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 마교관-7화 (7/670)

# 7

귀환 마교관

7화

“내통 흔적이 전혀 없다?”

“그, 그렇습니다.”

등부형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뭔가 하나 건질 줄 알았건만.

귀영부에서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다시는 이런 임무를 맡지 않겠다며 연통을 보내온 후 잠적해 버렸다.

무슨 일인지 상세히 알아보고 싶었지만, 연락 체계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접근이 불가능했다.

귀영부는 그런 조직이었다.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의뢰를 받고 수행하는.

그러다가 조직에 위해가 된다 싶으면 귀신처럼 사라진다.

결국 등부형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목돈만 나간 셈.

귀영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이유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천세명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렇다면 정말로 귀야채를 그자가 정리했다는 말인가?”

그러자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여운진이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떤 꼼수를 쓴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뭔가가 있겠지요.”

“만약 그자가 눈치를 챈 거라면?”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가 감시를 붙였다는 사실을 말이오.”

“설마요. 그랬다간 사비강 그자의 성격상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겁니다. 분명 학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겠지요. 교관을 사찰했다는 둥 떠들어대면서요.”

“맞습니다. 그 녀석은 예전부터 말이 통하지 않을 만큼 융통성이라곤 없지 않았습니까?”

“흐음. 하긴.”

천세명이 어느 정도 납득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운진이 얼른 웃으며 말을 붙였다.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을 대비해서 제가 수를 써 두지 않았습니까? 그 생도들이라면 우리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럼 내일부터 정식 수업이 시작되겠군.”

“후후. 그렇습니다. 저는 오히려 기대가 되는군요. 과연 사비강 그자가 어떻게 나올지.”

여운진의 말에 등부형도 웃음을 찾으며 말을 붙였다.

“이거, 응원이라도 가야겠습니다. 허허.”

**

오랜만에 데운 물로 목욕을 마친 사비강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머리를 말렸다.

우웅. 우우웅.

사비강의 존재를 의식한 것인지 침상에 올려 둔 베르타스가 희미한 울음을 울려댔다.

사비강이 터벅터벅 걸어가서는 베르타스를 검집 채 들어올렸다.

“그만 울어대. 그 정도 먹었으면 충분하잖아.”

하지만 베르타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늘게 떨었다.

“쳇, 고집 부려도 어쩔 수 없다고.”

사비강은 다시 침상에 베르타스를 던져 놓고는 그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오는 길에 보이는 짐승들을 모두 잡아 죽였다.

피를 갈망하는 베르타스를 달래기 위해서.

하지만 녀석은 짐승의 피만으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다는 듯 계속 희미한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뭐, 일단은 마력으로 제압할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몸이 마나에 익숙해져야 한다.

사비강이 얕게 한숨을 내쉬고는 눈과 귀를 닫았다.

고요.

모든 의식을 운기행공에만 집중했다.

‘마나와 내공의 조화를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이뤄야 한다.’

현재는 흡수한 마나가 하단전에 내공의 형태로 자리 잡은 상황.

사비강은 전신의 혈맥을 따라 천천히 내공을 운기했다.

곧 넘쳐나는 내공이 전신 혈맥을 따라 시원스레 일주천했다.

‘문제는 지금부터!’

그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내공을 마나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그는 몸속에 흐르는 내기를 심장으로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을 중심으로 가슴 전체가 두꺼운 갑주로 무장해 가는 느낌.

‘쌓인다. 쌓여 간다.’

마침내 모든 내공이 중단전에 집약된 순간.

‘큿!’

사비강의 몸이 한차례 크게 떨렸다.

얼핏 짧은 경기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지경.

잠시 후,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상당량의 내공을 짧은 시간에 전부 마나로 치환하는 훈련이다.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그는 마계에서 그러한 운기를 밥 먹듯이 했다.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하지만 과거로 회귀한 지금은 다시 몸을 길들이며 다듬어 가야 한다.

그럼에도 익숙해지는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경험이 그에게 보상을 해주고 있었다.

