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4화 (14/670)

# 14

귀환 마교관

14화

홍염은 착잡한 심정으로 하늘을 가릴 만큼 우거진 침엽수를 올려다보았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건가?’

애초에 용천관에서 온 의뢰를 맡는 것이 아니었다.

괜스레 아랫배에서 통증이 올라오는 것만 같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배에 쑤셔 박혀 자신의 피를 꿀꺽꿀꺽 마셔대던 검.

그리고 귀신처럼 웃어대던 사비강.

도대체 그런 자가 어찌 용천관의 교관이란 말인가?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헉!”

홍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아섰다.

‘어느 틈에!’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귀영부에서 부주를 제외하면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신이 아니던가?

‘뭐 이리 귀신같은…!’

“뭐야? 그 표정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군.”

“아, 아닙니다. 부르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홍염은 깍듯하게 물었다.

눈앞의 이자는 단 하루 만에 귀영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자다.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건 없다.

사비강이 씩 웃으며 종이를 건넸다.

“거기 적힌 사람을 찾아줘.”

“구우중(寇雨中)…?”

“뭐 본명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 이름을 쓰고 있을 테니까.”

“이자가 누굽니까?”

“그건 몰라도 돼. 찾기나 해.”

홍염이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중원에서 이름 석 자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자, 여기. 그자가 있을 만한 장소를 적었다. 그곳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반드시 있을 거다.”

사비강이 다시 종이를 꺼내 던졌다.

홍염이 눈살을 찌푸린 채 종이에 적힌 지역을 훑었다.

그러다가….

“여, 여긴…!”

“왜? 아는 곳인가?”

사비강이 짐짓 딴청을 피우며 물었다.

홍염이 사색이 된 표정으로 외쳤다.

“불가! 절대 안 됩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라니! 여긴 금역(禁域)이 아닙니까?”

“흐음. 참고로 말하자면 거기 적힌 곳 모두가 네가 말하는 금역이다. 후후후.”

홍염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내 그가 몸서리를 치듯 말했다.

“갈 수 없습니다! 절대로! 차라리 다른 일을 맡겨 주십시오!”

“지금은 그게 네가 맡을 일이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어이.”

“예?”

사비강의 눈빛이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찾아라.”

“하,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귀영부의 본부와 지부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어. 점조직 형태까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

“강호에서 온갖 은원 관계로 얽힌 귀영부가 아직까지 건사한 건 아마도 철저한 비밀 조직이기 때문이겠지. 그 이름처럼 흔적을 찾기 힘든. 하지만 내가 입을 열면 어떻게 될까? 네놈들은 정사를 막론하고 강호에서 첫 번째 제거 대상이 될 거다. 굳이 내가 나설 것도 없지. 어때? 좀 피곤하게 살아보고 싶어?”

“그, 그건….”

“내가 그러지 않는 이유는 네놈들이 이용 가치가 있어서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네놈들 씨를 말리는 건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도 쉬워.”

꿀꺽.

홍염은 마른 침을 삼켰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사비강의 눈빛이 자신의 온몸을 뚫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자는 분명 그러고도 남을 자다. 실제로 귀영부의 씨가 마를 수도 있다.’

당해내기 힘들만큼 강한데다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조직의 모든 정보와 계획까지 낱낱이 알고 있다.

엄청난 압박감.

사비강이 냉랭하게 말했다.

“찾아라.”

“알…겠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찾아내도록.”

“얼마나 빨리….”

“칠주야.”

“그건 말도 안 되는….”

말을 쏟아내려던 홍염은 사비강의 서늘한 시선을 마주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결국 그가 고개를 숙였다.

복종의 의미였다.

**

“제길!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거야?”

“짜증나서 못해 먹겠어.”

계곡에 몸을 담은 생도들이 연신 불만을 터뜨렸다.

하지만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은 사비강은 콧노래마저 흥얼거리며 빙어를 먹고 있었다.

연우경은 투덜거리는 생도들과 사비강을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한쪽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염자량이 계곡물에 몸을 담은 채 우두커니 서서 수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 일 저질렀다면서?”

어느새 곡보옥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연우경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교관의 검을 훔쳤지.”

“저걸?”

