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웅장하면서도 세밀한 그림이 시작과 끝을 만들고, 빈 공간을 찾아 온갖 색들이 달라붙어 생명을 불어넣어야만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화병이 탄생된다.
매만지던 손이 화병을 들어 안을 채운 내용물을 버린다.
촤아―.
“채워 넣기만 하니 안이 썩지.”
호원은 몇 번이나 흐르는 물을 화병 안에 채웠다가 버리길 반복했다.
“궁주님, 제가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겠습니다.”
호찬진은 얼른 손을 내밀었다.
“찬진아, 내 손으로 채웠으니 자리에 갖다 놓는 것도 내가 했으면 하는구나.”
호원은 물을 채운 화병을 들고 사자대전으로 걸음을 옮기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 호찬진을 돌아봤다.
“얼마나 됐지?”
“군림단주가 사황을 만난 지 한 달 됐습니다.”
호찬진은 몇 번이나 반복된 질문이었기에 곧장 대답할 수 있었다.
“한 달. 다시 만나거나 한 일은 없고?”
“군림단의 임시거처와 사혈명 모두에 비상종들을 붙여 놓았습니다. 움직임이 있었다면 바로 보고를 했을 겁니다.”
“구왕이 아니라 사황이라면 가능한 일이야. 꽁지 빠져라 사혈명으로 돌아갔겠지. 사패천도 수뇌부만 떼어서 본진으로 불렀고.”
“맞습니다.”
“음? 그런데 찬진아, 남궁세가가 저쪽에 자리를 잡았느냐?”
호원은 흐뭇하게 웃다가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려 철혈각이었던 쪽을 쳐다봤다.
“예. 손이 많이 가는 곳이라 다른 세가들이 꺼리는 것을 남궁세가가 나서서 새로 짓는 중입니다.”
“남궁 전주는 내게서 멀어지고 싶은 모양이지?”
호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닙니다. 전에 남궁 전주가 말씀을 올릴 때 궁주님께서 지나치시며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 입구라 욕심을 냈나? 찬진아, 저쪽에다 입구를 새로 만들어라. 여기서 줄 서 있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겠다.”
호원은 사자대전 앞쪽을 가리켰다.
“지시하겠습니다.”
호찬진은 곧장 대답한 뒤 호원이 보던 방향을 눈으로 확인했다.
전각 두어 채는 허물어야 할 것 같았다.
서둘러 호원을 따라 막 대전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우뚝.
‘……!’
호찬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멈춰 서서 양옆을 돌아봤다.
히죽.
이제는 구십호천위가 된 두 명의 호천위가 호찬진을 향해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적이 저 둘의 존재를 모르고 무심코 들어섰다면 가로와 세로로 잘려서 죽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그 아이들이 점점 기세를 못 숨겨. 저러다 나도 모르게 저놈들 머리를 자르겠다 싶다. 호천위들은 들어라.”
호원의 말이 떨어지자, 대전 곳곳에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예민해졌구나. 그래도 주인이 허락하기 전에는 짖으면 안 되지.”
스르.
호원의 눈동자가 사자대전 내부를 훑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대전을 감싸고 있던 위험한 기운이 사라졌다.
“찬진아, 이 자리가 욕심나느냐?”
호원은 태사의에 앉아 팔걸이를 두드리며 호찬진을 내려다봤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언감생심 제 주제에 어찌 궁주님의 뒤를 잇겠습니까?”
호찬진의 진심이 담긴 대답에 호원은 태사의에 등을 기대며 고단한 숨을 내쉬었다.
“이 자리에 앉으려면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미 보고 난 뒤에 앉아야 한다. 아무리 추려도 더 많이 남아 있어야 할 많은 것들을 말이다. 대대로 사자궁주는 전대 궁주의 양자가 자리를 받았다. 왜 그런 줄 아느냐?”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이것 때문이다.”
호원이 왼손에 힘을 주어 손등을 보여 주었다.
스륵.
바싹 마른 나뭇가지 같은 것이 손등에서 빠져나왔다.
뚝!
호원은 거침없이 나온 것을 부러뜨린 후 천에 싸서 호찬진에게 건넸다.
“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백린이다. 네가 보기에 자랐을 때 나처럼 될 것 같은 녀석에게 줘라.”
“주,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호찬진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럴 리가. 피 몇 방울이면 놈이 알아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것이 주인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영물이니까. 찬진아, 잘 간직해야 한다. 내 후대를 네가 골라야 해.”
“구, 궁주님께서 직접…….”
“둘 중 누가 올까?”
호원이 화제를 바꿨다.
