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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59화 (159/232)

159화

군림단주의 호출 명령이 전해짐과 동시에 무려 여덟 곳에서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강호삼대세력의 입장에 따라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사건이기도 했고, 조사단을 파견해 사정을 파악해야 할 정도로 큰 사건이기도 했다.

군림단의 입장에선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군림단주의 명령에 따라 적당히 임무를 완수한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총사, 대단하지 않느냐?”

묵 노야는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서찰들을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대단합니다. 하지만 회에서 한 일이 아니잖습니까? 차라리 이번 연이은 사건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기심은 어떠십니까?”

단림은 묵 노야가 감탄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며칠 상간으로 여덟 개의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는데 당한 쪽이 모두 강호삼대세력과 관련된 자들이었다.

화자들이 정보가 없어 어떻게 얘기를 꾸려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서찰을 보내온 것이다.

“뭐 하러?”

묵 노야는 단림의 의견을 반문으로 끊어 버렸다.

당황한 단림은 단호한 묵 노야의 반응에 할 말을 잃고 쳐다봤다.

“투신께선 군림단주가 더 유명해지길 바라신다. 내가 감탄한 것은, 이 부분이다.”

묵 노야는 쌓인 서찰 중 한 장을 꺼내 단림에게 건네주었다.

[……(중략)……이상하다 싶어 사람들을 잡고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왜 강호삼대세력에 속한 무인들에게 정보를 알려 주지 않느냐고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하나같이 똑같았습니다. ‘그분이 우릴 얼마나 도와주셨는데 배신을 해? 그럼 안 되지, 안 되고말고.’라며 오히려 제게 역정을 내시더군요.]

“이 내용이 어떻다는 말씀이신지…….”

단림은 이미 읽은 내용이지만 빠진 부분이 있는지 다시 한번 정독을 했으나 묵 노야가 뭘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그들을 자발적으로 돕는다잖아.”

“그야…….”

“삼정일사회의 일이라면 회원들끼리 돕는 건 당연하지만, 일반인들도 그래 줄까? 우리가 뭘 해 줬다고?”

묵 노야는 스스로에게 되묻듯이 말하고는 ‘흘흘’ 웃었다.

“그러면 더 위험한 자들 아닌가요, 회주님?”

“당연히 위험하지. 앞으로 더 위험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들에게.”

“그들?”

“강호삼대세력. 군림단은 우리와 같은 목표를 세운 것 같다.”

“회주님, 군림단은 고작 스물아홉 명으로 구성된 집단일 뿐입니다.”

단림은 묵 노야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것이, 묵 노야는 단림에게 군림단주와 투신이 동일인물임을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금하겠지. 왜 투신께서 군림단주를 의식하는지, 왜 그 정도 규모의 집단을 없애 버리지 않는지. 흘흘흘.’

묵 노야는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아야 했다.

참으로 절묘하지 않은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단림조차 군림단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만들다니.

군림단주와 투신이 다른 사람이란 결정이 만들어 낸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단림이 이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자들의 반응이야 볼 것도 없었다.

“칠영웅에 이어 팔선(八仙)의 등장인 건가? 총사, 군림단과 관련된 일은 내가 알아서 조정할 테니 새로 짓고 있는 본진 쪽에 더 신경 써.”

“……예.”

단림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묵 노야가 자신에게 일임한 본진 공사 역시 중요하기에 고개를 숙였다.

왜 묵 노야가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인지, 왜 군림단에는 저리도 관대한지, 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지.

언제고 물어볼 것을 다짐했다.

‘단원들을 부르셨구나.’

묵 노야는 단림의 의구심 어린 시선을 무시하며 군림단원들을 호출했을 용연을 떠올렸다.

여덟 개의 사건은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조약돌 하나가 파문을 일으킨 정도겠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넓게 퍼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전 강호가 용연의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아! 회주님, 이번 사건들보다 좀 빠르긴 하지만, 산서성 북쪽의 사건도 군림단 쪽 짓일까요?”

단림은 의자바퀴를 굴리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돌아섰다.

“산서성 북쪽?”

“강조단장 백궁천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산서성? 혹시 아북리?’

묵 노야는 산서성이란 말을 듣자마자 아북리란 이름을 떠올렸다.

“총사, 아북리란 집단에 대해 조사해서 알려 줘.”

“……예.”

단림은 자신의 보고에 아북리란 이름이 나오자 이채를 발했다.

서둘러 알아보고 싶었다.

***

강조단장 백궁천.

이름은 대협을 떠올리게 했으나 모습은 기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호위로 보이는 자들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맹수의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어 머리털은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좌측 광대 위쪽 피부는 꺼멓게 죽어 있는 반면, 그 안에 박힌 눈은 형형한 안광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툭.

조금 더 자세히 보려면 얼굴을 맞대는 수밖에.

담영호는 발로 돌멩이를 차 백궁천의 호위 중 한 명이 타고 있는 말을 때렸다.

히이잉―.

말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울었다.

그러자 백궁천의 시선이 옆으로 돌려졌다.

담영호는 바위 위로 올라와 있었다.

화앗!

백궁천은 담영호를 보자마자 투기를 발산시켰다.

―히이이잉.

백궁천 근처에 있던 모든 말들이 투레질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사이 담영호는 바닥에 내려섰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백궁천은 직감적으로 자신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자임을 깨닫고 말에서 내렸다.

쿵!

한 발을 내리며 진동을 일으켰고,

쩌억!

