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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단주-111화 (111/232)

111화

척.

비류는 다급하게 자신이 올라왔던 곳을 향해 손바닥을 쫙 펴보였다.

오른팔인 막효에게 의형제들을 데리고 올라와선 안 된다는 경고 신호였다.

막효는 재빨리 양팔을 벌려 의형제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엄청나다.”

막효의 반응을 확인한 비류는 다시 조금 전에 시작된 싸움을 내려다봤다. 아니, 용연에게 달려드는 원앙각의 낭인들 표정을 봤다는 말이 옳았다.

***

용연은 걸음을 뗀 이후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호위들 다섯과 십여 명의 낭인들이 용연의 좌우로 쓰러져 있었다.

비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떠올려 볼 것도 없었다.

지금, 십여 명의 또 다른 낭인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용연에게 덤벼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쉬쉭―.

네다섯 명이 동시에 용연의 몸을 찌르고 자르고 부수려고 무기를 휘둘렀다.

용연은 걸음도 멈추지 않고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 냈다.

터더더― 텅!

공격했던 낭인들이 엄청난 속도로 바닥과 충돌한 뒤 일어나지 못했다.

반특의 오른팔인 요손에게 일어났던 일이 세 번째로 반복된 것이다.

용연의 걸음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고, 백여 명의 낭인들이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지!”

반특이 갑자기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용연의 뒤쪽에서 수십 명이 덮쳤기 때문이다.

“저런 등신.”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비류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원앙각의 낭인들이 연거푸 나가떨어지는데, 금강각의 낭인들은 다를 거라 생각한 것일까?

반특의 환해진 표정을 보고 한심해지고 말았다.

퍼버버벅!

비류의 예상대로 금강각의 낭인들 역시 용연에게 어떠한 타격도 주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꾹.

비류는 양손을 움직거리다 깍지를 꼈다.

낭수련을 가진 자.

저 청년에 대한 유일한 정보다.

그것만 듣고 사천성으로 들어온 것도, 참려로 향한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곧장 달려온 것도 실수였던 것이다.

그동안 너무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따르는 아우들을 위해서,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쉽게 얻기 위해서 사야벌이란 세력을 이용하려 했는데, 몸과 머리가 느슨해졌던 것이다.

“저자, 낭수련을 완전히 자신과 일체시키고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목소리가 비류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요손을 한 방에 날려 버리는 것을 봤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인정하기 싫어서, 저렇게 젊은 나이로 낭수련의 선택을 받았을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더 보고자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켜볼 이유가 없었다.

걷는 것만으로 이 일대를 완벽하게 지배해 버리는 자에게 무슨 확인이란 말인가?

“멈…….”

멈추라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비류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쩡!

지금까지는 장난이라고 여길 정도의 밀도 높은 강렬한 소리가 사방으로 쫙, 퍼져 나갔다.

***

뒤쪽에서 덤벼들던 자들이 나가떨어지자 원앙각의 낭인들은 물러서기 바빴다.

차르륵.

응아린이 늘어나며 용연의 몸통을 덮었다.

번쩍.

가면 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언제 사냥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멀리서도 보이는 저 시선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뒤쪽의 낭인들의 눈빛 역시 저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슥, 상체를 살짝 숙이자마자 곧바로 속도를 냈다.

쉬쉬쉬―.

창천비가 아닌 다른 신법은 익힌 적 없지만, 어떻게 하면 최소의 저항으로 거리를 압축할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팔 앞쪽에 뾰족한 활촉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담영호가 알려 줄 때만 해도 창천비의 기초라 여기고 머리에 새겼으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더 빨라지기 위한 심상훈련이었다는 것을.

용연이 속도를 내자 몸통을 감싸고 있던 응아린이 코를 내밀 듯 화살촉의 형태로 삐져나왔다.

“얘, 얘들아, 막아!”

만영이 다급히 팔기의 뒤로 피했고,

“갈!”

반특은 디디고 있는 땅을 무너뜨릴 것처럼 강하게 발을 굴렀다.

꾸― 웅!

팔기의 영앙기는 용연의 심장을 노리며 파고들었고, 반특의 금강보는 파동을 일으키며 용연의 전신을 짓눌렀다.

쩡!

용연은 두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그대로 들이받았다.

이전의 대응이 푸석거리는 돌을 부순 느낌이라면, 이번 충돌은 안이 꽉 찬 차돌을 때린 것처럼 밀도가 높았다.

들썩.

열여섯 개의 앙조가 일제히 용연의 몸을 찔렀으나 오히려 물러난 쪽은 팔기였다.

한 번도 실패한 적 없었던 수법이었는지 팔기들은 사색이 되어 뒤를 돌아봤다.

“컥!”

뒤에 있던 만영이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만영에게 있어 팔기란 몸속의 장기나 마찬가지인데, 그 팔기가 밀리자 그 충격을 고스란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만영은 진탕된 속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반특부터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반특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끄음.”

반특은 자신의 상태도 잊은 채 사방을 살피기 급급했다.

