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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55화 (155/232)

155화

―한 명, 한 명이 임주 못지않은 자들의 집단을 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내버려 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전 군림단 임주의 시험이 끝난 뒤, 서른 명의 고수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받아 냈다.

대부분은 강호삼대세력이 인정하는 그들의 영역을 확보해 자리 잡거나, 몇몇은 더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유일하게 백달만이 철혈사자맹 무성서각과 진천서각을 평생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전부였다.

‘백 대협과 군림단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삼십 년 만에 궁금해졌다.

그때의 백달이 보인 태도를 생각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씨익.

호원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용연이 백달의 뒤를 쫓든, 백달이 과거 군림단과 무슨 일이 있었든 인연이 있다는 사실은 괜찮은 일인 까닭이다.

톡톡톡.

태사의를 두드리는 손가락 속도가 빨라졌다.

용연을 만나기 전의 호원이었다면, 예상 못한 일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마뜩잖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군림단주에게 백 대협은 충분히 훌륭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십사객이 죽었으니 구왕과 사황에게도 작은 선물을 준 셈인가?’

호원은 귀암로와 사혈명의 주인들을 떠올리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철혈사자맹주 묵자성을 잊으면 서운해 할 것 아닌가 말이다.

―크든 작든 체계를 갖고 있으면 거기가 강호 아닌가?

호원은 용연이 한 말을 떠올리다 표정을 굳혔다.

철혈사자맹에 속해 있다는 생각도 벗어나 있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었다.

언제나 호원만의 체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지 모르고 지냈다.

“맞네. 군림단주, 크든 작든 체계를 갖고 있으면 거기가 강호인 거야.”

호원은 굳었던 표정을 풀며 환하게 웃었다.

철혈사자맹과는 무관한 자신만의 체계는 이곳에 있었다.

***

용연은 층층이 쌓인 바위산 위에 서서 시야 끝까지 펼쳐진 평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대막(大漠)이다.

아북리란 도적패를 아는 사람을 만나는 데만 무려 삼 일이 걸렸다.

처음엔 장철이 봇짐을 멨다는 정보만 갖고 그쪽 부류들을 찾아다녔으나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산서성 쪽의 다른 지역에서 도적질을 하는가 싶어 어쩔 수 없이 묵 노야에게 연락하려는 순간, 다행히 마부 한 명이 다가와 주었다.

마부는 모른 척하려다 규모도 작은 아북리 같은 도적패에 관심 두는 것이 신기해 물었다고 했다.

마부의 질문 덕분에 아북리가 도적패 무리들 사이에서도 하찮은 집단임을 알게 됐다.

“말씀드렸다시피, 아북리는 대흑풍단과 거래하는 마적패들과 끈이 닿아 있습니다.”

용연을 이곳까지 안내해 준 마부가 죽립을 누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조단(剛造團)이라고요?”

“무시무시한 자들입니다. 다들 괴물들처럼 온몸에 이상한 물건들을 달고 다녀서 칼에 맞아도 죽지 않는다고 불사단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예요.”

‘피득과 같은 자들인 건가? 백, 천. 두 글자였는데 혹시…….’

용연은 마부의 말을 듣고 두개골까지 철로 감쌌던 피득과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두 글자를 떠올렸다.

“백 무슨 천이란 이름을 가진…….”

“백궁천! 고, 공자님도 아는 자입니까?”

마부는 기함을 하며 다급히 입을 막았다.

“백궁천?”

“강조단장 이름이잖습니까? 심장이 쇠로 만들어져서 대흑풍단 대장들과 싸우고도 살아났다고……. 모르세요, 공자님?”

“심장이 쇠로 만들어졌다고요?”

용연은 피득을 떠올리자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때까지 닮고 싶었던 자 역시 몸을 개조해서 강해지려는 자였던 것이다.

아북리를 찾아왔더니 생각지도 않게 피득과 관련된 기분 나쁜 기억까지 떠올리게 됐다.

후오오옥!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윽!”

마부는 급히 자세를 낮추었다.