곡보옥이 놀란 눈으로 사비강의 허리춤에 매인 검을 보았다.

대충 염자량과 사비강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소문만 나돌 뿐이었기에 자세한 상황은 모르고 있었던 터였다.

곡보옥이 킬킬 거렸다.

“저놈도 꽤 미친놈이군. 그런 짓까지 할 줄이야. 큭큭. 그래서 어떻게… 어? 어디가?”

연우경은 대답 대신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한편 계곡에 몸을 담고 있던 염자량은 마치 뭔가에 정신이 빼앗긴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달라. 확실히.’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모든 감각이 다르다.

의식을 되찾은 이후부터 줄곧 느껴오던 기분.

마치 새로 태어난 것만 같다.

‘정말 그거 때문인가?’

염자량은 사비강이 자신을 따로 불러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재능을 엉뚱한 곳에 쏟지 마라. 한 번은 용서하지만 두 번은 없다. 그리고 네 몸은 그 재능에 맡게 좀 주물러 두었으니 그리 알아라.”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서 있었다.

따져 물었더니, 귀찮으니까 꺼지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땐 홧김에 나와 버렸는데…. 이거였나?’

마침 수면 아래로 헤엄치는 빙어가 보였다.

아니, 느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까?

염자량은 물속으로 잠겨 들었다.

‘빙어라….’

첫날 몇 차례 시도는 해보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빙어를 상처 하나 입히지 않고 온전히 손에 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런데….

‘왠지 지금이라면…!’

순간, 염자량이 손을 스윽 뻗어냈다.

손바닥에 미끄러운 감촉이 전해져 왔다.

그가 가볍게 주먹을 쥐니 빙어 한 마리가 손바닥 안에 쏙 들어왔다.

‘잡았어!’

“푸학!”

수면 위로 올라와 손을 들어보니 정말로 손바닥에 빙어가 있었다.

녀석은 퍼덕거리면서 순식간에 손바닥을 벗어났다.

‘잡았다! 정말 잡았어!’

왠지 이런 식이라면 하루에 수십 마리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였다.

“이야기는 들었소. 아깝게 됐소.”

돌아보니 연우경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염자량이 쓴 웃음을 지었다.

“뭐, 그리 됐소.”

“그런 일을 계획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소. 비록 실패했다지만 정말 놀라웠소.”

염자량은 어깨만 으쓱일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연우경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염 형이라면 겨우 이만한 일로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오. 이번 일은 아깝게 됐지만, 나는 염 형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오.”

“그렇소…?”

“물론이오. 지난번은 운이 나빴지만 다음엔 분명 성공할 수 있을 거요.”

염자량이 쓴 웃음만 짓고 있자 연우경이 얼른 말을 붙였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게 무슨 수업이오? 겨우 빙어를 먹으려고 우리 생도들을 이용해 먹고 있지 않소? 저런 사람을 교관으로 고분고분 따르게 된다면 앞으로도 분명….”

“관뒀소.”

문득 들린 목소리에 연우경이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교관 길들이기 말이오. 나는 관두겠소.”

“어째서…?”

염자량의 시선이 사비강에게 향했다.

신나게 빙어를 먹어대고 있는 저 사람이 자신에게 냉랭한 표정을 짓던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피식 웃어 버린 그가 답했다.

“보시오. 저런 사람을 길들이는 게 가당키나 하겠소?”

“하, 하지만 제대로 시도해 보지 않으면…!”

“이미 난 시도해 봤소. 철저히 깨져 버렸지만. 모든 예상이….”

“그렇다고 지금 포기하는 건….”

“포기가 아니오. 그냥 의미가 없다고나 할까? 그도 아니면… 좀 유치하달까?”

유치…?

연우경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감히 자신에게 유치하다는 소리를 한 건가?

분노가 차올랐지만 연우경은 애써 차분하게 대꾸했다.

“실망이오. 나는 염 형이 이렇게 쉽게 물러날 줄은 몰랐소.”

“나도 몰랐소. 하지만… 사 교관은 나보다 더 모를 사람일 거요. 앞으로도.”

연우경은 어금니를 뿌득 갈고는 몸을 휙 돌렸다.

패잔병과 더 이상 대화를 나누는 건 시간 낭비다.

