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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마교관-10화 (10/670)

# 10

귀환 마교관

10화

마침내 불만이 터져 나왔다.

정확히 수업을 시작한 지 닷새 째였다.

“더 이상 이런 수업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천화상단의 이 공자인 염자량(廉子亮)이었다.

그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자, 다른 생도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모두 도전적인 눈빛으로 사비강을 보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틴 것은 사비강이 첫날 보여준 무위 때문이었다.

짜고 친 판이든 뭐든, 그가 등부형의 칼을 일격에 박살낸 것은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기에.

하지만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생도들의 의지가 눈빛에서부터 읽혀졌다.

사비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생도들을 훑어보았다.

“계속해라.”

“싫습니다!”

염자량이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벌써 닷새째.

사비강은 생도들에게 검을 갈도록 지시했다.

그게 벌써 닷새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사비강이 도전적으로 쳐다보는 생도들을 향해 눈을 내려 깔며 입을 열었다.

“검을 가는 것은 단지 검신을 벼리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벼리고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할 셈이겠지요?”

염자량이 말을 가로채자 몇몇 생도들이 키들거리며 웃었다.

사비강이 잠시 염자량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좋아, 뭐가 문제냐?”

“솔직히 우리가 보기에는 교관님께서 가르칠 실력이 없으니, 그저 검이나 갈게 두고는 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후후. 네놈들이 내 뜻까지 헤아릴 수 있다는 거냐?”

“아, 예에. 물론 어렵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저희들은 활동적인 수업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자 염자량과 항상 붙어 다니던 생도 조문탁(趙文卓)이 불쑥 나서며 거들었다.

“맞습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칼만 갈아대니 좀이 쑤셔서 못 살겠습니다. 주야장천 앉아만 있으니 아침에 똥도 싸기 힘듭니다!”

생도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사비강은 그런 생도들을 묵묵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활동적인 수업이라. 그것도 좋지.”

의외로 사비강이 순순히 인정하자 생도들은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왠지 더 불안한데?’

‘또 무슨 꿍꿍이지?’

사비강이 술렁거리는 생도들을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따라와라.”

**

“도저히 못해 먹겠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염자량이 주먹을 거칠게 내리쳤다.

첨벙!

그의 주먹질에 수면이 튀어 오르며 물보라가 일어났다.

주변의 생도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용천관 인근의 봉추계곡(鳳雛溪谷).

꽤 너른 너비에 깊이도 있어서 한창 더운 여름철에는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는 생도들도 많은 곳.

하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생도들은 결코 물놀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물놀이를 하기에는 상당히 추운 날씨.

아직 물가에는 살얼음이 녹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생도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계곡 속에 몸을 담고 있었다.

“어이, 거기 뭐하는 거냐? 벌써 다 잡았냐?”

마침 물가의 커다란 바위에 앉아 있던 사비강이 이쪽을 보며 소리쳤다.

염자량이 잠시 그를 쏘아보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왜 저딴 녀석이 담임 교관이 되어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활동적인 수업’을 진행하겠다던 사비강은 생도들을 모두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생도들에게 뜬금없이 빙어를 잡도록 지시했다.

남녀불문 일인당 다섯 마리.

단, 맨손으로 잡아야 하고 크기는 손가락 세 마디를 넘기지 말아야 하며, 어떠한 상처도 없이 살아서 움직여야 한다.

낮은 수온에서만 사는 빙어는 날씨가 풀려 가는 철이었기에 제법 깊은 수심에서만 잡을 수 있었다.

때문에 녀석을 잡으려면 물속으로 완전히 잠겨 들어 손을 뻗어야만 한다.

게다가 이 추위에 동상에 걸리지 않으려면 지속적으로 내공을 운기 해야만 한다.

그야말로 극한의 훈련.

하지만 겨우 빙어를 잡는 것이 무공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게다가 생도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또 있었다.

빙어를 잡는 족족, 사비강이 홀라당 먹어 버린다는 점.

이래서야 마치 빙어를 먹고 싶은 교관에게 싱싱한 음식을 갖다 바치는 꼴이지 않은가?

