는 순간, 희미한 빛이 녀석을 감쌌다. 마치 보호막처럼.’

하지만 정공의 기막(氣膜)은 아니다.

사실 그건 실드(Shield) 마법이었는데, 중원에서만 살아온 여운진으로서는 그 정체를 알 방법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더욱 확고하게 생각을 굳혔다.

‘그래, 틀림없이 마공이다!’

여운진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목청을 긁어대며 탁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놈, 마공을 익힌 게로구나!”

“후후후. 뭐, 어떤 의미로는 맞는 말이지.”

“이익! 역시 네놈은 사지를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개놈이었구나!”

“거 참, 말이 거칠군. 혼내줘야겠어. 교관으로서 말이야.”

“닥쳐라! 그딴 마공을 익히고도 네놈이 교관이라고 할 자격이 있느냐!”

“흐음. 정공을 익히고도 마인보다 못한 정도인도 수두룩하지. 결국 어떤 무공이냐 보다는 그 무공을 사용하는 자의 인성 문제가 아니겠나?”

“개소리! 네놈의 그 마공을 내가 박살내 주마!”

“할 수 있다면 한 번 해보시던가?”

사비강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여운진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저놈 눈빛이… 언제 저렇게…!’

역시 마공이다.

마공을 익히니 사람이 저렇게 변하는 거다.

한편 사비강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나직이 읊조렸다.

“룬 플레어(Rune flare).”

다음 순간.

화르르르륵!

그의 손바닥 위에 기다란 화염 창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헉!”

여운진이 입을 딱 벌린 채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저, 저게 뭐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광경.

그 압도적인 위압감 아래에서 여운진은 서서히 밀려오는 공포를 느꼈다.

“받아라.”

순간 사비강이 화염 창을 날렸다.

화르르륵!

“크익!”

찰나지간이었지만 여운진은 화염 창을 막아내지 못했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피하기에는 늦은 상황!

그가 모든 공력을 쥐어짜며 일권을 내질렀다.

쩌어엉!

화르르륵! 콰장창!

뜨거운 불길이 화악 퍼져나가면서 여운진을 덮었다.

“크으윽!”

불기운에 떠밀린 여운진이 벽에 쾅, 부딪치고는 쓰러졌다.

‘이, 이것이 놈이 익힌 마공인가!’

얼떨결에 막아내긴 했지만, 지금 벌어지는 현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화염 창이 생겨나다니?

여운진이 흔들리는 시선으로 사비강을 바라보는데.

“후후후. 제법 막아냈잖아? 그럼 분위기도 무르익었으니, 이제 관객을 동원해 볼까?”

“무, 무슨 소리를…!”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

다시 알아듣지 못할 읊조림.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면 반드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사비강은 단지 손만 내뻗었을 뿐인데, 여운진 눈앞에 시커먼 기체가 응집되더니.

꽈아아앙!

강력한 폭발과 함께 벽이 무너지면서 여운진이 마당까지 튕겨 나가고 말았다.

“크으으윽!”

온몸에 화상을 입은 여운진이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바닥에 엎드렸다.

“자아, 이 정도 소란을 피웠으니 이목 좀 끌겠군.”

어느새 마당으로 걸어 나온 사비강이 주변을 스윽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여운진은 자신을 덮은 그림자를 보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돌아섰다.

사비강이 히죽 웃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러나?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잖아?”

‘이, 이 녀석은 괴물이다! 이길 수가 없어! 판단 착오다! 여길 벗어나야 해!’

하지만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비강이 천천히 손을 뻗어 왔다.

여운진의 눈동자에 절망이 가득 찼다.

“자, 그럼 계도를 시작해 볼까?”

“저, 저리가! 크아악!”

여운진의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

콰콰앙!

폭음이 들려 왔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천세명과 등부형이 흠칫거리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외딴 지역의 건물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사비강의 숙소다.

등부형이 찻잔을 내려 두고는 입을 열었다.

“시작된 모양입니다.”

