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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20화 (120/232)

120화

깜짝 놀란 여벽이 몸을 옆으로 틀어 지나가려는 몽외를 재차 공격하려 손을 뻗었다.

힐끗.

몽외의 눈동자가 여벽을 향했다.

그러자 여벽은 내밀던 손바닥을 자신도 모르게 멈췄다.

턱.

몽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여벽의 손을 잡아당겼다.

“어림없다!”

여벽이 호통을 치며 복부를 노리는 몽외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때려 냈다.

쩡!

‘미, 밀려! 안 돼!’

여벽은 몽외의 주먹에서 밀려오는 힘을 느끼며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돌아선 몽외의 등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닿아라, 어서!’

발이 아직 허공에 뜬 상태였다.

턱.

드디어 발이 땅에 닿았다.

여벽은 국진세와 잠사우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부딪치는 몽외를 보고 입가를 비틀었다.

학림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정 수위란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항상 끝까지 달려야 그만두는 미친놈.

“어디 한 번…….”

“결백하시면 대화로 풀어도 됐잖습니까?”

여벽이 막 땅을 박차려 할 때, 담영호가 옆으로 다가오며 무덤덤하게 말을 꺼냈다.

“뭐?”

“진 대교님이 곧 도착할 테니 기다리라고만 했어도 이 사달이 안 났을 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를 죽이나, 하나에 딸린 둘까지 죽이나 큰 차이 없어. 죽고 싶지 않으면 끼어들 생각 마라, 담영호 교림.”

여벽은 담영호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경고한 후 다시 몽외를 향해 움직이려 했다.

“그럼 저는 괜찮나요?”

용연이 여벽의 왼쪽에 멈춰 서며 고개를 돌렸다.

“뭐?”

“단원이라면 서열의 고하를 막론하고 단을 욕되게 만드는 짓은 해선 안 된다! 단에 들어온 뒤 머릿속에 새겨진 규율입니다. 당신과 저 두 사람은 규율을 어겼습니다. 몽 선림님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물러나 있으십시오.”

용연은 여벽을 향해 몸을 돌려세웠다.

“하!”

여벽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담영호와 용연을 번갈아 쳐다봤다.

“용 학림, 얼마나 늘었는지 보자. 여기서 죽으면 이 사람 말대로 되는 거니까, 죽기 전에 도와주긴 하마.”

씰룩.

담영호는 여벽을 ‘이 사람’으로 표현하며 분노를 드러냈으나, 용연의 당당함을 보고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용연이 과연 이번에도 자신을 놀라게 할 수 있을지.

막 담영호의 입꼬리가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였다.

훙―.

묵직한 경력이 용연과 담영호를 향해 동시에 뻗어 왔다.

흔들.

담영호는 경력이 닿기 전에 자리에서 사라지며 피해 냈으나, 용연은 헛바람을 삼키며 가까스로 몸을 비틀었다.

“감히. 감히!”

훙― 콰욱!

여벽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용연의 목을 잡으려 했다.

손짓 하나, 발짓 하나에 담긴 경력이 다가올 때마다 용연은 정신없이 몸을 날려 피하기에 급급했다.

거리를 피할 수도 없고, 자세를 갖출 틈도 없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이번엔 여벽의 손이 허공에서 궤도를 수정하며 집요하게 목을 노리고 다가왔다.

‘어쩔 수 없다.’

용연은 이를 악물었다.

피하지 못한다면 부딪쳐서 막는 수밖에.

전력을 다해 다가오는 여벽의 왼손을 팔꿈치로 막았다.

쩡!

“허억!”

전신을 옥죄는 무지막지한 힘에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바닥에 쓰러진 것도 아닌데 볼 양쪽을 감싸며 머리칼이 앞으로 쭉 뻗어 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또 한 가지.

여벽의 모습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뭐지? 왜 저 사람의 키가 작아지는 거지?’

용연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좌우를 돌아볼 때였다.

스르르.

머리칼이 가라앉으며 시야를 넓혀주자 그제야 발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아래쪽으로 내렸다.