마나를 다시 내공으로 치환하는 과정은 훨씬 쉬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확실히 마나의 흐름이 더 효율적이긴 하단 말이지.’

사비강은 몸을 일으켰다.

내내 투덜거리던 베르타스도 더 이상 반응을 해주지 않아서인지 잠잠했다.

‘내일 수업을 위해서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할까?’

창밖을 돌아본 사비강의 입매에 묘한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

등부형은 새벽 일찍 일어나 칼을 갈았다.

하루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자, 유일한 취미였다.

칼은 갈면 갈수록 붉은 기운으로 빛났다.

자하낙인도(紫霞烙印刀).

작년에 그가 천화상단(天花商團)의 단주로부터 받은 보도(寶刀)였다.

이에 대한 대가로 용천관 수료생인 천화상단의 소단주를 정도맹에 추천해 주었다.

‘아아, 아름답구나.’

등부형은 날카롭게 벼린 도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에겐 제대로 된 보도가 없었다.

때문에 그는 천화상단으로부터 받은 자하낙인도를 무척 애지중지했다.

사악. 사악. 사아악.

‘도를 가는 것은 마음을 벼리는 것과 같다. 이 얼마나 청아하고 아름다운 소리인가?’

한참동안 검을 간 등부형은 또다시 자하낙인도를 들어 올려 보았다.

‘아아, 너무 아름답구나! 내 영혼마저 너에게 매혹될지니.’

자하낙인도가 미명에 붉게 타올랐다.

사실 자하낙인도는 해질녘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지만, 미명에도 그 못지않은 자태를 뽐낸다.

그렇게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저만치 생도들 무리가 어디론가 가는 것이 보였다.

‘후후. 이제 시작인가?’

곧 뭔가가 떠오른 등부형은 자하낙인도를 도집에 꽂고는 몸을 일으켰다.

“꽤 즐거운 참관 수업이 되겠어.”

그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

용천관에서도 북동쪽 귀퉁이에 마련되어 있는 별당.

별당 앞마당에는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서 우거져 있었고, 돌무더기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문짝은 삐걱거렸고, 현판은 못이 하나 빠져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삐딱하게 기울어 있었다.

한때는 용천관으로 손님이 찾아오면 머무는 지객당(知客堂)으로 사용되던 곳.

하지만 학관이 예전만큼의 명성을 이어가지 못하면서 점점 사용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폐가처럼 비어 버린 곳.

“여기가… 우리 반이라고?”

생도 한 명이 기울어진 현판을 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곁에 있던 다른 생도들 역시 주변을 둘러보며 투덜거렸다.

“이건 뭐야? 풀과 돌밖에 없잖아. 이런 곳에서 어떻게 무공을 연마하라는 거야?”

“후후. 네가 무공을 연마한 적이나 있냐?”

“시끄러워. 죽고 싶냐?”

“호오. 한 번 붙어볼까?”

몇몇 생도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 사비강이 지객당 앞으로 걸어왔다.

마침 누군가 사비강을 보고는 소리쳤다.

“엇, 그 교관이다!”

순간 생도들이 침묵하고는 눈길을 돌렸다.

지객당 앞에 선 사비강은 생도들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그가 담임으로 맡은 반의 생도들.

이미 명부를 훑어보았기에 대략 어떤 생도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은 해 둔 상태였다.

특목반(特目班).

자신이 맡은 반의 명칭이다.

얼핏 뭔가 대단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문제아들 투성이다.

학관에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무공에 영 소질이 없는 생도들, 말썽을 일으켜서 사건을 키우거나 배경이 지나치게 화려해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생도 등.

한 마디로 학관의 분위기를 망치는 골칫거리들을 각 반에서 골라내 구성한 학급이 바로 이 특목반이다.

개중에는 몇 년째 유급되는 바람에 계속해서 일년생으로 머물러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본래 모든 반은 담임이 정해져 있더라도 다양한 병과의 교관들이 들어와서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 특목반은 오로지 사비강에게만 수업을 듣게 된다.

‘아마도 내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뜻이겠지. 후후.’

