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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47화 (147/232)

147화

“잘하셨습니다. 호원의 당황한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아 속이 다 시원합니다. 흘흘.”

묵 노야는 용연을 처음 만났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웃었다.

“……재미있었어요.”

용연은 뭔가 떠올랐는지 피식, 웃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으셨습니까?”

“그와의 대화요. 암중인으로 오랜 세월 살아왔으면 숨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어야 하는데…… 강호가 본인 것이라도 되는 듯 꺼내서 저를 누르려고 하더라고요.”

용연은 말을 하다 툴썩, 웃었다.

―나는 강호를 체계와 체계의 충돌이 만들어 내는 장(場)이라고 여기네. 그래서 급조된 체계로는 기존의 큰 체계와 충돌해 봤자 소멸되기 십상이지.

왜 그런 얘길 했는지 묵 노야에게 말하다 보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놀랍습니다.”

묵 노야는 이를 악물며 신음처럼 말을 흘렸다.

“어떤 점이요?”

“그 말, 그자의 진심이었을 겁니다. 투신과 싸움을 피하려고…….”

“그렇진 않을 거예요. 그 이후 제가 반나절 가까이 그와 있을 때처럼 진기를 운용하고 있었거든요.”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름 많은 것을 몸 안에 담았다고 생각하는 저를, 무려 반나절 동안이나 긴장하게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러니 저와 싸우는 것을 피했다기보다는 다른 뭔가가 떠올랐다고 봐야겠죠.”

말을 마친 용연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무슨 말씀인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허나, 투신과 그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는 알 것 같기는 하다.’

묵 노야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추며 눈을 빛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원이 용연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시대의 강자 중 한 명으로 칭송되는 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꿀꺽.

만약 자신의 예상이 옳다면, 호원이 용연과의 대화를 통해 뭔가를 깨닫기라도 했다면?

지금까지 모아 둔 호원에 대한 모든 정보를 파기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아무튼, 저는 이제 첫 단추를 끼우러 갑니다. 아니다, 묵 회주님을 만났으니 첫 단추는 끼웠네요. 다음 단추를 끼우러 갈게요.”

“투신, 제가 알고 있어도 되는 일이라면 미리 여쭙고 싶습니다.”

“당연히 회주님은 알고 있어도 되는 일이죠. 학림일 때 만들어진 인연들을 찾아가려고요. 회주님과 예 매를 가장 먼저 만났으니, 이제 낭인들을 만날 생각이에요.”

용연은 머릿속에 몇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정리하듯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을 꺼냈다.

“낭인들? 그들과도 인연이 있었습니까?”

“동동마을로 찾아온 적이 있는데, 낭인왕이 남긴 책을 주고 가더군요. 다 읽었으니 돌려줘야죠. 그리고.”

“그리고? 더 있으십니까?”

“개인적인 일이 있어요. 아버지 묘를 수 년째 지켜 주신 분께 빚을 갚으려고요. 사천성을 떠날 수 있으면 꼭 해 드리겠다고 마음먹은 일이에요.”

용연은 말을 멈추고 낮게 숨을 뱉었다.

‘아북리’ 도적패에 대해 말하며 자신 앞에서 울분을 토해 내던 사냥꾼 장철을 떠올리자 마음 한쪽이 아려 온 까닭이다.

“투신, 반드시 하셔야 할 일이 아니라면 제가 처리하도록 해 주십시오.”

묵 노야는 용연의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 직접 처리하다 보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세워 둔 목표를 조금 더 선명하게 보는 것이 나았다. 물론 묵 노야만의 방식이었다.

“제가 장철 아저씨 앞에서 제 자신에게 한 약속이에요. 빚을 갚는 거라 제가 해야 돼요.”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투신?”

묵 노야는 심각한 표정으로 용연을 쳐다봤다.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다.

“저는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를 시간만큼 군림단주와 투신으로 살아갈 거예요. 그러기 전에, 아들로서, 아버지의 묘를 지켜 준 분과의 약속을 지키려고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아…….”

묵 노야는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용연에게서 나올 말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용연의 목소리로 들으니 마음이 흔들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일까?

용연의 따스한 배려가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회주님, 처음 손발을 맞춰 보는데 어떻게 단추와 구멍이 딱딱 맞겠어요? 좀 줄이고 자르든, 찢고 꿰매든 맞춰 보자고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갑니다.”

