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13화 (13/670)

# 13

귀환 마교관

13화

“마공(魔功)을?”

천세명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있던 교관들 모두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여운진을 바라보았다.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 다투어 질문이 쏟아졌다.

“그게 정말이오?”

“마공이라니! 허어!”

“어쩐지 그 짧은 시간에….”

어떤 이는 혀를 차고, 어떤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며, 어떤 이는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정도맹 산하 용천관의 교관이 마공이라니!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천세명이 제지하고 나섰다.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오.”

그러자 수군거리던 교관들이 입을 다물고는 시선을 모았다.

천세명이 여운진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혹, 그리 의심하는 이유가 있소?”

“물론입니다.”

“어떤…?”

여운진은 두 생도들에게 들은 진술과 등부형과 함께 목격했던 그날 밤의 일을 전해 주었다.

대략의 설명을 끝낸 그가 말을 덧붙였다.

“생각할수록 이상하지 않습니까? 염자량은 복부를 관통할 정도로 깊이 찔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처는 얕다? 하지만 저희가 비명소리를 듣고 갔을 땐 바닥에 흘린 피가 상당했고, 깊어 보였던 내상은 다음날 아침에 완치되었습니다. 뭐 하나라도 일치하는 게 없지 않습니까?”

“과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로군.”

“사 교관이 사이한 술법을 쓰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틀림없이 마공입니다.”

“하지만 그걸로 단정 짓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소. 실제로 염자량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고.”

“만약 염자량이 환각을 보았다고 쳐도 문제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그 아이가 쥔 검이 ‘마검(魔劍)’이라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등부형이 거들고 나섰다.

“사실 사 교관의 기도가 하루아침에 바뀐 것도 수상합니다. 모두가 느끼시겠지요. 그의 성정마저 어딘지 변한 것 같다는 사실을.”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여기 모인 자들이 천세명의 측근이어서가 아니었다.

이는 객관적으로도 명백한 사실이었으니.

등부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해가 좀 되는군요. 제 자하낙인도가 일격에 부서졌다는 것이. 역시 마검이었던 게 틀림없습니다.”

이쯤 되자 다른 교관들도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로 흘렀다.

“그렇지. 따지고 보면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군.”

“귀야채주를 그리 빨리 제거했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거늘.”

“그런 자를 교관으로 앉힐 수는 없지요.”

“지금 당장 학관에서 내쫓아야 합니다. 아니, 목을 쳐도 시원찮습니다.”

하지만 천세명은 보다 신중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오. 결정적인 증거가 없지 않소? 매우 의심이 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제게 맡겨 주시면 이번 일을 확실히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다만 필요한 게 있습니다.”

여운진이 눈을 빛냈다.

천세명이 돌아보았다.

“그게 무엇이오?”

“택마인주(擇魔印朱)가 필요합니다.”

무색무취의 가루다.

과거 정마대전 때 마인을 가려내는 방법으로 정도맹이 사용했던 것이다.

택마인주를 이마에 찍어 두면 평소에는 흔적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마공을 사용하고 나서 반나절 안에 점을 찍거나, 점을 찍고 나서 반나절 안에 마공을 사용하게 되면 이마에는 붉은 반점이 나타난다.

즉 택마인주를 이마에 찍는 순간을 기준으로 반나절 전후 내에 마공을 사용했을 경우에는 무조건 붉은 반점이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한 번 생긴 점은 대략 한 달 동안 유지된다.

때문에 상대는 만천하에 마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하지만 사 교관이 택마인주를 순순히 찍으려고 하겠소?”

정마대전 때야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그랬다 쳐도 아니, 그때조차도 정도인에게 택마인주를 권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였다.

하물며, 지금이라면?

“당신 무공이 매우 수상하니 마공인지 아닌지 어디 확인 좀 해봅시다.”라고 한다면?

칼부림부터 일어나지 않는 게 다행이리라.

더구나 상대가 정말 마공을 익혔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든 찍으려 하지 않으리라.

게다가 찍어 두고 반나절 동안 마공을 쓰지 않으면 효과도 없다.

그러니 택마인주를 사용해도 상대의 무공이 정공인지 마공인지 구분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건 바로….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해야겠지요. 마공을.”

“그 말은?”

“어차피 사 교관이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 낙인을 찍는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몰래 찍을 생각입니다.”

“몰래? 도대체 어쩔 생각이오?”

여운진이 생각해 둔 계략을 전해 주었다.

