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림단주-169화 (169/232)

169화

소황선은 용연이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는 걸 알고서 자신뿐만 아니라 몇몇 선림의 생각을 밝힌 것이다.

“그랬나요? 이전 모임에서 단원들 모두와 함께 나누지 못한 것이 마음 쓰여서 꺼낸 말이었는데, 제가 착각을 한 것 같군요.”

용연은 소황선의 말에 당황해서 머쓱한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그 모습에 소황선은 그냥 넘어가선 안 될 것 같았는지 망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주님이 앞장서서 가시면 단원들 이끌고 쫓아갈 선림과 교림들은 많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단원들입니다. 단주님, 단원들을 더 믿어 주세요.”

‘……거의 모든 단원들이 나보다 오랫동안 군림단에 몸담았는데, 그들을 내 틀에 맞춰 판단하고 있었어. 이것 또한 습관이었던 거야.’

용연은 숨을 크게 마신 뒤 길게 내뱉었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모양이다.

한 가지에 함몰되지 말자고, 시야를 넓히자고 다짐까지 했으면서 그새 잊은 것이다.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으신 건가?’

소황선은 자신의 조언을 듣고 길게 숨을 내쉬는 용연의 모습에 괜한 말을 했다 여겼다.

“소 선림, 이래서 습관이 무섭다고들 하나 봐요.”

용연이 편안해진 얼굴로 소황선을 보며 웃고 있었다.

“습관요?”

“학림 때는 내려온 임무만 수행하면 그만이었는데, 조금 전에도 보셨듯이 기회가 오면 알려 주려고 하고, 그걸 또 나눠 주려고 해요. 아마 군림봉에서 지내며 머릿속으로 했던 군림단주라면 그럴 것이란 생각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용연은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이 닿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생각을 쪼개느라 여유가 없어 보였던 거구나. 허허.’

소황선은 솔직한 용연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크게 웃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말이다.

저 나이에 자신의 조언을 듣자마자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답까지 찾아 낸다?

무엇보다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열 줄 안다는 것에 너무 좋아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좀 더 속도를 낼 테니, 너무 빠르다고 하지 말아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단주님.”

“소 선림.”

“예, 단주님.”

“가서, 날뛰세요.”

용연에겐 소황선이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젠 알기 때문이다.

은자림에서 본 소황선은 느긋했던 것이 아니라, 지루했다는 것을.

“소저, 태루주님, 먼저 가 보겠습니다.”

소황선은 인이예와 추영영에게 예를 취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떠나갔다.

“어머, 가시게요?”

인이예는 제대로 인사도 건네기 전에 신형을 솟구치는 소황선의 뒷모습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루주, 못 봐.”

추영영은 그런 인이예를 보며 혀를 찼다.

“태루주님, 소 선림께서 보든 못 보든 제 마음을 전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마음 전해지지 않았다고.”

“으…….”

인이예는 눈을 가늘게 뜨며 추영영을 쳐다봤다.

“어머, 그 눈, 안 예뻐.”

추영영 역시 눈을 가늘게 뜨며 인이예와 눈싸움이라도 벌일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댔다.

“까륵! 하지 마세요, 사부님!”

“내가 뭘?”

추영영은 인이예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면서도 의뭉스럽게 되물었다.

‘저렇게 보기 좋아도 되는 건가?’

용연은 두 사제의 정겨운 놀이를 지켜보다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떠나기 전에, 정운이 자신을 봤으니 앞으로는 은영루를 움직일 때 조심해 달라고 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황선과 대화를 나눈 뒤였다.

추영영이라면 이미 자신의 생각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 얘길 들은 인이예라면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깨끗이 흔적을 지울 것이다.

‘한류천과 낭협 쪽은 시작했을까?’

***

남궁산산은 자신을 데려온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려 눈동자를 사방으로 굴려 봤으나, 빛 한 점 없는 어둠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회의를 한다?

서로 얼굴도 확인할 수 없을 텐데 뭘 믿고?