용연과 사황 경오 중 누가 오겠느냐는 질문이었다.
“군림단주가 올 것 같습니다.”
호찬진은 백린을 감싼 천을 품 안에 넣으며 대답했다.
“이유는?”
“지금까지 궁주님께서 여러 번 말을 했던 사람은 군림단주가 유일한 것 같아서입니다.”
“유일하다……고?”
“예. 구왕이나 철혈문주도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내가 그랬나 보군. 하긴 내 예측을 몇 번이나 벗어난 놈이긴 하지.”
호원은 말로는 대수롭지 않다고 했지만 슬쩍 왼손 위에 오른손을 올렸다.
용연을 만날 때마다 반응하던 백린이 생각난 까닭이다.
그때였다.
움찔.
백린이 핏줄처럼 손등을 뚫고 자라났다.
“찬진아, 네 말대로 군림단주가 왔구…… 안 돼!”
호원은 희미하게 웃으며 태사의에서 일어나다 사자후를 터트리며 사자궁 전체를 날려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기세를 폭발시켰다.
쿠와와와와와!
***
팍.
양손에 차고 있던 낭수련이 양쪽 벽에 박히며 용연을 허공에 뜬 것처럼 자유롭게 해 주었다.
용연은 눈을 감고 모든 신경을 머릿속 수차로 올렸다.
발동.
서찰에 적힌 글자 하나로 호원을 어떻게 상대할지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호원이 오대세가를 불러들여 사자궁의 덩치를 불리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자신이든 사혈명이든 다른 세력이든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호원의 의도를 알았는데 따라 줄 이유는 없잖은가?
암흑이던 머릿속에 서서히 색들이 번져 갔다.
사자궁이 보인다.
스며들 듯이 감싸면 안 된다.
순간적으로, 뱀이 쥐를 삼키듯 한 번에.
스아!
삼제의 첫 번째 원리가 사자궁 전체를 삼켰다.
‘닿았다.’
용연은 호원이 만든 미완성 인형이란 자들이 구왕의 육대장들처럼 단단해서 들어가지 못하면 어쩌나 했으나, 우려와 달리 너무 쉽게 닿을 수 있었다.
이제 두 번째 원리를 운용하면 된다.
막 의지를 일으키려 할 때였다.
번쩍!
용연이 눈을 떴다.
사자궁 자체가 크게 진동하며 닿았던 원리를 떼어 내려는 것을 느낀 까닭이다.
‘어림없다.’
쿠오오오―.
차라라락.
용연의 모든 관절에 낭수련 띠가 만들어지더니 전신을 빛무리가 감쌌다.
***
[이 쪽지를 보는 즉시, 사자궁 밖으로 튀어.]
‘윽.’
남궁명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쪽지를 펼쳐 읽다 인상을 썼다.
남궁산산이 보낸 것이 분명했다.
오늘 누군가가 사자궁을 친다.
창문을 열어 바깥을 내다봤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온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근두근.
손바닥이 땀으로 젖는다.
사혈명조차 해체를 선언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호원을 적으로 삼을 자는 현 강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남궁산산의 충고다.
‘일단 벗어났다가 돌아올까?’
남궁명의 동공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그리고 선택은 일단 벗어나는 쪽을 선택했다.
***
―으아아악!
―괴, 괴물이 난립…… 으악!
쿵!
호원이 발로 바닥을 내려치자 거꾸로 섰던 머리칼이 가라앉았다.
밖에서 사자궁을 덮친 무형의 기를 모두 막아 낼 수 없어 발동된 십여 명의 인형이 뛰쳐나가 난리를 치는 소리였다.
백린이 이런 식으로 반응했던 적은 군림단주를 만났을 때뿐이었다.
“군림단주!”
호원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
―군림단주…….
사자궁을 벗어난 호원의 목소리가 용연을 찾기라도 할 것처럼 메아리가 되어 사방을 울려 댔다.
“쉽게 정리가 안 되네.”
용연은 사자궁 중앙전각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인형들의 무공이 강했기 때문이다.
힐끗.
“적당한 때에 몰려오는군.”
용연의 시선이 사자궁을 포위하듯 좁혀 오는 거대한 인파의 행렬을 향했다.
저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사자궁은 미완성 인형들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때, 인형 하나가 가슴이 뚫린 채 밀려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형을 물리치자마자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니 오대세가의 가주 중 한 명쯤 되는 것 같았다.
가주 정도는 돼야 제압이 된다?
저런 인형이 아직 몇이나 남았는지 모른다.
팟.
