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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208화 (208/232)

208화

쩡!

‘허업!’

용연은 현승의 천강담도가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전신을 짓눌러 오자 다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안에서 본 숲의 모습과 바깥에서 본 숲의 모습이 다른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하단전과 중단전의 진기를 한데 모으면 적어도 숲 안에서 가장 높은 나무 정도는 될 줄 알았으나, 천강담도는 거기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넓고 방대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용연의 신형을 뒤쪽 허공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잡아당겼다. 아니, 그렇게 느낄 정도로 빠르게 튕겨 나갔다.

용연의 호신강기는 이미 깨졌으나, 천강담도의 힘은 사라지지 않고 가슴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쾅!

차르륵.

천강담도의 힘을 막아 낸 낭수련이 흩어지며 손목 쪽으로 모여들었다.

‘낭수련의 불이기조차 깨뜨린 건가?’

용연은 천강담도의 위력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바로 머릿속의 수차를 회전시켰다.

차라락.

양쪽 손목으로 흩어졌던 낭수련이 갑자기 줄처럼 늘어나며 봉우리 아래쪽에 박혔다.

빙―.

용연의 몸이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다 한순간 허공에서 사라졌다.

“이래서는 곤란해.”

절벽에서 한 자가량 떨어진 채 위를 올려다보던 용연은 호흡을 골랐다.

낭수련은 군림단주의 무기지, 투신과는 무관해야 한다.

용연은 조금 전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 다시 올라갔다.

“무사하셨습니까, 단주님?”

현승이 이미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그렇게 궁금했으면 떨어질 때 잡아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현 선림?”

“단주님, 진심으로 놀랐습니다.”

현승은 용연의 농담 섞인 반문에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말투에 특유의 나긋함은 묻어 있었으나 많이 경직되어 있었다.

“내가 더 했을 거예요. 처음으로 이놈이 스스로 풀어지더군요.”

용연은 양손을 들어 팔찌로 돌아간 낭수련을 보여 주었다.

“그 물건이 제 천강담도의 이파(二波)를 막아 낸 것입니까?”

“하단전과 중단전의 진기를 충돌시켜 만든 호신강기가 그렇게 종잇장처럼 찢어질 줄이야. 이놈이 아니었으면 진짜 치명상을 입었을지도 몰라요.”

“그렇군요. 그래서…….”

현승은 용연의 말을 듣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단전과 중단전만 사용했다?

상단전까지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야 짐작하고 있었지만 제어까지 가능한 경지에 올랐을 줄은 몰랐다.

“투신은 하단전과 중단전만 운용해서 낭수련을 갑옷처럼…….”

“단주님, 그럼 운용방법을 바꿔 보는 건 어떠십니까?”

“음?”

용연은 몇 번 더 받아 보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려 했다.

“먼저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 단주님께서는 세 단전을 각각 운용하는 것이 가능하십니까?”

현승이 질문을 하고 나서 살피듯 용연을 쳐다봤다.

용연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현승의 질문으로 머릿속이 혼란해진 까닭이다.

해서는 안 되는 운용방법이었던가? 아니면 그렇게 운용하면 커다란 부작용이 뒤따르기라도?

“단주님?”

“아. 잠시 멍해져서……. 당연하게 지금까지 해 왔던 수련 방법인데, 현 선림의 질문을 들으니 마치 그동안 잘못된 수련을 한 것처럼 들리네요. 맞아요, 세 단전에 각기 다른 진기를 채워 놓고 상황에 따라 각각 운용하고 있어요.”

용연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어서 대답해 보라는 눈으로 현승을 쳐다봤다.

“허…….”

현승은 용연의 대답에 허탈해져서 숨을 뱉어 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서 수도 없이 들었던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란 말을 해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용연은 학림에서 곧바로 군림단주가 된 천재였다.

기본삼공만 익힌 채로 군림봉에 들어가 일 대 군림단주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나왔다.

누군가에게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가능한…… 사람이…….”

현승은 연신 고개를 흔들다 이내 탄식처럼 혼잣말을 꺼냈다.

자신은 정해진 과정을 너무 빨리 익히거나 비틀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용연은 자신이 겪은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군림단의 상식조차 무시한 채 일 대 군림단주의 모든 진전을 스스로가 만든 방법으로 취한 것이다.

“현 선림?”

“…….”

“현 선림, 내게 뭔가를 알려 주려고 한 것 아닌가요?”

“……제게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음?”

“천강담도를 몇 번 더 받아보시면 원하는 답을 찾으실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는 방법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현 선림의 반응이 조금 전과 달라진 것 같은데?’

“단주님, 제가 선림으로 올라가며 깨달은 공부가 있습니다. 바로 ‘기(氣)란 본시 사람 몸에 가둘 수 없다.’라는 이치였습니다.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무공이란 형식은 어떻게 기를 채우느냐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입니다. 펼치고자 하는 무공이 무형의 기냐, 손이냐, 무기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머리와 가장 가까운 기는 무형의 기를 펼치기 쉬울 것이고, 손이나 무기는 중단전과 하단전의 기를 사용하는 것이 위력을 더하겠지요.”

움찔.

현승의 말을 한 자도 빠짐없이 암기하듯 듣고 있던 용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처음 듣는 새로운 이론에 머릿속이 폭발하듯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전의 새로운 개념이었다.

할아버지 용잠의 기록에서도 본 적 없는 또 다른 세상이 현승의 말속에 있었다.

