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정운은 아홉 사부와 자신의 격차를 떠올려 봤다.
같은 통천강 십 성의 경지라도 내공에 따라 다르고, 운용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고,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다를 것이다.
포말이 시작된 중앙.
가면 쓴 사내는 양손을 비스듬히 들어 올린 채 뭔가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계속 지켜봤음에도 그가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귀령대와 일곱 검귀들이 몇 번 더 공격할 수는 있겠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꾹.
통천강을 운용해 꼿꼿하게 선 허리띠를 둘렀다.
저자는 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건가?
왜 하필 지금인가?
사자를 노리는 거라면 다른 두 사제도 있잖은가?
분노, 짜증, 허탈.
복잡한 감정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콰쾅!
“등?”
정운은 황당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치떴다.
용연은 일곱 검귀 중 셋의 공격을 등으로 받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쭉 밀고 나갔다.
그러자 이어서 공격을 가하려던 네 명의 검귀들이 바닥에 내려서고 말았다.
그 순간.
우뚝.
용연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텅―.
뒤로 밀고나가던 속도의 배는 빠르게 네 명의 검귀들을 향해 움직였다.
쉭.
순발력이 가장 뛰어난 허궁은 땅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쾅!
허궁의 검이 용연의 팔뚝을 때리고 튕겨졌다.
힐끗.
용연은 허궁이 아닌 옆의 검귀를 돌아봤다.
“윽!”
허공의 검을 용연이 어떻게 막을지 지켜보던 검귀가 다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용연의 손이 목을 쥐었다.
툭.
검귀의 목은 수수깡처럼 너무 쉽게 부러졌다.
“죽어!”
뒤로 밀려난 허궁과 양쪽의 검귀가 기세를 폭발시키며 달려들었다.
꾹.
용연은 오른발을 땅에 박은 채 적당한 속도로 세 검귀의 검을 등으로 받아쳤다.
콰쾅!
세 검귀는 자신들이 무슨 수법에 날아가는지도 모른 채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무완주슬 각벽이 용연의 몸에서 펼쳐지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용연은 먼저 나가떨어진 검귀 셋을 돌아봤다.
내부가 진탕됐는지 창백한 안색으로 검에 의지해 일어나 있었다.
슥.
낭수련을 때리는 순간 삼제의 두 번째 원리가 세 검귀의 몸에 스며 들어가 있었다.
용연의 손이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크으…… 컥!”
세 검귀의 몸이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옆으로 휘다가 이내 단말마를 터트리며 그대로 엎어져서 일어나지 않았다.
용연은 다시 돌아서며 방금 전 나가떨어진 허궁 등 셋을 향해서도 같은 동작을 취했다.
역시나 단말마가 터지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여섯 검귀 모두 삼제의 세 번째 원리를 감당할 만한 상태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러나라.”
정운은 벌벌 떨면서도 용연을 막아서고 있는 제일 귀령대가 기특했다.
“부하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더니 마음을 바꿨나?”
용연은 이십여 명의 귀령대원들이 물러나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저들 중 누구도 살아 있다고는 볼 수 없었다.
용연이 발을 디디고 있는 영역 안에 닿은 이상 삼제의 첫 번째 원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이다.
“그게 무슨 수법인지 알려 주면 안 되겠나?”
정운은 손을 들어 옆으로 돌리는 시늉을 했다.
용연이 삼제의 세 번째 원리를 발현시키는 손짓이 그 자체만으로 무공이라 여긴 것이다.
“제(提).”
“제?”
정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용연의 말을 따라했다.
“들어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펼칠 수 없는 것이니 호기심은 거기까지.”
“대단한 자신감이군.”
“투신이니까.”
“……당신이?”
정운은 용연이 너무 쉽게 정체를 밝히자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말았다.
은자림에서 봤던 청년이 한류천을 노리는 배후가 아니었단 말인가?
귀이륙이 가져온 정보를 듣고 확신을 했건만, 투신의 등장이라니?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사자라고? 회주 말로는 상당한 고수라고 하더군. 맞나?”
“저 마을 안에 숨어 있는 자들이 그럼 삼정일사회?”
“반응이 재미있군. 그게 중요한가?”
“하…….”
정운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뒤쪽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신이 적은 서찰이 저기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망치고 싶나?”
“도망? 큿. 엉망진창이 됐는데 어디로 도망을 가!”
쉬앙.
정운의 감정이 폭발하며 허리띠를 감싸고 있던 반투명한 검강이 주욱 늘어나며 용연의 어깨 위로 떨어져 내렸다.
쩡!
용연은 제자리에서 검강을 어깨로 받아 냈다.
쩌저적!
용연의 발아래가 거미줄처럼 갈라지더니 사방으로 쫙 퍼져나갔다.
“가, 강기를 맨몸으로 받아 냈……!”
찌르르.
정운은 손으로 전해지는 강력한 힘 때문에 말을 끝내지 못한 채 두 눈을 부릅떴다.
손이 떨려 왔다.
엄청난 반발력인 것이다.
“이 시시한 공격이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척.
용연은 거미줄처럼 갈라진 자리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정운의 통천강은 이미 은자림에서 한 번 받아 낸 적이 있기에 검강이 어디를 노리는지 어느 정도의 힘이 실려 있을지 알고 있었다.
낭수련으로 어깨를 보호한 채 받아 냈고 체내로 스며든 잔여 진기는 뒤쪽으로 보냈다.