용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강보를 펼치는 순간, 용연이 곧 머리부터 땅에 박힐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밀어냈던 금강진기가 뚝, 끊어지더니 엄청난 경기가 양쪽 어깨를 짓눌러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턱.

“……!”

반특은 미미하게 들린 소리에 온몸이 전율로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투신의 물건을 탐한 죄다.”

‘투신?’

꽈릉!

갑자기 벼락 치는 굉음이 터졌다.

“크아악!”

어깨의 반이 벽에 박힌 반특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헉!”

만영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진탕된 속을 다스리는 것도 잊고 눈을 부릅떴다.

요손이 벽에 박혀 기절했던 장면과 겹치긴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용연이 반특의 머리를 쥔 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툭.

벽에서 강제로 빠져나온 반특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나, 투신은, 이전의 낭수련 주인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잘 기억해 둬라. 낭수련의 주인은, 나, 투신이다.”

쾅!

용연은 쥐고 있던 반특의 머리를 벽에 던졌다.

반특이 저항 한 번 못 하고 당하는 모습에 원앙각의 낭인들은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투신의 다음 목표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항복의 표시인 것이다.

“힉! 나, 나는…….”

만영은 용연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돌려지자 그대로 주저앉으며 다급히 물러나려 했다.

그때,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비류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지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입모양으로 도움을 청했다.

잠깐만 용연의 이목을 끌어 줄 수만 있다면 천한 놈이든 귀한 놈이든 아무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영 혼자만의 생각이고, 비류는 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배, 배신이냐?’

이번에도 입모양만으로 질문을 건넸다.

피식.

비류는 만영의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호법들이 와도 용연을 물러나게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데 자신에게 기습을 하라고?

자신을 돕지 않으면 그건 또 배신이 되는 모양이다.

모른 척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만영을 따라온 낭인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저런 순한 놈들을 두고 도망이라니.

“벌주도 아니면서 오지랖은.”

비류는 혼잣말을 하다 절벽 아래로 몸을 떨어뜨렸다.

‘네놈이 그럴 줄…… 음? 정말 도와주는 거냐?’

만영은 비류를 욕하던 생각을 멈추고 눈을 반짝였다.

비류가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 투신, 그놈이 나를 이곳으로 불렀소. 욕심, 그래, 욕심은 누구나 있는 거 아니요? 잠깐, 욕심이 나서…….”

“만영.”

“……음?”

“만영 아니야?”

“내 이름이 맞기는 한데…….”

“혼구당, 경도문, 도적 떼를 움직였고?”

“……!”

만영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입을 닫았다.

그때, 용연이 천천히 돌아섰다.

“더 다가오면, 아래쪽, 뒤쪽, 그리고 앞에 있는 자들까지 모두 죽어.”

용연은 바닥에 내려서서 멈춰 있는 비류를 향해 세 곳을 가리켰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일부러 딱딱하게 구는 건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기다릴 테니 일 보시오.”

비류는 항복한다는 듯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기에 외면하려는 것이다.

그 순간, 만영과 팔기가 동시에 기세를 일으키는 것이 느껴졌다.

스―.

‘움직였…… 만영과 팔기가 동시에?’

비류의 귀에 들린 소리는 하나였다.

콰직!

‘쯧.’

비류는 속으로 혀를 차며 팔기 중 한 명이 날아간 것이라 생각하며 인상을 썼다.

그러나 눈을 뜨진 않았다.

쿠직! 텅―.

신체 일부가 부러진 채 날아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돌아서 있음에도 싸우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만영의 비명이 들릴 법도 한데.

“끄아아악!”

역시나 예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종자였다.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서서히 눈을 떴다.

“헉!”

눈을 뜬 비류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두어 명 뼈 부러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팔기들의 몸이 기이한 형태로 구겨진 채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만영은 용연의 손에 뒷목이 잡힌 채 축 늘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룰 수 있겠나? 아니면.”

용연은 비류가 눈을 뜨자 원앙각 낭인들을 보고 있던 눈을 돌려 뒤쪽을 쳐다봤다.

아래쪽에서 올라오다 멈춰 있는 사람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원앙각과 금강각 소속 낭인들은 지금부터 나, 비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장돈, 원앙각 잔여 인원 파악해서 비류각과 합류시켜라. 대벽, 금강각 인원을 추슬러서 합류하라는 명령을 기다려라. 그리고 막효는 나를 대행해 두 사람을 챙겨라.”

비류는 용연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빠르게 장내를 정리시켰다.

용연이 사람들의 움직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나서야 다가갔다.

“그자는.”

홱―.

손에 쥐고 있는 만영을 어떻게 처리하려느냐고 물으려는 순간, 용연의 손을 떠난 만영이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죽은 것 같다.”

용연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손을 털었다.

만영을 살펴 줄 마음은 애초에 없었으나, 한 가지를 더 노린 행동이었다.

―투신을 막는 자는 죽는다.

―움직이지 않을 때는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지만, 일단 움직이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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