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천 년을 이어 온 종남파의 정문이 터져 나가며 엄청난 굉음이 위쪽으로 밀려 올라갔다.
“감히!”
강혁은 대로(大怒)해서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연무장에서 새벽 연공을 하던 종남파 제자들이 일제히 강혁 등이 서 있는 단 위를 올려다봤다.
“일대제자들은 이대제자들을 데리고 정문으로 내려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삼대제자들은 북두천강진(北斗天剛陣)을 펼쳐 어린 제자들을 보호하도록 해라.”
정광의 빠른 조치에 제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헛!”
정문 쪽을 주시하던 강혁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퍼버벅!
짧고 간결한 음향.
“이, 이 괴물!”
같이 수련하던 동기 십여 명과 함께 달려들었던 청년은 양옆을 돌아보다 혼자만 살아남았음을 깨닫고 겁에 질려 목청껏 소리쳤다.
누구든 와서 자신을 구해 주길 바라는 외침이었다.
“크크크. 태어난 지 이 년도 안 된 아이가 죽었단다.”
청년을 내려다보던 인영, 몽외가 입을 열었다.
[……(중략)……그래서 적정한 대가를 받아내려 한다. 몽 선림, 철혈사자맹 대장로가 종남파 출신이다. 군림단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고 오라.
―군림단주.]
몽외는 오랜만에 완전한 해방을 얻은 기분이 됐다.
용연의 허락이 떨어진 이상 앞뒤를 재거나 할 필요가 없어진 까닭이다.
퍽!
“장난하나?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래?”
흑천 일원 노구가 청년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는 몽외의 뒤를 따랐다.
“크크크. 그래, 넓은데 조용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으냐? 강혁이란 자를 찾고 있다.”
다아아― 아아앙―.
몽외의 음성은 곧장 쇳소리로 변해 종남파 곳곳을 화살처럼 파고들었다.
파슥!
힐끗.
장문인 정광은 몽외의 목소리가 화살처럼 꽂힌 기둥을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동안 종남파에 내가 모르는 변고라도 있었던 건가? 열여섯? 고작? 허허, 허허허.”
정광은 정문을 부순 자들의 숫자를 눈으로 세다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트리며 강혁을 돌아봤다.
그러나 당연히 웃고 있을 줄 알았던 강혁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장문인, 철혈사자맹이 아니라 종남파에서 나를 찾고 있어요.”
“음?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정광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강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고작 열여섯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무공에 자신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대장로, 아무리 뛰어난 자들이라고 해도 제자들만 몇 백 명이 모여 있는 종남파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팔선(八仙)을 불러야겠습니다.”
강혁은 정광과 더는 말을 섞기 힘들었다.
일반 제자들로 저들을 막는다면 희생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안 됩니다. 팔선들은 자오곡(子午谷)에서 정진 중인데 이런 일로 방해를 하다니요.”
정광은 고개까지 좌우로 흔들었다.
“저래도 말인가요, 장문인?”
강혁이 몽외와 흑천 열다섯 명을 가리켰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괴인을 공격하던 제자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괴인을 호위하는 열다섯 명의 방어를 뚫지 못하는 것이다.
제자들 중에는 검사(劍絲)까지 펼치는 고수들도 있었지만 나가떨어지긴 마찬가지였다.
“파, 팔선을 불러라!”
정광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강혁과 일대제자 둘은 곧바로 단 아래로 신형을 떨어뜨렸다.
“제자들은 물러나라!”
강혁은 내려가며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다.
힐끗.
“크크크. 이제야 판단을 끝낸 모양이지?”
몽외는 윗니와 아랫니를 한껏 드러내며 웃다가 내려오는 강혁 등의 뒤쪽을 쳐다봤다.
달보다 더 밝은 별빛들이 아직도 하늘에 박혀 있었다.
팟.
열다섯 흑천 전원이 동시에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쾅!
연무장 바닥에 구덩이를 만들었고,
쩡!
십여 명이 한 명에게 내공을 몰아주며 막아 보기도 했다.
“큭.”
“커헉!”
신음과 비명을 지르며 전원 어깨가 탈골된 채 널브러졌다.
콰콰콰!
흑천원들은 몽외를 중심으로 오 장여의 공간만 그대로 두고 마구 장력을 퍼부었다.
“이이…….”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강혁이 눈을 부라리며 흑천원들에게 공세를 퍼부으려 했으나, 몽외의 아주 미미한 움직임 하나로 손을 거두었다.
“크크크. 저건 빈 구덩이들일뿐이야.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저 안을 제자들 시체로 채웠다가는 천벌이라도 내릴 것 같은데?”
“내가 종남파 장로 강혁이다. 네놈들은 누구냐?”
“군림단 몽외. 철혈사자맹주와 가장 오래 손발을 맞춘 강혁 대장로를 죽이러 왔다.”
‘맹주님과 가장 오래 손발을 맞춘?’
강혁은 묵자성 얘길 듣는 순간 이어진 몽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철혈사자맹주가 사람을 시켜 사천성의 조그만 문파 하나를 없애라고 한 일을 알고 있나?”
‘사천성?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강혁은 인상을 쓴 채 몽외를 응시하기만 했다.
“군림단이 사천성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도움을 준 곳이지. 갓난아이까지 포함해서 총 서른네 명. 상처에 흔적이 날까 봐 뭉개기까지 했다더군. 크크크.”
‘윽!’
강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참혹한 상황을 설명하는 몽외의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윗니와 아랫니를 맞물린 치아를 모두 드러내며 한껏 웃고 있는 표정.
도저히 정상인으로는 보여지지 않았다.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모르는 일이오.”