용연은 양쪽 벽에 박힌 낭수련을 이용해 허공을 날았다.
***
“윽!”
제갈리는 목을 움츠리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검을 부러뜨리자마자 곧장 얼굴로 짓쳐 드는 인형의 수도(手刀)를 본 까닭이다.
턱. 꽈득!
“괜찮소?”
‘뭐지?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제갈리는 고통 대신 낯선 목소리가 들리자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눈앞에는 사자궁에서 본 적 없는 자신 또래의 청년이 서 있었다.
“누…… 아! 괴물……힉!”
제갈리가 입을 열었다가 기겁을 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신을 죽이려던 인형의 목이 반대로 꺾인 채 청년의 손에 쥐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호원 궁주는 안에 있소?”
청년, 용연은 제갈리를 내려다봤다.
끄덕끄덕.
제갈리는 연신 고개를 아래위로 오르내렸다.
“열여섯으로 이 정도나 휘저은 건가? 호원 궁주가 꽤나 공을 들인 인형인 모양이군.”
픽.
용연은 주위를 둘러보다 웃으며 걸음을 사자대전 쪽으로 돌렸다.
대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서자, 엄청난 기운이 용연의 전신을 압박해 왔다.
“한 번 더.”
용연은 압박해 오는 기운을 낭수련을 통해 바닥으로 흘렸다.
드드드드드―.
머릿속 수차를 최대한으로 회전시켰다.
주위의 땅이 들썩거리며 일어났다.
발동이 안 됐다고 해서 삼제의 첫 번째 원리에 닿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원리를 호원이 잘라 냈다고 해도 아직 세 번째가 남아 있었다.
콰하아아앗!
용연이 입고 있던 옷이 팽창하며 그대로 사자대전을 향해 밀려갔다.
“안 돼!”
콰콰쾅!
거대한 포효와 함께 대전 입구가 터져 나가며 호원이 가시덩굴 같은 나뭇가지를 뻗어 왔다.
차라락.
용연은 자리에 선 채로 찔러 오는 가지들의 숫자만큼 낭수련의 형태를 변형시켜 막았다.
쩌저― 쩌―엉!
거대한 충돌의 여파가 용연과 호원의 좌우로 퍼져 나가며 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을 소멸시켜 버렸다.
그리고 사자궁을 뚫고 수십 개의 인영들이 치솟았다.
반짝.
용연의 눈이 빛을 발했다.
“……반으로 줄어 버려!”
호원의 백린을 막고 있던 상태에서 용연은 삼제의 세 번째 원리를 다시 한번 운용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솟구치던 인형들 중 반 이상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묵자성이 아니라 네놈을 죽였어야 했던 건가?”
호원은 바닥에 떨어져 꿈틀대는 인형들에게 눈도 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백린을 거두고 대전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아! 인형들을 잘 다루는 걸 보니 내 얼굴을 다시 볼 수는 있겠어, 군림단주.”
힐끗.
용연은 멀쩡한 인형들의 수를 세 보았다.
서른둘.
“이미 본 얼굴인데 마저 봅시다. 선림들!”
턱.
용연이 막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을 때였다.
스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고,
또르르르.
몇 개의 머리가 사자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현승, 몽외, 담영호가 인형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씰룩.
용연은 입가를 비틀며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쩡!
끄드드등!
그것이 시작이었다.
현승, 몽외, 담영호는 뒤이어 도착한 사황 경오와 사패천주들의 도움으로 인형들을 처리했다.
콰콰콰콰!
터더― 텅!
경오와 현승이 나란히 서서 전각에서 튕겨 나온 파편들을 막아 냈다.
“음?”
경오는 한 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먼지구름을 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군림단원은 모두 지금 당장 사자궁 밖으로 피한다.”
현승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재빨리 명령을 내리고는 몸을 날렸다.
“사패천주, 서둘러!”
경오가 사패천주 넷을 돌아보며 몸을 날렸다.
그 직후, 먼지구름이 회오리처럼 휘돌아 거대한 기둥을 만들며 주위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콰르르르―.
***
쿠오오오―.
하늘이 열렸다. 아니, 사자대전 천장이 터졌다.
용연과 호원은 서로를 마주 보고 선 채 그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으나, 낭수련과 백린은 주인을 지키기 위해 쉴 새 없이 부딪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쩌―응! 쩌저저저쩡!
“……처음 봤을 때 죽였어야 할 놈이었어, 너는.”
호원의 목소리는 대전을 들썩이는 낭수련과 백린의 격돌음과는 무관하게 용연을 향했다.
“나를? 보자마자 이용할 계획부터 세웠던 당신이?”