갈라진 땅을 타고 이어진 정운의 진기는 삼제의 세 번째 원리로 귀령대 전원의 내부를 흔들어 놓았다.
주춤.
정운은 연속해서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용연이 다가온 만큼 뒤로 물러났다.
은자림에 이어 두 번째였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왜!”
정운은 연속해서 소리를 질러 댔다.
다들 자신 보고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영재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영재가 삼십 년 동안 검, 도, 창만을, 그것도 강호 최고수 중 한 명인 구왕 사도천의 내공을 기반으로 익혔다.
“시끄러워.”
가면 쓴 투신이란 자가 귀를 후빈다.
“그놈 누구야? 너희 둘이서 짠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엿 같은 일이 어떻게 연속해서, 그것도 내게만 일어나냐고오!”
눈동자의 혈관이 모두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정운의 동공이 빨개졌다.
‘둘이 아니라 한 사람이지.’
용연은 정운의 말에 고소를 머금었다.
은자림에서의 일이 저렇게 앞뒤 못 가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살아남은 귀영대 대부분이 쓰러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화내고 악쓰면 대신 처리해 주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살아온 거냐? 내가 그동안 구왕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런 철부지를 제자라고 애지중지하다니. 쯧.”
용연은 일부러 마지막에 혀를 찼다.
그러자 원하는 대로 정운이 폭주에 들어갔다.
빨간 눈동자에서 시작된 핏빛이 정운의 전신을 감싸더니 이내 모든 피부가 붉게 물들었다.
‘음? 이건 다른 흐름…… 읏.’
퓻.
용연은 꼼짝도 하지 않는 정운에게서 엄청난 속도의 공격이 날아오자, 고개를 옆으로 틀어 피했다.
“크흐, 크흐, 이거였어.”
정운은 용연이 창 형태로 쏜 공격을 피한 것에 놀라지 않고 손에 쥔 허리띠를 내려다봤다.
통천강 십 성.
참으로 기나긴 염원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눈치가 보였다.
왜 검, 도, 창, 세 사부의 눈에는 자신을 향한 안타까움이 그득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통천강 십 성은 단순히 지금과 같은 탈각(脫殼)을 위한 반석일 뿐이었던 것이다.
흔들.
투신이 움직이려 한다.
퓨풋.
두 번의 창 공격이 허공을 찔렀다.
“크흐, 크흐.”
정운은 실패했음에도 웃었다.
투신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좋군.”
용연은 잠깐 사이 정운에게 일어난 큰 변화에 이채를 발하며 자세를 잡았다.
정운이 통천강을 운용할 때는 어디를 공격할지 몸이 먼저 알고서 반응했건만, 조금 전의 두 번은 의식하고 피했다.
귀암로 암주 구왕 사도천.
아무래도 호원 못지않은 거인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싸우면서 틀을 깨도록 만드는 방식이라니.
“크흐, 나도 좋다. 바듬이 돔 새는 것 같디는 하디만, 몸속에 드끅는 뎔기가 빠져나가는 것 가타 시원하다. 흐으…….”
정운은 혀를 빼내 좌우로 돌리다 다시 집어넣었다.
“철부지, 애지중지, 내가 했던 말 취소하지. 구왕의 교육은 아주 혹독하군.”
“크흐, 아홉 사부의 말씀은 모두 사실이었어. 암주님의 무공에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거든. 투신, 네 덕분에 깨달았으니 최대한 빨리 죽여 주마.”
팟.
정운은 혼잣말을 길게 내뱉다 자리에서 사라졌다.
쩡!
용연은 옆으로 비켜서며 팔뚝을 내밀어 정운이 도처럼 사용한 허리띠를 막아 냈다.
그러자 흐느적 풀어졌던 허리띠가 아래쪽에서 살아나며 검으로 화해 심장을 찔러 왔다.
큣.
쩡!
땅에서 발을 떼자, 팔뚝에 집중된 힘에 의해 주욱 뒤로 미끄러졌다.
팟.
정운의 얼굴이 커지고 있었다.
용연이 물러나는 속도를 잡아먹으며 다가오는 것이다.
‘검, 도, 창. 저 허리띠로 세 가지 무기를 대신하는 데 조금도 어색함이 없네. 강호에 나온 이래 가장 강한 상대를 내가 내 손으로 만들어 준 건가?’
씰룩.
용연은 정운의 변화를 알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과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퓻.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정운에게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콱!
용연은 오른발로 땅을 찍으며 미끄러지던 신형을 빙글 회전시키며 힘껏 왼발을 내뻗었다.
쾅!
“어림없다.”
정운은 허리띠 면을 도신처럼 만들어 용연의 각벽을 막아 내고는 곧장 창으로 사용해 첨강(尖罡)을 날렸다.
팟.
용연은 머리를 뒤로 젖히며 첨강을 피했다.
그러나 정운의 움직임이 이어지는 것을 감지하고는 재빨리 몸을 뒤집어 자세를 고정시켰다.
쉬악!
용연의 머리 위로 붉은색 검강이 떨어져 내렸다.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며 팔뚝으로 중단전의 힘이 몰려갔다.
쩡!
그그그극―.
용연과 정운의 신형이 모두 밀렸다.
“…….”
“…….”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쳐다봤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서서히 몸에 난 털까지 붉어지고 있는 정운이었다.
바웅―.
지금까지 검, 도, 창을 펼칠 때와는 또 다른 소리가 났다.
“투신,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