그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연 형도 그만 두는 게 좋을 거요. 어쩌면 사 교관은 우리 생각을 훨씬 뛰어넘을 지도 모르겠소.”

연우경이 돌아보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후후. 참고하지요. 하나, 나는 그리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두고 보시오. 기대해도 좋소.”

“기대하겠소.”

염자량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그는 멀어져 가는 연우경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 조금 다른 의미로 기대지만.”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사비강에게 향했다.

사비강은 여전히 쩝쩝거리며 빙어를 먹어대고 있었다.

‘으으. 역시 내가 잘못 본 걸까?’

머리가 복잡한 염자량이었다.

**

우우웅.

베르타스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사비강이 이맛살을 구기고는 베르타스를 뽑아 들었다.

스르릉.

푸른 검신이 빛을 받아 번뜩였다.

살이 닿기만 해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예기.

범인이라면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리라.

우우웅! 웅웅!

떨림이 조금 더 심해졌다.

‘젠장. 조용히 좀 해!’

손잡이를 쥔 채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브브브브브!

그 순간 베르타스가 격렬하게 떨어댔다.

마치 힘으로 제압당할 수 없다는 듯.

사비강은 베르타스에 불어넣은 마력이 다시 되받아쳐지는 것을 느꼈다.

“큭.”

역시 베르타스는 보통 검이 아니다.

마왕을 따르던 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냐, 네놈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부아가 치민 사비강이 이를 부득 갈고는 양손으로 베르타스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드드드드드!

베르타스가 몸부림을 치듯 떨어댔다.

검신은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사비강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힘겨루기를 했을까?

꽈앙!

둑이 터져 무너지듯 마력에 저항하던 무언가가 사라지면서 사비강이 뿜어낸 기운이 베르타스에 줄기줄기 흘러들어갔다.

검신도 다시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후우, 후우, 후우.”

사비강이 심호흡을 하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걸로 한동안은 잠잠하겠군.’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며칠이 지나면 또 다시 녀석은 몸부림을 칠 터.

“역시 그게 필요한가?”

사비강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어두운 밤.

사비강의 침소.

시커먼 그림자가 실내로 스며들었다.

상당히 뛰어난 은신술이었다.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어둠 속에 녹아든 모습이 며칠 전 염자량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야말로 귀신처럼 홀연하게 걸음을 옮긴 복면인은 순식간에 침상 곁에 다가와 섰다.

사비강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후후. 잘 자는군.’

복면인, 여운진이 사비강을 바라보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마에 점만 찍으면 되는 일.

그 후에는 깨어나도 상관없다. 아니, 깨워야만 한다.

그래야 위협을 느낀 사비강이 마공을 사용할 것이기에.

어디까지나 상대가 마공을 사용할 정도로만 위협하면 된다.

실제로 암살을 할 필요도 없다.

만약 상대가 마공을 쓰기만 하면, 그땐 죽여도 좋은 일이다.

그렇게만 되면 자신은 용천관의 영웅이 되리라.

사악한 마인을 때려죽인 위인!

여운진은 사비강이 마공을 익혔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랬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흐흐흐. 넌 이제 끝이다!’

그의 손가락이 사비강의 이마에 막 닿으려는 순간, 곤히 자고 있던 사비강이 눈을 부릅떴다.

“헉!”

그가 반사적으로 물러나려는 순간.

탁.

사비강이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

“이익!”

여운진이 손에 공력을 집중하며 팔을 빼내려는데.

파밧!

“엇?”

눈앞에서 사비강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이건 무슨…?’

마치 귀신에 홀린 표정을 짓는데.

“내게 용무가 있으신가?”

귓가에 들리는 서늘한 목소리.

어느새 등 뒤에 선 사비강이 일장을 내질렀다.

여운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틀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

콰지직! 퍼엉!

푸른빛의 구슬이 가슴에 작렬하며 폭발했다.

“크아악!”

그대로 튕겨나간 여운진이 방바닥을 한참이나 굴렀다.

여운진이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켰다.

‘저, 저 놈! 틀림없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은 처음이다! 마공이다! 역시 마공이야! 이 개새끼! 정말로 마공을 익혔구나!’

그러는 사이, 사비강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물었잖아. 용무가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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