한 마디로 학관에서 다루기도 힘든 골칫덩이들을 모두 떠넘긴 다음, 모든 책임은 사비강이 지게 만들 속셈이리라.

‘뭐, 상관없지.’

생도들의 면면을 살펴본 사비강이 입을 열었다.

“사비강이다. 오늘부터 너희들을 담당하게 될 교관이지.”

“왜 하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하는 겁니까?”

불쑥 말을 꺼낸 사람은 다름 아닌 곡보옥이었다.

그의 곁에는 연우경을 비롯한 일단의 무리가 적개심을 가진 채 사비강을 노려보았다.

물론, 그들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다수의 생도들이 사비강을 탐탁찮게 보고 있었다.

생도들에게조차 대놓고 멸시 받는 교관.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사비강이었으니까.

사비강이 피식 웃었다.

“그야… 너희들이 구제불능에다가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니까.”

순간 생도들이 멍한 표정이 됐다.

잠시 후 생도들 사이에서 불만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뭐야? 지금 우리한테 쓰레기라고 한 거야?”

“나 참, 그게 교관으로서 할 말인가?”

“뭐가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서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아!”

“그래! 교관이 교관다워야지!”

순식간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 술렁임을 바라보던 연우경은 내심 조소를 머금었다.

‘이걸 어쩌나? 어떤 꼼수로 정교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한편 사비강은 술렁임이 잦아들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생도들의 불만이 조금 가라앉았다.

사비강이 귀를 후비며 입을 열었다.

“다 떠들었나?”

“…….”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녀석들이군.”

“그거야 교관이 제대로 설명을…!”

버럭 고함을 내지르던 생도가 움찔 거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비강의 눈동자에 기가 눌려 버린 탓이다.

사비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은 스승은 매를 들지 않고도 좋은 가르침을 내린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은 스승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그, 그게 무슨…?”

“말을 안 들으면 두드려 팰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알아서들 기어라. 단, 한 가지는 분명하지. 날 잘 따른다면 너희들은 분명 강해질 거다.”

말을 마친 사비강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날 따르는 자를 잃는 일은 만들지 않을 거다.’

이쯤 되자 생도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척 벌렸다.

저 오만한 태도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때 한쪽 구석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비교적 깍듯하고 정중한 말투.

돌아보니 연우경이었다.

그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백일창(百日槍) 천일도(千日刀) 만일검(萬日劍)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관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법을 가르쳤습니다. 그것도 보조 교관이셨죠. 한데 하루아침에 검법 교관님이 되셨어요. 정교관으로. 검법이라는 게 이렇듯 하루아침에 나아질 수 있는 겁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

그 말에 동요라도 하듯 생도들이 다시 술렁거렸다.

사비강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보통은 불가능하다.”

“그럼, 교관님은 보통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그렇다. 그러니 내게 배우는 너희들은 행운으로 알아라.”

“하지만 저희들로서는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교관님의 검법 실력이 정말 어느 정도일지 말입니다.”

“그래서?”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교관님의 검술 실력을. 그럼 우리에게도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말을 마친 연우경이 배시시 웃었다.

사비강이 연우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정도 반발은 예상한 수준이었다.

생도들 모두 연우경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눈에 힘을 주고는 사비강을 쳐다보았다.

“내가 어떻게 증명해 주길 바라나?”

“글쎄요. 우리 중 검술이 가장 뛰어난 생도와 대련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어떨까요?”

연우경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상대는 기껏해야 창법 부교관이었다.

그것도 소문에 의하면 용천관 뒷문으로 들어와 부신각주의 뒷배로 겨우 부교관이 된 자.

‘이번에는 또 어떤 수를 써서 검법 정교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만하진 않을 거다.’

이곳에는 명망 높은 문파의 후기지수가 상당수다.

개중에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도 있었고, 이미 가문이나 문파에서 상당 수준의 검법을 익혀 들어온 자도 많았다.

사비강과 비교했을 때,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다.

‘어디 증명해 보라고. 당신이 정말 우릴 가르칠 자격이나 되는지.’

연우경이 사비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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