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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34화 (134/232)

134화

단원 전체가 모인 군림대전에는 거친 숨소리와 흥분으로 커진 눈들만이 바빴다.

“솔직히.”

단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현승에게로 향했다.

“잘 모르겠다.”

현승은 단원들에게 괜한 기대를 주기 싫어 자신의 생각을 전하지 않았다.

이전 임주인 담묵이 군림봉을 벗어나 군림대전으로 올라왔을 때는 인간의 몰골이 아니었다.

눈에는 독기로 번들거리고 몸은 피골이 상접한 채 위태위태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임주들 역시 군림봉을 벗어났을 때의 모습은 담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기록에 나와 있었다.

“세 분은 저 현상에 대해 짚이는 바가 있소?”

현승은 삼정의 자리에서 내려와 단원으로서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국진세, 여벽, 잠사우를 쳐다봤다.

“현 선림, 일 대 단주님께서 저 군림봉을 무척 사랑하셨다는 건 알고 계시지요?”

세 사람은 이미 얘길 나눴는지 국진세가 입을 열자 여벽과 잠사우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여졌다.

“기록에 적힌 것을 본 적 있소.”

“저 진동, 저 소리. 현 선림, 자세히 들어 보세요. 이전 임주들이 군림봉에 들어갔을 때와는 달라요. 저건…… 마치 용 임주가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 것 같지 않나요?”

“슬픔?”

현승은 국진세의 말을 듣고 군림봉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정말로 묘하게 감정을 건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수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봤기에 슬픔이란 감정이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도 홀린 건가?’

긴장과는 무관해 보이기만 하던 현승의 입가에 설풋 웃음이 묻어났다.

군림봉을 빠져나온 이전 임주들의 기록과 직접 봤던 모습이 거의 같았기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믿었던 것일까?

그래서 국진세의 관점을 달리 하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물론 용연이 무사히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였다.

“크크크. 세 분, 지금까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듣기 좋았소.”

몽외가 대화에 끼어들며 부릅뜬 눈을 번들거렸다.

“……이번 임주는 정말 예측이 안 되는 분이군.”

현승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군림봉 쪽을 돌아봤다.

드드드―.

일대를 울려대던 굉음이 잔잔하게 느껴질 정도로 잦아들었다.

날이 밝았다.

군림봉이 만들어 내던 진동 소리는 완전히 그쳤다.

“준비됐지?”

몽외는 함께 서 있는 선림들보다 머리 하나는 높은 곳에서 입을 열었다.

특유의 치아를 모두 드러내며 웃고 있지만, 푹 들어간 눈에서는 회색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모습이었다.

“몽 선림, 윽박지르지 말고 물어봐.”

현승은 단원들이 겁먹은 얼굴로 입도 벙긋하지 않자 몽외를 혼내듯 나긋한 표정으로 앞으로 한 발 나섰다.

“현 선배, 이것보다 어떻게 더 친절하게 말합니까? 안 그래, 서 선림?”

몽외는 서화를 돌아봤다.

용연이 군림봉으로 들어간 뒤 반년도 안 돼 서화를 젖히고 선림 서열 이 위에 올랐다.

그 뒤로 현승과 함께 있을 때면 서화의 방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몽 선배?”

“몰라? 그럼 누가 알아?”

“……그야 저도 모르죠.”

꿈틀.

서화는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으며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현 선림님, 제가 나서는 건 어떠십니까?”

진류는 현승, 몽외, 서화의 티격태격 다툼이 이어질 것 같아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나섰다.

“진 대교가 그래 주면 좋겠지.”

현승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락했다.

그러자 몽외와 서화도 별 불만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곤 몸을 돌려세웠다.

“이 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

진류는 단원들을 향해 돌아서서 옷을 가볍게 털며 입을 열었다.

순간, 선림들을 제외한 모든 단원의 시선이 진류에게 고정됐다.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군림봉이 울음을 그쳤다.”

꾹.

진류가 먼저 주먹을 쥐었다.

그 모습을 본 단원들은 아무 말 없이 일제히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렸다.

몇몇의 눈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이 감격의 순간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고무된 것이다.

“선림들께선 이 현상을 군림봉이 임주를 품었다고 하신다.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역대 어떤 임주도 하지 못했던 일을, 용연 임주가 해낸 것 같다. 우리들의 응원을 듣고 힘내도록 알려 드리자. 현 선림님, 시작하시죠.”

진류는 단원들의 감정을 순식간에 끌어올리고는 현승을 돌아봤다.

“군림.”

이우우웅―.

현승의 내공 실린 목소리가 군림봉을 향해 밀려 나갔다.

―군!

―림!

이어진 전 단원의 외침이 그 뒤를 쫓아갔다.

웅웅웅―.

한동안 일대를 스물여덟 명의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크크크. 담 선림, 어때?”

몽외는 메아리가 이어지는 사이 담영호 쪽으로 움직였다.

“벅찹니다.”

담영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버지 때도 이랬을까?

아닐 것이다.

선림 몇몇이 아버지의 무공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살피느라 다른 감정을 드러낼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응원하는 임주를 용연이 이루어 냈다.

힐끗.

학림들을 돌아봤다.

양안, 무묵까지 눈이 벌게져 있었다.

용연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생사를 함께했던 동료로 여기기에 가능한 모습일 것이다.

교림이라고 다를까, 감격에 겨워 다들 주먹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선림들을 살폈다.

용연이 나오는 순간, 군림단 최고 서열에 오른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도 모두 기대하는 얼굴들이다.