용연은 묵 노야의 입에서 심각한 말이 나올까 봐 얼른 장난스럽게 웃으며 훌쩍 신형을 날렸다.

“각오를 다지면 정리(情理)는 소홀하기 마련인데, 투신께선 어떻게 정리 안에 각오를 담아 두고 있는 것 같은가 말이다.”

묵 노야는 용연이 떠난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러다 흘흘, 웃음을 지었다.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서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건가?

또 바빠져야 할 모양이다.

‘아!’

용연은 한참을 이동하다 자리에 멈춰 서며 뒤를 돌아봤다.

묵 노야게 말해 주지 못한 한 가지가 더 있었기 때문이다.

아북리 도적패 얘기 때문에 할아버지 용잠에게 치명상을 입힌 자에 대해 말을 못 한 것이다.

낭인들이나 아북리 도적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험한 여정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오색창 백달. 그도 만나 봐야 하는데…….”

용연은 용잠의 기록에서 본 산서성 북쪽 위치에 찍힌 붉은 점을 떠올렸다.

움직일 때 다시 연락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속도를 냈다.

***

―투신이 만들어 갈 세상엔 고하가 없다!

묵 노야가 보낸 문장을 입으로 전한 사람은 감숙성에 적을 두고 있는 화화선생이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동작이 크고 선명한 목소리 때문에 일대에선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했다.

말을 마친 화화선생이 조용히 주루를 나설 때, 주루 안의 모든 사람들이 감동받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수까지 쳤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런 화화선생을 흉내 내려는 루주들도 많아졌다.

“지알선생, 화화선생 흉내 좀 내자는데 뭐 그리 질색을 하는 게야?”

적빈루주 채채는 동그란 얼굴에 난 세 가닥 수염을 꼬며 작은 눈을 마구 희번덕거렸다.

“루주님, 오늘 할 얘기는 성분(聖墳)에 대해서가 아니라 군림칠웅의 활약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그리고 화화선생은 너무 과해서 저랑 맞지 않는다고요.”

“그냥 좀 해! 사람들 좋아하는 얘기 해 주면 지알선생은 인기 얻어 좋고, 나는 돈 벌어 좋고. 응?”

“허어, 큰일 날 말씀하시네. 그러다 회에서 알면? 루주님, 욕심부리다 쪽박 차요.”

“내가 책임져. 책임지면 되잖아! 아무튼 오늘은 성분 얘기야, 성분!”

채채는 지알선생이 자존심을 건드리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이 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러자 지알선생은 주렴을 걷고 밖으로 나가 주루 구석을 쳐다봤다.

끄덕.

항상 있던 자리에 죽립 쓴 인영이 보였다.

그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받은 대로 하라는 뜻이다.

의자로 쌓은 단에 올라간 지알선생은 목청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칠웅에 대해 말씀드리리다.”

“지알선생! 얘들아, 저 늙은이 당장 끌어내…… 으어!”

우당탕탕!

격하게 소리치며 내려오려던 루주가 뭔가에 걸려 그대로 고꾸라지며 데굴데굴 계단을 굴렀다.

쿵.

“아…….”

“주, 죽…….”

손님들은 일층 바닥에 목이 꺾인 채 꼼짝도 안 하는 루주를 보며 입을 막았다.

그때, 이 층 난간으로 마르고 뾰족한 얼굴의 여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돼지가 뒈졌네.”

남편의 죽음을 돼지가 죽은 것처럼 쳐다본 여인은 아래층 구석을 쳐다봤다.

죽립인도 고개를 들고 있기에 둘이 눈을 마주쳤다.

―곧 보내 줄게요.

죽립인이 여인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자 여인의 표정이 밝아지며 점소이들을 불러 채채의 시체를 치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색을 밝히는 여자에게 건강한 남자만 한 뇌물은 없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접수한 주루만 수십 개가 넘는다. 정말이지 회주님의 능력은 끝이 어딘지를 모르겠네.’

죽입인은 고개를 저으며 묵 노야의 혜안에 새삼 감탄해야 했다.

“자자, 여길 주목해 주세요. 어차피 빈자리는 누군가가 채우는 법. 강호 역시 마찬가지지요. 칠웅이 왜 칠웅이냐!”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자 지알선생은 큰소리로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죽립인이 일어나 점소이들과 루주의 시신을 옮긴 후 지알선생에게 계속 이어 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든 말든 혼자만 호의호식하던 자들! 그들이 거기 있어서 도적들이 안 간 거라고요? 협잡꾼들이 난리를 치지 못한 거라고요? 개소리! 어차피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그곳의 우리를, 또 다른 우리를 도운 것은, 그들을 죽인 칠웅이오!”