순간.

“아!”

종아리까지 땅에 박혀 있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미친 듯 뛰어 댔다.

삼제의 원리를 운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날아갔다.

덜덜덜.

몸이 격하게 떨려 왔다.

단 한 번의 격돌로 몸이 송두리째 부서지는 충격이라니.

목구멍 깊은 곳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핏덩이가 올라오는 것이다.

목젖을 울럭여 가라앉혔다.

“아직도 서 있을 수 있다니 놀랍구나, 용 학림.”

여벽의 목소리는 자상하기 그지없었으나 이미 한 번 당해 본 뒤였다.

저 손을 부딪쳐 막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깨달았기에 용연은 곧장 신형을 위로 솟구쳤다.

파하!

종아리까지 감싼 흙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용연은 거리가 있으니 여벽의 장력이 다가오기 전에 이동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지 금방 깨닫게 됐다.

작게 보였던 여벽의 손바닥이 금강여래의 손바닥이라도 된 것처럼 엄청나게 거대해지며 허공으로 솟구친 용연의 전신을 덮쳐 오는 것이 아닌가?

‘엄청나다.’

눈앞으로 다가오는 여벽의 손바닥을 보자 용연은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방식의 공격과 기세였다.

후임 시절 담영호에게 느꼈던 압도적인 차이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거리가 있을 때는 실체가 아닌 장세(掌勢)라는 것을 알았지만, 바로 앞까지 다가오자 기세로 이루어진 무형의 손바닥임을 잊은 것이다.

저 손바닥이 만들어 내는 경기 한 올, 한 올은 이미 검이고, 도고, 창이었다.

어느 하나에 닿기만 해도 중상을 면치 못할 수도 있었다.

용연이 상황을 인지한 순간, 삼제의 원리를 운용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응아린이 몸통을 감쌌고, 하단전에선 뜨거운 열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전신으로 퍼졌다.

쩡! 쩌저쩡!

예닐곱 번의 굉음이 터질 때마다 용연은 이리저리 튕겨지며 십여 장 이상의 거리를 날아갔다.

쓰으―.

‘염왕장(閻王掌)에 여덟 번이나 맞고도 탈골되지 않았다고?’

여벽은 양손을 명치 앞에 모은 채 숨을 골랐다.

용연이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는 감각이 손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날아간 방향을 주시하던 여벽은 무릎도 굽히지 않은 채 바로 미끄러져 갔다.

“잠깐 쉬게 두는 건 어떻습니까, 여 단정님?”

막 움직이려던 여벽을 담영호가 담담한 얼굴로 막아섰다.

“담 교림, 용 학림을 받침으로 사용한 거냐?”

여벽의 입가에 비웃음이 감겼다.

“말 그대로, 잠시 쉬게 해 주려는 것뿐입니다.”

“비켜라. 아니면 네놈부터 죽여 버릴 테니까.”

까득.

여벽이 이를 악다물었다.

파륵, 파르륵―.

여벽의 옷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세차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갈무리하고 있던 기세가 뿜어지자 담영호의 전신을 순식간에 옥죄여 들었다.

역시나 교림과 선림의 경계에 멈춘 무위다웠다.

힐끗.

담영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몽외 쪽을 돌아봤다.

쩌저저―쩡!

쿠콰콰콰!

한 번의 격돌에 이동하는 거리가 무려 십여 장에 이르고 있었다.

저 몽외를, 단원들 사이에서 몇 십 년 동안 괴물로 인식되어 온 몽외를 국진세와 잠사우가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국 단정님과 잠 단정님의 무공이 놀랍네요.”

“그 오만한 태도는 변함이 없구나. 네 아버지를 완전히 빼다 박았어. 아! 한 가지는 다르구나. 너는 너보다 약한 녀석을 도구처럼 쓸 정도로 영리하지만, 네 아버지는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독불장군이지.”

“……끝났나요?”

“뭐?”

여벽은 덤덤한 얼굴로 반문하는 담영호를 보며 인상을 썼다.

