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단주-218화 (218/232)

218화

―여기, 이 머릿속으로 만들어 낸 또 다른 나를 꺼내서 풀어놓았더니 알아서 먹어치우더구나. 나는 나고, 또 다른 나 역시 나지만, 음…… 음과 양이라고 해야 하려나? 아무튼 그 둘을 인정하고 나니…….

아주 편해졌다.

그렇게 말해 주었던 것 같다.

몽외는 달려들 준비를 하는 사도경을 보다 문득 용연에게 얻어먹은 국수를 떠올렸다.

맛있었다.

저런 얘기까지 해 줄 정도로.

또 다른 몽외를 꺼낼 차례가 됐다.

머리도 후려쳐 보고 몸통도 터트릴 생각으로 때렸으나, 사도경은 모두 버텨 냈다.

겉으로 보면 사도경이 더 지쳐 보이지만, 몽외 역시 진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다.

툭.

사도경을 지켜보던 몽외의 동공이 갑자기 돌아가며 백안이 됐다.

“크흐…….”

입에서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불룩불룩.

몽외의 몸 곳곳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또 다른 자신에게 스스로 먹히는 중이다.

사용하던 혈도를 죽이고, 사용하지 않던 혈도를 살려 내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역근대법이나 역혈대법 같은 걸 사용한다고?’

몽외의 변화를 지켜보던 사도경은 갑자기 힘이 솟았다.

강호에 많이 알려진 역근대법이나 역혈대법 등은 몸을 망가뜨려 일순간 큰 힘을 사용하기 위한 방법이다.

몸 안의 혈도를 옮기거나 접어서 진기의 흐름을 빠르고 집중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외와 같이 일정 경지를 넘어선 고수에겐 큰 의미가 없었다.

저런 짓을 해야 할 정도로 진기가 바닥난 것이다.

사도경은 그렇게 확신했다.

꾹.

사도경은 양손을 쥐었다가 풀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강린기를 가장 극대화해서 펼칠 수 있는 수법을 준비하는 것이다.

몽외의 변화가 완성된 것도 그때였다.

몽외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투―웅.

‘음?’

사도경은 얼굴로 훅, 끼치는 무언가에 움직임을 멈췄다.

조금 전과 전혀 다른 기세였다.

움찔.

사도경의 살 위로 소름이 돋았다.

잠깐 사이, 몽외의 모습이 달라졌다.

피부는 검게 변했고 볼이 홀쭉해져 해골처럼 보였고 그 때문인지 양손과 양발은 길어진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백안까지 더해지자, 괴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하나.”

달라진 몽외의 입에서 처음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지옥 불구덩이를 뚫고 나온 악마가 있다면 저런 목소리를 낼 것 같았다.

까득.

‘이번에 끝내야 한다.’

사도경은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감지했다.

꾹.

양손에 힘을 주어 쥐고 있던 머리칼을 부쉈다.

푸스스.

자르는 것이 아니라 먼지처럼 잘게 부쉈다.

그러자 분진(粉塵)으로 변한 머리칼 조각이 사도경의 주위를 감쌌다.

강린기 마지막 초식인 만진폭(萬塵爆)을 펼치려는 것이다.

몽외는 그런 사도경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지 눈도 감지 않았다.

구우우우웅―.

사도경의 주위로 퍼지던 분진이 일제히 몽외를 향해 폭사해 갔다.

“크크. 먼지 따위…….”

몽외는 다가오는 분진 더미를 보며 낮게 웃었으나, 이내 거대한 폭음에 묻혔다.

콰콰콰콰!

몽외의 등이 뒤로 활처럼 휘며 뿌려 낸 엄청난 빛과 분진 더미가 맞부딪치며 낸 소리였다.

격돌로 인해 벌어진 공간.

형체 없는 연기 한 줄기가 그 안을 관통했다.

그리고 연기는 곧 몽외로 변하더니 손을 뻗어 사도경의 목을 쥐었다.

턱.

“헙!”

사도경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며 백안의 몽외를 쳐다봤다.

어떻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내 투기(鬪氣)를 뚫으려면 먼지 따위가 아니라 목숨을 걸어. 크크…… 음?”

몽외의 백안이 피가 흐르는 손으로 향했다.

꿈틀.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핏줄이 목을 지나 팔로 이어지더니 그대로 사도경의 목을 꺾어 버렸다.

순간, 몽외의 전신이 수도 없이 갈라지며 피분수를 쏟아 냈다.

푸학!

백안이 동공으로 돌아온 것도 그 순간이었다.

‘제길. 이대로 떨어지면…….’

몽외는 정신을 잃었다.

턱.

누군가가 몽외를 받아들었고, 다시 떨어지자 한 번 더 손이 다가왔다.

턱.

마지막으로 땅에 있던 손이 세 명을 받았다.

“몽 선림을 이 지경까지 몰아붙일 고수가 있을 줄이야.”

국진세는 몽외를 받은 여벽과 둘을 받은 잠사우를 땅에 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보다 단주님께서는 이럴 줄 아셨던 걸까요?”

여벽이 건너편 절벽 쪽을 돌아보며 혼잣말을 꺼냈다.

***

팟.

용연의 신법은 선림들의 등천과 또 달랐다.

더 높고 낮음이 아니라, 달랐다.

낭수련을 거둬들이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가 구릿빛 피부의 흑포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툭.

