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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214화 (214/232)

214화

쩡!

용연의 양손을 감싸고 있던 기와 현승의 천강담도가 부딪치며 강기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파우콰―.

파편의 일부가 주변 봉우리로 튕긴 것은 당연했다.

콰직!

땅이며 바위며 움푹, 움푹 파였다.

“으아악!”

“괴, 괴물…… 저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봉우리 반대편으로 피신하기 바빴으나, 그사이에 승패가 날까 봐 완전히 숨지도 못한 채 고개를 들었다.

콰콰콰콰!

“또 온다!”

비명 대신 경고가 메아리로 사방을 울려 댔다.

꽈앙!

거대한 고목을 도끼로 내려치듯 군림단주와 투신이 격돌하면 소옥황봉에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저, 저런 고수들이 고작 떠오르는 신성이라고?”

“말도 안 돼. 그토록 오랫동안 싸움이란 싸움은 모두 쫓아다니며 구경했지만 저런 장엄한 싸움은 본 적이 없다.”

흥분한 군중들은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잊은 채 서로 목청을 높이기 바빴다.

“군림단주!”

“투신!”

급기야 눈에 보이는 장면만으로 군림단주와 투신을 응원했다.

군림단주가 위에서 도로 투신을 내려찍자,

―으아아어어!

함성과 야유가 섞인 메아리가 퍼졌고,

곧바로 자세를 역전시킨 투신이 군림단주를 몸통으로 들이받자,

―으아아어어!

같은 함성이 이어졌다.

“나는 내려간다. 중간에서 결판이 날 싸움이 아니야!”

선동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는 누군가의 외침이었다.

“나도, 나도!”

어느새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응원하던 사람들은 앞다퉈 봉우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

척.

떨어지는 와중에도 용연의 눈에는 붉은 깃발과 그것을 들고 있는 삼십육무투 중 한 명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됐다.’

반짝.

용연은 현승을 향해 양손을 열고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서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본다면 투신이 먼저 지쳤다고 보일 것이다.

젊은 모습을 하고 있는 현승이 호흡을 골랐다.

아무런 공방도 없이 그 상태로 두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어느 한순간이었다.

바우― 웅.

우웅―.

약속한 것처럼 두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엄청난 빛이 일어나며 곧바로 거대한 충돌을 일으켰다.

쩡!

***

쾅!

두 빛 중 하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엄청난 진동이 시작됐다.

드드드드!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해도 믿겨질 만큼의 무위에 군중들은 넋이 나갔다.

진동으로 인해 땅이 흔들리고 산사태가 일어났지만, 승부를 확인하기 위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막지 못했다.

다급한 그 순간, 사람들을 멈추게 한마디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소옥황봉은 곧 무너진다.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라…….

사자후가 터지고 곧이어 메아리가 뒤따랐다.

“으윽!”

“귀, 귀가…… 아아악!”

다가서던 사람들이 일제히 귀를 막고서 비명을 질렀다.

“군림단주다! 군림단주가 이겼다!”

“아…….”

누군가는 환호를 터트렸고, 누군가는 절망 어린 눈물을 흘렸다.

―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얼마 후에 뒤에서부터 밀려왔고,

―투신!

투신이 땅에서 솟아오르길 바라는 염원의 한마디가 바로 뒤를 이었다.

***

“미친…….”

꿀꺽.

파륵은 두 거대한 힘의 충돌을 보며 저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멀리서 격돌을 이어 가는 두 인영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것을 느끼고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소옥황봉 근처까지 와버렸다.

양옆을 돌아봤다.

데려온 부하들 역시 위아래를 번갈아 쳐다보며 믿기지 않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 못 할 정도로 마지막 격돌에 집중했던 모양이다.

이해가 갔다.

고작 몇 십 명으로 구성된 단의 단주와 귀암로의 여섯 축 중 한 곳의 주인이 싸웠을 뿐인데, 다른 생각을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꾹. 꾹.

오른손으로 왼손 팔뚝과 어깨 부근을 주물렀다.

긴장해서 근육이 굳었다.

강호를 양분하고 있는 두 거대 세력 주인들의 싸움이라도 지켜본 양 흥분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저들 둘 외에는 관심이 없어. 누가 나타나든 기대를 채우기 힘들지 않을까? 아무리 사자궁주라도 말이야.’

파륵은 곧 모습을 드러낼 호원을 찾아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철혈대전에서 호원이 보낸 자의 입으로 분명히 들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겨도, 둘 다 죽을 겁니다.

군림단주를 죽이려면 지금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러나 일각을 기다려도 호원은 물론이고 오대세가의 무인들이 나서지 않았다.

“패주님, 그 싸움을 치르고도 군림단주는 멀쩡해 보입니다. 오늘은…….”

“오늘뿐만이 아니라 다음에도 우리는 직접 나서지 않는다. 그가 직접 나선 일이다. 사패주 모두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나서진 않았을 것이다.”

턱.

파륵은 말을 꺼낸 부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겁부터 먹는 자를 부하로 거뒀던가?

쉬악.

파륵의 손톱에서 가는 빛 다섯 줄기가 실처럼 빠져나오며 입을 놀린 부하의 목을 지나갔다.

