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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219화 (219/232)

219화

슥.

용연은 사도천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옆으로 물러나 주었다.

숨도 돌릴 겸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너희들은 안 죽는다.”

뒤쪽에서 사도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 주…….”

사도천이 일으킨 육대장 중 한 명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안 죽어. 탈각을 두 번이나 이룬 위대한 무인들은 이대로 죽지 않는다.”

사도천은 육대장들을 안심시키며 피 흘리는 부위를 재빨리 지혈시켰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피는 멈추지 않았다.

“피가…….”

사도천의 목소리가 이어지지 못했다.

흘러나오는 피에 섞인 내장 조각들을 본 까닭이다.

“저 단단한 몸들의 내부가 다 터졌으니.”

용연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흘리듯 입을 열었다.

“큭.”

사도천은 용연의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번의 탈각?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겐 좀 더 강하게 때리는 정도였을 뿐이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사도천이 잠깐이라도 자신의 실수였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돌아본 사도천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육대장들의 몸을 들어 나란히 바닥에 눕혀 놓았다.

꾹. 꾹.

용연은 주먹 쥔 손을 쥐락 펴락 했다.

곧 강호삼대세력의 주인 중 한 명과 싸워야 한다.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었다.

힐끗.

사도천이 눕혀 놓은 육대장들을 봤다.

빈틈없는 사각형 틀처럼 극한까지 수련한 몸들.

육대장들에게 삼제의 원리가 닿지 않았던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다.

저 틀 안으로 바늘을 집어넣어야 해서 결국 부숴야 했다.

닿지 않으면 먼저 부숴라.

그리고 부순 곳에다 바늘을 넣어 닿게 해라.

육대장들을 무식하게 부수며 깨달은 진리였다.

생각을 이어 가려 할 때, 사도천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육대장들을 만드느라 삼십 년을 보냈다.”

사도천은 용연을 향해 섰다.

불길 가득한 눈.

고오―.

삽시간에 엄청난 열기가 사도천의 전신을 감쌌다.

‘실수다.’

사도천은 육대장을 잃고서야 깨달았다.

호원이 자신과 군림단주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육대장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호원의 등장에 대비하려다 이런 참사를 맞이한 것이다.

그드드드―.

용연을 향한 분노보다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겨우 육대장뿐이다. 구신군이 이끄는 귀면대와 암천대라면 호원을 상대할 수 있다.’

사도천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눈앞의 군림단주도 육대장과 싸우느라 많이 지쳤을 테니 단숨에 처리하면 된다고.

합리화가 아니라 정말로 아무렇지 않다고.

용연을 향한 눈빛이 확, 달라졌다.

‘온다.’

용연은 사도천의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 재빨리 손을 올려 가슴을 보호했다.

쩡!

“흡!”

그극.

왼손에 찬 낭수련이 바닥에 박히며 중심을 잡아 주지 않았다면 크게 휘청거렸을 것이다.

사도천이 어떤 공격을 가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용연은 사도천을 찾아 눈동자를 좌우로 돌렸으나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뒤쪽은 낭떠러지…… 위?’

오싹.

위쪽을 떠올리자마자 무언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쾅!

용연의 상체가 앞으로 막 기울어질 때 묵직한 힘이 등을 때렸다.

“흡!”

용연은 신음 지를 시간도 없이 몸을 옆으로 굴리며 힘껏 바닥을 찼다.

그러자 용연이 박찬 자리가 터져 나갔다.

쿠앙!

홱.

용연은 폭음이 터진 곳이 아니라 위를 올려다보고 눈을 크게 치떴다.

아직도 공격할 여력이 남았는지 사도천은 허공에 뜬 채로 양손 안에 선명한 빛무리를 모으고 있었다.

사도천과 눈이 마주쳤다.

‘위험하다. 저건 강기 무공 정도가 아니야.’

용연은 직감적으로 저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팟.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 몸을 날렸다.

콰아아앗!

사도천의 양손 안의 빛무리가 폭발한 것도 그때였다.

쇄애애액!

홱.

용연은 엄청난 열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돌아서며 손을 뻗었다.

쾅!

용연의 동공이 흔들렸다.

파편 한 조각에 팔이 찌르르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도천은 육대장 정도의 무인이 아니라 강호의 주인이라 불리던 거인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잠시 잊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팟.

재차 도약을 했다.

일단은 전력을 다해 사도천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이 순서였다.

콰웃!

방향을 틀었고,

쿵!

다시 다른 쪽으로,

홱 돌아서서 사도천이 떠 있던 허공을 쳐다봤다.

“……!”

용연은 벗어난 곳을 보며 기가 차서 웃을 수도 없었다.

콰콰콰콰!

곳곳에 거대한 웅덩이가 생겨나 더 이상 절벽이란 말이 어울리는 지형이 아니었다.

“피하기만 할 건가, 군림단주? 육대장을 때려죽일 때의 기세는 어딜 가고!”

사도천이 머리칼을 거꾸로 세우며 내려섰다.

츠으―.

땅이 녹으며 웅덩이를 만들었다.

“확실히 다르군.”

용연은 사도천이 육대장과 격이 다른 고수임을 인정했다.