“새로운 열 번째 호법을 환영해 줍시다.”

짝. 짝.

좌측 위.

나직한 목소리의 어둠 속 주관자, 귀수 주혼이 회의 시작을 알렸다.

“허허허. 앞으로 많은 활약 기대합니다.”

점잖은 목소리도 있었고,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부탁하세요.”

살짝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도 있었고,

“호법 되는 것이 이렇게 쉬운 줄 처음 알았소. 남자 품도 아니고 준다고 덥석…… 쯧.”

대놓고 모욕하는 목소리까지.

남궁산산은 웅성거리며 이어지는 소란을 요동 없이 들었다.

“강조단장 백궁천을 직접 처리하셨소, 십 호법?”

주혼의 질문이 웅성거림을 순식간에 없앴다.

“그런 일까지 제 손으로 하지 않아요, 주 호법님. 저는 처리하라는 지시만 하는 사람이랍니다. 다음엔 누가 될지 찾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남궁산산의 말이 끝나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신입 호법 길들이기를 벌써 끝낸 모양이다.

“잘 처리했더군요. 아무튼 여우락에 합류한 걸 축하…….”

“아직.”

남궁산산이 주혼의 말을 잘랐다.

“음?”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요.”

남궁산산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담겼다.

“십 호법, 그게 무슨 말인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주혼의 목소리에 노기가 실렸다.

그러자 웅성대기만 하던 다른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감히!”

“주 호법, 저런 건방진 여자를 받아들일 겁니까!”

이때다 싶었는지 누가 목소리 큰지 내기라도 하듯 목청들을 높여 갔다.

터엉―.

“조용.”

주혼의 목소리가 진동에 실려 공간을 장악했다.

“감사해요, 주 호법님. 제가 망설이는 이유는요, 저는 이곳에 오면 여우락주님이 직접 열 번째 호법으로 인정해 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건 무슨 시장통도 아니고…….”

“이미 락주님의 허락을 받았어요.”

“그걸 어떻게 믿죠? 여기 반응 보니까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요. 제가 십 호법인 건 맞나요?”

“증명 같은 걸 원하나요?”

“예. 여우락주님이 직접 임명해 주는.”

남궁산산은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묵성자 쪽에서 원했던 십 호법의 자리를 드렸어요. 더 이상의 요구는 불가해요.”

“그럼 질문 한 가지는 해도 될까요?”

“해 보세요.”

“만약 여우락주, 가투 호법, 진진 호법, 하룡 호법이 한날한시에 죽는다면 그 자리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여기 계신 분들이 채우나요?”

남궁산산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여기저기서 안광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남궁산산의 귀로 그들의 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묵성자의 뜻인가요?”

주혼은 당황하지 않고 반문했다.

“하아, 왜 이렇게까지 자세히 말씀드리는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세요?”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이유가 뭐죠?”

“군림단에서 저를 노리니까요! 저는 십 호법이 되자마자 죽고 싶지 않다고요!”

“그게 무슨.”

“묵성자의 정보에 따르면, 한류천주 계무가 군림단에 요청을 했대요, 여우락 십 호법을 죽여 달라고.”

“한류천주가?”

주혼은 남궁산산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저기, 주 호법님, 제 얘기 듣고 계세요?”

“물론이오.”

“아니요. 안 듣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를 노리는 곳이, 한류천이 아니라 군림단이라고요.”

“듣고 있다고 했잖소, 십 호법.”

주혼의 대답에도 남궁산산은 반응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기다려도 말이 없자 주혼은 안 되겠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십 호법?”

“주 호법님, 제가 왜 여우락주와 그 주위에 있는 세 호법 얘길 꺼냈을까요? 군림단. 그들을 상대하느니 여우락을 뒤엎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십 호법, 말이 과하시오!”

주혼의 내공 실린 목소리에 공간이 진동했다.