“내 뒤에 바짝 붙어.”

몽외는 담영호의 어깨를 툭, 두드리곤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 상태로 스물여덟 군림단원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됐다.

일각이 지나고, 반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이 지나도 움직이는 사람 한 명 없었다.

해가 지고, 별이 떴다.

군림봉의 고요한 침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용연은 모옥을 열고 밖으로 나오다 머리칼과 수염이 흔들거리는 것을 느끼고 손으로 만져 봤다.

머리칼은 꽤 길었고 입가는 얇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느껴졌다.

슥슥.

입가를 몇 번 손으로 훑자 수염들이 바람에 실려 사방으로 날아갔다.

머리칼은 양손으로 쓸어 넘겨 등 뒤로 묶은 뒤,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당 중앙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일각 정도 꼼짝도 하지 않던 용연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탁. 탁. 탁.

바닥을 다독거리듯 세 번 두드렸다.

이제 모옥을 떠난다는 의식 같은 것이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울지 말라는 당부였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감사였으며, 이제 가야 한다는 마음을 담은 아쉬움이었다.

“여기, 여기, 여기에 담아 준 선물들 잘 사용하겠습니다. 모자랄 때마다 다시 올 테니 서운해 하지 마세요.”

용연은 머리, 가슴, 복부에 손을 댔다 떼어 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땅!

망치로 정을 두드린 것처럼 간결하고 또렷한 소리가 용연을 모옥 밖으로 튕겨 냈다.

허공에 떠오른 용연은 어느새 똑바로 서 있었다.

멀리 군림대전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군림대전 쪽을 보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곳에 있는 단원들의 모습이 당겨지듯 눈으로 들어왔다.

현승, 몽외, 서화, 그리고 담영호.

반가운 얼굴들을 보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탁.

“모두 오랜만이에요.”

군림대전 끝에 발끝을 내린 용연은 마치 잠시 출타라도 한 사람처럼 반갑게 모두와 눈을 마주했다.

“오! 죄 많은 늙은이들이 임주님을 뵙습니다.”

국진세, 여벽, 잠사우가 용연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군림봉으로 들어갈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외모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그보다 더 세 사람을 전율하게 만든 것은 용연의 전신을 감도는 은은한 광채였다.

“세 분이 옳은 결정을 내려 주셔서 제가 더 고마운데요?”

용연은 국진세 등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 주었다.

“용 임주님,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드리기 민망할 정도로 헌앙한 모습이네요.”

척.

현승은 용연에게 다가가 포권을 취한 후 단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 모습에 선림들은 물론이고 단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군림단 서열 일 위였던 현승이 용연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선 위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오!

꾹꾹 누른 환호가 단원들 사이에 흘렀다.

그때, 몽외가 용연의 왼쪽으로 가서 섰다.

현승이 용연의 오른쪽에 섰으니 당연히 자신의 위치는 왼쪽이라고 정한 것이다.

확장된 동공과 윗니와 아랫니를 맞물린 채 활짝 웃는 몽외를 용연은 행복한 표정으로 받아 주었다.

“잘 지냈죠, 몽 선림?”

“크크크. 임주가 언제 나오나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지 뭐요? 명령만 내려 주면 앞장서서 모조리 부숴 버리겠소, 임주.”

“아! 안 그래도 단원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제가 이 대 군림단주로 이름을 올리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용연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국진세, 여벽, 잠사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야…….”

국진세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여벽을 돌아봤으나, 여벽 역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미간을 모았다.

“임주, 단주가 되기 위해서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잖소?”

서화는 용연의 질문에 발끈해서 나섰다.

“서 선림, 밖에 있는 자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한가요? 제겐 그들보다 여러분들이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몇 백 배 중요해요.”

“설마…….”

서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용연이 싸움을 피하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서 선배님, 제 생각으로는 임주님이 저들과의 대결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제시하려는 것 같습니다. 저들이 제시하는 싸움 따위…… 흥미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담영호는 서화가 말을 잇기 전에 나섰다.

용연이 단주란 호칭을 사용하는 순간, 마치 머릿속으로 생각이 전해진 것처럼 그림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말을 마칠 때, 담영호는 무의식적으로 입가를 씰룩이며 용연을 쳐다봤다.

“…….”

“…….”

용연과 담영호의 눈이 마주쳤다.

두근.

용연은 자신보다 자신의 의도를 잘 설명하는 담영호의 말에 심장이 뛰었다.

역시 담영호인 것이다.

이러저러한 웅성거림이 이어지면서 단원들끼리 대화로 자신의 뜻이 전해지길 바랐건만, 담영혹 덕분에 시간을 앞당기게 됐다.

“예, 담 선림 말씀대로예요. 저는 혼자가 아니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인정하게 만들면 덜 싸울 수는 있겠지만, 제겐 함께할 동료가 스물여덟 명이나 있잖아요? 여러분들의 시험을 받을 게요. 그러고 나면, 모두를 데리고 저 밖으로 나갈 거예요.”

슥.

용연은 하늘 저편으로 손을 뻗었다.

움찔.

용연의 말투는 편안하기 이를 데가 없었으나 다 듣고 난 현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소름이 돋은 것이다.

일 대 군림단주는 혼자였다.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수많은 싸움을 직접 치러 냈다.

그 고단함을 지켜본 사람들은 일 대 군림단주에게 도움이 되고자 실력을 갈고닦았고, 그렇게 이어져 오며 만들어진 형태가 현재의 군림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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