“바람이 세네요. 버티기 힘드실 텐데 마차에 가서 떠날 채비하고 계세요.”

“어이구, 받은 돈이 얼만데,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런데 도적패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분이 무슨 일로 예까지 오신 겁니까?”

마부는 진심으로 걱정을 담아 물었다.

“신세 진 분이 아북리에 빚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알고 보니 저와도 관련이 있었네요.”

“예?”

마부는 용연의 말에 눈을 크게 치뜨며 깜짝 놀라 쳐다봤다.

“왜 그리 놀라세요?”

“호, 혹시 대흑풍단(大黑風團)과…….”

“아니요. 거기와는 상관없어요.”

그들이 피득과 연관이 있다면 몰라도 아직까지는 그랬다.

용연은 시선을 들어 지평선 너머를 슬쩍, 쳐다봤다.

“어구야, 다행입니다, 천만다행입니다. 그자들은 사람 목을 잘라서 사막에 뿌리는 야만인들이라 피할 수 있으면 가급적 피하세요.”

마부는 아북리에 빚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용연이 강호인이라 여겨 말을 꺼냈다.

“날 밝기 전에 돌아올게요. 쉬고 계세요.”

“예? 저 아래를 내려갔다가 돌아오는데 반나절밖에 안 걸린다고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다녀올게요.”

“그럼 먼저 가서 마차…… 공자님?”

마부는 당연히 용연이 마차로 움직일 거라 여겼으나, 잠시 뒤를 돌아보는 동안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절벽뿐이기에 조심스럽게 기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세상에…….”

계단처럼 층이 진 절벽을 훌훌, 날아 내려가는 용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반 시진을 달리고 달리자 객점이 보였다.

마부에게 들었던 마적패들이 모이는 곳인 모양이다.

객점은 간판 대신 ‘건평객점’이란 글자가 새겨진 돌을 달고 있었다.

용연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십여 개의 화로가 놓여 있었고 주위로 예닐곱 명은 앉을 수 있도록 널찍널찍했다.

음식은 둘러놓은 반질반질한 돌 위에 놓고 먹으라는 모양이다.

한 개는 가족으로 보이는 네 명이 자리하고, 다른 한 개는 노인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용연은 입구에서 먼 쪽의 빈 화롯가로 가 앉았다.

그때였다.

“젊은이, 이쪽으로 와서 합석하게.”

가족끼리 온 것처럼 보이던 곳의 노인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목소리가 퍼지지 않고 용연에게 직접 전달되도록 소리를 조절한 것이다.

“괜찮습니다.”

용연은 사양하고 주문받을 점소이를 찾아 안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노인이 이번엔 직접 다가왔다.

“자네도 대막으로 넘어가는 건가?”

“아니요, 이곳에 볼 일이 있어 왔을 뿐입니다. 곧 가야죠.”

“그럼 우리와 합석하세. 곧 이곳을 거친 자들이 가득 채울 텐데 혼자 있으면 시비 붙어.”

노인은 용연의 손을 잡아끌었다.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용연은 못 이기는 척 노인을 따라갔다.

자리로 가자,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중년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가 눈인사를 했고, 노인의 손녀로 보이는 십오륙 세 정도의 소녀가 용연을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중년 부부와 소녀 역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아버님, 제게는 사람 조심해야 한다고 하고선…….”

중년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으나 옆으로 엉덩이를 밀며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잠시만 앉아 있다 가겠습니다.”

용연은 중년 부부와 딸에게 포권을 취해 보인 후 앉았다.

“어디까지 가세요?”

중년 여인은 딸을 등지고 앉으며 용연에게 물었다.

불안했던 모양이다.

“더 올라가진 않고 볼일 마치면 돌아갈 생각입니다.”

“볼일? 이곳에서요?”

“그들이 이곳을 종종 들른다는 얘길 듣고 왔어요.”

“그들?”

중년 여인은 계속해서 질문을 해 왔다.

“받아 낼 것이 있어서요.”

“아아, 이곳 사람이라면 받아 내기 힘드실 텐데…….”

중년 여인은 그제야 딱하다는 듯 말을 흐렸다.