그러니 특목반에 속한 모든 생도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특히 경장이 물에 젖어 자꾸만 신경 쓰는 여자 생도들은 연신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우리가 왜 이 추운 날씨에 물에 젖어 가며 빙어나 잡아야 해?”

“차라리 칼이나 가는 게 나을 뻔했어.”

“괜히 교관 성질만 건드린 것 아냐? 분명히 보복 심리로 이러는 걸 거야.”

“방금 이쪽을 음흉한 눈길로 쳐다본 것 같아. 아, 정말 기분 나빠.”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생도들이 저마다 투덜거렸다.

남자 생도들도 마찬가지.

그들 중에는 언뜻 염자량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들려 왔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던 연우경이 피식 웃으며 염자량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생도들은 불만이 많은 것 같소. 차라리 칼이나 가는 게 낫다고 할 정도구려.”

염자량이 눈을 부라리다가 곧 상대가 연우경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패검연가의 연우경은 함부로 건드려서 좋을 것이 없다.

집안으로 보나 개인의 무공으로 보나 자신이 나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염 형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 있소.”

연우경이 호의적으로 다가오자 염자량이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연우경은 희미하게 웃으며 염자량의 어깨를 두드렸다.

“같은 생도로서 나는 염 형을 응원하고 있소. 이것만은 내 진심이오. 부디 이대로 당하지만은 말아 주시오. 우리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오.”

염자량은 순간 전율이 일었다.

패검연가의 이 공자가 ‘우리’라고 해주었다.

마치 같은 편인 것처럼!

패검연가가 어떤 곳인가?

현 강호에서 높은 위상을 떨치고 있는 가문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런 가문의 이 공자와 두터운 친분을 쌓는다면…!

‘아버지께서 날 인정해 주실지도!’

늘 ‘쓸모없는 둘째 놈’이라는 수식을 입에 달고 사셨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부각시킬 수 있으리라.

염자량이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다부진 표정으로 답했다.

“내 생각 또한 연 형과 같소! 내 반드시 저 교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것이오! 기대해도 좋소!”

연우경이 빙그레 웃었다.

“역시 염 형과 나는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내 연 형을 믿겠소.”

“물, 물론이오!”

염자량은 연우경이 내민 손을 굳게 맞잡았다.

그때.

“니들 뭐하냐? 물속에서 남색이라도 즐기는 거냐?”

무심코 고개를 돌렸던 염자량과 연우경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러섰다.

“헉! 뭐, 뭡니까?”

어느새 사비강이 바로 곁에서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어, 어느 틈에!’

연우경이 반사적으로 물가의 바위를 바라보았다.

바위부터 여기까지는 제법 되는 거리.

더구나 물속인 만큼 더욱 기척을 느꼈어야 하건만.

연우경의 놀란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비강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둘을 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쳇, 상상해 버렸더니 기분이 더러워졌어.”

“뭘 멋대로 상상하는 겁니까!”

“이상한 상상 하지 마십시오!”

연우경과 염자량이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 바람에 빙어 잡기에 열중하던 생도들이 모두 이쪽을 돌아보았다.

“어? 교관님이 언제 저기에 가셨대?”

“그러게. 바위에 앉아 있지 않았나?”

다른 생도들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남색이 아니면 뭐였냐? 계집애들처럼 수다 떠는 거였냐?”

“무, 무슨 상관입니까?”

“너희들을 계도하는 교관으로서 장점을 발견하면 그것을 더욱 부각시켜주어야 할 테니까. 어때? 일하기 좋은 기루(妓樓)라도 알아주랴? 거기서도 지금처럼 손잡고 웃으며 수다 떨면 된다. 그런데 남자도 받아줄지 모르겠네.”

이쯤 되자 지켜보던 몇몇 생도들마저도 웃음을 참지 못해 풋, 하고 터져버렸다.

연우경과 염자량은 주먹을 쥐고는 바들바들 떨며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염자량이 씹어 뱉듯이 말했다.

“교관이라면… 적어도 합당한 이유를 대고 생도들에게 훈련이든 뭐든 시켜야 할 것이 아닙니까? 물속에서 도대체 이게 무슨 수업입니까?”

“흐음. 어차피 이유 따위는 지금 내가 말해 줘도 너희들은 이해 못해.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라. 계집애처럼 수다 떨지 말고.”

