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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50화 (150/232)

150화

“먼저 확인부터 하지. 스스로 군림단주라 칭했다고 하던데, 맞나?”

복면인 중 한 명이 나섰다.

눈동자의 모양에서 꽤나 긴장된 상태임이 느껴졌다.

“소식 빠르네. 맞소.”

끄덕.

용연은 순순히 인정해 주었다.

“갈!”

용연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일갈과 함께 칠객의 검이 흔들렸다.

쉬악!

검에 모인 빛무리가 일 장가량 주욱 늘어나더니 검강(劍罡)의 형태로 용연의 가슴에 뿌려졌다.

쩡!

칠객의 검에 십이객의 공격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힘이 실렸음에도 막혔다.

“미친!”

복면인 중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터트렸다.

용연이 양손을 십자로 교차시켜 칠객의 검강을 막은 모습 때문이다.

그러나 복면인들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그그― 텅!

용연이 십자로 교차시킨 팔을 미닫이문 열듯 풀어낸 것만으로 칠객의 검을 튕겨 낸 것이다.

“……이 정도로는 안 되는 것 같군.”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용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칠객은 자신의 허점이 드러난 것도 모른 채 얼굴을 와락, 구겼다.

“뭐, 뭐 하는 거냐, 지금?”

칠객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더욱 진기를 검으로 집중시켰다.

그러나 용연은 그런 칠객의 노력을 좌우로 시선을 돌리며 무시해 주었다.

“다들 열정이 넘쳐 보여서 좋네. 그런데 내가 누군지 알면서 이런 식으로 계속할 생각인가? 용기는 가상하지만……지루하네.”

피식.

용연은 복면인들을 향해 윗니가 보일 정도로 웃어 주었다.

‘저 여유는 뭐지?’

일객은 용연의 한마디가 가슴으로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죽으면 그들과 합류할 수 없어요, 일객.”

“저도 한 팔 돕겠습니다, 일객.”

오객과 육객이 슬쩍 일객에게 말을 건넸다.

십사객 사이에 수장은 없지만 모두 은연중에 일객을 자신들의 대변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일객은 고심하다 용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리 자신만만하게 만드나, 군림단주?”

“자신만만?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데? 당신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군림단주인 내 앞을 막은 거지?”

고오―.

용연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촤아!

중단전의 진기에 반응한 주위의 풀들이 잎을 위로 바짝 세웠다.

슥.

용연은 자신에게 반응해 준 풀 중 하나를 쳐다봤다.

중단전만으로도 닿았다.

하나든, 둘이든, 열넷이든.

삼제의 첫 번째 원리에 닿은 이상 세 번째 원리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달라진 분위기에 조급했을 것이다.

칠객의 검이 이전보다 강하고 빠르게 빛무리를 흘리며 허공에 궤도를 만들어 냈다.

쉬악.

쩡!

두 번째 원리를 칠객이 아닌 칠객의 검에 적용한 후 당겼다.

홱.

칠객은 검이 막힌 것을 느끼자마자 회수하려 했지만, 이미 몸이 용연에게로 끌려가고 있었다.

쾅!

“컥!”

칠객이 뒤쪽으로 날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좀 더 세게 쳤어야 되네. 역시 시험해 보길 잘했어. 그럼 이 정도로 해 볼까?”

용연은 칠객의 가슴을 때렸던 동작을 반복해 보곤 좌우를 돌아보며 양손을 펼쳐 보였다.

손에 아무것도 없는데 덤비지 않고 뭐 하느냐는 뜻이다. 물론 한쪽 입꼬리를 일부러 슬쩍 올린 것은 당연했다.

스스스―.

드디어 바람이 없던 공간에 진기들이 엉키며 기류가 만들어졌다.

차르르―.

낭수련이 용연의 손부터 목 아래까지 감쌌다.

후우, 고오―.

성난 맹수가 호흡하듯 피부로 감겨드는 낭수련의 반응을 온전히 느끼며 용연도 자세를 잡았다.

두근두근.

용연은 심장박동을 빠르게 했다.

감정이란 상대를 향한 의지다.

이제 곧 용연의 생각이 열네 명의 감각에 전해지게 될 것이다.

―지금부터 나는 당신들을 사냥할 것이다.

움찔.

열네 개의 미미한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완주슬을 기반으로 만든 조아, 각지, 조벽, 각벽을 떠올렸다.

순간, 중단전에서 진기가 용암처럼 뿜어져 나오며 혈관을 채웠다.

‘아!’

용연은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진심으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에 감탄한 까닭이다.

지금 상태라면 중단전만 사용해서 네 가지 무공을 극한까지 펼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언제 출수했는지 독 오른 채찍 끝이 용연의 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짜자작!

뒤늦게 허공이 찢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턱.

용연은 가볍게 왼손으로 강철 침이 박힌 공을 잡았다.

분명 채찍을 날린 십일객은 물론이고 나머지 십사객들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퍽!

소리가 난 곳은 용연의 손이 아니었다.

쿵.

가죽으로 동여맨 채찍 손잡이를 잡고 있던 십일객이 뒤로 넘어갔다.

그의 이마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용연이 잡았던 쇠침 박힌 구슬에 당한 것이다.

십삼객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떨렸다.

갸웃.

용연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중단전만 사용하는 제약을 둔 상태라 그런지, 채찍이 정확히 어딜 노리는지 몰랐다.

궤도를 보고 목을 노리는 걸 알았지 몸이 먼저 느끼진 못한 것이다.

‘역시 잘한 선택이었어.’

