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크크크.”
선두에서 움직이던 몽외가 앞쪽을 보더니 나직하게 웃었다.
담영호는 손을 들어 용연에게 신호를 주고는 몽외의 옆으로 다가갔다.
“삼정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지 않느냐, 담 교림? 우릴 피할까? 그럴 사람들은 아니지. 그럼 우릴 처리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 중간에 확인을 할 게야. 나만 가는 건지, 다른 선림도 있는지. 크크크.”
“저와 용 학림이 동행하고 있다는 걸 알면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려고 하겠네요.”
담영호는 몽외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웃었다. 잉어를 먹이만 주면 크는 줄 아는 거야. 잉어가 의심하지 않게 먹이를 받아먹는 줄도 모르고. 크크크.”
몽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담영호를 지나 용연까지 돌아봤다.
담영호의 묵성자와 용연의 삼정일사회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힐끗.
담영호는 몽외의 시선이 자신을 지나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용연을 돌아봤다.
그러자 뒤에서 따라오던 용연은 두 사람이 자신의 얘기를 한 줄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크하!”
몽외는 자신과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린 담영호를 보며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담영호는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다.
“몽 선림님, 단원들뿐만 아니라 외부 식구들도 용 학림을 좋아합니다.”
“음?”
몽외는 담영호의 엉뚱한 말에 한쪽 눈썹을 올렸다.
“먹이를 주지 않아도 무리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우친 녀석입니다. 그래서 다들 저 녀석과 임무를 수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몽 선림님은 얼마나 걸리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십여 년이 걸렸습니다. 헌데 저 녀석은 이 년여밖에 안 걸렸습니다. 더구나, 저는 여전히 혼자인 반면, 저 녀석 주위엔 사람이 많습니다.”
담영호는 고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으나, 저절로 입이 열리는 것까진 막을 수가 없었다.
“크흐, 네가 말하던 변화란 것이 그거다?”
“저도 확신은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삼정을 군림대전(君臨大殿)에 올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큭. 군림대전이 뭘 하는 곳인지는 알고?”
몽외는 담영호의 입에서 군림대전이란 말이 나오자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압니다. 이 대 군림단주에 도전할 자격 여부를 결정하는 곳이지요.”
“나보고…….”
몽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하려 했으나, 담영호가 말을 가로챘다.
“저 녀석에게 맡겨 봤으면 합니다.”
“음? 뭘?”
“학림 주제에 삼정의 기망 행위를 밝혀내고 군림대전에 올리게 하는 겁니다. 몽 선림님이나 제가 하는 것보다 파급효과가 크지 않을까요? 몇몇 상급 단원들만 할 수 있는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말입니다.”
“크크크. 단원들의 인식을 바꾼다?”
“용 학림이 나서면.”
“단에 변화가 일어난다?”
“저라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차라리 네가 나서지 그러느냐?”
“항상 혼자서 잘난 척하며 다니던 놈이 갑자기 단을 위해 삼정을 데려왔다? 믿으시겠습니까?”
담영호는 입가를 씰룩였다.
그러자 몽외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담영호의 말에 자신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크크크. 분명히 해 두마. 난 네 나이 때는 그리 잘난 척하며 살지 않았다.”
말을 마친 몽외는 순식간에 담영호와 삼 장여의 거리를 벌렸다.
“담 교림님, 무슨 일이십니까?”
용연이 담영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삐지셨다.”
“예?”
용연은 앞서가는 몽외와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담영호를 번갈아 쳐다보며 인상을 썼다.
진짜 적응하기 힘든 두 사람이었다.
***
몽외는 삼정의 거처를 알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산을 오르고 내리다 동굴로 들어갔다.
빛 한 점 없는 공간이었으나 셋 중 누구도 턱에 걸리지 않고 달렸다.
“크크크. 이 동굴은 계곡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정상에 삼정이 살고 있지.”
“사오십 장은 가뿐히 넘겠군요.”
담영호가 남은 거리를 대략적으로 가늠해 봤다.
‘그 정도 거리가 남아 있는데 왜 이렇게 갑갑하지? 마치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내 호흡을 눌러 대는 기분이야.’
용연은 몽외와 담영호의 뒤를 쫓으면서도 연신 어둠을 살폈다.
그때, 멀리 백색 점이 눈에 들어왔다.
“저 아래다.”
몽외는 봉우리 위에서 아래쪽의 구름에 가려진 분지를 턱짓으로 가리킨 후 곧바로 몸을 떨어뜨렸다.
후우― 후우―.
용연은 얼굴이 구름에 다가갈수록 호흡을 짧게 뱉어 내다 충돌했다.
‘어?’
미세한 차가움들.
살갗에 닿는 것이 아니라 감싸는 느낌이다.
‘저기다!’
구름을 지나자마자 곧장 한 곳으로 시선이 갔다.
삼정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저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몽외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는 삼정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몽외! 이곳은 우리들의 허락 없인 발을 디딜 수 없는 곳이야!”
여벽은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러 댔다.
“무슨 일로 찾아온 겐가, 몽 선림?”
“연락부터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함께 온 사람들부터 소개해 주지 않겠소, 몽 선림?”
국진세와 잠사우는 여벽의 화를 진정시키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건넸다.
몽외는 자신이 왜 찾아왔는지 다 알면서 삼정이 대놓고 모른 척하자, 목을 빙글 두어 번 돌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크크크. 맞춰 드리죠, 삼정. 담영호 교림은 다들 잘 알고 계시죠? 이 녀석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잘생긴 사람이 그 유명한 용연 학림이지요.”
말을 마친 몽외가 치아를 한껏 드러내며 웃었다.
“용연 학림? 자네가?”
삼정의 시선이 일제히 용연에게로 모아졌다.
