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단주-191화 (191/232)

191화

“투신이다.”

용연은 대답부터 해 준 뒤 시선을 돌려 제갈악을 쳐다봤고 이어서 무류선생, 단적양 순으로 시선을 돌렸다.

“투신이다? 강호삼대세력 중 두 곳을 대표해서 온 우리들에게 그런 말투는 곤란하지 않나?”

단적양은 삐딱한 표정으로 용연의 눈을 마주했다.

“대표? 철혈사자맹주와 사혈명 혈주가 그런 자격을 당신들에게 줬다고?”

슥.

용연이 갑자기 단적양 앞으로 한 걸음을 옮겼다.

움찔.

단적양은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뒤로 밀었다.

그러나 이내 자존심이 상했는지 용연에게로 한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서패주님의 명령을 위임받았으니 충분…….”

턱.

단적양의 입이 닫혔다.

눈앞에 있던 용연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손이 어깨에 닿은 것이 느껴진 까닭이다.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일어난 일이었다.

천천히 단적양은 어깨로 눈을 돌렸다.

탁. 탁.

용연은 단적양과 눈이 마주친 뒤 두 번 더 어깨를 두드리고는 다시 묵 노야 쪽으로 움직였다.

단적양은 용연이 되돌아갈 때까지 빤히 쳐다본 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나는 서패주가 아니라 사혈명 혈주에 대해 물었어. 회주, 서패주가 사혈명의 주인이 됐나?”

용연이 묵 노야를 돌아봤다.

“사혈명의 주인이 사황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소문은 들은 적 없습니다, 투신.”

묵 노야는 용연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서패주 파륵이 사황의 명령을 받은 건가?”

용연은 단적양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단적양의 몸에서 뼈마디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끄드득.

용연이 사혈명을 함부로 대한다고 여긴 것이다.

“내 손이 무기였어도 그렇게 힘을 냈으려나?”

용연은 가면 아래 입가를 비틀었다.

‘이익!’

불룩.

단적양의 턱 근육이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용연의 손에 검이 들린 상상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정할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내 살갗은 뚫리지…….”

쉭―.

용연의 손이 움직였다.

단적양은 다급히 양손을 교차시켜 막았다.

쩡!

턱.

단적양의 발이 뒤로 반보 물러났다.

“단단하긴 하군.”

용연은 놀랍다는 듯 단적양을 쳐다봤다.

“그 정도로는 내 고목신공을…… 음!”

단적양은 득의한 표정으로 말을 하다 천천히 자신의 왼쪽 어깨로 눈을 돌렸다.

뚝. 뚝.

검붉은 피가 어깨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 무슨…….”

단적양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어떤 무기인지 확인하려 용연의 손을 쳐다봤다.

용연은 여전히 맨손이었다.

“뚫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 정도로 부족하면 다른 곳도 해 볼까?”

‘큿!’

단적양은 얼굴을 구겼으나 차마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용연의 시선이 닿은 곳이 바로 목이었기 때문이다.

“당신들도 시험해 보고 싶나?”

움찔.

용연이 몸을 돌리자 무류선생과 제갈악이 동시에 어깨를 움츠렸다.

‘이자, 일부러 단적양을 도발한 거야. 나나 무류선생도 본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무서운 자다.’

제갈악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마른침 삼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절레절레.

옆에 있던 무류선생의 고개도 좌우로 흔들렸다.

‘나와 제갈 대협이 합공한다면 능히 전주와도 백 초를 겨룰 수 있다. 거기에 단적양까지 더해진다면 필승을 자신한다. 그런데 저 투신이란 자에겐 셋이 덤벼도 안 될 것 같다.’

무류선생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 가는 신생 세력 정도의 수장이란 자가 어떻게 철혈사자맹의 전주보다 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건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집단들이 명멸하는 과정을 보고 들어온 자신이었지만, 삼정일사회 같은 곳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회주, 생각을 바꿨다.”

“따르겠습니다.”

“우리 얘기 좀 하지.”

용연은 무류선생 등을 향해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 뒤 먼저 움직였다.

그러자 묵 노야는 삼십육무투에게 손가락으로 지시를 내렸다.

사사사삭.

삼십육무투가 빠르게 사방으로 퍼지며 세 사람을 포위하듯 감쌌다.

“투신께서 사용하는 거처라 항시 호위를 하는 것이니 이해해 주기 바라오.”

묵 노야는 말을 마치고 슬쩍 몸을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가라는 뜻이다.

“무슨 얘길 할지 궁금하군.”

무류선생은 순순히 임시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제갈악과 단적양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거처 안은 꽤 넓었다.

벽면에 태사의가 있었고 그 아래 넓고 긴 탁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용연은 중앙에 앉아 세 사람에게 맞은편을 권했다.

의자는 널찍하게 떨어져 있었다.

“회주, 두루마리.”

묵 노야는 마련된 함을 열어 두루마리 세 개를 꺼내 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한류천주 계무란 자가 보관하고 있던 기록이다. 보고 나서 얘기를 이어 가도록 하지.”

용연이 손짓하자 무류선생 등은 ‘철혈’, ‘사자’, ‘사혈’이라 적힌 두루마리를 펼쳤다.

무류선생과 제갈악은 침음했고, 단적양은 별 반응 없이 두루마리를 말아 놓았다.

“이미 죽은 자들의 이름이 적힌 두루마리들부터 태우는데 본인들 이름이 지워진 줄 알았는지 내 입을 막겠다고 덤비더군. 결과야 당신들이 온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지.”

용연은 양손을 탁자 위에 올리며 세 사람과 차례로 눈을 마주쳤다.

할 얘기 있으면 해 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은, 철혈사자맹의 제자들을 당신이 죽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오?”

무류선생은 용연의 대답을 바랐다.