팟!

머릿속에 있던 방들 중 하나에 불이 들어오며 환해졌다.

팟!

또.

팟!

또…….

부르르.

이번엔 용연의 몸이 떨렸다.

불 켜진 방에 채워져 있던 내용물을 꺼내 현승이 알려 준 이론 중 한 가지를 넣었기 때문이다.

입에서는 연신 ‘아’라는 말만 흘러나왔다.

몇 번의 ‘아’가 끝나고 나서야 용연의 눈동자가 초점이 잡혔다.

“현 선림…… 덕분에 불이 꺼져 있던 방들을 채웠어요.”

‘불이 꺼져 있던 방이라. 단주님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단주님이 이미 내 설명을 본인의 방식으로 흡수하셨다는 건 알겠구나.’

믿기지는 않지만 믿을 수 있는.

현승은 용연을 보며 참으로 오묘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한 번 더 해 보죠.”

용연은 방금 이해한 이론을 바로 적용까지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조금 전과 같은 오 성의 천강담도를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현승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천강담도를 펼칠 때의 자세를 취했다.

퀴류류류류―.

와류가 순식간에 현승을 삼켰다가 서서히 옅어지며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용연은 현승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제야 양손을 움직였다.

꿈틀.

하단전에서 먼저 반응을 보였다.

안가의 벽들과 군림봉 모옥의 벽에서 흡수한 괴물들.

적어도 현승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아닐 수도 있다.

괴물들의 실체를 부정하며 투신의 네 가지 무공 중 가장 강력한 각벽을 운용했다.

그러자 하단전이 아닌 양쪽 발끝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음?’

용연은 곧장 조아의 구결을 운용했다.

쩌릿한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하단전이 아니라 진기가 발출되는 몸의 가장 끝이 반응을 한 것이다.

이번엔 중단전을 운용하겠다고 마음먹고 각벽과 조아의 구결을 떠올렸다.

차르락.

낭수련이 차례로 발끝과 손끝을 감쌌다.

하단전은 괴물들, 중단전은 낭수련이 흡수한 진기, 상단전은 머릿속 수차.

그동안 무공을 사용하기 전에 항상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현승의 말대로 아무 생각 없이 각벽과 조아를 떠올리자 발끝과 손끝이 먼저 반응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위력은 아직 펼쳐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일단 반응은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쿠핫!

현승의 등 뒤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형상의 도가 그대로 용연을 향해 뻗어 왔다.

‘저런 형태였구나.’

용연은 천강담도의 웅장한 모습을 눈에 담았다.

척.

자세를 낮추자,

차르락.

낭수련이 용연의 양손을 감쌌다.

쩡!

과― 웅―.

용연의 양손과 천강담도가 부딪치자 거대한 공간 왜곡이 양옆으로 쫙 펼쳐졌다.

‘대단하십니다, 단주님.’

현승은 이전처럼 용연이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지 않았다.

슥.

상체를 앞으로 슬쩍 내밀었다.

꾸드드드등!

격한 파공음과 함께 공간 왜곡의 날개 부분이 용연 쪽으로 휘어 들어갔다.

다음이나 그다음쯤엔 선 채로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현승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콰콰콰!

그 순간, 연속적으로 충격이 전해지며 내밀었던 현승의 상체를 멈추게 만들었다.

용연은 조아만으로 버거워지는 순간, 몸을 흔들며 각벽으로 천강담도의 변을 때려 댔다.

콰콰콰!

이어서 곧바로 조벽과 각지까지 사용해 수십 번에 달하는 연속기를 펼쳐 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천강담도는 의연히 용연의 모든 공격을 받아 내며 그대로 덮쳤다.

쩡!

‘괜찮네.’

용연은 다시 아래로 떨어졌지만 손으로 가슴을 만져 보며 웃었다.

팟.

머릿속의 수차를 돌리자,

차르락.

낭수련이 줄처럼 길게 늘어나며 용연을 절벽으로 끌어당겼다.

다시 한번 천강담도가 봉우리를 반으로 가를 것처럼 거대해졌다가 내리꽂혔다.

쩡!

***

“후우…….”

현승의 입에서 숨이 길게 토해졌다.

용연의 모습은 정상에서 보이지 않았다.

무려 열한 번.

아무리 오 성의 천강담도라고 해도 엄청난 내공 소모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슥.

현승은 양손을 올려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뒤로 넘기고 꼬아서 끌어 올린 후 쪽으로 고정시켰다.

“열한 번. 새로운 개념을 적용하는 데 걸린 시간이 하루라니. 후후.”

고개를 들어 이제 곧 붉어질 하늘로 시선을 주었다.

호원이든, 묵자성이든, 구왕이든, 경오든 목을 잘라 오라고 해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용연의 능력을 하루 종일 경험하고 나니 좀 더 강해지고 싶어졌다.

***

팟.

나무에 발을 디디자마자 다시 솟구쳤다.

파라락―.

옷자락이 펄럭이며 신형을 마구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용연은 개의치 않고 적당한 장애물을 밟거나 쥐었다가 뒤로 내던지며 그 반동으로 다시 몸을 날렸다.

인적이 드문 장소라서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원리에서 시작해 깨닫고 익히길 반복하며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그런데 만족해선 안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아직도 노력해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희열이 느껴진 까닭이다.

‘현 선림이 말한 이론에 삼재의 원리를 적용해 보고 싶어.’

투신의 역할을 해야 하기에 적용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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