양발이 땅에 닿자, 주위로 균열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그런 행동으로는 담영호의 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척. 척. 척.

담영호는 이미 세 걸음이나 움직인 뒤였다.

“내가 산서성을 벗어난 것은 십오 년 만이다.”

백궁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척. 척. 척.

담영호의 걸음은 같은 보폭으로 여전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돈이 필요해 떠났지. 순전히 내 의지였다. 누가 보냈느냐?”

“……색이야.”

담영호는 귀찮았지만 백궁천을 자리에 묶어 두는 것이 번거로움을 더는 길이기에 일부러 말을 흐렸다.

“뭐?”

우뚝.

담영호는 강조단 앞에 멈춰 섰다.

“말 많은 놈 질색이야. 그만 입 털고 내려와. 말 위에서 죽으면 떨어질 때까지 떠들 거 아냐?”

담영호는 나름 친절하게 말을 건네고는 고개를 까딱였다.

“파하하! 이거야 원, 내가 한창 활동할 때와는 정말 많이 변했잖아? 나, 강조단장 백궁천을 혼자서 상대하겠다며 나서는 놈이 있을 줄이야.”

백궁천은 진심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즐거운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아.”

담영호는 한숨을 흘렸다.

도발을 해 주었음에도 달려들기는커녕 본인 얘기에 더 열을 올리는 종자일 줄이야.

더는 듣기 힘들었다.

고오―.

팟.

담영호의 손에서 나온 붉은 선이 그대로 좌측을 쓸어 갔다.

촤아아!

붉은 선이 서로의 몸을 지나간 것을 본 강조단원들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리고 잘려지는 서로의 몸들을 봤다.

“너, 너 몸이 왜…… 으래…….”

“조…….”

비명 지를 시간도 주지 않고 지나가던 붉은 선이 멈춘 것은 그때였다.

쾅!

굉음이 터지며 강조단원 한 명이 어깨를 감싼 채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음?”

담영호는 이채를 발하며 고개를 돌렸다.

반짝.

처박힌 강조단원의 어깨에서 뭔가가 빛을 반사했다.

몸 전체가 날아간 것을 보면 무공으로 막아 낸 것이 아니라, 저 물건을 혼원강이 자르지 못한 것이다.

슷.

담영호의 신형이 자리에서 사라지며 어깨를 감싸고 있는 자의 옆에 나타났다.

뚝.

목을 꺾은 뒤 어깨의 물건을 살펴봤다.

“걸레를 짜깁기해서 사람 만들어 놨더니 성라석(星羅石), 그 비싼 물건을 훔쳤네.”

뒤에서 백궁천이 혀를 찼다.

“성라석?”

“쇠로는 부술 수 있지만 형체가 없는 기(氣) 같은 것으로는 잘리지 않는 고찰랍의 성스러운 돌이다.”

쭈악!

사내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성라석이 백궁천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래 내 것을 훔쳐 갔으니 돌려받아야지. 흐흐흐.”

백궁천은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담영호는 입가를 씰룩이며 비틀었다.

“곧 쓸모없게 될 텐데 욕심내긴.”

선림으로 올라간 뒤 두 번째 힘 조절의 실패였다.

무의식적으로 교림 때를 생각하며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부수지 못하면서 자신만만해하면 곤란해. 모르지, 네가 그 젊은 놈이라면 또.”

“젊은 놈?”

“나를 여기까지 내려오게 만든 놈이지. 최소 하나 이상 신체 강화가 된 녀석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들인 돈이 얼만데.”

까득!

백궁천은 스스럼없이 건평객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주절거렸다.

담영호의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으나, 아직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보인 강기를 선으로 뻗어 낸 수법으로는 자신의 팔 하나 정도는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뒤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정체는 파악했나?”

“믿을 만한 노인에게 의뢰를 했으니 곧 알게 되겠지. 아! 너는 들을 수 없으려나? 크크큭.”

“몇 명이나 됐지?”

“백 명?”

“그렇군. 그 정도 고수라면 일일이 상대했을 리 없을 테니, 몸에 지니고 있던 기보가 네 부하들 몸에 박아 넣은 것들을 튀어나오게 만든 건가?”

“……!”

백궁천은 담영호의 말을 듣다 눈을 크게 부릅떴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신박하기 이를 데 없는 추측이 아닌가 말이다.

“물어보지도 않은 모양이군.”

“좋은 추측이었다.”

“그 청년의 인상착의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철혈사자맹에서 보낸 자들과 같이 있었다는 것밖엔 모른다.”

“그렇군. 그럼 이제 그만 떠들고 죽어.”

담영호는 백궁천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백궁천은 이건 또 무슨 짓이냐는 표정으로 양손을 모아 가슴에 댔다.

“말했잖아, 성라석도 못 자르는 실력으론 무리라고. 내 몸에 생채기라도 내면 다행일까?”

번쩍!

백궁천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담영호의 손에서 붉은 빛이 빠져나갔다.

팟.

백궁천의 몸을 지나간 붉은 빛에 변화가 일어났다.

파라라라―.

한 개였던 빛이 수십 개로 펼쳐지며 일대를 휩쓸기 시작한 것이다.

“후우.”

담영호는 호흡을 고르며 손을 들어 올렸다.

척.

붉은 빛의 정체인 혼원륜이 손에 잡혔다.

티릭.

담영호의 손에서 둥근 륜은 납작한 막대로 변하며 소매 속으로 사라졌다.

“생채기?”

씰룩.

담영호는 확인할 필요도 없다는 듯 비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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