“다 들었는데 뭘 또 확인해. 돌아가자.”

단적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와 제갈 대협은 철혈사자맹을 대표해서 왔고, 단 대협은 사혈명을 대표해서 왔소. 당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우리의 결정은 달라질 거요.”

무류선생은 단적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마을 밖에 배치해 둔 자들을 부르기라도 하려고?”

용연은 말을 끊고 세 사람과 일일이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세 사람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서, 설마…….”

“……!”

무류선생과 제갈악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눈을 크게 치떴다.

꿈틀.

‘저 순진한 것들. 밖에 있는 자들 정도면 몰라도 위사 따위들로는 내 부하들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어.’

단적양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어질 용연의 말을 기다렸다.

본심을 지금부터 꺼낼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마을로 들어왔을 때쯤 보고 하나를 들었어. 지켜보는 자들이 있다더군. 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순순히 대답하면 그냥 둬도 되지만, 반항하면 처리하라고 했어.”

용연은 덤덤하게 말을 마쳤다.

그러자 단적양의 턱 근육이 불룩 튀어나왔다.

용연이 자신들을 떠보려고 한 말이 아님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들의 표정을 보니 등 교림과 곽 교림, 그리고 이 기 삼십육무투를 보낸 것이 오히려 과한 것 같군.’

용연은 눈앞의 셋이 삼정일사회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안와산에서 아이들과 같이 묻은 열네 명의 복면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누군가로부터 버려진 패.

이들만으로 삼정일사회를 흔들 수 있어도 좋고, 이들이 죽는다고 해도 공격할 명분이 하나 더 늘었으니 오히려 좋아할 수 있으려나?

눈앞의 세 사람은 아마도 성장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살아왔을 것이다.

조건이 걸리지 않으면 그 어떤 권한도 조직 내에서는 행사할 수 없기에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됐소?”

침묵을 더 기다리지 못하겠는지 무류선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걱정되나?”

“당연히.”

무류선생이 바로 말을 받았다.

“준비를 철저히 했어야지. 삼정일사회의 주인이 누군지, 어느 정도 규모의 세력인지, 왜 한류천이란 이름을 지웠는지. 아무런 정보도 받지 않고서 가라고 하니 무작정 고만고만한 자들을 데리고 온 결과야.”

‘이자, 왜 이리 여유롭지? 나와 제갈 대협이 철혈사자맹에서 나온 걸 알면서도 거침이 없어.’

오싹.

무류선생은 용연의 말을 들으며 소름이 끼쳤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당신, 사혈명이 두렵지 않군. 그렇지?”

무류선생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용연을 향해 입을 연 단적양의 어깨가 미미하게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단적양 역시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낀 것이다.

“회주, 아직도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용연은 단적양이 아닌 묵 노야를 돌아보며 낮게 숨을 토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투신.”

묵 노야는 바로 허리를 숙였다.

“사혈명을 겁내지 않느냐고 물었지?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당신들은 왜 질문을 서로 미루고 있지? 내게서 원하는 대답을 듣고는 싶지만 질문은 서로에게 미루고 싶은 것 아닌가?”

용연은 무류선생, 제갈악, 단적양을 차례로 쳐다봤다.

순간, 세 사람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용연이 말을 이었다.

“당신들이 몸담고 싶어 하는 곳들도 똑같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지. 그런 곳들을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할까?”

피식.

가면 아래 드러난 용연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대놓고 비웃었음에도 세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용연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번 역시 아무도 돌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강호삼대세력이 힘을 합쳐 삼정일사회를 치러 올까? 당신들의 가치가 그 정도는 되나?”

용연의 질문이 이어질수록 세 사람의 표정은 심각해져 갔다.

묵 노야는 허리를 숙인 채 소리 없이 웃었다.

저 세 사람의 생각이 머릿속에 들리는 것 같은 까닭이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겠지만 입이 열리지 않으니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다.

공기의 밀도가 전신을 짓누르는 느낌?

자신 역시 용연이 집중하고 있을 때 눈을 마주하면 저들과 비슷한 상태가 되기에 잘 알고 있었다.

용연은 아직도 성장이 멈추지 않은 것이다.

‘당신은 한 번 보고 알아본 거요, 호원 궁주?’

묵 노야는 쓴웃음을 지었다.

몇 년에 걸쳐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자신은 용연이 완성됐다고 여겼지, 여전히 성장 중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만약 호원이 용연의 성장 가능성을 봤다면?

이것이 호원이 최근 들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와 연결시키게 된 계기였다.

용연이 호원 자신을 변화시켜서라도 더 완벽해지고 싶게 만든 것이다.

그 외에는 현재의 상황을 해석할 방법이 없었다.

***

움찔.

하얗고 긴 손이 전기라도 만진 것처럼 움츠러들었다가 펴졌다.

“투입한 영약들이 이제야 제 기능을 발휘하는 건가?”

호원은 왼손을 쥐락 펴락 하며 호씨세가 지하 석실로 들어섰다.

갑자기 찌릿해지며 자극이 온 까닭이다.

그그긍―.

―끄아아아! 살려 줘, 몸이 찢어지고 있어!

―머리가 아파, 머리가!

―호, 호 궁주를 불러 줘!

석실을 열자마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문을 깨고 나온 자가 더 있나, 기왜(奇矮)?”

호원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뒤따르는 자를 돌아봤다.

“아래층의 셋 외엔 아직 없습니다, 궁주님.”

곱사등이 노인, 기왜가 머리를 조아렸다.

“가능성이 보이는 자는?”

“열흘 안으로 둘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백 명 중 다섯이면 일 할도 안 되는군. 그들 방으로 가 보자.”

“이쪽입니다.”

기왜는 호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복도로 내달리듯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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