상단전을 운용하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단점을 알게 됐다.

좋은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이건 뭔가 이상한데?’

일객은 뒤통수를 세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호원의 무심한 얼굴이 떠올랐다.

천천히 열두 명을 돌아봤다.

자신과 이들만으로 눈앞의 군림단주란 자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걸까?

십사객이 된 이후 처음으로 갖게 된 의심이었다.

조금 전 십일객을 일수로 죽인 용연을 보고 깨달았다.

이번 건은 호원이 내린 명령이 아닐 수도 있다고.

호원은 막을 수 없는 자를 막으라는 비효율적인 명령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설마…….’

불길한 예감은 쉽게 어긋나지 않는다.

일객은 머리를 흔들었으나, 흩어졌던 생각은 바로 이어졌다.

만약 호원이 자신들 열네 명만 일부러 보냈다면?

눈앞의 군림단주가 삼십 년 전에 죽임을 당한 군림단의 전 임주 못지않은 무공을 지녔다는 것을 몰랐을까?

절레절레.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뿐이다.

군림단주로 하여금 자신들을 죽이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왜지?”

일객은 머릿속으로는 호원을 생각하며 용연에게 질문을 던졌다.

용연의 눈에 질문을 던진 복면인이 슬쩍 물러나는 반면, 다른 복면인들은 앞으로 다가오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몰랐던 건가?’

용연은 복면인들의 반응에 맥이 풀리고 말았다.

한 꺼풀 안을 들여다본 한 명과 그렇지 못한 나머지 복면인들.

이런 자들을 상대로 무슨 시험을 할까 싶었다.

“당신, 그 질문은 내게 할 게 아니라, 당신들 스스로에게 해야지. 그가 왜 당신들을 버렸는지, 그동안 무슨 역할을 해 왔기에 이제는 필요가 없어졌는지.”

용연은 중단전만 운용한 채 싸우는 시간을 끝내기로 했다.

버려진 자들을 상대로 절망까지 안겨 주려니 마음이 좋지 않은 까닭이다.

머릿속의 수차를 회전시켰다.

팟.

시야가 갑자기 환해지며 반투명한 천이 걷히듯 복면인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가 눈에 들어왔다.

촤락!

갑자기 용연의 오른손에 금빛 검이 쥐어졌다.

낭수련이 변형된 것이다.

군림봉 이후 처음으로 사용해 보는 수법이다.

슥.

용연의 시선이 일객에게 닿았다.

‘큭.’

일객은 용연과 눈이 마주친 순간, 엄청난 무게가 어깨를 눌러 오는 것을 느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나란히 서 있던 십이객들은 일객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끼고 용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훙―.

높이 솟구쳤던 십객의 도끼가 용연의 머리를 노리고 떨어졌다.

턱.

용연은 낭수련으로 감싼 왼손으로 도끼를 받았다.

짜자자작!

용연의 발아래의 땅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주위로 퍼져 나갔다.

쇄애액!

틈을 놓치지 않고 삼객이 용연의 심장을 노리고 창을 뻗어왔다.

쩡!

오른손에 만든 금빛 검면이 창끝을 막아 냈다.

그때, 언제 용연의 그림자에 은신했는지 구객이 죽음의 손인 묵수(墨手)로 등을 찔러 왔다.

툭.

“……!”

묵수를 뻗던 구객의 드러난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용연의 등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남겨 두고 양손이 잘려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차르륵!

삼객의 창을 막은 검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구객의 손을 잘라 버리고 다시 합쳐지는 소리였다.

용연은 도끼는 놓아주고 창은 튕겨 내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텅―.

구객의 양 손목에 이어 목이 사라졌다.

꾸득!

용연은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상태로 다시 돌아서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닿으면 이어진다.”

용연의 입에서 앞뒤 맥락도 없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간신히 몸을 빼낸 삼객과 십객은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무기를 움켜쥐었다. 아니, 움켜쥐려고 했다.

“큭!”

십객이 먼저 가슴을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댔다.

“헉! 이, 이…….”

삼객은 약간의 차이를 두고 빈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내보낸 내 의지가 머물 곳을 정하면.”

용연은 말을 멈추고 삼객과 십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위, 위험해!’

일객은 용연이 말을 끝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검손잡이에 있는 장식을 누름과 동시에 뽑아서 횡으로 던졌다.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일객의 검이 용연에게 다가갈수록 붉어지다 이내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콰콰콰!

‘혈우마검(血雨魔劍)!’

십사객은 일객의 정체를 알고서 속으로 기함을 했다.

암기명문 당가의 만천화우 못지않은 암기술로, 사혈명 북패주 소홍만이 갖고 있다는 검이었기 때문이다.

최후의 순간 상대와 동귀어진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마검.

그것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스스스―.

폭발로 인한 먼지가 사방에서 피어났다.

“일객, 진심으로…….”

“역시 안 되는 건가?”

일객은 다가오려는 십사객에게 손을 들어 멈춘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원하는 방향으로 던진다.”

먼지 안에서 담담한 용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삼제의 마지막 원리가 삼객과 십객의 몸에 적용됐다.

“컥!”

“큭!”

삼객과 십객이 동시에 몸을 바르르 떨다 이내 흰자위를 드러내며 늘어졌다.

“어흑!”

일객이 갑자기 양손으로 몸통을 감쌌다.

“어, 언제…….”

십사객은 일객을 감싸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먼지 안쪽을 경계했다.

그때, 나머지 객들이 일제히 먼지 안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죽어, 이 괴물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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