“흐음. 그러게 말이오. 하지만 생각보다 요란하게 하는군.”

천세명이 짐짓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물론, 택마인주를 이마에 찍고 일부러 마공을 쓰도록 만들어야 하는 만큼 조용히 넘어가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소란스럽게….’

그러나 등부형은 걱정할 것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 어쩌면 더 좋은 상황인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놈이 마인이라는 게 확실하다면야 제대로 일을 벌이는 게 오히려 나을 테니까요.”

“하긴.”

“저 정도 소란인 걸 보면 아무래도 여 교관께서 제대로 짚었나 봅니다. 이제 놈은 빼도 박도 못할 테니까요.”

때마침 문이 열리면서 언벽이 들어왔다.

“들으셨습니까? 아무래도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들었소.”

“가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도들은 물론 교관들과 학장님까지 모두 사 교관 숙소로 향하고 있습니다.”

등부형이 천세명을 보았다.

“가시지요. 이제 드디어 놈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여 교관께서 확실히 놈을 정리하실 테니.”

“좋소. 일어나십시다.”

천세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섰다.

**

“맙소사. 저게 어떻게 된 거야?”

“저 복면 쓴 자는 누구지?”

“가만, 그런데 저 사람은 사비강 교관 아냐?”

“사비강? 그 사람이 누군데?”

“왜 있잖아. 얼마 전에 일년생 검법 정교관이 된 사람.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수업한다던데.”

“그럼, 저 복면인은 사 교관님을 습격한 건가?”

“그런 가봐. 이게 무슨 일이야?”

생도들이 복작복작 모여서는 마구 떠들었다.

워낙 큰 소란이었기에 일년생 생도들은 물론 이년생과 삼년생 생도들까지 모두 모여 웅성거렸다.

뿐만 아니라 용천관의 교관들도 모두 나와 마당을 에워쌌다.

그때 생도들 뒤에서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이 녀석들, 비켜라! 어서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겠느냐?”

“엇, 교관들이다!”

생도들이 얼른 흩어지며 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누구도 숙소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생도들 사이를 비집다시피 걸어 나온 자들은 다름 아닌 천세명을 비롯한 일년생 교관들이었다.

맨 앞선 줄까지 다다른 천세명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 곁에 있던 등부형도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뜬 채 말을 더듬었다.

“저, 저, 저게… 도대체 어떻게 된…!”

너무 충격적인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꽉 말아 쥔 사비강.

그의 왼손에는 만신창이가 된 복면인의 머리채가 잡혀 있었다.

피 범벅이 된 복면인의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지켜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복면인이 사비강의 바짓단을 잡고 애원했다.

“제, 제발… 그만…! 살, 살려 주…! 컥!”

퍽! 퍽! 퍽! 퍽!

사비강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저, 저러다가 죽는 것 아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몇몇 교관들과 생도들이 수군거렸다.

한편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천세명과 등부형은 입술을 쿡 씹고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말도 안 되는…!’

사비강의 이마를 자세히 살폈지만 붉은 점 따위는 없었다.

그때였다.

“멈춰라!”

심후한 공력이 담긴 목소리.

생도와 교관들이 흠칫거리고 돌아보자, 학장 주유천이 냉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침 누군가 황급히 달려와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용천관의 경계를 지키는 방호대(防護隊) 조장이었다.

주유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그쳤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죄송합니다! 경계가 뚫렸을 줄은 미처….”

주유천이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복면인은 외부 침입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사비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보게.”

마침 주먹질을 해대던 사비강이 복면인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지금부터 잘 봐. 남을 속이려거든 이렇게 하는 거야.”

말을 마친 그가 짐짓 송구한 표정을 한껏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죄송합니다, 학장님! 제가 그만 분을 참지 못하고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복면인이 제 침소에 잠입해서 절 습격하려고 했기에 대응이 조금 지나쳤습니다.”

“흐음. 네놈은 정체가 무엇이냐?”

주유천의 사나운 눈길이 이번에는 복면인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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