강혁은 욕지기가 나오려는 것을 참아 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알아.”
“음?”
“말했잖아. 당신을 죽이는 이유는, 당신이 철혈사자맹주와 인연이 가장 오래돼서라고.”
“이런 미친!”
강혁은 도저히 몽외의 말을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진즉에 운용하고 있던 태을신공(太乙神功)을 전력으로 끌어 올렸다.
츠으으―.
강혁의 몸에서 사람 형태의 빛이 빠져나간다 싶더니 이내 청강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천강검법(大天罡劍法)!”
뒤에서 지켜보던 일대제자 한 명이 탄성을 터트리며 손을 펼쳐 다른 두 일대제자와 함께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청강검에 모인 빛은 점점 길어지더니 손을 내밀어 뻗기만 해도 몽외에게 닿을 것처럼 늘어났다.
물러난 일대제자 셋의 눈이 반짝였다.
강혁이 얼마나 심오한 경지에 올랐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절정의 경지를 한참 전에 넘어선 분답다!’
‘저 광경,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대제자 셋 중 둘이 강혁의 검강에 감탄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의 시선은 뒤쪽에 가 있었다.
‘저들은 왜 저리 태연하지?’
일대제자 중 한 명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흑천 일원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다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히죽.
향사는 일대제자 중 한 명의 얼굴이 너무 심각해 보여서 장난스럽게 웃어 주었다.
그러자 일대제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곧 끝나.”
향사는 입모양으로 이후의 상황을 알려 주었다.
“뒈진다, 향사.”
향사와 가장 가까이 있던 매건이 낮게 으르렁댔다.
그제야 향사의 얼굴이 근엄하게 바뀌었다.
‘도대체 저 괴인이 누구기에 지금 상황을 보고도 장난을 칠 수 있는 거지?’
“유성, 뭐하는가?”
다른 일대제자 둘이 돌아봤다.
“음? 사형들, 저들의…….”
향사와 눈이 마주친 일대제자, 유성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흑천 일원들을 가리키려 했다.
그러나 두 사형은 대답도 듣지 않고 강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힐끗.
유성은 다시 한번 향사에게로 눈을 돌렸으나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야 향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스르―.
강혁의 내공을 온전히 흡수한 청강검은 나뭇잎이 허공을 유영하듯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몽외의 심장을 찔러 갔다.
떨어져서 보면 누구나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속도지만, 대천강검법을 아는 종남파 무인들이라면 왜 저렇게 느려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대천강검법은 검을 막으려 하면 막을 수 없다. 검 끝에 형성되는 소용돌이가 공격도, 방어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 헛!’
일대제자 셋이 머릿속으로 대천강검법의 원리를 떠올리다 기함을 하며 입을 벌렸다.
쩡!
몽외는 자세를 유지하다 강혁의 검강이 원하는 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아무 거리낌 없이 손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흔들.
몽외는 상체가 가볍게 흔들린 반면,
턱. 턱. 턱.
“……!”
강혁은 무려 세 걸음이나 물러나야 했다. 그것도 일대제자 셋의 도움을 받아서.
“크흐, 이름뿐인 철혈사자맹의 대장로는 아니었나 보군. 좋아, 좋아.”
몽외는 치아를 드러낸 채 광대를 더욱 양옆으로 벌렸다.
“……어떻게 내 검강을 막은 거냐?”
강혁은 일대제자 셋의 손을 뿌리치며 몽외를 향해 한 걸음 움직였다.
“어떻게? 바로 앞에서 봤잖아? 못 봤으면 어쩔 수 없고. 크크. 음?”
힐끗.
몽외는 위를 올려다봤다.
십여 명쯤 되는 인원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몽외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자 흑천 전원이 솟구쳤다.
동시에 몽외도 움직였다.
스―.
한 걸음 떼나 싶었는데 몽외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아니, 몽외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했다.
스스스―.
보법의 흐름이라도 보여 주는 것처럼 몽외가 발을 뗄 때마다 잔영들은 자리를 지켰다.
강혁으로서는 당연히 가장 앞쪽에 있는 몽외를 베야 하는데, 쉽게 손이 나가질 않았다.
가장 앞에 있는 몽외가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황당한 생각을 해 버린 까닭이다.
“군림보(君臨步)다. 종종 여유 있을 때 펼치지. 크크크.”
“……!”
강혁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동공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린 입이 보인다.
분명히 몽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지켜봤건만 언제 자신의 오른쪽까지 와 있단 말인가?
퍽!
몽외의 입가를 확인한 순간, 강혁의 의식은 끊어지고 말았다.
목이 날아갔으니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장로!”
“저 괴물을 죽여라!”
흑천 전원과 장력을 교환한 뒤 바닥에 내려서던 팔선들이 분노의 외침을 터트렸다.
텅―.
몽외는 곧장 팔선들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자 팔선들 역시 확장된 동공이 수축되기도 전에 일제히 달려들었다.
쩡!
몽외는 양손을 뻗어 팔선 중 둘의 검을 잡았다.
그러자 두 도사는 마치 지금부터라는 듯 검에 내공을 쏟아부었다.
“크크. 내 손을 잡아 두겠다고?”
몽외의 벌어진 입이 더욱 커졌다.
이 상황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쾌레렉!
두 도사의 머리 위로 풍차처럼 회전하던 검이 떨어져 내렸다.
촤릿!
몽외는 두 도사에게서 검을 빼앗아 곧장 위로 내던졌다.
쾅!
거대한 폭음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리고 폭음과 같이 날아간 두 도사의 검편들은 암기가 되어 구경하던 종남파의 제자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