진즉부터 돌고 있던 머릿속의 수차가 더욱 빠르고 거세게 돌아갔다.

슥.

머리칼을 양손으로 쓸어 올렸다.

차르락.

낭수련이 몸통을 휘감았다가 손목으로 돌아갔다.

힐끗.

용연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사도천의 뒤쪽에서 더 이상 먼지구름이 피어오르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몽외와 사도경의 싸움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

“안 도망쳐?”

한참을 뒤로 물러났던 사람들이 용연과 사도천의 대결을, 아직 한 번의 격돌도 일어나지 않은 대결을 지켜보다 기함을 했다.

“구, 군림단주가 지금 구왕을 똑바로 쳐다보는 거야?”

“그런 것 같지, 아마?”

멀어서 두 사람의 모습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의 추측이 마구 쏟아졌다.

“구왕의 공격을 모두 피한 겁니다, 저…… 군림단주가.”

불쑥 끼어든 청년의 목소리가 사람들 귀에 꽂혔다.

―세상에. 이러다 아주 난리 나는 거 아냐?

―난리지. 구왕이…….

―어허, 구왕이야. 어딜 쥐새끼처럼 피하기만 하는 자가.

―아까 여섯 명 패는 거 못 봤어? 아주 작살을 내더만. 그리고 피하는 건 아무나 해? 뭣도 모르면서 나서긴.

―그래도 구왕이 이기지 않겠어?

사방에서 수십 명이 떠드는 소리가 뒤섞이며 웅성거림이 커져 갔다.

청년, 조균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혀를 찼다.

묵자성은 뒤로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저들과 같은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자신의 눈으로 본 묵자성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바르르.

사도천의 무공을 보고 난 뒤로 이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용연 때문이라고 해야 옳았다.

저 엄청난 무공을 피하는 데 급급했던 자가 투지를 불태우며 돌아서서 사도천을 보고 있었다.

꽉.

조균은 떨고 있는 자신의 팔을 세게 쥐었다.

곧 벌어질 싸움을 지켜보기 위해 눈에 힘을 주려는 순간, 뒤에서 약간의 소요가 일어났다.

―……죽었다고?

―그렇다니까?

‘누가 죽었다는 거지?’

조균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뒤늦게 올라온 사람들이 몇몇을 잡고 얘기 중이었다.

―키 큰 자가 구왕 닮은 자를 죽였다고.

―군림단원이라며?

―그러니 난리가 났지!

―군림단은 도대체…….

‘도대체 당신들 뭐야?’

조균은 재빨리 용연과 사도천이 대치하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 얘기를 듣고 나니 군림단주가 어쩌면 엄청난 일을 벌일지도 모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엉!

격돌이 시작됐다.

***

쩡!

‘큭.’

욱신.

사도천의 장력을 분명히 막았건만 손이 아닌 등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통천삼십육장 중 하나도 못 막으면서 잘도!”

사도천은 용연이 물러나자 기가 차다는 듯이 소리치며 수십 개의 장영(掌影)을 허공에다 마구 뿌려 댔다.

그러자 손바닥 형태를 갖춘 순서대로 용연을 덮쳤다.

쾅!

용연은 장영을 손바닥으로 때린 후 빙글 돌아 이격을 날렸다.

쩡!

일격보다 더 큰 소리가 났다.

팍.

가만히 서 있다가는 장영 전부를 막아야 할 것 같아 몸을 이동시켰다.

‘현 선림의 천강담도를 막은 것 같다.’

용연은 순간적으로 현승의 천강담도를 떠올릴 만큼 크게 놀랐다.

아직도 허공에 떠 있는 저 장영들을 모두 합친다면 오 성의 천강담도 못지않을지도 몰랐다.

팟.

속도를 더 내며 방향을 틀었다.

그러자 완성된 장영들이 일제히 용연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우―.

터터― 턱!

이미 많이 찢어졌던 공간이 마치 두부를 뭉개듯 바닥에 손바닥 자국이 푹푹 생겼다.

‘이 느낌이다.’

용연은 장영들이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전신을 짓눌러 오자 피하는 대신 웃었다.

현승의 오 성 내공이 담긴 천강담도를 받아낼 때의 느낌.

숲 안이 어디고 숲 밖이 어딘지 몰라 맞아도 보고 피해도 봤다.

진기가 상단전에서 시작해 중단전과 하단전까지 바로 이어졌다.

차릇.

낭수련이 검과 도로 변했다.

지금은 투신이 아니라 군림단주였다.

낭수련의 형태를 바꾸며 몇 번이나 내보낸 데엔 이유가 있었다.

육대장을 때려죽이며 소모한 진기를 낭수련의 불이기를 통해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군림단주가 검과 도를 양손에 쥐었다는 의미.

이제부터는 알려 줄 때가 됐다.

쩡!

장영 하나를 왼손의 검으로 막은 후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스걱.

쩌― 터엉!

오른손의 도면으로 장영을 막듯이 때렸다.

피식.

용연은 연이어 쏟아지는 장영들을 향해 웃었다.

장영 두 개를 자르고 막으며 나머지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가슴을 펴고 쳐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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