용연이 손을 뻗어 흑포인의 가슴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갔다.

쾅!

“큭!”

흑포인은 버텨 보려다 턱을 밑으로 붙인 채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 와중에도 용연의 신형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콰쾅!

다른 곳에서 굉음이 터졌다.

돌아보니 다른 육대장이 양팔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고 있었다.

용연이 위에서 그를 밟은 뒤, 다른 발로 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쾅!

흑포인은 양팔을 든 채 절벽 가까운 땅을 파며 떨어졌다.

‘지금이다!’

제일 먼저 땅에 박힌 흑포인이 눈을 빛냈다.

다른 육대장이 용연의 가슴을 때리는 걸 봤기 때문이다.

쾅!

굉음과 함께 용연의 몸이 물러섰다.

스각!

이번엔 기다리고 있던 다른 육대장의 검이 용연의 등을 베고 지나갔다.

척.

용연은 두 공격을 무시하고 소리 없이 목을 노리는 낫과 도를 향해 손을 들었다.

쩌쩡!

묵직한 힘이 양손을 감쌌다가 떨어져 나갔다.

꿈틀.

용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이없게도 여섯 명의 공격이 예측되지 않은 까닭이다.

‘삼제의 원리를 여섯 명 모두 튕겨 낸 건가?’

용연은 어떤 식으로든 접촉을 한 뒤라 닿아 있을 줄 알았건만, 여섯 명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땅에 박힌 자와 절벽에서 떨어졌던 자도 어느새 올라와 진을 이루고 있었다.

‘육대장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무기? 그런 건 있을 수가 없지. 구신군에 비하면 내공은 밀리겠지만 그 차이를 보완하기에 충분한 외공을 갖고 있지. 전설에서나 나오는 기보가 아니라면 베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사도천은 용연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굳이 자신이 나설 것도 없다 여긴 것이다.

그때였다.

―……콰콰콰콰!

건너편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끝났군.’

사도천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힐끗.

용연도 굉음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늦었네.’

용연은 몽외가 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돌아오면 한마디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상대에 맞춰 싸움을 하고 싶어도 이번처럼 오래 끌지는 말라고.

―크크. 다 먹어치우면 돼, 다.

동쪽 안가에서 들었던 몽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흐…….”

용연은 몽외처럼 윗니와 아랫니를 드러내며 묘한 웃음소리를 냈다.

콰하!

입고 있던 옷이 펄럭일 정도로 기운이 전신을 통해 퍼져 나갔다.

삼제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상대들이다?

아니면 아닌 대로 부수면 그만인 것이다.

차르륵.

낭수련이 용연의 생각을 알아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왼손은 검으로, 오른손은 도로.

육대장을 쳐다보던 용연이 서서히 상체를 내렸다.

드드드드드―.

퍼뜨린 기운이 육대장의 머리 위를 짓누르며 낸 진동이었다.

팟.

용연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졌고,

쩡!

육대장 중 한 명이 용연과 부딪쳤다가 떨어져 나갔다.

휘릭, 콰쾅!

회전하며 두 명을 내쳤고,

콱.

검과 도가 사라진 용연의 양손이 육대장 둘의 팔과 어깨를 잡고서 땅으로 떨어졌다.

쿵!

끝이 아니었다.

용연은 땅에 박힌 두 육대장을 끄집어냈고,

쾅! 쾅! 쾅!

곧장 계속해서 밟아 댔다.

휙.

땅에 박힌 둘을 내버려 두고 이번에는 달려드는 다른 자들에게 날아갔다.

쾅!

막 몸을 날리는 순간, 묵직한 공격이 옆구리를 때렸다.

맞은 부위를 확인하려 할 때, 머리 위로 경기(勁氣)가 떨어져 내렸다.

쾅!

“음?”

사도천은 용연이 연속해서 육대장의 공격에 맞는 것을 보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공격이 성공하니 육대장들의 움직임 빠르고 간결해졌다.

진을 유지하는 것보다 집중 공격으로 용연을 죽일 생각인 것이다.

‘왜 불안하지?’

콰콰콰콰콰!

파스슥.

사도천은 날아온 파편들을 호신강기로 처리하며 먼지구름을 노려봤다.

그때였다.

쾅!

갑자기 육대장 중 한 명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조심…….”

사도천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튀어 오른 육대장이 무언가에 이끌려 다시 먼지구름 안으로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쾅! 쾅! 쾅! 쾅!

다른 육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굉음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사도천은 이윽고 용연이 만든 균열에서 벗어나 먼지구름 쪽으로 다가갔다.

육대장이 당할 리 없었다.

콰드드드드―.

사도천이 벗어난 바닥이 무너져 내리며 절벽 전체를 크게 흔들었다.

척.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터지던 굉음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척.

다시 한 걸음 움직였다.

“후우, 힘들었다.”

“군림단주!”

먼지구름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용연의 것이었다.

슥.

사도천은 손을 저어 먼지를 날려 보냈다.

그러자 널브러진 채로 피를 흘리고 있는 육대장의 모습과 옷을 터는 용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쾍!

사도천의 소매에서 선이 날아갔다.

쾅!

사도천이 날린 선은 용연의 손에 잡혔다.

“채찍?”

용연은 대수롭지 않게 잡은 검은 채찍을 놓았다.

팟.

흑편은 살아 있는 뱀처럼 용연의 손아귀를 빠져나가 사도천의 소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