“그 말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사실은 개뿔 실력도 없는데 허세만 부리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그저 빙어가 먹고 싶어서 이러는 것 아닙니까?”

상황이 다시 심각해지자 생도들의 표정도 굳어 갔다.

사비강 역시 정색을 하고는 염자량을 보았다.

순간 염자량은 오한이 끼쳐 오는 것을 느끼고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사비강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내 능력에 의구심이 들면 언제든 덤벼.”

“뭐라고요?”

“암살이든 뭐든 상관없다. 얼마든지 받아주지. 단, 실패했을 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를 각오로 덤벼라. 만약 너희들이 날 죽일 수 있게 되면, 스승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죽어 주지.”

말을 마친 사비강이 히죽 웃어보였다.

그 웃음이 어찌나 괴기스러운지 염자량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때 생도 한 명이 소리쳤다.

“교관님, 잡았습니다.”

“오냐, 가마!”

사비강이 걸음을 옮기기 전, 염자량을 힐끔 돌아보았다.

“아, 네가 말한 것 중에 빙어가 먹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말은 정답이었다. 후후후.”

염자량은 저만치 멀어져 가는 사비강을 보며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뭐, 저런 교관이 다 있어?”

그런 염자량에게 연우경은 묵시적인 시선을 한 번 보내고는 돌아섰다.

염자량이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언제든지 덤비라고? 두고 봐라. 그 말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그의 시선은 사비강의 허리춤에 채워진 베르타스를 향하고 있었다.

한편 다시 바위에 앉아 생도들이 가져다주는 빙어를 실컷 먹어치운 사비강은 배를 어루만지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오늘은 이쯤에서 종료할까?’

아직까지 계곡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생도들이 대다수였다.

사실 물속에 완전히 잠겨들어 맨손으로 빙어를 잡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공으로 몸을 따뜻하게 보호해야하는 것은 물론이요, 부력에 저항하며 물속으로 가라앉아야 하고, 움직이는 빙어를 잽싸게, 혹은 부드럽게 감싸 쥐어야 하는 일.

단지 무공 수준이 높다고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칫 내공을 이용해서 잡으려다가는 빙어가 터져버리거나 기절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법 소질이 보이는 녀석들도 있군.’

사비강의 시선이 물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빙어 다섯 마리를 모두 잡은 생도들이 몸을 말리며 운기하고 있었다.

물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항 심리 때문에 일부러 미적거리는 녀석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래봐야….

‘너희들만 손해야. 후후.’

추운 물속에서 지속적으로 운기를 하며 시간을 때워야 하니 보통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리라.

사실 이 빙어잡기는 그가 마계에 있을 때 자주 수련하던 방법 중 하나다.

마나를 다스리는 일.

그것은 마치 물속에서 유영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또한 마나를 다룬다는 것은 마치 물속에서 송사리를 내 마음대로 다루는 것처럼 섬세하고도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즉 훗날 자신의 생도들이 마나를 다루게 된다면 반드시 적응해야 할 문제.

‘때가 되면 너희들은 나에게 감사할 날이 반드시 온다. 그러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내가 너희들을 최고의 전사로 만들어 줄 테니!’

사비강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생도들을 훑어보았다.

여기 있는 생도들은 훗날 자신의 최정예 수하들이 될 것이다.

생도들은 아직 그러한 운명을 전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반드시 그리 될 거다. 그리고 나를 도와 마왕의 목을 따게 되겠지. 그것이 나의 복수를 위한 길이자, 중원을 구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서 시작하되 종국에는 중원 전체를 흔들어 움직이고 다듬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차츰차츰 다져 나가면 될 일.

사비강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깊은 생각에 빠져 갔다.

한편 여자 생도들은 젖은 옷자락이 몸에 착 달라붙는 바람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몇몇 여자 생도들이 제멋대로 오해하며 기분 나쁜 표정으로 속삭였다.

“어머, 뭐니? 방금 내 몸을 훔쳐본 것 같아.”

“지금도 이쪽을 보고 있잖아.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정말 음흉해!”

그런 여자 생도들을 본 염자량이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변태 같은 교관!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라. 내일 아침 일어나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져 있을 테니.’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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