“학림 용연이 삼정 세 분을 뵙습니다.”
용연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해 예를 갖췄다.
“진 대교가 단의 미래를 짊어지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이 대단했네. 직접 보니 과연 과장된 말이 아님을 알겠어.”
국진세는 용연의 반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 그토록 진 대교가 알아듣게 일렀건만…….”
“여 단정님, 아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용연 학림은 아직 어리잖습니까? 더 물들기 전에 떼어 놓으면 되는 겁니다.”
여벽이 인상을 쓰자 잠사우가 사람 좋은 얼굴로 말을 받아 주었다.
“크하하하!”
몽외는 삼정의 가식적인 모습을 더 지켜보지 못하고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용연에 대한 관심을 끊어 냈다.
“몽 선림, 지금 뭐하는 겐가?”
“크크크. 여 단정, 아까부터 바닥에 침 뱉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말을 반씩 잘라서 뱉는 거요? 내가 선림이란 걸 알면서 이런 식의 말투는 옳지 않지. 안 그렇소, 여 단정?”
몽외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여벽을 쳐다봤다.
“하! 이…….”
“몽 선림, 여 단정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하도 오랜만에 만나서 호칭이 입에 붙질 않아서 그런 거니 이해해요.”
국진세는 여벽이 입을 열기 전에 재빨리 나섰다.
힐끗.
몽외의 시선이 국진세를 향했다.
그러자 국진세가 의아한 표정으로 몽외를 쳐다봤다.
“왜 그런 겁니까?”
“음?”
국진세는 갑작스러운 몽외의 질문에 당황해서 여벽과 잠사우를 돌아봤다.
두 사람은 동시에 미미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동요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말했잖소, 오랜만에 만나서 그랬다고.”
“…….”
“…….”
국진세는 몽외의 강요된 침묵에 목이 타 마른침을 삼켰다.
“왜! 형제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남의 손을 빌어서 내쳤냐고!”
콰우우―.
몽외의 동공이 확장되며 순간적으로 공간을 왜곡시킬 정도의 기운이 일대로 쫙 퍼져 나갔다.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와 미미한 진동, 그리고 네발 달린 짐승들의 질주가 사방에서 느껴졌다.
“그 서찰을 보낸 자가 그럼 몽 선림? 어허!”
여벽은 몽외의 외침 못지않은 호통을 터트렸다.
몸까지 바들바들 떨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양손을 말아 쥐었다.
“크흐, 지금 알았다고?”
몽외는 여벽의 모습에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곳으로 오며 했던 걱정 중 한 가지가 해결됐기 때문이다.
삼정이 몇 십 년 동안 해 온 일을 반성하면 어쩌지?
이제 그따위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됐다.
“몽 선림, 지금 한 말은 삼정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이구려. 어째서 그런 서찰을 보낸 거요? 아니, 우리 삼정을 욕보이려고 하는 의도가 뭐요?”
나직한 저음에 무게를 실으며 잠사우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유감? 욕을 보인다고? 크큭, 크크크.”
몽외는 잠사우를 보며 반문하다 양쪽에 있는 국진세와 여벽을 손으로 가리키며 갑자기 배를 움켜쥔 채 웃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한 명쯤은 다르길 기대했다.
오랫동안 군림단원이었던 사람들이 어쩌다 저렇게 변한 것일까?
“뭘 준비하고 있는 거지?”
담영호는 몽외와 삼정의 대화를 지켜보다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용연이 얼른 나섰다.
“근처엔 아무도 없습니다, 담 교림님.”
“알아.”
“예?”
“다 내보냈겠지. 누굴 불렀는지 보려는 거다.”
‘내보냈다고? 아!’
용연은 이미 살펴봤던 정자 근방을 다시 보다 눈을 반짝였다.
삼정의 것으로 보기에 무리인 낡은 농기구들이 정자 아래쪽에 치워져 있었다.
지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용연의 시선이 몽외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삼정은 거처를 비워 뒀을 거야. 진 대교가 있을 만한 곳들로 모두 보냈겠지. 크크크. 내가 가진 패가 뭐냐에 따라 합공도 불사할지 모른다. 하나만, 둘을 처리할 때까지 셋 중 하나만, 잡아 둬라.
몽외는 이미 이런 상황이 전개될 줄 알고 있었다.
‘저것이 몽 선림님의 진짜 무서운 점이야. 만약 나라면, 최대한 냉정해지기 위해 어떻게든 감정을 숨겼을 거야. 적을 눈앞에 두고 저렇게 감정적으로 대화를 이어 간다?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
힐끗.
용연은 몽외의 목소리가 격해지는 것을 듣고 담영호를 돌아봤다.
곧이라도 신호를 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벽은 몽외의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린 얼굴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서 참지 못하고 기를 모았다.
파슥.
여벽의 손바닥 주위에 있던 먼지들이 순식간에 타며 재로 화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국진세와 잠사우의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쿠오오―.
“크크크.”
몽외는 양팔을 활짝 펼치며 셋의 기운이 뒤쪽으로 퍼져 나가지 못하게 막으며 웃었다.
곧 벌어질 싸움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동공은 확장됐고, 입에선 고인 침이 흘러 기괴한 형상을 연출했다.
몽외와 삼정은 서로를 마주 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는 누군가가 움직이지 않아도 미묘한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격돌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슥.
몽외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평형이 깨졌다.
순간, 삼정 중 여벽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여벽의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엄청난 경력이 몽외의 얼굴을 가격했다.
쩡!
“크흐, 당신은 잠시 따로 놀고 있어 봐.”
몽외는 여벽의 장력을 피하지 않고 받아 냈음에도 밀려나기는커녕 오히려 거리를 좁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