한참 후, 천세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하지만 위험 부담이 있지 않겠소? 만약 사 교관이 정말로 마공을 익혔다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기회도 없는 법이니까요. 그때는 무조건 이마에 낙인이 남을 테니, 혹 제가 당하더라도 학관을 위해 그만한 업적을 남긴다면 다행일 뿐이지요.”

말은 자못 비장한 척 했지만, 내심 자신이 있기에 하는 말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비강은 학관에서 가장 약한 교관이었다.

부신각주의 입김이 없었더라면 용천관의 교관도 되지 못했으리라.

‘제까짓 게 마공을 익혀 봐야 얼마나 차이가 나려고.’

천세명은 여운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용천관 교관의 탈을 쓰고 마공을 익힌 늑대 새끼를 키울 수는 없지. 내, 여 교관만 믿겠소.”

“후후. 맡겨 주십시오.”

천세명은 든든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확실히 여운진은 믿음직스럽다.

가려운 부분을 긁을 줄 안다고나 할까?

특목반을 구성한 것도 그렇고,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

“여 교관이 아니었으면 학관의 생활이 참으로 고달플 뻔 했소이다.”

“과찬이십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훈훈한 대화를 이어 갔다.

**

싸늘한 바람이 사비강의 머리카락 끝에 한참이나 매달렸다.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그는 전병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저만치 보이는 건물을 가만히 응시했다.

마침 건물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전병을 씹던 사비강이 눈을 빛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천세명을 비롯한 교관들.

‘흐흐. 밀실 회담이 끝난 모양이군.’

예상했던 대로다.

여운진과 등부형이 그날 밤의 일을 목격했으니,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적어도 자신이 기억하는 저들은 그런 부류다.

아마 지금쯤 눈엣가시인 자신을 어떻게든 내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리라.

그날 밤, 그 두 사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한 이유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자신의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자들이다.

이왕 손을 봐야 한다면 그쪽에서 먼저 움직여야 이쪽에서도 빌미를 잡고 행동하기가 수월하다.

사비강은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의 면면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입 모양에 따라 대략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짐작해 가면서.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망원경 효과를 주는 위저드 아이(Wizard eye)를 사용했기 때문에, 사비강은 그들의 얼굴 표정과 안면의 주름까지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교관들은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기분 좋게 헤어졌다.

‘후후.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웃어 둬라.’

사비강이 싸늘하게 웃고는 나뭇가지를 밟고 일어섰다.

‘어디 염장 좀 질러볼까?’

그가 나무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여운진이 흠칫 걸음을 멈추고는 돌아보았다.

‘어느새?’

사비강이 건물 틈에서 걸어 나오며 활짝 웃었다.

이토록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니.

‘나도 너무 들떠 있었군.’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짐짓 밝은 미소로 답했다.

“아, 사 교관님이시군. 그렇잖아도 한 번 뵙고 싶었소.”

“나를? 왜요?”

어딘지 격식도 없는 대화 방식에 여운진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확실히 성격이 변했다. 과거 같으면 지나치게 예법을 따지며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던 자가.’

그는 곧 생각을 거두고 답했다.

“아, 얼마 전에 교관님이 담당하시는 생도 둘이 다치지 않았소? 제가 이래봬도 생도부장으로서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입장이다 보니. 하하하.”

“그 문제라면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무사하니까.”

‘물론 무사하겠지. 하지만 그게 더 이상하다는 거다!’

여운진이 속생각을 갈무리하며 다른 말을 꺼냈다.

“등 교관님으로부터 들었소. 사 교관의 무공 수위가 굉장하다고요. 참으로 훌륭하시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 보통은 단 일격에 자하낙인도를 부숴 버릴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나뭇가지로 쇠붙이를 때리면 당연한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나뭇가지?

자하낙인도를 한낱 나뭇가지에 비교하다니.

등부형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입에 게거품을 물었으리라.

“하하. 재미있는 말이오. 한데 그렇게 훌륭한 검을 어디서 구했소?”

“오다 주웠습니다.”

“오다… 주워?”

사비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거짓은 아니다.

이 세상에 주인이 있는 물건도 아니고, 어디선가 훔친 것도 아니니.

하지만 내막을 알 리 없는 여운진은 사비강의 대답이 성의 없다고만 느낄 뿐이었다.

“허허. 재미있소. 한데 사 교관께서는 어찌 그리 하루아침에 강해지셨소? 뭔가 비책이 있으면 나에게도 좀 알려 주시구려.”

어찌 보면 노골적인 의심이었다.

사비강이 씩 웃었다.

“사실 기연을 얻었습니다.”

“기연? 영약이라도 복용한 거요?”