―오오오!

지알선생의 열변을 듣던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까지 쳤다.

다음이 궁금해서 또 찾아오게 해야, 안평과 안성의 묘를 만들어 준 투신의 얘기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화자들은 군림단 일곱 선림들을 칠웅이라 표현하며 정의라고 알렸고, 성분 사건을 삼정일사회의 진짜 주인인 투신의 성스러운 행위로 퍼뜨렸다.

얘기들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건너갔고, 건너갔던 얘기가 과장되거나 순서가 달라져 되돌아오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호감을, 다른 누군가에겐 분노를 안겨 주면서.

***

오랜 세월 견뎌온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는 대전 안.

천장은 높았고 입구 위에 낸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대전 중앙에는 긴 탁자가 놓여 있었고 백발이 성성한 팔십 대 노인 넷에 육십 대 노인 셋, 그리고 노파 둘이 자리했다.

모두 탁자 끝에 앉은 한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흑색곤룡포를 입고서 눈을 감은, 각진 얼굴과 또렷한 이목구비의 오십 대 중년 사내, 철혈사자맹의 주인인 철혈무제 묵자성이 대전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까닭이다.

“……다들 그동안 뭘 한 겁니까?”

묵자성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고오―.

탁자 위로 떨어진 것 같은 적막이 사람들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여섯 노인과 두 노파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묵자성의 바로 옆에 앉은 대장로 강혁에게 대답을 촉구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든 털이 은색인 노인, 강혁이 묵자성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맹주님, 먼저 이번 사태는 우리 쪽의 실수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사혈명의 도발에 정당하게 대응을 했으나, 정보에서 밀려 불상사가 벌어진 것으로 사료됩니다.”

“정보?”

“사혈명이 어느 정도 전력을 꾸리고 왔는지 벽강 대장은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 봤자…….”

“대장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던 것은 아닙니까? 부하들이 전멸될 때까지 뭐하다 혼자만 살아서 돌아와!”

탁!

묵자성은 탁자를 두드리며 눈을 감았다.

“맹주님, 대장로의 의견도 이해를 해 주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벽강 대장이 죽지 않고 돌아와 다음을 준비할 수 있잖습니까?”

무당파 해일 진인이 강혁의 편을 들어주었다.

“해일 진인,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벽강 대장이 도망치는 바람에 우리의 영역이 명홀령(明惚嶺)까지 밀리게 됐습니다. 당연히 하북성 쪽 정보가 차단된 건 말할 것도 없어요. 벽 대장을 용서하면 다들 선례가 있느니 없느니 핑계 대며 몸을 사릴 겁니다.”

아미파의 허령파파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해일 진인의 의견에 반박했다.

“정보망을 새롭게 심으면 될 것을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것 아닙니까, 허령파파?”

“괜찮네요. 그럼 새로운 정보망은 무당파 제자들로만 구성하세요. 아미파는 빼 주시고요.”

허령파파의 표정이 냉랭하게 변했다.

“어허, 허령파파, 맹의 일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 모두 누구보다 자파의 제자를 아낍니다!”

해일 진인은 사과 대신 밀어붙이는 쪽을 택했다.

“벽강 대장이 종남파 제자여서가 아니고요? 대장로님, 해일 진인님, 공정하셔야 합니다.”

“허령파파, 말씀이 지나치세요.”

강혁이 정색 하며 허령파파를 노려봤다.

그러자 허령파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다른 장로들에게 도움을 청하듯 양손을 벌리고 입을 열었다.

“다들 왜 침묵하고 계세요? 이럴 때 말하지 않으면 종남파와 무당파의 제자들만 살아남을 수도 있어요.”

“어허!”

해일 진인도 지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몇몇 장로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몇몇 장로들은 말을 뭉개며 혼잣말처럼 웅얼대기 바빴다.

이럴 때는 색을 죽이는 것이 옳은 처세라 믿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소요가 길어졌다.

‘이 조그만 사안조차 조율이 안 돼.’

묵자성은 이기심으로 가득한 탁자에서 눈을 떼 천장을 올려다봤다.