일부러 담영호를 자극하기 위해 아버지, 담묵의 얘길 했음에도 통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 유명한 여 단정님의 염왕진천장 좀 받아 볼까 했는데, 저 녀석이 기회를 안 주네요.”

“뭐냐, 도망치려는 거냐?”

“도망? 아! 조금 전에 말씀드렸는데 벌써 까먹으신 모양이네요. 저는 용 학림이 일어날 때까지 시간 좀 벌어 주려고 나섰을 뿐입니다.”

씰룩.

담영호는 입가를 비틀며 뒤로 물러났다.

아쉬웠다.

용연만 아니었어도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멋대로 지껄인 저 입을 뭉갰을 텐데.

“일어날 상태도 아닌…… 음?”

여벽은 담영호가 용연을 핑계로 자리를 벗어나려 한다고 여겼다가, 황당한 광경을 보고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담영호의 말대로 용연이 박혔던 벽을 빠져나와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염왕장에 여덟 번이나 격중됐다.

뼈마디가 모두 부러졌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데 멀쩡히 움직인다?

‘담 교림님이 나서 주셨구나.’

용연은 어느 정도 몸이 움직여 주자 담영호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 숙여 감사를 전했다.

팟.

고개를 들자마자 머릿속의 수차를 최대한 빨리 회전시켰다.

몸 상태를 살필 것도 없었다.

차라라― 차락―.

응아린이 몸통을 휘감았다.

빡빡하게 감싼 몸통 어디에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뼈가 부러질 정도의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스윽.

양팔을 벌리자, 몸통을 감쌌던 응아린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팔찌의 형태로 손목에 자리했다.

꿈틀.

아랫배에서도 반응이 일어났다.

열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내장이 따뜻해진 것이다.

‘여기까지네.’

용연은 고소를 머금었다.

담영호와 몽외에게 보여 주기 싫어서 일부러 삼제의 원리를 운용하지 않았던 것인데, 여벽과 싸우려면 이 방법밖엔 없을 것 같았다.

삼제의 원리로 무장을 한 이상,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쾅!

땅을 박찼다.

“망량? 아니야, 저건…… 뭐지?”

여벽은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용연의 하체가 보이지 않자 담영호를 돌아봤다.

그 모습에 담영호는 대답 없이 어깨만 으쓱, 올렸다 내리곤 한 걸음 뒤로 더 물러났다.

‘저것 역시 동동마을에서 배운 건가? 아니면 그 금룡상단의 여자에게?’

담영호 역시 흥미로운 눈으로 다가오는 용연을 쳐다봤다.

기본삼공을 아무리 완벽하게 익혔다고 해도 교림 수준의 무공을 펼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동동마을과 금룡상단을 떠올린 것이다.

“음? 이건…….”

다가오는 용연을 지켜보던 담영호의 눈이 커졌다.

이 장가량 떨어져 있는데도 엄청난 기운이 훅, 끼쳐왔다.

그러나 놀란 이유는 용연의 기세 때문이 아니었다.

저 기운, 용연의 전신에서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오는 저 기운을 알고 있었다. 아니, 언제고 경험해 본 기운이었다.

담영호는 곧 용연과 여벽이 격돌한다는 것도 잊은 채 기억을 떠올리기 바빴다.

‘아! 안가!’

용연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여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쩡!

‘밀어 넣었.’

생각이 멎었다.

바로 두 번째 원리를 적용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내보낸 진기가 거대한 벽을 뚫지 못하고 휘어 버렸다. 적어도 손을 맞대고 있는 지금은 그랬다.

덜컥!

파고들지 못했으니 당연히 내보낸 힘이 튕겨져 나왔다.

어깨가 옆으로 확 벌어졌다.

텅―.

여벽은 장력을 날려 용연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았다.

그러자 용연은 땅에 내려서며 양손을 움켜쥐었다.

분한 모양이다.

‘저런 녀석을 봤나!’

여벽으로선 그 모습이 너무도 기특하고 신기해서 저절로 웃음을 지었다.

용연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손바닥을 통해 모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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