씰룩.
용연은 입가를 비틀었다.
“계획?”
호원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용연을 쳐다봤다.
“내가 한 말을 본인 것처럼 가져다 썼잖아? 기억 안 나? 모욕.”
“모……욕!”
용연의 말을 따라 입을 열던 호원이 얼굴을 구기며 눈을 크게 치떴다.
“혼자 잘나야 하는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죽이기 편하게 철혈문, 귀암로, 사혈명까지 해체시킨 거잖아?”
“……음.”
호원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무슨 말인지 멍해져서 듣다가 자신의 계획임을 뒤늦게 깨닫고 놀란 것이다.
벌써 이 지경까지 이른 모양이다.
여기서 더 가면 안 된다.
“어?”
용연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손등을 뚫고 나와 있는 백린을 본 까닭이다.
홱.
호원의 시선이 재빨리 대전 위쪽을 향했다.
카카카― 응! 쩡! 쩡!
백린이 금빛 날과 수도 없이 부딪치며 대전을 채우고 있었다.
스르.
호원의 시선이 미끄러지듯 용연의 가슴 쪽을 향했다.
순간, 호원의 신발을 뚫고 백린의 촉수가 뻗어 나갔다.
그때까지 용연은 아무런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쩡!
촉수는 그대로 용연의 가슴을 뚫었다.
용연의 옷이 찢어졌고 그 안에서 금빛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뼈에 심은 건가?”
용연은 호원의 발등에서 백린이 날아온 것을 보고 이채를 발했다.
자신의 가슴을 뚫지 못하자 호원의 발로 사라져 버렸다.
“……백린은 사람의 뼈를 잠식하며 커진다. 두개골까지 백린화되기 전에…… 으으…… 아니야, 내가 한 말이 아니야…….”
호원은 백린에 대해 말을 하다 갑자기 포악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터져 버린 대전 천장을 낭수련과 부딪치며 메우고 있던 백린의 촉수들이 일제히 용연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콰!
용연은 떨어져 내리는 백린 촉수들을 바라보며 낭수련이 아닌 손을 내밀었다.
차라락.
검과 도로 변한 낭수련.
불이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내 백린들을 떨쳐 내기 시작했다.
쩌저― 쩡!
강렬한 힘이 검과 도로 전해지며 더 이상 팔을 휘두를 수 없게 만들었다.
콰쾅!
용연의 검과 도에 막힌 백린 위로 촉수들이 더해졌다.
스르.
용연이 눈동자만 돌려 호원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낭수련으로 만든 검과 도에서 손을 빼냈다.
검과 도는 여전히 백린의 촉수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팟.
용연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퍽!
“너, 너…….”
호원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꽂은 용연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오래 끌기 싫어서.”
용연은 호원의 가슴에서 손을 꺼내며 덤덤한 목소리를 꺼냈다.
“……하, 한 번을 내 뜻대로…… 안 하…… 쿨럭.”
파하아앗!
호원의 동공이 빛을 잃어 가는 것과 반대로 백린의 촉수들은 더욱 거세게 빛을 뿜어냈다.
그그그그―.
드드드드드―.
용연은 자폭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강렬해지는 빛을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
번쩍!
사자대전에서 시작된 회오리가 무려 수십 장 가까이 번져 나가더니 서서히 가라앉다가 이내 거대한 섬광도 소멸됐다.
푸스스스스―.
먼지구름이 안개처럼 사방을 감쌌다가 이내 걷혀 갔다.
그렇게 사자궁이었던 공간이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사라진 공간 안에서 희미한 그림자의 움직임이 사람들의 눈을 크게 치뜨도록 만들었다.
“단주님!”
군림단원들이 일제히 그림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사황 경오는 사패천주들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지켜봤다.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턱.
경오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손을 댔다.
저 그림자의 주인이 용연이든 호원이든 상대하고 싶지 않았으나, 호원보다는 용연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
―우오오오오!
그림자를 부축한 군림단원들이 환호를 터트렸다.
‘휘유.’
이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경오는 사패천주들을 돌아봤다.
“우리 시대는 오늘로 끝이다. 군림단주를 넘어설 제자를 키우는 데 전력을 쏟는다.”
경오의 선언에 사패천주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 역시 경오가 느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봐서 알겠지만, 호원이 약했던 것이 아니라, 군림단주가 더 강했던 것이다. 무공이든 의지든.”
경오는 곧 쏟아질 군중들을 피해 먼저 허공으로 솟구쳤고, 그 뒤를 사패천주들이 따랐다.
―군림단주가 사자궁주를 처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