그러나 남궁산산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전혀 과하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군림단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지금부터라도 부하들을 보내 군림단에 대한 정보를 전부 모으세요. 그리고 어느 쪽을 상대하는 것이 나은지 판단해 보세요. 이틀 뒤에도 같은 생각이라면 저는 호법 자리를 내놓고 떠날 겁니다.”

남궁산산은 크게 실망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주 호법, 차라리 잘된 일 아닌가요? 십 호법이 떠나면 한류천이든 군림단이든 그녀를 쫓을 테니 우리와는 무관하잖습니까?”

“십 호법을 내보냅시다.”

“저도 내보내는 데 동의합니다.”

어둠 속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하나둘씩 내놓기 시작했다.

“답답들 하십니다. 십 호법이 여우락 사람이니 군림단에서 쫓는 거 아니요? 그녀가 여우락을 떠나면 다음은 우리들 중에 한 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못하는 겁니까?”

주혼은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힌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틀 뒤, 십 호법에게 이 자리에 나오도록 다시 청할 겁니다. 그때까지 군림단에 대해 조사를 해 두세요.”

이틀 뒤.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 남궁산산이 앉았다.

“군림단. 얼마나 강한 곳이오?”

이번에도 귀수 주혼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조사해 보지 않으셨나요?”

남궁산산은 반문하며 주혼 쪽이 아닌 다른 곳들을 돌아봤다.

분위기가 이전보다 약간 무거워진 것 같긴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묻는 거요, 십 호법. 삼정일사회란 곳에서 떠드는 소문과 칠웅이란 자들이 군림단원이란 정보 외에 더 알고 있는 것이 있소?”

“주 호법님, 설마 이틀 동안 알아낸 정보가 그것뿐이라는 말씀은 아니겠죠?”

남궁산산은 황당한 표정으로 주혼 쪽을 쳐다봤으나 더 이상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이틀 동안 알아낸 정보가 저것뿐인 것이다.

다른 호법들도 말이 없었다.

이들을 잘 구워삶아 담영호와 함께 한 번에 여우락의 수뇌부를 뒤엎으려 했건만, 계획을 수정해야 할 모양이다.

군림단에 대해 이 정도로 무지하다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잖은가?

이곳에 들어오며 뭔가 달라졌다고 느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십 호법이 오기 전에 의견을 나눠봤어요.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십 호법의 제안보다는 군림단을 상대하는 것이 낫겠더군요.”

“역시 그렇군요. 말한 대로 호법 자리를 내놓고 떠납니다. 그래도…… 이틀이나 몸담았던 곳이니,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아 주고 갈게요. 두 달 전쯤 강호삼대세력의 전대 고인 일곱이 죽은 일이 있었어요. 칠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죠. 모두 군림단원들이에요. 그 정도 무위를 가진 고수가 일곱 이상이란 뜻이기도 하죠.”

‘전대 고인 일곱을 단원 일곱이?’

주혼은 남궁산산의 얘기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것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군림단주에 대해 말하고 끝낼게요.”

‘군림단주? 사자궁에서 아무런 얘기가 없었던 걸로 아는데?’

주혼의 상체가 조금 더 앞으로 당겨졌다.

사자궁에서 연락이 왔다면 자신이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사자궁주가 군림단주와 만나고 헤어졌어요.”

“호, 호원 궁주가 군림단주와 만났다고요? 무슨 일로? 아니, 그걸 왜 내가 모르고 있는 거죠?”

주혼은 남궁산산의 입에서 사자궁주가 나오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급히 되물었다.

“호원?”

“사자궁주 호원?”

다른 호법들도 놀랐는지 웅성댔다.

“모르죠. 단지, 둘이 만난 뒤에도 군림단주가 멀쩡히 강호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만 알아요. 그럼.”

남궁산산은 돌아서며 희미하게 웃었다.

―호법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군림단주가 호원과 만났는데도 멀쩡히 강호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고 말해.

담영호가 알려 준 대로 말하자 불씨가 확, 타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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