그때,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몰려들어 오며 자리 서너 개를 잡고 앉았다.

욕지기와 바닥에 침 뱉기, 자리하고 있는 자리 훔쳐보기.

거칠 것 없이 마음대로 행동했다.

“찜! 하여간 건들면 다 뒈질 줄 알아!”

“그럼 난 두 번째. 키키킥.”

일곱 명이 순번을 정하더니 한 명이 일어나 용연이 합석한 자리로 다가왔다.

“못 들은 척하지 마. 다 들었을 테니 알아서들 꺼져.”

온몸에서 마른 흙냄새 나는 장한이 소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걸걸한 목소리로 손을 흔들었다.

“허허, 이보게…….”

노인은 장한을 돌아보며 한마디 하려다 입구로 들어서는 또 다른 무리를 보고 표정을 굳혔다.

“윽. 지랄.”

장한도 입구를 보더니 입을 앞으로 쭉 빼며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무슨 날이야? 계집이 둘이나 있네?”

입구로 들어온 십여 명의 무리 중 유난히 윗입술이 얇은 자가 곧장 용연이 앉은 자리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준비해.”

노인은 중년 부부와 소녀에게 눈짓을 주고는 용연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누. 배려한다고 한 것이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됐어. 내가 일어나면 곧장 이곳을 벗어나게.”

“안 그래도 될 것 같은데요?”

용연은 다가오는 얄상한 인상의 사내가 아닌 입구 쪽을 향해 반문했다.

“치동, 이 새끼! 우리 물건 어디다 빼돌렸어?”

구레나룻 양쪽을 모두 따서 내린 골격이 다부진 삼십 대 사내가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용연 쪽으로 다가오던 대가 약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가 돌아서며 눈가를 씰룩였다.

“이 새끼? 지금 이 새끼라고 했냐, 지곤?”

“그래, 너 새끼라고 했다, 십기장 치동. 삼십기장 지곤 님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받아 주니 이제 아예 반말이셔? 치동과 조무래기들 그 자리에 무릎 꿇어!”

“지랄. 십 대 삼십으로 한판 붙을까!”

치동과 지곤의 기싸움에 두 사람이 데려온 자들도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그러자 중년 부부와 소녀가 노인을 쳐다봤다.

그 모습이 용연의 눈엔 명령을 기다리는 눈치로 보였다.

“밖에 몇이나 있는지를 모르니 기다리시게들.”

“몇이든 강조단장은 없잖습니까? 다 처리하고 돌아가시죠?”

노인의 말에 중년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언 대협, 팔다리 잘라 봐야 소용없는 건 몇 번이나 경험하셨잖아요?”

중년 여인이 중년 사내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부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팽 부인, 그렇다고 빈손으로 갈 순 없잖습니까?”

‘언 대협, 팽 부인. 오대세가 고수들이군. 그럼 저 노인과 소녀는…….’

용연은 노인과 소녀를 돌아봤다.

“소협, 고수세요?”

소녀는 용연과 눈이 마주치자 즐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

“너무 여유가 넘치세요.”

배시시.

소녀는 얼굴은 웃으면서 눈은 용연을 살폈다.

역용을 하지 않았다면 자질이 출중한 강호세가나 문파의 여식일 것이다.

“철혈사자맹분들이 넷이나 있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겠어?”

용연은 모른 척 말을 돌렸다.

“그 말인 즉, 우리와는 적이 아니란 뜻?”

소녀는 눈을 반짝였다.

“지금은?”

“호오…….”

용연의 대답에 소녀는 더욱 호기심이 커졌는지 눈을 크게 떴다.

“가운 선배님?”

중년 사내는 마음이 급했는지 노인의 이름까지 꺼내며 결정을 재촉했다.

노인의 시선이 처음 들어온 자들과 여전히 서로 욕지기를 뱉어 내는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고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낮게 숨을 뱉어냈다.

“너희들 단장은 같이 안 왔나 보지?”

용연이 먼저 싸우고 있는 치동과 지곤에게 말을 건넸다.

순간, 객점 안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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