“군림단주와 투신의 대결 결과는 말해도 되지만 과정은 함구한다.”

파륵이 부하들을 돌아봤다.

척.

아홉 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려 했다.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라. 그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파륵은 부하들이 무릎을 꿇지 못하게 막으며 좌우를 살폈다. 그러고는 잘 드러나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움직였다.

***

―우우우우!

사람들이 소옥황봉 아래쪽을 향해 계속해서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 냈다.

그 절정은, 삼정일사회주가 무투들과 투신의 시신을 수습해 웅덩이 밖으로 나올 때였다.

―우어어어어어!

계곡을 무너뜨리겠다는 듯이 엄청난 외침이 쏟아져 내려왔다.

투신의 시신을 수습한 인영들은 셋 정도의 숫자를 셀 시간 동안 멈춰 섰다가 이내 다시 움직여 모습을 감췄다.

투신을 응원했던 군중들은 급기야 감정을 표출하며 슬퍼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군중들이 애도하기엔 적당한 시간이었다.

“서둘러!”

지면과 지면이 겹쳐진 공간으로 들어오자마자 묵 노야는 무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투신으로 분했던 무투까지 일어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투들과 무투 후보들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소요를 막으라고 알리러 가는 것이다.

이제 곧 시작될 용연과 구왕의 싸움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 됐다.

묵 노야는 무투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둠 속으로 몸을 감췄다.

***

“구왕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색 무복을 입은 무인이 산발한 사내가 머물고 있는 천막 앞에서 기척을 냈다.

“말해.”

안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움에서 군림단주가 이겼다고 합니다!”

“끝났단 말이군. 가자.”

천막을 열며 구왕이 나왔다.

움찔.

회색 무복을 입은 무인은 구왕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니, 허리를 숙이려다 그대로 굳고 말았다.

구왕이 자신의 앞을 지나치는 순간, 주위 공간이 몇 겹으로 퍼지며 시야를 흩트렸기 때문이다.

‘뭐, 뭐지?’

무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좌우를 빠르게 살폈다.

구왕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굳어 있었다.

“저 봉우리로 간다.”

구왕이 수많은 봉우리들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모여 있던 무인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듣던 구왕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지만 풍기는 기도에 압도된 것이다.

***

“다치셨나…….”

힐끔.

몽외는 용연이 와야 할 곳을 쳐다보다 슬쩍 현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다른 선림들도 동시에 현승을 쳐다봤다.

“곧 오실 거다.”

현승의 입에서 특유의 나긋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몇 마디 더 하고 싶었으나 용연이 떨어지며 낸 소리 때문에 말을 아꼈다.

약속된 합은, 마지막 일격에서 자신이 오 성의 천강담도를 내보내면, 용연이 적당한 반탄력과 함께 자신을 튕겨 내야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용연은 반탄력이 아니라 자신의 오 성에 달하는 진기를 고스란히 받아 버린 것이다.

떨어지며 웃는 눈을 보지 못했다면 자신도 땅으로 내려갔을지도 몰랐다.

당연히 선림들의 저런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단주님!”

선림들이 일제히 외치며 양손을 아랫배에 대고 머리를 숙였다.

“단주님, 이 늙은이의 수명을 줄이기로 작정하셨습니까? 이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 내느라 혼났습니다.”

현승도 같은 자세를 취하고 허리를 숙였다.

“저도 놀랐어요. 현 선림의 진기를 그대로 땅에다 내보낸 것뿐인데 그 정도까지 깊이 박힐 줄 몰랐거든요.”

용연은 선림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며 눈을 마주쳤다.

“음? 그 짧은 시간에 제 진기를 받아들였다가 내보내셨다는 뜻입니까, 단주님?”

현승은 용연이 다가오자 무슨 뜻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몇 번 합을 맞춰 본 덕분에 가능할 것 같아 시험해 봤어요.”

“……!”

“그 얘긴 나중에 더 하기로 하고. 구왕이 결과를 확인하러 올 테니 선림들은 구신군을 맡아 줘요.”

용연은 놀라는 현승에게서 눈을 떼며 다른 선림들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때, 진류가 올라왔다.

“단주님, 구왕의 무리로 추정되는 자들이 북서쪽에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진류의 보고에 용연과 여덟 선림들의 시선이 일제히 북서쪽으로 향했다.

“드디어 진짜 싸움을 하겠군요. 크크크.”

몽외의 낮은 읊조림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나 당연히 바로 명령을 내릴 줄 알았던 용연이 북서쪽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단주님?”

몽외가 참지 못하고 명령을 재촉했다.

‘이상해. 저 움직임에 체계가 없어. 인원수로는 구신군과 최정예군단을 대동한 정도가 맞지만, 그 정도 고수들이 저렇게 우르르 움직인다고?’

용연은 다가오는 백여 명의 무리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구왕이 이끄는 군단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 대교, 외부 식구들은 흩트려 놓고 단원 모두 선림들 뒤에 붙여요.”

뭔가 이상했다.

분명 저들 외에는 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나, 저들 역시 구왕의 전력은 아닐 것 같았다.

직감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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