“맹주님, 차라리 사자궁에 넘기심은 어떠십니까?”

눈치만 보던 청성파 장로 금일산이 묵자성에게 청했다.

“아! 그것도 한 방법이긴 하네요.”

“오대세가가 한가한 것 같기는 하더군요.”

금일산의 제안에 다른 장로들이 한 입씩 보탰다.

“이럴 때마다 본 맹주가 누구와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 헛갈립니다. 강 대장로, 고작 그 정도 일로 호원 궁주에게 부탁을 하란 말입니까?”

“맹주님, 고작이라니요? 다친 제자들 수가 몇인데…….”

“그만.”

묵자성은 듣기 싫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장로들의 말을 막았다.

그때, 당문의 당매옥이 나섰다.

“노신은 맹주님께서 장로들의 의견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철혈사자맹의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잖습니까?”

당매옥은 육십 대 노파답지 않게 형형한 눈빛으로 묵자성을 바라봤다.

“아햐, 장로님들, 구대문파에서 해결 못 한 일을 사자궁에 넘기라니요? 이런 건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아요.”

공동파 주정일이 더는 듣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섰다.

“어허, 넘기라는 게 아니라, 구대문파에선 할 만큼 했으니 오대세가도 힘을 쓰란 뜻이죠, 주 장로!”

강혁이 노한 음성을 뱉었다.

“대장로님,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분리돼서 각자 맡은 일을 한 지 수십 년이 넘었어요. 안 해도 될 부탁을 왜 하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오, 주 장로.”

“대장로님, 이러면 삼십 년 전과 같은 절차를 밟게 됩니다. 왜 자꾸 사자궁을 신경 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정일은 강혁의 고집이 계속되자 낮게 숨을 뱉었다.

그러자 대전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명홀령을 회수하는 일은 대장로와 해일 진인이 맡으세요. 다음 회의 때까지 완수했으면 합니다.”

묵자성은 결정을 내리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을 나갔다.

모두 자파의 불리와 관련된 일이 생기면 으레 꺼내는 말들이라 귀담아 듣지 않으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구파 장로들 중 반수 이상이 버릇처럼 매번 사자궁을 입에 담았다.

자신이 사자궁 얘기를 꺼려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걸 보면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묵자성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수십 년 동안 맹주로 지냈건만 철혈사자맹의 주인이란 생각보다 항상 뭔가에 쫓기고 있었다.

돌아보면 서 있는 호원 때문일까?

***

톡. 톡. 톡.

“내 얘기가 왜 맹주님이 주관하는 회의에서 오르내리는 거지? 잘못 들은 것 아닌가, 주 장로?”

호원은 태사의에 앉아 팔걸이를 두드리며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늘진 곳에 서 있던 인영이 앞으로 한 발 나오며 말을 받았다.

“명홀령이 사혈명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걸 막겠다고 난리를 피우더군요. 그러다 나온 이름이 궁주님입니다.”

인영은 공동파 장로 주정일이었다.

구파회의 때와는 달리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명홀령이 사혈명에?”

“정보가 차단됐다고 하더군요.”

“정보?”

호원은 팔걸이를 두드리던 동작을 멈추고 주정일을 빤히 쳐다봤다.

머릿속으로는 명홀령에서 어떻게 정보가 전달되는지를 떠올리는 중이다.

“풍진수사의 고향이 그곳이라…….”

“풍진수사!”

호원이 상체를 당기며 주정일의 말을 잘랐다.

그제야 왜 정보가 차단됐는지 알 것 같았다.

“궁주님, 뭔가 알아낸 것이 있으시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주 장로, 강혁 대장로가 종남파 출신 아닌가?”

“맞습니다.”

“그래, 그래. 종남일협과 풍진수사라면 그럴 수도 있겠어. 후후, 대장로가 조급해진 이유를 알 것 같다.”

호원은 다시 태사의에 등을 기댔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다른 호원의 모습에 주정일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 어떤 사안에 대해 말해도 반응이 없던 호원이, 신이 난 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명홀령이 그토록 중요한 곳이란 말인가?

주정일은 철혈사자맹에 몸담은 이후 처음으로 명홀령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종남파도 발이 다 끊겼으니 조급해질 수밖에. 주 장로, 가서 확인해 봐. 원하던 대장로 자리에 이번에는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호원은 자신의 말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 주정일을 보며 나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찌르르.

등골을 타고 간지러움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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