“뭐, 그런 셈입니다.”

“그런 셈이라…? 하면 그 영약은 어디서 구하셨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여운진은 끝까지 노골적으로 몰아붙였다.

사비강이 이번에도 툭 던지듯 대꾸했다.

“그것도 오다 주웠습니다.”

이쯤 되자 여운진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아마 제대로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리라.

‘내가 이렇게 노골적인 의심을 쏟아 붓는데도 네놈이 끝까지 함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으렷다. 틀림없구나! 마공을 익힌 것이!’

마침 여운진을 가만히 보던 사비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뭐가 말이오?”

여운진이 짐짓 퉁명스레 쏘아 붙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 교관님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똥이라도 씹은 표정이십니다.”

‘이익!’

여운진은 내심 이가 갈렸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지금 여기서 발끈하면 자신이 진 것이다.

“하하. 그럴 리가. 아무튼 사 교관의 재치 있는 대화에 잠시나마 즐거웠소.”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다음에 또 보십시다.”

“그러시지요.”

“참, 사 교관께서 원치 않는다고 하여 그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았소.”

“감사합니다.”

“하지만 충고 하나 하겠소. 요즘 애들은 쉽게 보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소. 조심하시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의 저를 쉽게 보다간 더 크게 다칠 테니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충고해 주고 싶군요.”

사비강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여운진을 가리키는 듯하더니 이내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여운진은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멀어져 가는 사비강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틀림없다. 저놈! 마공을 익히고선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오냐, 내일 밤이면 내가 너의 가면을 모조리 벗겨 주마! 기다려라!’

**

“곧 봄이 오겠구려.”

창밖을 바라보던 은기륭이 하얀 수염을 쓸며 말했다.

그의 뒤에 곧은 자세로 서 있는 학장, 주유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마치 봄을 운운하기에는 아직도 춥지 않느냐는 듯.

용천관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태사전(太師殿) 오 층.

관주인 은기륭이 머무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처음 이곳에서 전경을 보았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더랬지.”

“…….”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오. 이곳에서 수많은 전각들과 생도들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가슴이 벅차오른다오.”

“…….”

“정말 멋진 광경이지. 하나, 조금만 더 세밀하게 보다 보면 곳곳에 지저분한 것들도 많이 보인다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그제야 묵묵히 듣기만 하던 주유천이 살짝 고개를 들고는 은기륭의 뒷모습을 보았다.

은기륭은 쓴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어떻소? 새로 임명된 일년생 정교관은?”

역시 그것에 관한 것이었나.

주유천이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감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직은 뭐라 평하기가 이르다 봅니다. 그저 학장으로서 관칙에 따라 평할 뿐입니다.”

은기륭이 빙그레 웃었다.

주유천의 대답에서 그의 성정이 느껴졌다.

“생각지 못한 인사였기에 생도와 교관들 사이에서도 반감이 상당하다 들었소.”

“제 입장에서는 그저 관칙에 따라서 처리할 뿐입니다.”

한결 같은 대답.

이럴 때 보면 참 고집스럽다.

그렇기에 그에게 ‘학장’이라는 직책을 맡긴 것이지만.

주유천은 그런 자다.

철저히 규율과 질서에 따르는.

그러다 보니 자그마한 틈도 쉬이 용납하지 않는다.

때문에 주유천의 입장에서는 세속의 욕망에 찌든 교관들이나, 애초에 부신각주의 뒷심으로 들어온 사비강이나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거다.

은기륭이 탁자로 걸어가 찻잔을 채웠다.

또로롱.

맑은 소리가 울렸다.

“혹여 새로운 바람이 용천관에도 봄을 가져다줄지 모를 일이 아니겠소?”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지 않습니까? 황하의 물이 백년이 지나도 맑아지지 않듯, 이미 균열이 가버린 벽이 다시 붙을 리야 없겠지요.”

“부정적이구려.”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때론 아주 작은 틈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법. 이미 위태로울 만큼 균열이 갔다면 차라리 치명적인 균열로 완전히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

은기륭이 찻잔을 들어 주유천에게 권했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던 주유천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잔을 받아 들었다.

“그저 관주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그것이 모든 관칙에 있어 우선하기에.”

묘한 대답.

어찌 보면 관주의 말에 충성하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관칙 위에 서 있는 관주를 은근히 질책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은기륭은 그저 말없이 웃었다.

‘아마 그대도 언젠간 내 뜻을 알아주리라 생각하오. 지금은 규율과 법리보다는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그자에게 한번 기대를 걸어보고 싶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